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는 십여 년 전에 TV토론에 자주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박홍 신부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말 속에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겸손이나 양보를 느껴본 적도 없다. 천주교 신자인 내 눈과 귀는 그저 그가 신부라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는 악귀 같았다.
아, 그때 나는 절망했었다. 내가 천주교도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우악스런 말투조차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태생이 경상도였을까? 어투로 보아 그런 것 같았는데,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 땅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도 그의 말씨는 매우 거칠고 불손했다. 박홍 전 서강대 총장. 이미지=뉴시스
그러나 이 모든 느낌들이 실은 그의 말투나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부라고 해서 꼭 교양을 갖추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신부 중에, 예를 들면 허성학 신부라든가 유영봉 신부(나는 이분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했다) 같은 분도 ‘공손’ 따위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분에게서 불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으며 그들을 존경한다.
1994년이었던가? 소위 ‘빠콩발 주사파 파동’이란 것이 있었다. 성탄절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전날 성당에 가서 판공성사를 할 때, 칸막이 저편에 앉아있는 신부에게 “박홍 신부 때문에 성당에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고 보속을 받는다. 부활절과 성탄절에…. 중세 말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면죄부 판매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교회의 이 오래된 전통은 가톨릭 신도들에겐 가장 중요한 신앙의식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 신성한 의식을 집행하는 신부 앞에서 배교하고 싶다는 말을 했으니 마주 앉은 신부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그해 겨울 어느 날, 박홍 신부는 TV토론에 나와 예의 그 우악스럽고 불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자유대한에 주사파 5만 명이 암약하고 있다. 그 주사파 5만의 선봉에는 사노맹이 있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주사파 5만 명 때문이 아니었다. 나도 역시 주사파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게 고역인 사람이다. 나도 역시 어지간히도 주사파들과 쌈질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 주사파가 5만 명쯤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노맹이 주사파의 선봉이라니!
물론 내용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이야 박홍 총장의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는 유수한 대학의 총장이다. 게다가 사제복을 입은 신부다. 뉘라서 그의 말이 틀리다 하겠는가? 그러나 박홍 신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당시 소위 운동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더욱이 그는 대학의 총장이다.
박 총장이 지목한 주사파의 선봉 사노맹의 일원이었던 한석호 씨는 작년 이맘때쯤 민노당 내 주사파를 비판하며 탈당했다. 그는 주사파를 사회변혁의 최대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며 소위 ‘민노당 분당’을 기획했다는 사람이다. 그는 민노당을 떠나 노회찬과 심상정이 있는 진보신당으로 갔다. 그에게 ‘주사파의 선봉 사노맹’ 출신이었던 과거 전력에 대한 심경을 물어본다면 과연 뭐라고 답할까?
내가 아는 그는 과거의 혁명적 기질이 탈색되어 많이 개량화(!) 되었다. 학생 시절 마르크스를 읽고 혁명을 꿈꾸던 그는 이제 세상 속으로 들어와 복지를 꿈꾼다. 틀림없이, 그가 혁명적이었던 시절에도 그에게 주사파는 반혁명 전제봉건세력을 떠받드는 반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노맹이 주사파의 선봉이라니!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나는 주사파도 미워하고 사노맹에도 반대했지만, 그래서 지금도 그들과 티격태격 다투며 살지만,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교회의 신부가 거짓말을 한대서야 될 말인가. 아무리 주사파가 밉기로서니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포장해 사람들을 기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성탄판공성사를 보는 자리에서 마주 앉은, 그러나 얼굴을 볼 수 없는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저 창피해서 성당 더 못 다니겠어요. 총장신부란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얼굴 색 하나 안 바꾸고 할 수 있죠?” 칸막이 너머에서 한숨소리가 건너왔다.
