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가위에도 마산에서는 몇 해 전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만날제 축제가 만날고개에서 열렸습니다. 그나마 추석 명절에 이런 행사라도 하나 있다는 건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는 마산 시민들에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첫날 행사에는 가보지 못했고 다음날 가보았습니다. 첫날은 시장님과 여러 고위층 분들이 인사를 하시고 불꽃놀이로 한껏 흥을 돋우었던 모양입니다. 글쎄 저도 오래전부터 특별히 존경해 마지 않는, 지금은 교단에서 은퇴하신 김용택 선생님 말씀처럼 꼭 그런 식으로 지방 수령방백들이 티를 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합니다.
(그 선생님께선 자신의 블로그<http://blog.empas.com/kyongt/30542534 만날제에서 만난 문화 불모지 마산>에서 이날 행사 사회자가 마치 황철곤 마산시장 비행기 태우기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하는 양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고 어처구니 없어 하셨습니다.)
행사를 지원하는 데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되 앞에 나서지 아니하고 조용히 바라보며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역문화행사가 될 수 있도록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그런 시장,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은 왜 그리 귀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밝은 해가 뜨면 그림자도 자연스럽게 비치게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튿날에는 시장이나 국회의원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산시자원봉사센터나 바르게살기운동본부 같은 관변단체 회원들이 대거 나와 유니폼을 입고 목 좋은 곳에 식당을 차려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분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려니 했지만, 알고 보니 장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수익을 만들어 좋은 곳에 쓰자는 의도라고 충분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경나온 시민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걸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저렴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막상 불평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산시 자원봉사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나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무어라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자원봉사팀을 통솔하고 있는 분은 시청 공무원인 듯했습니다. (ps;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 계장님이라 하더군요.)
또 가장 자리 좋은 곳에 시민들이 각종 놀이나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마련해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보다 먼저 시가 앞장서서 목을 차지하고 식당을 차려 음식과 술을 팔겠다는 발상과 처사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더구나 전국 7대도시의 영광을 꿈꾸는 우리 마산에서,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한 관영(?) 식당가 옆에 그럴듯한 화장실이 하나 들어선 것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소 이곳을 들를 적마다 냄새나는 이동식 통시가 불만이었는데 마침 이 기회에 깨끗하게 만들어놓았으니 이것만은 치하해 줄만 하고 또 치하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역시 화장실까지 잘 만들어 놓은 이 널찍한 요지에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아니하고 관영 주막을 열었다는 것은 여간 불만이 아닙니다.
만날제 행사장은 입구부터 술장사, 각종 만물장사, 심지어 도박판까지 난장판이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벌써 아이스크림이며 핫도그며 그밖에 이름도 모르는 요상한 음식들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런 데까지 와서 안 사주겠다고 버티기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난리 북새통의 먹자골목을 지나고, 예의 관영 주막을 거치면, 곧이어 비탈진 언덕길에 시민 체험마당이 나타납니다. 국화차 만들기, 전통가면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한 사람당 5천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하면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지만 체험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시민은 한 분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 역시 아무 체험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만날제가 먹거리 장터쯤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준 것은 마산오광대와 널뛰기 패들, 그리고 국악공연팀의 눈물 나는 노력 덕택입니다.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먹거리 장터에 가서 돈만 실컷 쓰고 와서는 괜히 힘들게 고개를 탔다는 푸념만 늘어놓았을 겁니다.
마산오광대는 1930년대 용마산 입구에서 마지
막 놀음을 한 이후 실전되었던 것을 <선유풍물연구소>를 중심으로 2년여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이날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복원이 덜 되었고 완성도도 미흡하다고는 하지만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아리랑 고개란 제목으로 안무와 춤을 선보인 김옥희란 분의 춤사위는 거의 환상적이었습니다. 춤사위에 들어가기 전에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풀어낸 연기도 정말 돋보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산의 문화예술혼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 성과들이 드러나고 있는 곳도 많이 있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름다운 장면들도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315아트센터 노천공연장에서 <마산청소년발레단>이 공연을 열어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은 바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문화예술의 불모지 마산에 그나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산시가 하는 일은 힘들게 벌려놓은 축제의 공간을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시민 한마당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기껏 먹거리 장터로 전락시키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주막까지 만들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합포도서관에 갔었습니다. 저는 합포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특히 1층에 마련된 전시장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곳은 서예며, 분재며, 그림이며, 수석이며, 사진이며,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동시그림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던 장소입니다. 그래
서 우리 아이들도 자주 이곳에 데리고 가 부족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전시장이 사라졌습니다. 한동안 새로운 전시회가 없나 하고 기웃거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더니 결국 문화전시장이 사라지고 이 자리는 마산시 보건소 직원 사무실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넘어 터지는 분통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도서관 직원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보았지만 그들은 상부에서 하는 일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다간 아예 도서관마저 없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마산에 있던 구 창원군청사도 경남대학교에 팔어넘긴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엊그제 만날제 행사장에서 마산시가 벌이는 행태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듭니다. 경상남도가 람사르 총회를 유치해 우포늪(진짜 이름은 '소벌')과 주남저수지를 보존한다고 선전하면서 반대로 그 옆으로 지나가는 낙동강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이나, 마산시가 로봇랜드를 만들어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면서도 그 옆에다가는 조선소를 유치해 기름 냄새와 망치소리로 마산만을 뒤덮겠다고 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하는 일들이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투성이라 도대체 정신들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처럼 지금껏 보여준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돌이켜보면 시민문화행사를 기획해놓고 그 중심부를 장터주막쯤으로 만드는 것이 그리 이해 못할 일만도 아닙니다.
2008. 9. 20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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