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은 휴머니즘이다
- 레즈를 위하여<황광우> 독후감
나도 한 때 ‘해고자의 길’ ‘수배자의 길’을 걸으며 ‘노동자의 길’을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마지막 겨울의 어느 날, 도봉산 자락 어느 곳 노동조합 교육선전 강사 집체교육장에서, 나는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을 패러디한 ‘전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서는 용감한 동지라는 주변의 찬사를 들으며 우쭐했던 기억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그 때 군포지역 운수노조 사무국장이며 나와 한 조였던 송영길은 지금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그 날 그 자리에 전국에서 모여들었던 수많은 동지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이 황광우가 그리듯 파도가 되어 거품과 포말로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파도로, 거품으로, 포말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의연히 부서지기를 거부하고 일선에서 헉헉거리며 바위를 향해 달려가는 동지들도 남아 있다. 어쩌다 그런 동지를 만날 때면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존경심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언제이던가, 지나가는 홍지욱 동지(그는 지금 민주노총 도본부에서 일하고 있다.)를 먼발치에서 본적이 있다. 달려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은 이제 개별 노동자들, 노동조합들의 파도와 같은 투쟁을 진보정당이란 거대한 태풍으로 만들어 바위를 향해 돌진할 날이 올 것이다. 꼭...
아래 글은 옛날 인민노련의 기관지 ‘노동자의 길’에서 주대환, 노회찬과 더불어 3대 필진의 한 사람이었던 황광우의 저작 <레즈를 위하여 : 부제 -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실천문학사> 에 수록된 글이다. 특별히 옛날 함께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동지들을 회상하며 옮겨 본다. 황광우는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노동자의 철학’ 등의 저자이다. 나도 황광우의 책들을 읽으며 학습을 받았다. 처음 나에게 학습을 권장한 이는 자주파 계열의 동지였지만, 당시 황광우의 저작들은 정파를 떠나 좋은 교재로 인정받았다. 오늘 다시 황광우의 글을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황광우는 광주일고를 다니던 시절부터 유신반대 데모를 벌였다는, 우리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좀 특이한 사람이다. 그러나 십 수 년도 훨씬 이전 언젠가 그와 함께한 술자리는 풍성한 그의 외모만큼이나 따뜻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었다. 그의 글 곳곳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따스한 온기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가는 기본적으로 휴머니스트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험난한 노동운동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어머니가 준 차비 30원을 쫄쫄 굶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시다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서 나누어주고, 자신은 차비가 없어 청량리에서 도봉산 수유리까지 그 먼 길을 걸어서 가다가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잠을 잤다는 우리들의 영웅 전태일, 그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가 아닌가?
본문 중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날 쓴 마지막 일기를 소개하면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책을 들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한 번 일독해 보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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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를위하여/황광우】중 <파도와 같은 노동운동>
한 노동자가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난 1980년대 이래 한국 노동운동이 배출한 많은 선진 노동자들을 만났다. 동일방직 노동조합 노동자들에서 시작하여 인천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그리고 인천의 수많은 중소 사업장에서 배출된 노동자들, 나아가 전국 각지의 현장에서 성장한 노동형제들을 두루 보아왔다. 그런데 ‘노동자의 길’을 걷고자 다짐하였던 그들의 다수가 지금은 투쟁의 일선에서 비껴서 있다.
돌이켜보니 ‘노동자의 길’은 ‘해고자의 길’이었다. 투쟁을 하다 보면 감옥에 아니 갈 수 없는 것이고, 감옥에 갔다 오면 노동자는 해고된 몸이 된다. 몇몇 명망 있는 노동조합운동 지도자들이야 주위의 신부님들이나 지식인들이 주는 푼돈으로 호구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름 없는 해고자들은 몇 달을 버티기가 힘들다. 라면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두 달 김치 없는 라면을 먹다 보면 얼굴이 누렇게 뜬다. 평생 ‘노동자의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던 그 뜨거운 맹세를 버리고 하루하루의 호구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그 아픔을 누가 알 것인가?
가만히 살펴보니 노동자의 투쟁은 파도다. 파도가 한번 일어나 벼랑에 부딪힐 때 그 포효소리, 참으로 웅장하다. 하지만 한번 벼랑에 부딪히고 난 다음의 파도는 산산이 부서져 거품이 되고 포말이 되어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거품이 되고 포말이 되어 바다 속으로 되돌아가는 파도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2002년 ‘발전 노동자 파업투쟁’을 보면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누가 발전 노동자들이, 그리고 그 가족들이 투쟁의 일선에 나서 한국 노동운동의 새 장을 열어젖힐 것이라 예견하였던가. 경찰서에 함께 끌려간 발전 노동자들은 소심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경찰서에 끌려왔으니 오만 가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오늘 이들이 일어섰고, 깨졌다. 하지만 내일 또 다른 노동자들이 일어서 싸울 것이고, 또 깨질 것이다. 그렇게 노동운동은 자기의 생명력을 이어오지 않았던가.
참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일어나 투쟁의 패배와 함께 사라졌다. 파도처럼 일어나 절벽에 대가리를 디밀고 부딪쳤다가, 그 절벽을 다 부수지 못한 채, 파도는 자기를 일으켜 세운 바다 속으로 다시 사라져갔다. 그렇게 부서지는 파도지만 천년을 버티는 벼랑도 언젠가는 이들 부서지는 파도 앞에 무너져 내릴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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