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공'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2.07 '선덕여왕' 비담과 설원공, 의문의 관계 by 파비 정부권 (22)
  2. 2009.10.10 김춘추와 선덕여왕, 진골 대 성골의 대결? by 파비 정부권 (5)
  3. 2009.09.12 미실이 황후가 된다면 세종과는 이혼해야 할까? by 파비 정부권 (3)
  4. 2009.07.08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68)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늘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블로고스피어를 탐방해보았더니 역시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이 계시더군요. 코스모클로버님은 "선덕여왕, 천명공주 죽인 대남보는 왜 안 보일까?로 대남보가 꽤 비중 있는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데도 화면에서 사라진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람들

그러고 보니 대남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어떤 인물들보다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김춘추의 원수입니다. 자기 어머니인 천명공주를 죽였으니까요. 김춘추가 어떤 인물입니까? 대야성에서 백제군에게 살해당한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켰지 않습니까? 혹자는 김춘추의 복수심 때문에 삼국통일이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김춘추가 대남보를 그냥 놔 둘리가 만무한데, 거 참 이상합니다.

첨성대를 만들어야 할 월천대사도 사라졌습니다. 혹시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첨성대 설계도를 들고 나타날지도 말입니다. 그 외에도 사라진 인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을제대등도 하루아침에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을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죠. 선덕여왕이 자기를 보좌하여 정무를 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또는 선덕여왕의 남편들 중 한 명이라고도 합니다. 김유신과 결혼한 영모도 안 나옵니다. 그건 이해가 갑니다. 살림 하느라 바쁘겠죠.

춘추에게 보쌈 당해 행복한 강제 결혼을 당했던 보량도 안 나오네요. 역시 살림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문노가 비담과 염종에게 죽임을 당해 사라진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입니다. 원래는 그냥 어린 덕만공주와 함께 조용히 사라지기로 되어 있었다는데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힘입어 복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걸 보여주지도 못하고―우리는 모두 그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나 예언을 풀어놓을 줄 알았지요―허무하게 암습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 아예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는 중요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문희와 보희가 그렇고, 승만공주가 그렇습니다. 승만공주는 선덕여왕을 이어 진덕여왕이 될 사람인데 아직도 등장하지 않으니 이러다간 선덕여왕이 죽음을 앞두고 춘추에게 보위를 전하는 해프닝까지 등장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아이고 이런~ 이야기가 완전 옆길로 샜습니다. 코스모클로버님체리블로거님의 글을 읽다가 원래 생각했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어쨌든 원래 길로 다시 돌아갑니다.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일까?

지난주에는 선덕여왕을 보다가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설원공과 비담의 관계 말입니다. 도대체 설원공은 비담에게 무엇일까요? 또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이기에 그토록 비담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고자 하는 것일까요? 설원공에게는 아들 보종이 있지 않습니까? 아들보다 사랑하는 미실의 아들이 더 귀한 것일까요? 진정 미실의 유지 때문에 설원공이 비담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설원공의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지고지순합니다. 

그러나 지난주 설원공이 죽기 전에 독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그 독백은 죽은 미실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설원공은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을 맞아 전장으로 나가기 전 미실의 사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말합니다.

"새주, 비담이 닮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저를 닮았습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을 말입니다. 연모는 날아가는 새나 줘버리라던 새주를 닮았어야 하는 건데. 허나 새주의 마지막 당부였으니 따를 것입니다. 이번 전쟁을 비담에게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새주."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여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실을 워낙 사모하는 설원이니 그녀의 아들조차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역시 미실의 아들인 하종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도 영 아니지만―그런데 설원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와 마지막 죽는 장면에서 말입니다. 비담은 왜 그리 슬피 울었을까요? 자기를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죽게 된 설원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을까요?

그러나 그런 건 비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냉혹한 비담이 설원의 죽음에 슬피 우는 이유는?

비담이 어떤 사람입니까?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을 독살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던 인물입니다. 그것도 어린아이 때 말입니다. 문노가 비담으로부터 희망을 거두어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비담의 냉혹한 성품,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차가운 마음은 바로 미실을 닮은 것이었죠. 그리고 어른이 된 비담의 성격은 더욱 난폭해졌습니다. 물론 정에 약한 비담이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냉혹한 인물입니다.

미실이 죽고 난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완벽한 악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죠. 그러니 그런 비담이 설원공의 죽음 앞에 슬피 우는 모습이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퍼뜩 설원이 전장에 나가기 전 미실의 영정 앞에서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아, 이거 분명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아마 제가 착각한 것일 겁니다. 설원이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하는 게 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쓰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을 그리워하는 설원의 애달픈 모습을 그리다보니 설원의 입에서 헛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요. 비담도 그렇습니다. 괜히 설원이 자기를 걱정하며 죽으니 슬픔에 겨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사람의 죽음 앞에 눈물은 흘릴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를 위해 죽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겠죠. 그러나 그래도 자꾸만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야?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저토록 애틋할 수가 있단 말이지? 혹시나? 하긴 미실은 색공으로 여러 남자를 울린 사람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요?"

