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저녁 7시, 창원대학교 사림관 강당에서 <진중권 강연회>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진중권은 촛불시위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칼라TV란 인터넷방송 리포터로 맹활약했습니다. 촛불현장에서 사건이 있는 곳마다 뛰어다니며 취재하고 질문하는 그는 정말 역동적인 사람입니다. “왜 때려요? 송” 으로도 유명해진 그의 칼라TV 취재화면은 네티즌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강연회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촛불정국 이전에도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인터넷을 잘 이해하고 잘 할 줄 아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TV토론자와 인터넷 논객으로도 맹활약한 그는 이미 웹 도로를 타고 매우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특히 거친 독설로 유명합니다. 안티팬들까지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안티팬들이 열광한다는 건 좀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만, 어떻든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도 사실 열광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도 “진중권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창원대 사림관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실물은 키도 작고 얼굴도 그리 잘 생긴 편이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한국 남자일 뿐이어서 적이 실망했다고 말씀드리면 본인이 기분 나빠 할까요? 청바지를 입고 있고 강연 내내 끊어지지 않는 말솜씨로 주머니에 가끔 손을 찔러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활기차게 강연을 이끌어가는 그의 모습은 신세대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참 개성적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가며 이끌어가는 그의 해박한 지식은 정말 탄복할 만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을 신은 모습이 대학교수보다는 웹 신세대와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그는 자기를 비정규직 대학교수라고 소개했습니다. 겸임교수란 보직이 사실은 정규직 교수의 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교수를 많이 양산해서 비용 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논리란 그의 설명은 정말 그럴 듯한 말이었습니다. 아니, 보통 강사만 해도 교수라고 불러주기를 바라는 게 인정상정일 터인데 왜 저 양반은 자기를 비정규직 교수라고 스스로 깎아내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솔직함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떻든 교육 현장에까지 자본의 논리가 침투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래서야 ‘교육백년지대계’를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창원대 사림관 강당은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저는 딱 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까지 청중들로 들어차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태어난 이래로 무슨 강연회가 이렇게 강당을 가득 메운 열기로 가득 찬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순복음교회에서 집도하는 기도회가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제 짧은 경험의 소산인데, 놀랍도록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위력이란 것일까요? 그가 강연 내 힘주어 강조한 ‘인터넷의 위력과 웹2.0시대’를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꽉 찬 청중. 저 속에 잘 찾아보면 저도 보입니다. 진중권 씨보다는 좀 늙어 보입니다.
언제 기회가 있다면 민증 한 번 까봐야겠습니다.]
강연회의 제목은 <진보신당, 진중권에게 듣는다. 2mb시대, 초대형보수에 맞서 제대로 살아남기> 였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강연 내용을 여기 자세히 소개하지 않아도 모두들 대충 짐작하실 것입니다. 물론 저는 모범생출신답게 메모를 착실히 했습니다만, 굳이 다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2mb가 집권 반 년 동안에 너무나 많은 코미디를 국민들에게 선사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긴지 벌써 감 잡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갓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귀순한 동포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소개해 올리고 싶군요. 진중권 씨는 “왜? 정부는 아메바보다도 못한가. 아메바도 학습을 통해 배우며, 생쥐도 시행착오를 거쳐 길을 찾는다. 왜 이명박과 정부는 배우질 못하는가.”라며 혀를 찼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체득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고 문제 푸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현실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미래도 암울하게” 한다며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창조적 능력이 거세된 상품화된 맞춤형 인재만 배출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은 참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없는 게 현실입니다.
운동권 진영을 향해서도 똑같이 비판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진보세력이나 보수세력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보화시대에 산업화 사회의 산물인 PD나 농경시대의 유물이랄 NL 따위에 빠져있는 한심한 모습으로부터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 운동권의 장기적이고 헌신적인 덕목과 촛불로 드러난 새로운 웹2.0 세대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이 잘 결합할 수 있도록 웹2.0시대를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학생의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진중권 교수. 질문자 중에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
데요. 정말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역시 자발성과 창조성을 겸비한 신세대들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
임이 분명했습니다. 그 친구 질문하는 장면은 너무 시커멓게 나와서 못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물론 저 혼자서만 재미있게 들은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빗댄 이야기입니다. “1번 버튼을 눌렀습니다. 불이 안 들어옵니다. 2번 버튼을 눌렀습니다. 또 불이 안 들어옵니다. 그럼 다음엔 몇 번 버튼을 눌러야 할까요? 물론 3번을 눌러야 상식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시 1번을 눌러봅니다. 그랬다가 다시 2번, 그리고 또 1번으로...”
재미없었나요? 네. 저는 남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저 혼자만 들은 양 떠벌려서 썰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입니다. 여기는 경상도 땅입니다. 거의 한나라당 텃밭이라고들 말합니다. 텃밭이라고 하면 우리 경상도 사람들이 무슨 상추나 무, 고추 따위 ‘작물’이란 이야기일 텐데요. 그러고 보니 ‘텃밭’이란 말, 아주 고약한 말이로군요. 이 동네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역정서에 기대 주민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말하자면 정치동냥할 때 쓰는 언어지요. 그런데 진중권 씨가 강연회 맨 마지막에 “우리가 남이가!” 하면 “그래 우리는 남이다!” 라고 말해주라고 그러더군요. “별 일도 안하면서 골프나 치러 다니고 탱자탱자 하는 너희들이랑 남인 게 당연한 거 아니냔”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남이다!!!
2007. 9. 4 파비
PS;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나도 끼여 볼까 고민하다가 쪽팔리는 짓 않기로 하고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쪽팔리다’ 생각하는 저도 영락없는 웹1.0세대가 분명합니다. 동네 선배와 집 근처 통닭집 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술 한잔하면서 그 선배가 말했습니다. “야, 거 진중권이 나이가 몇이라더라? 00년생(개인신상정보 유출 허락을 받지 못한 관계로 00년 처리함)이라고 그러는 거 같던데...”
네. 경상도는 나이를 많이 따지는 편입니다. 서열을 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어? 그래요? 그럼 저보다 많은데요.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더니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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