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황천을 달리다 왔습니다. 정말이지 누런 하늘을 보았습니다. 사실은 뜻하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마산 해안도로변을 따라 무려 16km를 달리게 되었는데,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본의 아니게 경남도민일보와 경륜공단이 주최하는 <경남도민자전거대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냥 엉겁결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럼 왜 엉겁결에 팔자에도 없는 자전거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느냐구요? 그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걸어다니는 것 조차도 귀찮은 전형적인 도시의 40대 남자입니다.(40대에 진입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꼭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건 공개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저는 성인이 된 이후에 자전거를 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소년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자전거를 무던히도 즐겨 탔습니다. 벽촌 산골에서 살았던 탓에 자전거가 없이는 중학교에 등하교도 할 수가 없었으므로(학교까지 무려 40리 쯤 됐습니다) 늠름한 삼광호는 제게 가장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고 재산 제1호였지요.
그러나 산골소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부산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산골소년은 지금껏 사방이 아파트와 빌딩들에 갇힌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삼광호 자전거를 재산 제1호로 아끼던 산골소년은 무미건조한 도시남자로 살아왔고, 도시의 발달한 문명은 더 이상 자전거를 탈 필요도 기회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도 사랑스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녀석이 얼마 전부터 계속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놈과 협상하여 추석 때 어른들한테 받은 용돈에다 제가 돈을 얼마 더 보태어 자전거를 한대 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면 좋은 자전거를 싸게 살 수 있나 자전거 대리점, 할인마트 전시장 들을 둘러보러 다녔습니다. 그때 마침 경남도민일보 신문에 한 자전거 대리점의 미담 기사가 났더군요. 자전거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무료대여를 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곳에 가서 자전거를 한 대 샀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아들 녀석이 <경남도민자전거대행진>에 나가자는 겁니다. 자전거 판매점 사장님도 제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거들었습니다. 입이 함지박 만해져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초등하교 5학년짜리 아들놈을 어떻게 혼자 내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하던 도시의 40대 남자인 제가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던 자전거 대회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자전거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자기네 학교 운동장 옆 농구 골대에 이렇게 곱게 묶어 놓습니다.
제게만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주신 게 아니더군요. 다른 아저씨와 학생들도 빌려가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싶으신 분은 여기 가서 빌려 타시면 됩니다. 아무 확인도 안 하시더군요. 혹시 반납 안
하고 그냥 들고 가더라도 운명으로 생각하신다네요. 인상도 참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신포삼익아파트 상가 1층에 있습니다.
자전거 대회에 갔더니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병현 씨와 딸 두루입니다.
이애는 우리 아들보다 두 해나 어린데도 하는 짓이 꼭 누나 같습니다. 우리 애가 어릴 때 지 엄마
젖을 좀 많이 못 먹었나 봅니다.
이 친구가 우리 아들입니다. 요즘 자가용도 생기고 살판났습니다.
미래의 사이클맨입니다. 이 친구는 폼도 폼이지만 실제 경주에서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는 모습을 꼭 찍고 싶었는데 결국 못 찍었습니다. 누군지는 저도 모릅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전거 대회도 주최하시면서 무료 찻집도 운영하시네요.
기자님들이 수고 많으십니다. 한 쪽에선 참가자들에게 티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공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제 저런 걸 다 배웠는지, 참 잘 하더군요.
애들 엄마로 보이는 분들이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난리였는데, 저도 그 틈에 끼여 간신히 찰칵!
에어로빅 댄스에 맞추어 참가자들 전원이 준비운동도 했습니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마산공설운동장 후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왕복 16km 대행진입니다.
맨 뒤 우측 두 번째, 우리 아들도 출발하고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는 참가자들.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등에 <아웃, 조중동>이라고 써 붙이고 출전했군요.
조중동 씨를 엄청 미워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물론 저도 조짜 중짜 동짜,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아들과 함께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니 참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곳에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노니는 것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는 노란 하늘을 원망하며 헉헉거려야만 했습니다. 아! 이 맥 빠진 넓적다리는 왜 이다지도 무거운 것입니까? 탱탱하던 종아리는 어찌하여 물컹거리며 자그마한 페달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까?