게다가 비담이 태어날 무렵의 미실은 나는 새가 아니라 황제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를 가진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원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그래도 그건 아닐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비담을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 비형이란 인물과 합성해 창조한 것도 모자라 설원공까지 끼워 넣는다면 이건 정말 아니죠. 그러나 아무튼 저로 하여금 이런 의심이 들도록 만든 것은 <선덕여왕>의 작가님이십니다.

쓸데없이 설원공으로 하여금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같은 대사를 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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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owr.tistory.com BlogIcon White Rain 2009.12.07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보니 의문의 더욱 증폭됩니다. 그렇다면...대체 비담은... 누구의 아들? 혹..설마..혹... 설원공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진지왕, 당신의 아들이라고 미실이 속였던 것일까요? 헉!!!
    당시 유전자 검사 따위는 없었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란 생각도 들지만...
    흠. 대체 선덕여왕 작가는 어디까지 시청자를 낚을 것인지..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12.07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림받은 비담이었기에
    애틋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비담의 서늘한 눈빛이 고개를 돌리게 합니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 잡을 수 없으니 오늘도 보여 주는대로 봅시다.^^

  3. dddd 2009.12.07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ㅄㅡㅡ을제대등 저번에 덕만이자꾸 죽일려고 나대서 쫒겨났는데ㅡㅡ제대로보고 글을쓰던가ㅡㅡ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2.07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을제가 쫓겨난 거 저도 제대로 봤고요. 책에는 을제가 선덕여왕 치세에 2인자고 남편 중 한 사람인데 왜 없앴을까, 뭐 그런 이야깁니다. 너무 깊이 받아들이지 마시고요. 신구 선생님을 을제로 모신 게 애초 실수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아니면 첨부터 을제는 그렇게 사라질 운명으로 그렸던지... 아예 을제를 등장시키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ㅅㅂ--

  4. Favicon of http://labyrint.tistory.com BlogIcon 조정우 2009.12.07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렇군요.
    근데, 설원공의 자식이었다면 왜 버렸을까요?
    궁금하네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2.07 16: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말이에요. 설원이 죽기 전에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선... 설령 설원의 자식이라도 공식적으론 진지왕의 자식이니깐, 그거야 이해가 가죠. 그리고 저는 애를 버릴 때 실은, 띠용~ 했습니다. ㅎㅎ

  5. Favicon of http://qlcanfl.tistory.com BlogIcon 빛무리 2009.12.07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파비님의 글을 읽고보니 설원의 대사가 참 묘했네요.
    비담이 보종의 친동생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인데... 참 황당하면서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제 생각엔... 그건 아닌 듯 합니다.
    미실은 은근히 모성애가 짙은 인물인데, 공식적으로 진지왕의 자식이라 해도
    사실은 설원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설원이 자기 자식을 문노가 데려가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것 같구요.
    그래도 여전히 아리송한 의문은 남네요. 재미있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12.07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의 미실을 향한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그런 거겠지요. 설원이란 인물이 원래 삼국사기나 유사에도 매우 감상적(?)인 인물로 나오지 않습니까? 전국을 유랑하며 풍류를 즐기는, 감상적이라기보다는 풍월을 아는 사람이라 뭐 그래야겠군요. ㅎㅎ

  6. 비비비비담 2009.12.07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한참동안 선덕여왕을 못봤더니 이런일이!!!

    만일, 비담이 설원랑의 아들이라면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요?".. 이말은

    사랑때문에 자기모든것들을 바치는 모습을 말한걸까요?ㅋㅋ


    여튼 설원랑의 저 말은 정말 햇갈리는군요!ㅋㅋㅋㅋㅋ재밌습니다ㅋㅋ고민해보라는 작가님들이 내준 숙제??

  7. 감귤자판기 2009.12.07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저도 보며서 그 생각 했는데ㅋㅋ

    사실 설원의 아들인지 진지왕의 아들인지 모르는거 아닙니까?ㅋㅋ

    그 당시 미실이 진지왕의 아들이라 우기면 그런것이었으니..크면서 닯는거 보면 설원과 미실은 알았겠죠뭐 ㅋ

  8. Favicon of http://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09.12.07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궁 제 글을 언급까지 해주시고요.... 감사해요 ㅎㅎ
    정말 사라진 인물들이 많죠.... 특히 대남보가 가장 이해가 안됩니다.

