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말복입니다. 말복치고는 너무 시원합니다. 엊그제부터 계속 내린 비가 오늘은 좀 잠잠해진 듯합니다. 그래서 잠깐 짬을 내어 경남대학교에 갔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경남대 박물관을 지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어릴 때는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보던 것이었죠.
경남대 박물관 앞에서 마산 앞바다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말복이라 함은 무더운 여름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가을의 전령이 우리가 잠든 새 소리없이 진주해 들어온 적군들처럼 다가왔습니다. 아니 적군이 아니라 반가운 해방군이라고 해야 되겠군요. 반가운 마음에 한 컷 했습니다.
박물관 뒤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공사로 인해 버려질 뻔 했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돌하루방 같은 것도 있고요, 비석도 있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한글세대이면서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무겁게 달고 다니는 저로서는 읽을 수 없는 한문들이어서 무엇인지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습니다.
안내판도 없는 것을 보니 그렇게 중요한 유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박물관 뒤 언덕에 모셔졌으므로 제가 유물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유물스럽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진보신당 문화생태위원장으로 경남대에서 교수질(원래 옛날엔 다 선생질, 장관질 이렇게 말했음. ㅎㅎ)을 하고 계시는 배대화 선생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그 유물 중에 희한한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측에서는 이것도 아마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모셔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제일 중간에 모셔놓은 걸 보면 대단히 중요하고 희귀한 유물로 판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일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헛! 국민교육헌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로군요. 저도 국민학교 다닐 때 이거 왼다고 고생 깨나 했답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못 외는 어린이는 손바닥을 맞았겠지요. 우리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밀대자루로 빳다를 맞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빳다를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암기를 잘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선도적인 훈련을 받은 저는 군대에 가서도 암기를 무척 잘했답니다. 삼훈오계, 군인의 길… 등등, 암기를 잘 못했던 제 한 달 짬밥 고참은 매일 얻어터지다 마침내 저와 동기가 되고 말았던 사건도 있었지요. 하하.
그 고참이었던 동기는 삼천포 사람이었는데, 멸공(우리 부대의 경례 구호는 충성이 아니라 멸공이었다) 발음을 잘 하지 못해 또 매일 얻어터지기 일쑤였답니다. 그래도 결국 제대할 때까지 안 고쳐지더군요. "맬공, 고장(교장) 다너오겠습니다. 맬공~" 경례는 두 번 하시는 거 아시죠. 보고를 시작할 때, 그리고 마칠 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하여간 그 고참이었던 동기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는 제게 바퀴벌레란 별명을 붙여주었더랬습니다. 아마 자기 딴에는 당시 인기 있던 TV프로 '하바드의 공부벌레들'에서 힌트를 구한 모양입니다만, 저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 듣기도 싫었지만, 고참 같은 동기가 계속 부르는 걸 말릴 수도 없었답니다. 저도 자주 얻어터졌었는데, 그 고참동기와는 다른 이유, 그러니까 군대 내무반에서 쉬는 시간에 책을 갖다놓고 보거나 신문을 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졸병이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나요?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말이야!" 퍽~ 그래도 저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도 보고 신문도 봤습니다. 푸쉬킨이 말했었나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고 참고 견디면 영광의 날이 오리니…. 정말 나중엔 아예 포기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나쁜 놈들이에요. 어떻게 내 가느다란 삶의 재미마저 빼앗으려고 하다니.
