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드디어 최후를 맞았습니다. 대단한 인기에 걸맞게 장중하고 엄숙한 죽음이었습니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사실이라고 항변하는 듯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실로 죽음이 아름답다고 생각될 만한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미실이 죽던 그 순간은 온 세상이 고요 속에 어쩔 줄 모르는 듯했습니다.
미실 권력의 핵심은 사람
대야성에 피신한 미실은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미실은 대야성에 쫓겨 들어간 그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전과는 반대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덕만은 시간에 쫓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미실의 군세는 불어납니다.
미실은 주지하듯 젊은 시절에 진흥대제와 함께 변방을 누비며 당대 신라의 국경을 만든 인물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이긴 하지만, 1부의 첫 장면이었던 만큼 드라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인 신라의 통치자 미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진흥대제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설원랑에게 미실을 죽이도록 칙서를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신라의 서울(서라벌)과 지방의 모든 조직이 미실에게 넘어간 후였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미실은 진흥대제의 주검 앞에서 이렇듯 당당하게 외칩니다.
“사람?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폐하. 보십시오. 여기 이 사람들을. 폐하의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인재들이 미실의 편에 가담했으며, 진흥대제는 사실상 앙상한 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알지 못할 예언만 남긴 채. 그리고 마침내 진흥대제의 예언대로 개양성의 주인 덕만이 나타나 미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신라의 곳곳에 미실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신라의 귀족, 장군들치고 미실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미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흥대제 밑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어온 미실은 마침내 권력을 잡자 도처에 그들을 심었습니다.
여기엔 미실의 말처럼 속함성을 비롯한 변방의 모든 장수들은 미실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고락을 같이 해온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중에는 속함성 당주처럼 진심으로 미실을 받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포정치 아래 길들여진 노예근성에 젖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변심은 미실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예입니다.
미실은 한 번도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세종과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조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미실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미실처럼 대의를 존중하고 실천해온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야성의 수비진용을 짜던 칠숙과 석품이 나눈 대화에서도 그걸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실 새주를 따랐던 것은 단 한 번도 새주가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매번 들을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실이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니요? 진흥대제가 살아있을 때의 미실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흥대제가 죽을 때 미실이 어떻게 했었지요? 미실은 진흥대제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흥대제는 미실에게 독살되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에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지요. "폐하, 제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대제가 남긴 유서를 숨기고 백정이 아닌 금륜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여기엔 금륜과 미실의 검은 거래가 있었습니다. 미실에게 황후전을 보장하겠다는.
왕이 된 금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미실은 이번엔 진흥대제의 진짜 유언장을 들이밀며 진지제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어린 백정을 왕이 되게 하고 그의 황후가 되기 위해 마야부인을 죽이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마야부인은 문노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미실의 꿈은 좌절됩니다.
덕만과 천명이 태어났을 때, 진평왕이 덕만을 버린 것도 결국은 미실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제 아무리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있다 한들 미실이 아니었다면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미 미실은 신국의 황제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이었던 것입니다.
미실에게 대의란 곧 자기 파벌의 권력과 축재의 수단일 뿐
그리고 30여 년,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은 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주물렀습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을 노예로 사들였고, 부를 축적하며 사병을 길렀습니다.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미실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신라가 진흥대제 이후 발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덕만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는 미실은 신국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미실과 그의 측근들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농단했음에도 발전은 고사하고 망하지 않은 신라가 참으로 신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실을 향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미실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칩시다. 요즘은 친일 행적이 명백함에도 그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라도 당시로서는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깟 대의 같은 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과거에 역적질을 좀 했고, 나라 재정을 거덜냈으며,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게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미실은 분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미실 스스로도 치가 떨리도록 비열한 방법을 써서 역모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평왕도 연금했고, 덕만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했으며,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옥좌에 앉아 신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미실은 명백히 이순간 반란 수괴인 것입니다. 그런 미실이, 그런데 너무 쿠데타 세력의 수괴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2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속함성 당주를 국경을 잘 수비하라는 당부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실로 착한 반란 수괴입니다. 반란군이 당장 눈앞의 역모보다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겹습니다.
과도하게 미화한 반란 수괴의 최후
일개 국경수비대장이 2만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서울(서라벌)을 수비하는 금군이 겨우 수천도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란 것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긴 상주정 당주가 5천의 군사를 끌고 오자 바로 전세가 결판이 나는 상황을 보며 놀랐던 경험이 있던 터에 이제 2만이라고 하니 더 놀랄 힘도 없습니다.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최후가, 꼭 그렇게 반란 수괴를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가치관 같은 것을 대입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30여 년만에 두 번의 반란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전선을 이탈해 권력을 찬탈하는 역모에 동원되는 반역사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포정치로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미실의 최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과거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불만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충분히 아름다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미실을 애국자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미실을 얼마든지 악당으로 만들더라도 그간 미실이 보여 왔던 무게만큼 장중하고 엄숙한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대의를 버리고 오랜 꿈을 쫓아 칼을 뽑아들었다면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죽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는 정말 미실의 그런 죽음을 바랐습니다.
미실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50여 회에 걸친 미실의 역정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늘 50회 미실이 죽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멋진 죽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고현정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래시계』의 히어로였던 그녀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멋진 배우입니다.
고현정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가 실로 궁금합니다. 고현정을 죽였으니, 이요원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실의 용상. 미실은 자신만의 옥좌에서 고혹적인 죽음을 맞는다.