    어쨋든... 미실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죠.
    설원과 짜구서.... 아들 하나는 그냥 진지제 아들로 해버리자 이랬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하자면 너무나 많은 장면들이 꼬이게 됩니다.
    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설원이 그렇게 비담을 놔둘 인물도 아니고....
    미실도 설원의 자식을 버릴거까지는 없고.... 또한 비담과 보종이 싸울때 (비재때)
    형제끼리 싸우는 것을 본 설원과 미실의 마음은 어찌했을찌.....

    제 생각에는 그냥 닮은점이 비슷해서 한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선덕여왕 제작진측의 창작능력과 역사 왜곡능력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죠 ㅎㅎㅎ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12.08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체리블로거님의 글 보고선 생각하는 지점들이 많았답니다. 사라진 인물들과 아예 등장조차 못한 인물들에 대한 분석과 정리가 날카롭더군요. 설원과 비담은, 맞아요. 너무 꼬면 풀기가 어려울 텐데, 말씀대로 설마 아닐 거에요.

  9. siara 2009.12.10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신랑하고 비슷한 얘기를 하다가 검색해서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 또 있으시네요. ㅎㅎ
    비담이 나타났을 때도, 설원은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미실에게 "아들이지 않습니까"라고 했었죠.
    그때도 약간 오묘한 기운이 있었더랍니다.
    그래도 뭐.. 그 시대야 유전자 검사가 없으니 확인해 볼 수도 없지만,
    실제로 미실이나 설원도 비담의 생부가 누군지 모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설원 입장에서는 미실과 일심동체, 이심전심... "통"하는 사이였으니,
    그냥 미실의 아들도 내 아들이려니 생각하고 살았으련지도...
    하종에게는 또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하종에게도 연민이 있어보이지 않나요?

  10.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2.13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부탁으로.. 처지가 비슷해서.. 모두가 살짝은 뜬금이 없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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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가 골품제도를 일러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다. 그것도 성골 왕인 진평왕 앞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론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김춘추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오셨습니까? 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온 것 같습니까?"
 

사서에 등장하는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전략가였다.


김춘추, "나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김춘추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덕만공주도 오래전에 같은 말을 했었다. "신라를 먹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신라의 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바야흐로 왕이 되려고 한다.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꿈, 여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춘추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춘추는 말한다.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는 김춘추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김춘추의 마음을 그의 입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덕만에게 "나도 이모님과 마찬가지로 신라를 가지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라고 말했으며, 엊그제는 진평왕과 대등들 앞에서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래, 성골만 왕이 되란 법이 있소? 나 진골도 왕이 되고 싶소!" 이게 그의 진심인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입국하자마자 염종을 수하에 두고 비담을 포섭하기 위해 저울질 하는 등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미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을 안심시키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양동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가히 외교술의 귀재였다는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다면, 김춘추는 기골이 장대하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뛰어난 두뇌와 유창한 화술의 소유자였다. 당태종조차도 김춘추를 칭찬했다고 하니 그가 고구려와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전을 펼친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게다가 김춘추는 출중한 지혜뿐 아니라 대범한 용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전략가에 행동가였다

감히 누가 있어 용담호혈에 주저 없이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김춘추는 스스로 죽을지도 모를 길을 주저 없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에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그였으니 진평왕 앞에서 감히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라고 일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이다. 골품제도는 신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라가 아니라 신라왕실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다. 성골왕족을 부정하고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김춘추가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사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친손자이면서 동시에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성골남진한 상태에서 충분히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김춘추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친손자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진골귀족일 뿐이다.   
 
아무래도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역시 덕만공주의 부마가 되어 부군이 되는 것이다. 부군이란 태자가 없을 때 공주의 부마를 다음 왕위계승자로 삼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이런 제도는 근친혼이 성행하던(혹은 권장되던)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부마도 결국 같은 왕족이니까.   