그때도 사는 게 낙이 없었거든요. 국방부 시계는 엄청 느린데다가 배도 무척 고팠지요. 당시 저는 염세주의자 비슷해서 연애 한 번 못하고 군대로 끌려갔던 탓에 면회 오는 여자 친구도 없었고, 그러니까 "에이~ ㅆㅂ,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이런 상태였던가봅니다. 그래도 푸쉬킨의 말이 맞았던지, 나중에 제 바로 밑에 졸병하나가, 중앙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온 친구였는데,
조순 씨가 쓴 경제학원론을 가져다주더군요. 자기가 보던 거였는데, 잡지만 보지 말고 그 시간에 그걸로 공부나 하라고 말이죠. 그 친구 저하고 종씨라고 그랬나? 하여간 대단히 고마운 친구였죠. 덕분에 군대 30개월 동안에 경제원론 한 권은 떼고 나왔답니다. 당시 병장 월급이 4천원이었는데, 그렇게 손해 본 것은 아니었죠. 내 시간으로 썼으니까요.
그것도 어쩌면 어릴 때, 국민교육헌장을 열심히 왼 보람이 아니었을까요? 헛헛… 헛소리 한 번 해봤습니다.
자, 이제 그만 삼천포는 이별하고 다시 경남대 박물관으로 돌아갑시다. 국민교육헌장…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국민교육헌장 맨 아래 적혀있는 "1968년 12월 5일"까지 외고 다녔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대통령 박정희는 빠졌나 보군요.
교과서 맨 앞장에는 늘 커다란 무궁화 한 송이와 국민교육헌장이 빳빳하고 하얀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지요. 교과서를 펼 때는 항상 그걸 살펴본 다음 책장을 넘기곤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린 가슴에 강압과 폭력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는 저 국민교육헌장 비석이 왜 이곳에 이렇게 잘 모셔져 있을까요?
그것도 다른 비석이나 석상들의 가운데에서 호위를 받는 듯이 말입니다. 혹시나…, 혹시나 경남대학교가 박정희의 오랜 경호실장이었던 박종규가 만든(사실은 빼앗았다는 소문도 있습디다만) 학교라서 그런 것일까요? 경남대학교 총장님이 박재규 씨라서 그런 것일까요? 그냥 저 혼자 그런 쓸데 없는 궁금증을 가져보았습니다. 남들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갖는 그런 궁금증이지만…,
궁금한 게 죄는 아니겠지요? 아무튼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예? 별게 다 추억이라고요? 파비
경남대 박물관 앞에서 마산 앞바다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말복이라 함은 무더운 여름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가을의 전령이 우리가 잠든 새 소리없이 진주해 들어온 적군들처럼 다가왔습니다. 아니 적군이 아니라 반가운 해방군이라고 해야 되겠군요. 반가운 마음에 한 컷 했습니다.
박물관 뒤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공사로 인해 버려질 뻔 했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돌하루방 같은 것도 있고요, 비석도 있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한글세대이면서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무겁게 달고 다니는 저로서는 읽을 수 없는 한문들이어서 무엇인지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알 수 없습니다.
안내판도 없는 것을 보니 그렇게 중요한 유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박물관 뒤 언덕에 모셔졌으므로 제가 유물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별로 유물스럽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진보신당 문화생태위원장으로 경남대에서 교수질(원래 옛날엔 다 선생질, 장관질 이렇게 말했음. ㅎㅎ)을 하고 계시는 배대화 선생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그 유물 중에 희한한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측에서는 이것도 아마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모셔놓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제일 중간에 모셔놓은 걸 보면 대단히 중요하고 희귀한 유물로 판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일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언덕배기라 사진 찍을 자리가 마땅찮아 사진은 절반만 찍혔다. 안 찍힌 부분은 대칭이라 생각하면 된다.
헛! 국민교육헌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로군요. 저도 국민학교 다닐 때 이거 왼다고 고생 깨나 했답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못 외는 어린이는 손바닥을 맞았겠지요. 우리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밀대자루로 빳다를 맞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빳다를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맞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암기를 잘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선도적인 훈련을 받은 저는 군대에 가서도 암기를 무척 잘했답니다. 삼훈오계, 군인의 길… 등등, 암기를 잘 못했던 제 한 달 짬밥 고참은 매일 얻어터지다 마침내 저와 동기가 되고 말았던 사건도 있었지요. 하하.
