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거민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오래전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을 본 적이 있다. 홍세화란 사람이 쓴 책이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된 그는 마침 프랑스 빠리에 회사 일로 출장 가 있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객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어 2002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면 안 된다 그는 빠리에서 살기 위해 택시운전사로 20년을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담아놓은 책이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다. 나는 그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기를 즐겨 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글쎄 그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홍세화 선생.. 더보기
심산선생 무덤에 절하던 김추기경, 시대의 선구자 교회 담장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는 1969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다. 또 그는 최연소의 나이에 추기경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령 추기경으로서 오늘 영면의 길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기록들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교회의 담장을 헐었던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에 저항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던 학생, 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따뜻한 품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담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