실제로 부군의 지위에 올라 왕이 된 예는 많았다. 석탈해가 그랬으며 김씨족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그랬다. 내물왕과 실성왕도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케이스다. 그러니 성골 태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귀족 중 한 명을 성골 공주의 부마로 맞아 부군으로 삼는 것이 신라의 전통이며 자연스럽게 후계를 확정짓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김춘추의 위험한 발언, "성골만 왕이 되란 법 있나?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이미 미실과 계획한 것처럼 덕만공주와 혼인해 부군이 되면 될 일이다. 덕만은 김춘추에게 외가 촌수로는 이모(3촌)가 되지만, 친가로 보면 6촌 형제간이다. 근친혼을 신국의 도라 하여 권장하던 신라사회에서 6촌 형제간인 덕만과 춘추가 결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신라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도에 따라 연대나 인물 등에 대해 각색의 가위질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도 있는 법이다. 선덕여왕과 김춘추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진골인 김춘추가 성골 왕 진평왕 앞에서 감히 역모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폐하, 어찌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진골도 왕이 되고 싶사옵니다.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는 분명 매우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진평왕은 5촌 조카이면서 동시에 외손자이기도 한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위 인물들 중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러나 다른 신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당장 김춘추를 참하라고 소를 올릴 것이다. 만약 그들 귀족들도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특히 미실과 세종 일파의 경우에,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진골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때문에 속으로는 김춘추의 발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이고 있는 권력을 둘러싼 역관계로 보아 김춘추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왕위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세종이다. 이것은 미실이 평생을 꾸어오던 꿈, 곧 황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김춘추는 "성골만 왕이 되고 진골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야만적"이란 따위의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김춘추에게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덕만공주야말로 하늘이 예언한 개양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임금의 재목'이라고 진평왕에게 품해야 옳은 일이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덕만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추겨야 옳은 일이다. 그 길만이 "신라를 가지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하던 그의 야심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김춘추의 생각대로는 절대 될 수가 없다. 왜? 김춘추는 미실 일파가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패주의 자손이다. 그리고 진지왕을 패주로 만든 것은 미실과 세종, 설원공 등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김춘추는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7년을 합하여 무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에도 김춘추는 바로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귀족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알천공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알천공은 자신은 늙고 덕이 없음을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온갖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이든 총리 자리든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는 미담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미담은 대체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럼 왜 알천공이 왕 자리를 고사했을까? 바로 김춘추의 뒤에는 김유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월성전투의 승리로 비담의 난을 제압한 이후 김유신은 신라의 무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지만 후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비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목숨은 두 개가 아니니까.

김춘추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화백회의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이 강화된 신라에서 화백회의는 왕의 괴뢰기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법흥왕 때부터 대등들을 각 행정기관의 장으로 배치해 왕권의 통제아래 두려던 시도는 김춘추가 왕이 될 무렵에는 거의 복종하는 관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춘추가 덕만공주에 맞서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드는 것은 난센스다. 아니 치명적 실수다. 지금은 은인자중할 때다. 조용히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영민한 그로서는 분명 언젠가는 자기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유학까지 한 김춘추라면 태공망의 고사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잠시 미쳤던 것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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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1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월요일엔 바쁘더라고요. 낼도 그렇고, ㅎㅎ (반향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그렇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님의 글 잘 읽고 있는데요. 아마도 님 글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그런게 더 필요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2. 동그랑땡 2009.10.11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의 발언은 미실측의 기회를 준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도있지만, 신라는 골의나라!!
    골이 천박하다면 진골의 존재도 부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춘추의 발언은 골에의해 지배자의 계급으로 올라선 진골에 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춘추의말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미실측에서도 그리 반가운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1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 생각까지 했습니다만...

      거기까지 나가면 너무 복잡해지고, 글도 길어지는데다, 안 그래도 글 길다고 불평하는 우리 동네 몇 분들에게 면목도 안 서고, 그래서 대충 성골과 진골의 대결 정도로만 정리했습니다. 아마도 내일 드라마에선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겠죠. 결국 춘추는 덕만 편이 되어야지만 살 수 있는 운명이죠. 김유신이 춘추를 등에 업으려고 문희를 내세웠다고 하지만, 실은 춘추도 아직 신흥귀족에 불과한 유신과 한배를 탐으로써 세력을 만들려는 야심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문희와 결혼한 것은 어쩌면 유신의 계략보다는 춘추의 의중을 읽은 유신의 대응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만.

  3. Favicon of http://www.uggfranceshopj.com/ BlogIcon chaussures pas cher 2013.01.06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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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진평왕이 미실을 받아들여 황후가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어떤 결과들이 일어났을까요?


물론 미실이 왕권을 틀어쥐고 신라를 농단했겠지요. 아니면 지증왕이 내린 교지에 따라 삼한통일의 대업에 앞장섰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의 말처럼 그녀가 황후가 된다면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누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황후가 되지 못했고, 따라서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의 권위를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실과 진평왕을 결혼시키는데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다름 아닌 미실의 하나뿐인 남편―설원공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설원공은 남편이 아니라 연인입니다. 단지 세종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죠. 세종은 감정보다는 권력을 택한 약은 사람입니다. 비굴해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입니다.

세종은 화백회의의 수장 상대등입니다. 상대등은 유사시에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상대등이 왕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등은 관료사회의 최고 기관인 이찬이나 각간과는 달리 특별한 관직이 아니라 화백회의 구성원인 대등들을 대표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자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장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아마 국회의장보다는 훨씬 힘이 셌던 모양입니다. 그런 세종이 자기 부인인 미실을 처음에는 진지왕에게 다시 진평왕에게 시집보내려고 안달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럼 자기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나요? 저는 늘 그게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만역 진평왕이 미실과의 결혼을 받아들여 미실이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랬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실은 이제 진골귀족이 아니라 성골왕족이므로 귀족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 말은 미실이 황후가 되기 전에는 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과 동지였지만, 황후가 되고부터는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설원공은 진골귀족이 아니니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진골귀족이 아닌 설원이 병부령이란 고위직에 오른다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수차 지적했었죠―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은 미실과 맞서거나 아니면 그 동안 누려오던 권력을 내놓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만약 미실이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면 남편인 세종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해야 되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네요. 쓸데없는 고민을 다 한다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게 제일 궁금하답니다. 

