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의 힘,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진제공@kbs
장혁? 오지호? 아니면, 곽정환 감독?
추노 1부는 회식 때문에 다음날 저녁에야 보았습니다. 그 회식 장소에서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후배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일찍 들어가서 추노나 봐야겠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2차를 마다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우리는 오랜만에 방앗간에 들른 참새들처럼 어시장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2차로, 3차로 아쉬움을 달랬지요.
곽정환 감독이 만든 작품은 무조건 본다는 후배 사진제공@kbs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그 후배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곽정환 감독님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 감독님이 만든 거는 무조건 봅니다. 진짜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곽정환 감독'이라고 하지 않고 꼬박꼬박 '곽정환 감독님'이라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존경하는 모양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는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합니다. 그리고 그런 직업에 걸맞게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주로 갇혀 있는 국내와 헐리우드를 벗어나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나아가 동유럽, 인도, 아시아까지 폭이 아주 넓습니다.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후배가 추노를 일러 "아마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곽정환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은 무조건 본다"고 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 오늘 저녁이로군요. 컴퓨터로 재방송(재방송이 맞나요? 아무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포스팅을 이미 몇 시간 전에 올렸습니다.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
저는 그 포스팅에서 <추노>가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장혁의 매력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로 장혁은 추노를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아니 추노 대길이 오직 장혁을 위해 마련된 캐릭터라고 말했던가요? 아무튼 장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껄렁거리는' 그의 독특한 연기는 대길을 조선 최고의 추노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장혁의 빛나는 매력 때문이었다는 말로 우선은 지켜보기로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전 2부를 보고난 후에 비로소 저는 이 드라마의 가공할 마력 뒤에는 감독의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시 추노의 힘의 원천은 곽정환 감독이었다
아, 정말 그렇군요. 제게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호칭하던 후배의 말처럼 과연 곽정환 감독은 대단한 연출자였습니다. 신비하고 화려한 영상들이 마치 구름처럼 흐르는(실제로 화면이 구름처럼, 어떨 땐 바람처럼, 물결처럼 흘렀어요) 장면들에선 온 몸의 근육이 팽창하며 숨이 멈출 듯했습니다. 마지막 광활한 갈대밭에서 마주 선 장혁과 오지호를 보셨나요? 그 두 사람 주변을 흘러드는 화사한 영상들에선 비장한 슬픔마저 배어나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2부에서 드디어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오지호, 껄렁거리는 대길과 대조되는 강인하고 비장한 남자의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매력이 대길과는 또 다릅니다. 그렇군요. 대길에게 송태하가 없다면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오지호 역시 장혁이 없이는 자신을 완성하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역시 이들 두 사람의 멋진 연기를 화려한 영상에 담아내는 것은 감독이었습니다. 광활한 갈대밭을 가로질러 달리는 두 사람의 동작들을 감싸고 흐르는 신비한 화면의 변화들은 순식간에 보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신비한 빛에 싸여 세상이 멈춘 듯한 화면, 그 속에서 빛나는 대길과 송태하의 숨 막히는 대결, 이것들을 만들어낸 것은 역시 감독이었습니다.
하하~ 아무튼 저도 앞으로 그 후배처럼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시진 않는군요. 그리고 <추노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극본을 쓰신 분은 천성일 작가로군요. 그런데 천성일 작가가 올려놓은 한 구절이 제 눈에 너무나 크게 들어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희망은 작고 부질없지만, 그것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명품 감독에 명품 작가의 어록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바로 몇 시간 전에 썼던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선덕여왕>은 현대 정치사를 고대 신라에 옮겨놓은 것 같은 각본으로 대성공을 연출했습니다. 선덕여왕이나 미실은 단순히 고대 신라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호흡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커다란 공감을 불러냈습니다. 인터넷은 온통 <선덕여왕> 천지였지요. <추노>(본문에선 '장혁')도 그리 할 수 있을까요? 1부에서 만난 <추노>라면 충분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노>에 거는 기대가 더 큽니다. <추노>에는 곽정환 감독의 화려하고 신비한 영상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명품 감독과 만난 명품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어떤 것일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정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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