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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쌍용차아내모임, "제발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두세요"

조선일보 참으로 악랄하다. 조선일보가 언론이기를 포기한지가 오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이야. 이들은 언론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들 목적을 위해 기사를 왜곡하거나 연출하기도 서슴지 않는 집단이다. 그야말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찌라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무릎 꿇은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 모임"의 뒷모습에서 측은함보다는 인간의 잔혹함이 느껴진다.


오늘 조선일보 1면 탑에는 커다란 사진이 하나 게재되었다.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 모임'이라는 조직의 회원 20여 명이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기갑 의원을 찾아 무릎을 꿇고 돌아가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말인즉 "우리 남편 회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외부세력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고 한다.

나는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이 사진을 보면서 인간성이 어디까지 파괴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사진으로만 보면 이 부인네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해 보인다. 오죽했으면 농성단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돌아가 달라고 했을까. 그러나 사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바로 그 시간 벌어지고 있었을 참상을 상상해보라.

이들이 농성장을 찾은 시간에 공장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에서는 하늘에서 헬기가 날며 최루액을 뿌리고 컨테이너에 올라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경찰특공대가 노조원들을 쫓아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전날 세 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추락해 척추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이들이 가서 무릎을 꿇고 사정해야 할 쪽은 경찰과 청와대가 아닌가. 경찰의 살인진압을 철회하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해야 옳지 않은가. 농성장에서 경찰의 살인폭력에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대들의 동료들이 아닌가. 그대들의 남편만 중요하고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안위는 걱정이 안 되는가. 

나는 이 부인네들이 실상은 이렇게 외치는 걸로 들린다. "제발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된 사람들 그냥 죽이도록 놔두세요. 그 사람들이 죽어야 우리가 살아요. 그러니 제발 그 사람들 죽도록 놔두고 떠나주세요." 만약 내일 이들의 남편들이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 그대들이 죽어주어야겠다"며 정리해고를 통보받는다면 어떻게 나올까?  

그때 이들은 "네, 사랑하는 쌍용자동차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럴 것인가. 물론 이네들이 자발적으로 이러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들도 회사의 지시에 의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섰을 수도 있다. 이해한다. 만약 스스로 판단해서 이러는 것이라면, 나는 이들을 심장이 없는 야수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사회는 미쳐가고 있다. 모두들 쌍용차 노조원들을 향해 "국가를 위해 너희들이 옥쇄하라!"고 몰아붙인다. 현대판 가미가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너희들이 죽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죽기 싫다고 버티면 가차 없이 반역의 딱지를 붙인다.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누구도 우리를 위해 당신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강요할 권리도 없다. 

전쟁 상황보다도 더 참혹한 진압작전이 개시되면서 많은 농성노동자들이 현장을 이탈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당장 죽음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도망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다. 노동자들은 가미가제가 아니다. 농성도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조측의 긴급 협상재개 요청에 사측이 응하고 결국 '희망퇴직 52%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환 등 고용흡수율 48%' 안이 타결되었다. 사태가 종결된 것에 모두들 환호하고 있지만, 무력진압으로 토끼몰이 하듯 쌍용차 노동자들을 압박한 상태에서 벌어진 협상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마치 몽둥이를 든 깡패 앞에 무릎을 꿇고 협상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오늘 아침은 매우 기분 좋지 않은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겠다!"는 잔혹한 인간의 마성을 강기갑 의원을 비롯한 농성단 앞에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렸다는 부인네들을 찍은 사진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당장 생존권이 박탈되고 거리로 나앉게 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눈물은 보이지 않고 남을 죽이기 위해 흘리는 잔혹한 눈물만 골라 찍어 보내는 조선일보의 폭력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일보의 악랄함은 도대체 그 끝이 어디인가. 어디까지 가야 시원하겠는가. 아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천오백만 노동자들을 모두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