아무리 천하를 주무르는 미실이지만 남편을 두고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일국의 황제입니다. 또한 신라시대는 1부1처제가 확립된 부계사회였습니다. 설원공이요? 그는 미실의 남편이 아니라 연인일 뿐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튼 어떻습니까?

"미실이 황후가 되면 세종과는 이혼을 해야 할까? 이혼하지 않아도 될까?"

이거 헌법재판소에 물어볼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요? 그나저나 만약 제 생각대로 미실이 황후가 된 후에는 이혼해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종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세종은 무엇 때문에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야 당연히 멍청하기 때문이라고요? 아~ 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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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3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상상ㅎㅎㅎ
    아마 세종공은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했을겁니다.
    황제가 되는 방법이야 많지요. 진지왕에서 보여주었다시피 폐위하는 방법도 있고, 독살하는 방법도 있고...
    상대등의 자리를 이용해 화백회의에서 황제를 폐위시키는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ㅎㅎㅎ
    재미있는 상상이었어요~

    • 파비 2009.09.13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웃기는 상상이었지만, 사실 세종이 자기 마누라를 왕에게 시집 보내겠다는 발상도 웃긴 거지요. "아내가 두 번 결혼했다" 영화 못 봤는데 그거부터 함 볼까 생각중이네요. ㅎㅎ

  2. Favicon of http://asi.airmaxusoutletx.com/ BlogIcon nike air max 2013.05.03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상으로 대조하고 연구하였다.

『선덕여왕』에 드디어 칠숙이 등장했다. 소화와 함께 서라벌에 나타난 칠숙으로 인해 드라마 선덕여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 그래도 내심 불안했었다. 칠숙이 소화를 구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은 진즉에 있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만약 칠숙과 소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과연 누가 덕만의 정체를 증명해줄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진흥대제(드라마에서 자꾸 대제라고 호칭하니 나도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대세에 편승해서 대제로 부르기로 한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라면 이런 걸 무척 싫어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수밖에…)의 신물인 작은 칼 정도로 진평왕이 자기 딸을 확신하기에는 너무 무리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진평왕이 덕만을 떠넘긴 소화다. 소화의 증언이야말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명백한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화를 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덕만을 보면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소화에 대한 감사와 신뢰는 바다를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칠숙과 소화의 등장은 부질없는 내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칠숙은 어떤 인물인가? 칠숙은 기록에 의하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도 역시 화랑이었으니 진골귀족이다. 화랑은 진골귀족의 자제들 중 용모가 수려하고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선발한다. 이처럼 화랑도가 내면적 정신 못지 않게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신라인들의 영육일체, 선미합일의 미적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체적이다.

어떻든 이렇게 본다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은 모두 같은 씨족들로서 형제자매들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이나 설원공이 스스로를 천한 신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내부에서의 역관계일 뿐이고 이들은 모두 신라 최고의 관등에 오를 수 있는 진골귀족들이다. 그러니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만약 설원공(혹은 설원랑)이 김씨가 아닌 설씨라면 그는 화랑도 될 수 없었겠지만 병부령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다. 더구나 대등들만이 참여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 화백회의가 매우 민주적인 제도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이처럼 독특한 골품제와 화백회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권장되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만명부인은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김서현과 결혼해 김유신을 낳았다. 만명공주는 성골의 신분이었지만 골족이 아닌 가야 출신 김서현을 선택함으로써 귀족 신분을 잃게 된다.

김서현이 공을 세워 만명부인의 어머니인 진흥대제 황후의 배려로 다시 진골귀족의 신분을 얻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만명공주가 귀족신분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족외혼을 강행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에 투항한 공을 인정받아 진골 작위를 받고 공주와 결혼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명공주가 족외혼을 고집해 귀족의 작위를 잃었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드라마가 옳든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이 옳든)간에 신라는 언제부터인가 족내혼이 하나의 관습이요 제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씨족사회도 아니고 부족사회도 아닌 국가 체제가 정비된 고대의 강국 신라에서….

언젠가 아키히토가 황태자이던 시절, 천황족 외부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몰고 왔던 적이 있다.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천황이 생긴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도 족내혼의 관습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파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족내혼을 선택했다느니 하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나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내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중에 신라 금관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금관은 성인의 머리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둘레를 재어보았더니 너무 좁아 머리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식용이었을까? 그런데 어느 학자가 그 비밀의 동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밀의 열쇠는 고대에 행해진 풍습에 있었다.  

신라 왕족들의 머리는 모두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북방 흉노족의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돌을 올려놓아 머리를 늘어뜨리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금관의 둘레가 좁아 성인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흉노의 이런 관습 때문이란 것이다. 