정말 눈앞은 아찔하며 숨은 턱에 차고 하늘은 한 치 앞에서 누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제 뒤에는 백차와 경찰 싸이카가 에~앵, 에~앵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호위하며 따라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제가 꼴찌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미안해서 단 한시라도 페달 밟는 일을 어찌 소흘히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저는 16km를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반환점을 돌 때 잠시 바닥에 발을 댄 것을 제외하고는) 페달을 밟으며 마산 공설운동장에 헉헉거리며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곧 죽을 것만 같던 제 눈에 누렇게 보이던 황천은 어느새 맑게 개이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제 몸은 온천에서 방금 빠져나온 것처럼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 황천도 한 번씩 달려볼 만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느낌은 도시의 남자가 된 이후 처음입니다.
아들 녀석은 언제 들어왔는지 행사장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경품 당첨번호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끝>
제가 산골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3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던 협곡입니다. 왼편에도 오른편과
비슷한 모양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곳은 동네 앞산도 보통 1000m급을 오르내립니다.
제가 다닐 땐 포장이 안 된 신작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다니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편의 산을 뚫고 벼랑을 헐어 고가도로가 났으며 이제 차들은 이 새로
운 도로로만 다닙니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는 관광버스입니다.
가운데가 잘려나간 이 벼랑 밑 어디에는 1920년대에 세워진 비가 하나 있는데, <경북팔경지일>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경북팔경 중 으뜸이란 뜻이지요. 제가 다닐 땐 없던 다리가 네 개나 이 경북
팔경지일에 어깨를 붙인 채 들어서 있습니다. 혹자는 그걸 두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의 교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저는 속으로 그랬습니다. 미쳤군~^^
아마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다시 이 협곡을 가로질러 대운하를 건설하실 계획이셨죠. 높은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수로를 얹는 방식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해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다는 거죠.
이곳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그리고 이 곳 지리를 너무나 잘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발상이지만, 대통령께서 워낙 경제도 많이 아시고 특히 건설 쪽에선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들 하시니...
사진에 보이는 내는 새재에서 흘러내려오는 조령천으로 영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말이 샜군요. 이 사진을 소개하는 건 저도 왕년엔 자전거를 꽤 잘 탔었다는, 앞으로 가끔 타겠다는.... 그
런 말씀입니다.
2008. 9. 21일 <경남도민 자전거 대행진> 참여하고 난 오후, 파비
그럼 왜 엉겁결에 팔자에도 없는 자전거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느냐구요? 그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걸어다니는 것 조차도 귀찮은 전형적인 도시의 40대 남자입니다.(40대에 진입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꼭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건 공개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저는 성인이 된 이후에 자전거를 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소년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자전거를 무던히도 즐겨 탔습니다. 벽촌 산골에서 살았던 탓에 자전거가 없이는 중학교에 등하교도 할 수가 없었으므로(학교까지 무려 40리 쯤 됐습니다) 늠름한 삼광호는 제게 가장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고 재산 제1호였지요.
그러나 산골소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부산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산골소년은 지금껏 사방이 아파트와 빌딩들에 갇힌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삼광호 자전거를 재산 제1호로 아끼던 산골소년은 무미건조한 도시남자로 살아왔고, 도시의 발달한 문명은 더 이상 자전거를 탈 필요도 기회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도 사랑스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녀석이 얼마 전부터 계속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놈과 협상하여 추석 때 어른들한테 받은 용돈에다 제가 돈을 얼마 더 보태어 자전거를 한대 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면 좋은 자전거를 싸게 살 수 있나 자전거 대리점, 할인마트 전시장 들을 둘러보러 다녔습니다. 그때 마침 경남도민일보 신문에 한 자전거 대리점의 미담 기사가 났더군요. 자전거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무료대여를 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곳에 가서 자전거를 한 대 샀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아들 녀석이 <경남도민자전거대행진>에 나가자는 겁니다. 자전거 판매점 사장님도 제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거들었습니다. 입이 함지박 만해져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초등하교 5학년짜리 아들놈을 어떻게 혼자 내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하던 도시의 40대 남자인 제가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던 자전거 대회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자전거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자기네 학교 운동장 옆 농구 골대에 이렇게 곱게 묶어 놓습니다.
