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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광개토태왕의 역사왜곡, 최고수준급이야

불멸의 이순신, 태조 왕건, 무인시대 등 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정통사극의 본령으로 대접받아온 KBS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극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현재시간 포털에 상위 노출된 광개토태왕에 대한 한 트위터의 평입니다.

“사극을 좋아해서 보기는 한다만 역대 KBS 사극 중에 광개토태왕처럼 재미없고 늘어지고 개연성 없게 만든 드라마도 없을 듯. 주인공이 눈 크게 뜨고 목소리 우렁찬 거 말고는…, 연출가 실력이 정말 중요한 듯….”

제 생각도 똑같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단지 연출가의 실력 탓만은 아니고 작가의 형편없는 시나리오 탓도 크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태연작약 하고 있으니 어떨 땐 짜증을 넘어 분노마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담덕의 형 담망이 죽을 때도 그랬고 고국양왕의 왕비가 어이없이 죽을 때도 그랬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만들어내는 작가가 신기할 지경입니다. 이 정도면 수준 낮은 대사들에 대해선 언급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연기자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언젠가 한 연예잡지에서 톱클래스의 배우들이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결정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거 참, 배들이 불러터졌구먼” 하고 욕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작가와 연출자 한번 잘못 만나면 힘들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한순간에 ‘꽝’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자를 드라마의 3박자라고 한다면 광개토태왕은 완전 엇박자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꽝’입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일전에도 포스팅으로 말했지만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광개토태왕을 심각하게 모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광개토태왕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왕의 선왕인 고국양왕은 더한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광개토태왕 담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고조선의 고토를 완전하게 회복한 것입니다. 담덕은 18세에 왕이 된 이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며 영토를 넓혔습니다. 백제를 무릎 꿇리고 신라에 군대를 주둔시켜 사실상 복속시켰으며 부여와 말갈, 거란, 숙신을 발아래 두고 요동을 정벌했습니다.

이를 위해 담덕은 왕으로 있는 내내 국내성을 떠나 전장을 누볐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는 경우를 봅니다만, 왕이 수도를 비우고 전쟁터를 떠돈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와 영국 리처드 왕의 일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었지만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사이에 이른바 구혼자들로부터 왕국과 왕비 페넬로페를 강탈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로빈훗의 전설에 의하면 영국의 국왕 리처드 역시 십자군 원정을 간 사이에 동생 존에게 왕위를 강탈당합니다. 물론 오디세우스와 리처드는 귀환하는 즉시 왕권을 되찾았습니다만 불필요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재기가 모든 현실에 통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우리의 광개토태왕은 어떻게 마음껏 전장을 누비며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요? 국내 정치가 안정됐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를 떠받치고 있는 5부족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왕을 지지하고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국이 불안정하면 왕이 수도를 비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정국의 안정은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고구려가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고 왕권이 확립된 것은 대체로 소수림왕 때로 보고 있습니다. 소수림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했습니다. 나라의 기틀을 세운 것입니다.

나중에 신라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데 이때부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삼국패권경쟁에서 우위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국운에 있어서 고구려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상 개연수가 태자 담덕을 죽이고자 모의를 하고 마침내 고국양왕이 겁박에 넘어가 옥새를 내놓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실로 어처구니없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도대체 상상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는 심각한 역사왜곡인 것입니다.

이런 정국에서 담덕이 왕위를 물려받았다면 그는 대외활동보다는 내치에 힘을 기울여야 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의 내용대로라면 흩어진 귀족세력을 규합하고 이들을 왕의 권위에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역적모의를 한 자들을 색출해 숙청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병을 거느리는 등 강력한 권력기반을 가진 중앙귀족과 지방호족들로부터 진심으로 충성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미디어와 통신망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담덕은 재위 20여년을 오로지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만 힘을 쏟아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담덕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소수림왕-고국양왕을 거치면서 왕권은 충분히 강했으며 국론은 통일돼 있었던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소수림왕의 뒤를 이은 고국양왕도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구려의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담덕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부왕인 고국양왕이 실천에 옮겼던 것이고 아들 장수왕 대에도 계승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고국양왕을 신하에게 굽실거리며 옥새까지 갖다 바치는 비굴한 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고국양왕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작가가 한국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작가와 연출자에게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담덕 역을 하고 있는 주인공 이태곤은 눈을 부라리고 괴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개토태왕을 마치 일개 오랑캐 부족장 정도의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덕은 오직 무력만으로 광활한 만주대륙의 패자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장르가 판타지이긴 했지만 최근 광개토태왕을 다루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기억해봅시다. 담덕이 무력만을 쓰던가요? 아닙니다. 그는 무력보다 덕을 베풀어 사방을 경략했던 것입니다.

어제 보니 고운이 담덕에게 복수하기 위해 후연의 태자에게 무릎을 꿇더군요. 고운이 나중에 후연(혹은 북연)의 황제가 된다는 역사를 들어 이런 설정을 한 것은 한편 이해는 갑니다만 개연수의 모반과 죽음-고운의 망명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전개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떠나 왜 좀 더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다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너무 엉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어제의 마지막 장면, 태자비(담덕이 첫째 부인) 도영이 관미성주 아신을 만나는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이거 이러다 드라마를 광개토태왕과 개연수 집안간의 분쟁으로 만드는 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신은 진사왕에 이어 백제의 왕이 될 인물입니다. 392년에 왕위에 올랐으니 담덕과 같은 해에 왕이 됐습니다.

담덕은 왕이 되자 곧바로 백제부터 공격했습니다. 결국에는 한강 이남까지 쳐들어가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백제는 왕의 동생을 비롯해 십여 명의 대신들이 인질로 잡혀가는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정을 감안하면서 그다음 드는 생각.

‘이거 혹시 도영을 아신에게 시집보내려는 거 아냐?’

그래서 화가 난 담덕이 즉위하자마자 백제부터 공격한다는? 여기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를 하기로 하지요. 좀 황당한 이야기긴 하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광개토태왕의 남하정책을 연적과의 결투 정도로 만들다니.

아무리 재미도 좋지만 지나친 역사왜곡이 짜증납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이 정도면 가히 최고 수준급입니다. 자, 글이 너무 길게 나왔으므로 이만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에다 위키백과에서 드라마 광개토태왕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짧게 소개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을 조명한 KBS 드라마이다.[1][2] 그러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드라마의 전개 내용이 정사와는 상반되게 제작되어 논란을 낳았고,[3] 진부한 극 전개로 인한 작품성 시비도 계속되고 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