편두 풍습으로 머리가 가늘고 길쭉해지면 충분히 금관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흉노의 일파인 북방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의 신화는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그 가설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하나의 가설을 더 추가해보는 것도 그리 엉뚱해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의 천황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를 장악한 경주 김씨들도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골품제도를 만들고 골족 내부의 의견을 통일하고 연대를 제고하는 기관으로 화백회의를 둔 것은 아닐까? 

죽은 줄 알았던 소화가 돌아왔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는 왕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6부족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연맹체였을 것이다. 이 6부족의 평화로운 연맹을 위해 6부족장이 아닌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혁거세거서간의 신화는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남해차차웅의 사위로서 유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석탈해의 경우도 그렇다.

석씨 부족이 철기문화를 가진 강성한 군사력으로 왕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기나 유사를 인용한다면 이때도 평화로운 연맹체가 지향이었으며 왕권은 6부족이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덕망있는 사람이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가 계림에서 얻었다는 김알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흉노족이었다면 정복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피정복민들을 지배할 효과적인 수단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골품제도는 그렇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은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역사적 함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 때에 가서야 비로소 김씨가 왕위에 등극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설을 풀어보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가설이 아니라면 그들의 근친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경주 김씨들은 원래 문란한 성전통을 가져서? 그건 아니지 않나.

경주 김씨가 정복민족이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골품제도를 만들고 족내혼을 했으며 나아가 다산을 위해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권장했다는 사실을 뒷바침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칠숙이 돌아왔다. 그도 화랑이다. 그러므로 그도 설원이나 세종처럼 미실을 사랑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그러면 아무리 칠숙랑이 우직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실에 대한 사랑은 15년 세월을 만주를 거쳐 타클라마칸까지 유랑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 칠숙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화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작가의 의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너무 걸레조각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칠숙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면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발해 일으키게 될 반란은 어쩌란 말인가?

실로 귀추가 주목된다. 칠숙, 한 눈 팔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를… 그리고 그건 법도에도 어긋나는 짓이란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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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uf 2009.07.08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공은 설씨입니다. 화랑세기를 읽은지 몇년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진골귀족이 동네를 지나다가 용모가 뛰어난 평민아이를 보고 따라갑니다. 거기서 낭도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평민아이 엄마)를 만나 아이와 함께 거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그 마을의 촌장인 설씨(6두품) 집안으로 입적시켜 귀족을 만들어 주었죠. 그 설씨 또는 그의 아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화랑도 될 수 있었고 풍월주도 될 수 있었는데요. 돌싱이 된 공주와 혼인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분이 딸려서 그의 위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풍월주로 만들어주었던가 했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게 설이 분분한데요. 설씨라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김씨라는 게 최소한 이 드라마에선 맞는 것 같네요. 예를 들면 이사부가 이씨냐? 그는 김씨거든요. 거칠부는 그럼 거씨인가? 그도 김씨죠.

      게다가 6두품은 아찬 이상의 고급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병부령 벼슬은 절대 불가능하고 대등이 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겠지요?

      설씨 중엔는 설총이란 훌륭한 분이 계시죠. 원효대사가 공주와 사랑을 하여 낳았다는... 그는 한글연구의 바탕이 되었던 이두를 창안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어떤 높은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지요. 최치원 선생도 마찬가지로 6두품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세월을 보냈지요. 결국 이 골품제도 때문에 신라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만...

      물론 설씨라는 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드라마 상에서는 해명 불가능한 거랍니다. 그럼 오늘날의 설원공은 없어야 되는 것이지요.

      경주에는 설씨 이외에 최씨, 이씨, 안씨, 손씨, 정씨 등 신라6성이 있는데요, 저는 그중 지백호의 후손이라고 통한답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2천년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하하~ 좋은 하루 되십시오.

    • duf 2009.07.08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에 설원랑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사부는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중국식 이름과 순우리말 이름이 같이 쓰이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중국식 이름은 태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족 맞습니다. 그리고 골품제도가 완전히 굳어진 것은 통일 후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설원랑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왕족과 맺어지며 신분이 높아졌다고 봐야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수도 있겠군요. 김유신처럼... 그래도 설씨 성을 가지고 대등이나 병부령이 되는 건 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거니까요. 김유신은 그래도 가야의 왕족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6두품이 두품 중 최고의 등급으로 양골과 함께 귀족계급을 형성했다고는 하나 그 한계가 너무 명확했거든요. 이게 나중에 신라 패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고... 어쨌든 좋은 의견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umean2me.egloos.com BlogIcon elly 2009.07.08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사부는 박씨입니다. 박이사부 혹은 박태종이죠.
      그래서 미실의 남편으로 나오는 세종도 박세종이고, 그의 아들인 하종도 박씨입니다.