그 고참이었던 동기는 삼천포 사람이었는데, 멸공(우리 부대의 경례 구호는 충성이 아니라 멸공이었다) 발음을 잘 하지 못해 또 매일 얻어터지기 일쑤였답니다. 그래도 결국 제대할 때까지 안 고쳐지더군요. "맬공, 고장(교장) 다너오겠습니다. 맬공~" 경례는 두 번 하시는 거 아시죠. 보고를 시작할 때, 그리고 마칠 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하여간 그 고참이었던 동기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는 제게 바퀴벌레란 별명을 붙여주었더랬습니다. 아마 자기 딴에는 당시 인기 있던 TV프로 '하바드의 공부벌레들'에서 힌트를 구한 모양입니다만, 저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 듣기도 싫었지만, 고참 같은 동기가 계속 부르는 걸 말릴 수도 없었답니다. 저도 자주 얻어터졌었는데, 그 고참동기와는 다른 이유, 그러니까 군대 내무반에서 쉬는 시간에 책을 갖다놓고 보거나 신문을 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졸병이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나요?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말이야!" 퍽~ 그래도 저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도 보고 신문도 봤습니다. 푸쉬킨이 말했었나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고 참고 견디면 영광의 날이 오리니…. 정말 나중엔 아예 포기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나쁜 놈들이에요. 어떻게 내 가느다란 삶의 재미마저 빼앗으려고 하다니.
그때도 사는 게 낙이 없었거든요. 국방부 시계는 엄청 느린데다가 배도 무척 고팠지요. 당시 저는 염세주의자 비슷해서 연애 한 번 못하고 군대로 끌려갔던 탓에 면회 오는 여자 친구도 없었고, 그러니까 "에이~ ㅆㅂ,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이런 상태였던가봅니다. 그래도 푸쉬킨의 말이 맞았던지, 나중에 제 바로 밑에 졸병하나가, 중앙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온 친구였는데,
조순 씨가 쓴 경제학원론을 가져다주더군요. 자기가 보던 거였는데, 잡지만 보지 말고 그 시간에 그걸로 공부나 하라고 말이죠. 그 친구 저하고 종씨라고 그랬나? 하여간 대단히 고마운 친구였죠. 덕분에 군대 30개월 동안에 경제원론 한 권은 떼고 나왔답니다. 당시 병장 월급이 4천원이었는데, 그렇게 손해 본 것은 아니었죠. 내 시간으로 썼으니까요.
그것도 어쩌면 어릴 때, 국민교육헌장을 열심히 왼 보람이 아니었을까요? 헛헛… 헛소리 한 번 해봤습니다.
자, 이제 그만 삼천포는 이별하고 다시 경남대 박물관으로 돌아갑시다. 국민교육헌장…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국민교육헌장 맨 아래 적혀있는 "1968년 12월 5일"까지 외고 다녔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대통령 박정희는 빠졌나 보군요.
교과서 맨 앞장에는 늘 커다란 무궁화 한 송이와 국민교육헌장이 빳빳하고 하얀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지요. 교과서를 펼 때는 항상 그걸 살펴본 다음 책장을 넘기곤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린 가슴에 강압과 폭력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는 저 국민교육헌장 비석이 왜 이곳에 이렇게 잘 모셔져 있을까요?
그것도 다른 비석이나 석상들의 가운데에서 호위를 받는 듯이 말입니다. 혹시나…, 혹시나 경남대학교가 박정희의 오랜 경호실장이었던 박종규가 만든(사실은 빼앗았다는 소문도 있습디다만) 학교라서 그런 것일까요? 경남대학교 총장님이 박재규 씨라서 그런 것일까요? 그냥 저 혼자 그런 쓸데 없는 궁금증을 가져보았습니다. 남들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갖는 그런 궁금증이지만…,
궁금한 게 죄는 아니겠지요? 아무튼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예? 별게 다 추억이라고요?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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