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김주완 기자의 중학생 아들이, 부산일보였던가요? 신문사에 인터뷰하자고 왔다고 자기 블로그에서 말했었지요. 이 친구는 사실 중학생이지만 이미 꽤 유명한 파워블로거이니 충분히 기사소재가 됐을 겁니다.
어쨌든 그걸 보고 꽤나 부러웠는데 이번엔 도민일보에서 저를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군요. 그래서 어제 부랴부랴 가서 허겁지겁 인터뷰를 했는데요. 오늘 아침에 바로 났네요.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 좀 그렇습니다. 거시기 하다고나 할까요?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인생사 전반에 대해 따져 물으시더니 신문에는 달랑하게 짧은 바지처럼 거개 다 잘리고 말았네요.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사진이었는데, 제가 요즘 머리카락들이 반란을 일으켜 내전 중인데요. 이것들이 한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역외탈출을 시도하고 있단 겁니다.
90년 공장에서 해고되고 수배, 구속생활을 겪고 난 이후 한 2년 가까이 한겨레신문 보급소장(지국장이라고 하죠?)을 했는데, 그때 배달하다가 버스 밑에 깔린 이야기, 새벽에 청소차에 치인 이야기, 배달 마치고 집에 가다 유치원 봉고차에 치인 이야기 같은 건 탈락됐군요.
먹고 살기 위해 학습지 영업사원도 잠깐 했는데, 하교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에 가 기다리고 있다가 장남감 갖고 노는 시범 실컷 보여주고 입이 헤 벌어져있는 애들한테 신청서 한 장씩 나눠주며 내일 엄마한테 사인 받아오라고 시키는 일이었죠. 그것도 빠졌고요.
나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서 부동산도 잠깐 했었고, 사업 한답시고 서울 잠실까지 올라가 사무실 차리고 있다가 그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뛰어내렸던 이야기도 빠졌네요. 그때 그 건물에선 사고 당시에만 10명이 죽고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는데요. 저는 천우신조였죠.
아무튼 그 외에도 간택에서 탈락한 얘기들이 꽤 많았는데, 저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다 나가면 어쩌나 하고 내심 노심초사(?)했는데, 헛된 걱정이었네요. ㅋㅋㅋ~ 처음 창원의 동양기계(통일중공업)에 입사했을 때, 거기 민노당 문성현 전 대표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여영국 진보신당 경남도의원도 함께 일했었지요. 이 친구는 제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답니다. 문성현씨와 여영국씨는 나란히 줄을 서서 작업도 하고 노조활동도 같이 하고 했습니다만, 저야 같이 활동했다는 건 좀 오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는 정도로….
전체적인 소감은 신문이 좋고 아직 파워가 세긴 하지만, 역시 지면의 한계 때문에 구구절절 사연을 옮기기엔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그의 자유로움을 따라잡기가 어렵겠다 생각이 드네요. 이거 제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고 너무 그쪽 편향으로 간다고는 생각지들 마세요. ㅎㅎ~
이상 각설하고 아래에 김두천 기자님께서 써주신 인터뷰 기사를 달아두겠습니다. 미리 보신 분들은 일부러 다시 보실 필요는 없을 테고요. 김두천 기자님 고맙습니다. 저도 이로써 김태윤 학생(김주완 기자 아들)에게 가졌던 부러움과 한은 풀었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김두천 기자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