      그리고 알천랑도 김씨는 아닙니다. 알천랑은 현재 진주 소씨의 시조입니다. 알천랑이 소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하더라도 왕족인데 굳이 다른 성을 줄 이유는 없었겠죠. 그래서 알천랑은 박김석씨가 아니라도 신라를 구성한 국가들의 후손이고, 성씨가 소씨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진골이거나 성골이어서 진골로 화랑에 편입될 수 있었을 수도 있구요.)

      김씨가 왕족을 이룰 수 있었던 건, 혈통(내례부인 혹은 옥모의 혈통)상의 적통이거나, 다른 정치적인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 가림토 2009.09.01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파비님....신라 6성 중 안씨는 없는데요? 배씨겠죠? ^^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네요. 배씨가 맞네요. 죄송^^ 밤 늦게 졸면서 달다 보면 실수가 좀 있을 수도... 그래도 이건 좀 심한 실수군요. 남의 집 족보를 ㅎㅎ

  3. 강해산 2009.07.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꼴깝을 떨어요 아주 ㅎㅎ 봤냐 니가? ㅋㅋ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안 본거 너는 봤냐? ㅉㅉ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일 뿐이니, 니가 본 이야기를 하는 걸로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이러심 우리 모두 입 닫고 살아야 된답니당.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관습이나 제도들도 모두 기껏 삼백년도 안 된 것들이 대부분이니 우리가 아는 건 진짜 별로 없답니다.

  4. 낭만고양이 2009.07.08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근친혼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확실한) 방법이라고들 생각해서
    그런걸껍니다 유럽의 금융계에서 유명한 집단은 지금도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 친인척인 만큼 배신하거나 권력이나 부가 외부로 빠저나가지 않죠 이때문에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서로 서로 권력가나 다른 재벌들과 결혼하는 이유도 이와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자기들의 부와 이에따르는 돈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혈연을 맺는 비슷한 이유겠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전에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언론개혁운동을 하는 신학림 기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명박의 가계도를 그리면 삼성, 조선일보 등 정재계의 거의 모든 가문이 사돈의 팔촌으로 엮인다고 하더라고요. 신 기자가 그려주는 그림을 한참 따라 그리다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답니다. 하하

  5. 광빨 2009.07.08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관이 좁다고 그러는데 저는 정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왕관이 커서 머리에 어떻게 썼을까?에 대한 의문~ 예전에 역사 스페셜에서 봤는데 이 왕관이라는 것이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이 죽으면 소위 말하는 왕관을 목까지 내기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슴 뿔 같은걸로 머리를 감싸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두의 관습은 신라가 아닌 고대 가야지역에서 행해졌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본인의 추측으로 역사적 유물들을 본인의 입맛에 맞게 왜곡을 하시는군요~
    본인의 추측을 역사적 사실인양 말도 안되는 유물들을 가져다 껴 맞추기 하면서 본인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하시는거 쩝이네요~

    물론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신라 귀족이 김씨 하나만 있다는 전제로 글을 전개하시는 것도 좀 아닌거 같네요..

    일반인의 대충 때려 맞추기식 추측은 추측으로 끝나야지 이렇게 글을 올리시면 또다른 왜곡으로 다가 옵니다.
    자중하시길~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금관은 아이 머리에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랍니다. 그건 확실한 정보니까 착오가 없습니다.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편두의 관습에 대해선 정설은 아니지만, 금관의 크기와 신라 왕릉에서 발굴된 미라를 근거로 편두의 관습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논문이 나왔고 그 이유를 흉노의 편두관습에서 찾았다는 발표가 있었고 방송도 한번 탔을 겁니다.

      그리고 이글은 논문이 아니랍니다. 드라마 후기죠.

