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문의 진솔한 삶이야기 다섯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비해 노동조건이 많이 나아졌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 친구 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친구들과 얘기하다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술 약속을 하면서 토요일 오후에 하자고 했더니 “야, 우리가 토요일 오후에 어떻게 만나냐?”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주 5일 근무제 하는데 토요일 오후가 젤 부담 없고 좋잖아!” 했다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된통 혼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주 44시간 근무제 할 때 이후로 회사를 떠났던지라 잘 몰랐던 것입니다. 주48시간 노동제가 주 44시간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주 40시간 노동제가 정착됐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에 떡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 48시간 노동제가 지켜지고 있었습니다(물론 토요일에 출근 안 할 자유—실제로는 이런 자유도 없지만—는 있지만 대신 돈을 안 줍니다. 그러니 출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주 48시간 노동젭니다).

그리고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받는 월급은 실로 쥐꼬리 그것입니다. 이걸 밝히면 제 친구의 자존심이 많이 뭉개질지는 몰라도 이 친구 한달 월급이 잔업 빠지지 않고 꼬박 해야 180만 원 정돕니다. 나이에 비해 턱없는 액수죠.

▲ 송정문 마산회원 국회의원 후보(진보신당)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는 좀 올랐을까요? 아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걸로 보입니다. 그때도 몇 년 동안 임금동결만 계속된 데다가 거꾸로 깎이기도 했다고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있다는 걸 다행으로 아는 시대가 됐습니다.

요즘은 청년실업이란 말이 거의 무감각하게 들립니다. 그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겁니다. 워낙 실업자가 많으니 실업이란 말도 특별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집에서 놀거나 공무원학원을 직장처럼 다니는 것은 예사가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직업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거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도 머잖아 전부 비정규직이 되지 않겠냐는 말들도 공공연히 나돕니다. 진짜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워낙 오리무중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 잘 살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믿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이야 빈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분들은 비정규직의 설움을 모릅니다. 남들보다 더 힘든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열악한 근로조건에 허덕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그분들이 진정성이 있다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추상적인 말보다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확립하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 이하가 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하겠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가 변호사나 대학교수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 그대로 비정규직이므로 정규직보다 임금이 훨씬 더 많아야 하는 게 맞는 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싼값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송정문 씨는 어떨까요? 그이는 누구보다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실업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정치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 마음은 ○○이 알고 △△ 마음은 △△이 안다. 그렇죠? 

삶이야기5.  60만원, 저임금 노동자

 

<글쓴이. 송정문>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저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집안 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어떤 목사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정문씨,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그분은 밀알선교단이라는 장애인선교단체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셨는데, 마산 창원에도 설립하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일을 같이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더라도 후원을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기 때문에 급여는 많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실 당시 저에겐 급여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 일자리를 갖고 싶었으니까요.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웬 장애인들이 이리도 많은지..

그 때가 바로 이 땅의 장애인이 저 뿐만은 아니란 걸 현실로 깨닫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몸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교통사고, 출산사고, 산재사고, 유전, 질병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순간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밥먹고, 함께 노래하며 일하는 동안 저에게 업무시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신학공부를 하고 있어, 거의 제가 버는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그게 고작 60만원이었기 때문이죠.

아파트 관리비 내고, 아파트임대료 내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상하수도세, 자동차보험료 등등.. 숨만 쉬고 살아도 나가야하는 비용은 한두 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쌀이며 반찬거리를 계속 사다주시지 않았다면, 계속 빚이 쌓여갔을지도 모릅니다.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매일이 걱정입니다.

‘차가 고장 나면 안되는데’, ‘아프면 안되는데’, ‘물가가 오르면 안되는데’...

친구들과 밥 한 번 먹는 것도 여윳돈이 생길 때 가능했고, 저축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 해도, 우선 살아야 했으니까요.

 

정치권에서 높은 지위에 계신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그분 평생에 과연 가난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과연 이분들의 손에서 어떤 정책이 만들어질까요.

수천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를 기억합니다. 현재 이십대들의 절반이 이런 청년실업자입니다.

한 가정에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어, 치료하느라 고단한 삶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지적장애아이를 키우다 아이들과 자신의 목숨을 끊은 부모님들을 기억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의 아픔’...

저의 마음 속에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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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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