어제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습지와 인간』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김훤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주관한 행사였습니다. 김주완 기자의 말처럼 저도 그 명단에 이름이 들어있지 않으니 저는 김훤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속하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사실은 김훤주 기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김훤주는 정말 훌륭한 동지였으며 벗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 여자가 아닌 남자 김훤주와의(?) 만나다. 수고하셨는데, 좀 이상하네여. ~와의 만나다?
김훤주와의 만나다?
「김훤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에 실린 명단을 보니 평소 존경하는 정동화 소장님(창원시 전 의원)과 박용규 선생님(마산양덕중학교 교사)의 이름도 보이는군요. 반가운 분들입니다. 행사가 열리는 창원 정우상가 맞은편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나비 소극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자그마한 소극장이긴 하지만 빈 자리가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행사 진행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출판기념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축하공연도 있었습니다. 장애우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공연이었습니다. 특별히 잘한다거나 멋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뭐랄까, 사랑이 넘치는 축하공연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공연이 끝나고 연이어 선생님들의 수화 공연이 이어졌는데, 선생님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넘치는 사랑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웃음 띤 얼굴에서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장애인 학교 선생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저렇게 웃을 때조차 사랑이 눈물처럼 마구 떨어지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감상이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사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웃어주기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저런 분들과 너무 비교하면 마음이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지요. ‘장애우 학생들의 국토순례대장정’을 크게 취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는 장애우들과 선생님들.
제가 김훤주 기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편집부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80년대 말, 노조일로 마창노련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처음엔 그이와 별로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이 별로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삐쩍 마른 몸매에다 키가 멀대 같이 컸습니다.
마창노련 신문을 만드는 것이 그의 주업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창노련 역사기록의 대부분은 아마 그의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새삼스럽게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장 위에 잠자고 있던 "내사랑 마창노련"(김하경 편저)을 꺼내 다시금 읽어보았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처음 그의 이름은 신성욱이었습니다. 그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일부러 마산창원 지역으로 내려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로운 이름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이원만이란 이름입니다. ‘부마항쟁사’를 엮어 책으로 펴내는 데 지대한 공헌(편집장)을 한 박영주 씨가 1986년 처음 마산에 내려온 그에게 자기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도록 배려했을 때 소개받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원만은 신성욱보다 앞선 인물로서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허연도 전 마창노련 의장. (현) 민주노총 도본부 지도위원이 덕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불과 몇 달 밖에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이름으로 이미 취직을 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 민증을 빌려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걸 위장취업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이야기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그가 이제 노동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문제로 삶의 궤적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습지와 인간』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습지와 인간은 인간미 넘치는 자연스러운 문체로 습지와 대화하는 책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출판기념회도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우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시작해서 민중가수 김산이 열창하는 나비소극장엔 훈훈한 감동이 넘쳐났습니다.
그렇게 열기가 오르던 행사 중간에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마창환경운동연합’이 김훤주 기자에게 ‘습지 강사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였습니다. 사회자의 말처럼 작가에게 시상식(사실은 수여식)을 하는 출판기념회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환경연합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앞으로 ‘저자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습지여행’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나 봅니다. 정말 좋은 계획입니다. 가수 김산. 이렇게 노래도 잘 하고 얼굴도 잘 생긴 가수가 테레비에는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습지강사 위촉장을 수여하는 마창환경연합 대표 신석규 선생님.
저는 이미 ‘저자와 함께 하는 소벌여행’을 해보았는데 소벌(우포)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하던 것도 보았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저자와의 여행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는 진리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습지와 인간』이 환경연합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 속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책 속의 습지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나친 저자의 열정 탓에 시간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훌륭한 자료들을 보여주기 위해 뛰어다닌 노력이 절절이 느껴졌습니다. 영상으로 보는 습지들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습지가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어가는 현장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영상으로 보는 습지’. 좋았다. 그런데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지 나중엔 지루해졌다.
그러나 역시 너무 지루하게 오래 끈 것은 결정적인 흠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동도 오래가면 그 빛이 바래는 법입니다. 조금만 불편해지면 언제 감동을 먹었었는지 기억도 잘 하지 못하는 게 간사한 인간이랍니다. 가장 좋은 자료 몇 장만 엄선해서 20분 내외로 편집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자님, 다음 출판기념회 할 때는 유념해 주시와요.
‘뒷풀이’ 자리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김훤주 기자(현재는 언론노조 도민일보지부장)는 인간을 소재로 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2008. 11. 28.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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