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 수녀원은 봉쇄수도원입니다. 이곳은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 평생을 이곳에서 봉쇄생활을 하며 신에게 봉사하는 것이 이곳 수녀들의 삶이며 기쁨입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기도만 하며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삶이라 해도 밥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합니다. 농성장의 수녀들. 오틸리아 수녀님, 원장수녀님, 스텔라 수녀님 순. 소주병은 김주완 기자와 제가 먹은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 묵상, 노동, 휴식과 다시 노동, 그리고 또다시 기도와 묵상, 이런 단순한 생활이 1년 365일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수도원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합니다. 외부의 기부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어쨌거나 자급자족이 원칙입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은 신이 허락한 가장 고귀한 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취재 갔다가 밥도 얻어 먹었다. 돼지수육은 직접 키운 건데, STX가 들어오면 이것도 이제 없다고 많이 먹으란다.
이분들은 노동을 통해 쨈도 만들고 묵주처럼 교회에서 필요한 물건도 만들고 해서 이것들을 내다 판 돈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런 수녀들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STX조선소가 수정만 매립지에 입주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봉쇄수녀들이 세상이 나오기 전 하루 일과는 어땠을까요?
아래 시간표는 스텔라 수녀님이 가르쳐 준 일과표입니다.
새벽 3시 반, 기상
3시 50분, 밤기도(독서의 기도)
5시 반, 아침기도와 묵상
6시 반, 아침미사
7시 20분 , 아침식사
8시 20분, 삼시경(기도)
8시 40분, 작업(노동)
11시 20분, 휴식
11시 50분, 육시경(기도)
12시 10분, 점심식사 및 자유시간
14시, 구시경(기도)
14시 20분, 작업(노동)
16시 40분, 휴식
17시 10분, 저녁기도
18시, 저녁식사
18시 40분~ 19시 40분, 집회(이때 공동체 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편지도 쓰고 한다고 함)
19시 40분, 끝기도
20시 20분, 소등대기
21시, 취침
저도 10년 전쯤에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당시 레지오 단원이었던 저는 같은 단원들과 함께 주일(일요일) 새벽부터 차를 몰고 수정만으로 갔더랬습니다. 온 세상이 아직 까만 이불에 덮여 잠을 자고 있을 그 시간, 우리는 정말이지 천상의 소리가 따로 없는 수녀들의 노래와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라틴말 기도소리에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녀님들이 이렇게 세상에 나와 수정만 주민들과 마산시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서울까지 올라가 노상데모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속세의 일에는 인연을 끊고 오로지 신에게 바친 인생을 살던 분들로서는 매우 의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와 함께 원장수녀님과 오틸리아 수녀님을 인터뷰 하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산시와 STX 측에서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다른 곳에 더 좋게 지어서 옮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수정만 주민들보다 특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은 이들이 로마교황청에 있는 수도원 총장으로부터 받은 세가지 원칙 중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 세가지 원칙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원칙은 봉쇄를 풀도록 허가해달라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요청에 진상조사차 로마에서 온 수도원 총장이 수녀들을 개별 면담한 결과 정한 원칙이라고 합니다.
첫째, 주민들이 받지 않는 어떠한 특혜도 받아서는 안 된다.
둘째,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공동체 전체가 합의한 방법으로 함께 행동해야하고, 대외활동은 선출된 세사람만이 전담하도록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가톨릭은 원칙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보다 조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매우 보수적인 조직입니다. 가톨릭이란 말의 의미도 보편, 유일과 같은 뜻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보편된 교회로서 오로지 하나란 뜻입니다. 그런 조직에서 봉쇄를 풀도록 허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수도원 역사상 봉쇄를 푼 것은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첫번재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어느 수도원이 내전지역으로부터 난민들을 탈출시킬 목적으로 봉쇄를 풀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로마에서 허가를 받았습니다. 로마에서 두번째로 봉쇄를 푸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수정만 주민들의 처지를 난민의 처지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간주한 것이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로마의 수도원 본부 총장은 직접 수정만을 찾아 주민들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내린 결론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 봉새를 풀되 반드시 위의 세가지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봉쇄를 풀고 세상에 나가 세상의 일을 하되 절대 신의 뜻에 어긋나거나 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봉쇄수녀들은 수정만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 전에는 결코 수정만을 떠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분들은 수정만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 전에는 결코 이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봉쇄수도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절대로.
하루 빨리 수정만 사태가 해결되어 수녀님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하여 저도 예전처럼 고요한 새벽을 타고 흐르던 수녀님들의 노래소리와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라틴말로 하는 기도소리를 들으며 천상을 걷는 경험을 다시금 해보고 싶습니다. 하루 빨리요…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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