미실 권력의 핵심은 사람
대야성에 피신한 미실은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미실은 대야성에 쫓겨 들어간 그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전과는 반대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덕만은 시간에 쫓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미실의 군세는 불어납니다.
미실은 주지하듯 젊은 시절에 진흥대제와 함께 변방을 누비며 당대 신라의 국경을 만든 인물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이긴 하지만, 1부의 첫 장면이었던 만큼 드라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인 신라의 통치자 미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진흥대제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설원랑에게 미실을 죽이도록 칙서를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신라의 서울(서라벌)과 지방의 모든 조직이 미실에게 넘어간 후였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미실은 진흥대제의 주검 앞에서 이렇듯 당당하게 외칩니다.
“사람?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폐하. 보십시오. 여기 이 사람들을. 폐하의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인재들이 미실의 편에 가담했으며, 진흥대제는 사실상 앙상한 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알지 못할 예언만 남긴 채. 그리고 마침내 진흥대제의 예언대로 개양성의 주인 덕만이 나타나 미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신라의 곳곳에 미실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신라의 귀족, 장군들치고 미실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미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흥대제 밑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어온 미실은 마침내 권력을 잡자 도처에 그들을 심었습니다.
여기엔 미실의 말처럼 속함성을 비롯한 변방의 모든 장수들은 미실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고락을 같이 해온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중에는 속함성 당주처럼 진심으로 미실을 받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포정치 아래 길들여진 노예근성에 젖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변심은 미실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예입니다.
덕만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미실, 이것도 대의였을까?
미실은 한 번도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세종과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조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미실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미실처럼 대의를 존중하고 실천해온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야성의 수비진용을 짜던 칠숙과 석품이 나눈 대화에서도 그걸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실 새주를 따랐던 것은 단 한 번도 새주가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매번 들을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실이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니요? 진흥대제가 살아있을 때의 미실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흥대제가 죽을 때 미실이 어떻게 했었지요? 미실은 진흥대제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흥대제는 미실에게 독살되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에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지요. "폐하, 제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대제가 남긴 유서를 숨기고 백정이 아닌 금륜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여기엔 금륜과 미실의 검은 거래가 있었습니다. 미실에게 황후전을 보장하겠다는.
왕이 된 금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미실은 이번엔 진흥대제의 진짜 유언장을 들이밀며 진지제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어린 백정을 왕이 되게 하고 그의 황후가 되기 위해 마야부인을 죽이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마야부인은 문노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미실의 꿈은 좌절됩니다.
덕만과 천명이 태어났을 때, 진평왕이 덕만을 버린 것도 결국은 미실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제 아무리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있다 한들 미실이 아니었다면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미 미실은 신국의 황제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이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진흥대제의 소엽도
미실에게 대의란 곧 자기 파벌의 권력과 축재의 수단일 뿐
그리고 30여 년,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은 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주물렀습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을 노예로 사들였고, 부를 축적하며 사병을 길렀습니다.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미실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신라가 진흥대제 이후 발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덕만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는 미실은 신국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미실과 그의 측근들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농단했음에도 발전은 고사하고 망하지 않은 신라가 참으로 신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실을 향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미실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칩시다. 요즘은 친일 행적이 명백함에도 그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라도 당시로서는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깟 대의 같은 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과거에 역적질을 좀 했고, 나라 재정을 거덜냈으며,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게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미실은 분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미실 스스로도 치가 떨리도록 비열한 방법을 써서 역모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평왕도 연금했고, 덕만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했으며,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옥좌에 앉아 신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미실은 명백히 이순간 반란 수괴인 것입니다. 그런 미실이, 그런데 너무 쿠데타 세력의 수괴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2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속함성 당주를 국경을 잘 수비하라는 당부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실로 착한 반란 수괴입니다. 반란군이 당장 눈앞의 역모보다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겹습니다.
미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남편과 아들(좌) / 덕만공주를 거짓말로 속이는 미래의 배신자 비담(우)
과도하게 미화한 반란 수괴의 최후
일개 국경수비대장이 2만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서울(서라벌)을 수비하는 금군이 겨우 수천도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란 것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긴 상주정 당주가 5천의 군사를 끌고 오자 바로 전세가 결판이 나는 상황을 보며 놀랐던 경험이 있던 터에 이제 2만이라고 하니 더 놀랄 힘도 없습니다.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최후가, 꼭 그렇게 반란 수괴를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가치관 같은 것을 대입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30여 년만에 두 번의 반란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전선을 이탈해 권력을 찬탈하는 역모에 동원되는 반역사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포정치로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미실의 최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과거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불만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충분히 아름다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미실을 애국자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미실을 얼마든지 악당으로 만들더라도 그간 미실이 보여 왔던 무게만큼 장중하고 엄숙한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대의를 버리고 오랜 꿈을 쫓아 칼을 뽑아들었다면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죽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는 정말 미실의 그런 죽음을 바랐습니다.
대의는 내게 있다는 듯 진흥대제의 소엽도를 내미는 덕만은 미실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미실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50여 회에 걸친 미실의 역정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늘 50회 미실이 죽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멋진 죽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고현정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래시계』의 히어로였던 그녀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멋진 배우입니다.
고현정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가 실로 궁금합니다. 고현정을 죽였으니, 이요원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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