제게만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주신 게 아니더군요. 다른 아저씨와 학생들도 빌려가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싶으신 분은 여기 가서 빌려 타시면 됩니다. 아무 확인도 안 하시더군요. 혹시 반납 안
하고 그냥 들고 가더라도 운명으로 생각하신다네요. 인상도 참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신포삼익아파트 상가 1층에 있습니다.
자전거 대회에 갔더니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병현 씨와 딸 두루입니다.
이애는 우리 아들보다 두 해나 어린데도 하는 짓이 꼭 누나 같습니다. 우리 애가 어릴 때 지 엄마
젖을 좀 많이 못 먹었나 봅니다.
이 친구가 우리 아들입니다. 요즘 자가용도 생기고 살판났습니다.
미래의 사이클맨입니다. 이 친구는 폼도 폼이지만 실제 경주에서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는 모습을 꼭 찍고 싶었는데 결국 못 찍었습니다. 누군지는 저도 모릅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전거 대회도 주최하시면서 무료 찻집도 운영하시네요.
기자님들이 수고 많으십니다. 한 쪽에선 참가자들에게 티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공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제 저런 걸 다 배웠는지, 참 잘 하더군요.
애들 엄마로 보이는 분들이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난리였는데, 저도 그 틈에 끼여 간신히 찰칵!
에어로빅 댄스에 맞추어 참가자들 전원이 준비운동도 했습니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마산공설운동장 후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왕복 16km 대행진입니다.
맨 뒤 우측 두 번째, 우리 아들도 출발하고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는 참가자들.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등에 <아웃, 조중동>이라고 써 붙이고 출전했군요.
조중동 씨를 엄청 미워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물론 저도 조짜 중짜 동짜,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아들과 함께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니 참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곳에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노니는 것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는 노란 하늘을 원망하며 헉헉거려야만 했습니다. 아! 이 맥 빠진 넓적다리는 왜 이다지도 무거운 것입니까? 탱탱하던 종아리는 어찌하여 물컹거리며 자그마한 페달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까?
정말 눈앞은 아찔하며 숨은 턱에 차고 하늘은 한 치 앞에서 누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제 뒤에는 백차와 경찰 싸이카가 에~앵, 에~앵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호위하며 따라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제가 꼴찌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미안해서 단 한시라도 페달 밟는 일을 어찌 소흘히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저는 16km를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반환점을 돌 때 잠시 바닥에 발을 댄 것을 제외하고는) 페달을 밟으며 마산 공설운동장에 헉헉거리며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곧 죽을 것만 같던 제 눈에 누렇게 보이던 황천은 어느새 맑게 개이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제 몸은 온천에서 방금 빠져나온 것처럼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 황천도 한 번씩 달려볼 만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느낌은 도시의 남자가 된 이후 처음입니다.
아들 녀석은 언제 들어왔는지 행사장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경품 당첨번호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끝>
제가 산골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3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던 협곡입니다. 왼편에도 오른편과
비슷한 모양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곳은 동네 앞산도 보통 1000m급을 오르내립니다.
제가 다닐 땐 포장이 안 된 신작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다니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편의 산을 뚫고 벼랑을 헐어 고가도로가 났으며 이제 차들은 이 새로
운 도로로만 다닙니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는 관광버스입니다.
가운데가 잘려나간 이 벼랑 밑 어디에는 1920년대에 세워진 비가 하나 있는데, <경북팔경지일>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경북팔경 중 으뜸이란 뜻이지요. 제가 다닐 땐 없던 다리가 네 개나 이 경북
팔경지일에 어깨를 붙인 채 들어서 있습니다. 혹자는 그걸 두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의 교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저는 속으로 그랬습니다. 미쳤군~^^
아마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다시 이 협곡을 가로질러 대운하를 건설하실 계획이셨죠. 높은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수로를 얹는 방식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해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다는 거죠.
이곳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그리고 이 곳 지리를 너무나 잘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발상이지만, 대통령께서 워낙 경제도 많이 아시고 특히 건설 쪽에선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들 하시니...
사진에 보이는 내는 새재에서 흘러내려오는 조령천으로 영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말이 샜군요. 이 사진을 소개하는 건 저도 왕년엔 자전거를 꽤 잘 탔었다는, 앞으로 가끔 타겠다는.... 그
런 말씀입니다.
2008. 9. 21일 <경남도민 자전거 대행진> 참여하고 난 오후,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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