“형제님. 나도 그 프로 봤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가 아닌 나로서도 차마 할 말이 없군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부라고 해서 다 도덕군자인 것도 아닐 것이고, 신부라고 해서 다 옳은 말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니겠지요. 그리고 하느님이 박 신부님더러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신부는 이례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나에게 시간을 할애했다. 성탄절이 내일이었으므로 밖에서는 판공성사를 보려는 신자들의 줄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신부의 설득에 감복해서 계속 성당을 다녔고(실은 배교란 것도 그저 불만표시의 한 방법에 불과했지만) 복사나 독서 같은 전례활동에 열심이기도 했고 성당에서 결혼을 했으며 초등학생인 아들딸은 주일학교와 어린이 복사에 열심이다. 노무현은 그래도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오늘도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그게 그의 장점이다.
그런데 그 박홍 신부가 오늘 또 언론을 탔다.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타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이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지 않은데 대한 나름의 소신을 그가 관리하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밝혔던 모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약간의 실망과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렇다.
또 생전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를 피력한 고인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문을 가지 않을 이유로 내세우는 것도 별로 대범한 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세세하게 뜯어보면 “민주화 운동에 큰 버팀목이 되어준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마저도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셨으니 관용과 민주주의의 앞날이 얼마나 험할까 걱정된다”는 요지의 말이다. 별로 틀리지 않은 말이다.
조문도 오지 않은데다 비판적 입장까지 피력했으니 섭섭하긴 할 것이다. 나도 매우 섭섭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끈할 일도 아니다. 특히나 천주교의 사제쯤이나 되는 사람이 나서서 불평을 늘어놓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내가 불편한 것은 박홍 신부의 그 ‘서슴없는’ 발끈함 때문이 아니다. 박홍 신부는 십 년이 지났건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견해와 반대되는 모든 것들을 주사파 또는 공산주의와 연결 지으려는 그 태도는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6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전직 대통령을 했다는 사람이 마치 십 몇 년 전에 운동권 학생들이 민주주의하려면 공산주의 할 자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비슷한 소리를 지금 하고 앉았단 말이에요. 그것도 비겁하게 추기경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마치 시체에 칼을 꽂는 것 비슷하게. 이것은 철학적으로 무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좌익사상을 그 사람 속에 아마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친절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에 주체사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을 달아주었음도 물론이다. 그러면서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을 주사파 비슷한 좌익으로 몰아간다. 역시 그는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주사파에 대한 지론과 반북 입장은 퇴색하기는커녕 세월에 닳을수록 구슬처럼 더욱 빛난다. 그 확고한 신앙심과도 같은 적개심은 전직 대통령조차도 피해가지 못한다.
“김 추기경이 살아생전에 이 갈등의 시기에 빛의 역할,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임종하시고도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깊은 유산을 줘 종교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일생과 우리에게 준 정신적 유산을 되새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 그의 말은 나도 동감이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비록 김 추기경의 말년의 행보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그에 대한 과도한(고인도 생전에 자신이 너무 과도한 대접을 받았다는 겸손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김 추기경이 살아생전에 세상 속에 교회를 세우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했노라고 하는데 대해 반대를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한국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함께한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은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즉, 철거민들 속에서, 최루탄에 쫓기는 민주화 시위대 속에서, 장애인들 속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민중들 속에서 살기를 원했고 거기에 교회를 세워야한다고 역설했던 분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살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어떤 면에서 박홍 신부 역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속한 세상은 김 추기경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나는 박홍 신부에게 감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김 추기경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교회를 세상 속에 세우셨지만, 당신은 세상을 가르는 어둠의 칼이 되어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끌어내려하고 있소! 당신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수환 추기경의 시체에 칼을 꽂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당신이 믿는 하느님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시기 바라오!”
이제 옛날처럼 박홍 같은 사람으로 인해 갈등할 일은 없다. 나도 세상 살 만큼 살았고 볼 만큼 보았다. 이젠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 보일 뿐이다. 차라리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 “주님, 저들은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파비
<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수환 추기경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노무현 대통령 사진= 블로그 산사람 http://blog.daum.net/hanu9
김수환 추기경 사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천주교 홈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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