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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지리산은 왜 지리산이라고 부를까?

며칠 전, 10월 20일이었군요. 함양 마천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함양읍을 거쳐 구비구비 고갯길을 두 번 돌아 올라가면 이렇게 지리산제일문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고갯길에 올라 잠시 차를 세워두고 지리산제일문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날이 두 번째 만나는 문입니다.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대자연에 웬 어울리지 않는 인공의 구조물이람! 

그러나 두 번째 만나니 그 생소한 불쾌감도 덜합니다. 
저 인공석조물도(석조물인지 콘크리트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세월의 옷을 입게 되면 나름 볼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문제는 세월의 옷을 입기도 전에 육신이 썩어문드러지는 불상사가 없기를 빌어야겠지요.   




지리산제일문을 넘어서면 웅장하게 늘어서있는 지리산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리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지리산이란 이름을 느낄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죠.

제가 처음 이 고갯길을 넘을 때, 마침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있었습니다.
그 달빛 아래 지리산이 지다랗게 펼쳐져 있었죠.
그때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함양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김현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저 지리산이 와 지리산인 줄 아나?"
"글쎄요."
"우리 어무이 말씀이 그라시는기라. 달리 지리산이 아니고 저렇게 지다랗게 펼쳐져 있으니 그래서 지리산인기라."

그리고 자세히 보니 역시 그랬습니다. 지다랗게 펼쳐진 지리산.
장관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시는 그날의 지리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보름달을 상들리에처럼 달고 지다랗게 늘어선 지리산은 일품이었습니다.

이 고갯길 아래 터를 잡고 사는 어느 분도 이날 제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야, 니는 지리산이 와 지리산이라고 생각하노?"
"글쎄요."
"봐라. 저렇게 지다라니까 그래서 지리산 아이가." 

이날은 지다란 지리산을 느끼기엔 별로 좋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웅장한 지리산이 지다랗게 늘어서서 흘러가는 모습을...




운전을 해주시는 분은 우리 동네 형님입니다.
사실은 운전을 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옆에 타 준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습니다.
이분이 이날 너무 일이 하기 싫어 하루 땡땡이를 치는 데 제가 공사다망함에도 불구하고 따라 나섰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지만, 이렇게 하루를 신나게 놀고 나면...
다음날 할 일이 무척 많아집니다. 한마디로 피곤해지죠.
그러나 좋았습니다. 이런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살 수 있다면 더 한 행복이 없겠다 싶습니다.

마천면 소재지에서 비빔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역시 맛있는 블로그가 아니라 그런지 그 사진은 못 찍었네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반찬이 모두 산나물이었다는 겁니다.
아, 고추장 넣고 쓱쓱 밥 비며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혹 가시면 드셔 보시지요.
국수 시켜도 평소 구경도 못하는 산채나물이 엄청 많이 나오니... 역시 산골인심이 좋습니다.
얼마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이 마을에 사시는 아는 형님이 대신 내셨거든요. 
이분 원래 마산이 토박이인데... 이곳에 들어온지 서너 달 됐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나이가 한 5년은 더 젊어졌군요.
주름살도 펴지고, 얼굴에 화색도 돌고, 무엇보다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지리산 공기가 사람의 주름살도 펴주는 다림질 효과도 있나봅니다.
 



위 사진은 지리산에 사는 두 형님과 함께 간 우리 동네 형님과 함께 칠선계곡에 올라간 모습입니다.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고 난 다음 곧장 마천면에 있는 칠선계곡으로 간 것이죠.
우리가 관광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구경시켜 주겠다는데 거부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올라서니 실로 장관입니다.
저 아래 칠선계속이 보입니다.

이 마을에 사시는 형님이 그러시는군요.

"봐라. 저게 우리나라 3대 비경이라. 멋지지 않나."

제가 3대 비경 뭐 이런 거는 잘 모르지만, 그냥 1대비경이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탓은 아닙니다만, 사진으로는 도저히 직접 본 그 맛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대개 사진이 더 멋있게 나오는 법인데, 이 경우는 완전 그 반댑니다.
사진으로 보니 이날 보았던 비경이 절대 다가오지 않는군요.

안타깝습니다.




칠선계곡은 저 깊은 지리산 어느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수십킬로를 이렇게 흘러갑니다.
저기 보시는 것은 그 중의 짧은 어느 한 구간입니다.
우리는 저 아래 보이는 칠선계곡 깊은 곳까지 내려가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사진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 이 몹쓸 게으름이여. 그러게 평소에 충전을 잘 시켜놓았어야지.

아무튼, 위에서 내려다본 칠선계곡의 풍광도 일품이었지만...
내려가 직접 계곡에 안겼을 때 우리를 둘러싼 계곡의 아름다움이란...
실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는 말은 이때 써야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 이후로 카메라는 더 이상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제 어깨근육만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꾸불꾸불 내려가는 길도 너무 좋습니다. 
힘들지도 않습니다. 마치 산보하듯 그렇게 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아주 작은 마을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은 마을이라 하기도 좀 그런, 그렇게 작은 마을입니다.
너무나 아담한 마을은 또 너무나 정겹습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 시켜 먹었는데, 안주는 그냥 김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가 풋풋한 고추를 밭에서 직접 따다 주시는군요.
아, 밭에서 갓 나온 고추의 이 향기로운 맛...
그것도 보여주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온통 담쟁이 넝쿨로 치장한 담배건조장도 있었고요. 
아마 도시가 아니라도, 시골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아참, 마을 이름은 두지터라고 하더군요. 두지터라~

이 이름에도 깊은 사연이 숨어있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마을을 지나면 곧 칠선계곡의 품입니다. 
칠선계곡 가는 길이 마치 으슥한 밀림의 한 귀퉁이를 지나는 느낌입니다. 
반달곰을 조심하라는 팻말을 보니 오싹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제가 겁이 좀 많습니다. 
미리 마음속으로 곰을 만났을 때 주의사항을 되뇌어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11월 15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는 이 계곡에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말씀드린 으슥한 밀림의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문이 하나 있는데... 
그게 11월 15일 닫힙니다. 

물론 감시원도 지키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아름다운 칠선계곡의 풍광을 담기 위해 조만간 한번 더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11월 2일이나 3일쯤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혹 날씨가 좋다면 지다란 지리산을 찍어서 여러분께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때쯤에는 이 지리산도 단풍들이 온통 붉은 옷을 입혀 벌겋게 타오르고 있을 테지요.  
기대해보시지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