  6. 문용진 2009.07.0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우선 이미 KBS 역사 스페셜에서 김알지의 근원이 이미 나왔었고요. 추사 김정희가 조선시대때 이미 추론하여 더이상 조사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까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역사스페설을 참조하시면 어설프게 이야기 하는 것들과 말 안 섞으셔도 될거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주인장님의 이론에 동감하고요. 씨족 사회는 원래 그렇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저도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본 것 같습니다. 이참에 역사스페셜 책으로 엮어져 나온 걸 한번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물론 스페셜은 정사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7. 이거 완전소설이네요 2009.07.08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전공자로서 이런 소설은 정말 봐주기 힘들군요. 사실관계를 반대로 서술한 것도 있고요. 정확한 지식이 아니면 글을 쓰지 마시죠. 도대체 신라왕릉급 고분 어디서 두개골이 출토 됐다는 겁니까. 그리고 편두는 남방계 풍습입니다.신라 왕릉급 고분 이라는 말은 쓰지만 누구도 신라 왕릉이라고 말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명확하게 이것이 신라왕릉이다라고 밝혀진 고분이 없으니까요. 추정만 할뿐이지 . 삼국시대의 고분중 피장자를 명확히 알수있는 유일한 왕릉은 백제 무녕왕릉입니다. 그외는 고분의 크기.양식.부장품등으로 왕릉급고분을 추정할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만, 저도 추론이라고 했고요. 제 글은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금관의 크기가 작다는 건 확실한 팩트지만 그 이유는 아직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답니다. 역사전공자라시니 그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고요. 다만 그 이유를 북방 선비족의 풍습에서 찾는 연구가 있었고, 그게 윗분이 댓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사스페셜에 방영된 일이 있는 것 같군요. 함 확인해 보시지요.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글의 주제는 드라마 후기랍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족내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은 열렬한 시청자의 권리에 해당하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고 소설을 소설로 보아야 하듯 블로그도 마찬가지랍니다. 이건 시사포스팅도 아니고요. 다만, 이렇게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지요. 이제 역사든 정치든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게 된 거지요. 인터넷으로 인해서...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왕릉이란 표현은 고분으로(사실 신라의 고분은 모두 주인을 알 수 없으므로 총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고치고, 두개골 출토 부분도 고칩니다. 주제가 근친혼이고 금관이나 고분 이야기는 이를 뒷바침하기 위한 소재에 불과합니다만, 고증 없는 자료는 고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수정합니다. 고맙습니다.

  8. 잘 보는이 2009.07.08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도 그랬듯이 근친혼은 대체로 지배층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죠. 신라의 근친혼이 심하다보니 같은 성씨가 왕과 왕비로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신라에서 올라온 표문을 보고 왕와 왕비의 성이 같아서 매우 놀랐다는 기록도 있지요. 신라에서는 이러한 것을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왕비의 성을 지어서 표문을 올렸습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근친혼=성적 자유 사회 라는 도식이 성립하는지 궁금하군요. 근친혼은 단순히 왕실이 선택한 권력의 유지 수단이고 규율이 미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근친혼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 대한 인정이 근친혼까지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것을 보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다라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렇다면 근친혼이 만발하였던 19세기 유럽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시대인지요?). 자유 연예는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중기에서도 조선후기에서도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지배층들이 어느 정도 자유 연예를 했냐? 안했냐의 차이일 뿐이죠. 신라사회에서도 중매를 통한 결혼을 정식으로 여겼고 자유 연예의 결혼 같은 경우는 野合이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괜히 김서현이 왕의 장인의 아들인 숙량흘이 김서현과 자신의 딸 만평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한 결합은 야합 즉, 자유 연예로 인한 결혼이었지 중매를 통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릴 적 기억이 나는군요. 의무적으로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다가 사촌간의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엥? 이게 무슨... 이 무슨 불경스러운 이야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흐흐... 우리 모두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요 ^-^

    • 잘 보는이 2009.07.08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너무 신라사회를 양성평등, 혹은 여성우위의 사회로 보고 그 증거를 근친혼으로 드는 경우가 많아서 단순히 한탄해 본 것입니다. 유사이래부터 현대이전까지는 부계사회, 남성위주사회이지 결코 영성평등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여성의 상대적 지위가 높냐 낮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말씀입니다. 드라마에서 미실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걸로 나오지만,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은 기껏 황후 자리였죠. 석기시대라면 모를까 그 이후는 남자, 즉 무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대였던 게 맞죠.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혼란스러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9. 박현주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이 부분은 고치시는 게 어떠실지....본인 스스로 그냥 드라마 감상평이라고는 하시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들이 사실인량 적혀져 있어서 보기에 거슬리네요. 미실은 박씨이고, 설원랑의 성씨도 의견이 분분한데 '자명한 일이다.'라고 쓰시는 건 좀 아닌 듯 싶어 한마디 남깁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의 성씨가 설씨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란 생각엔 변동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실이야 박씨든 김씨든 상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들 박씨나 석씨도 왕통이니까요. 제 주장은 설씨로서는 절대 대등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병부령조차도 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체제에 대한 반역이죠. 그럼 김유신은? 그는 가야의 왕족으로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더군요. 설씨가 특혜를 받을 이유가 없지요.

  10. 고니 2009.07.0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왕조의 근친혼?? 글쓰신 분이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그것도 1000년이 넘는 시대를 말 하시는듯 ~한반도의 국가기원을 기원전 4세기로 보는 것이 우리가 배운 바입니다.. 여기서 오류에 빠지기 쉬운것이 그 국가라는 것이 지금의 한 정부 체제하에 있는 그런 국가 형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원전 4세기 .. 한반도 뿐만아니라 극동 아시아 특히 중국 대륙까지 ~~ 기본적인 사회 구성이 씨족 개념이었읍니다.. 씨족의 개념이 뭔가요? 한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씨족을 바탕으로 한 강한 씨족( 머리수가 많은 ^^*;;)이 주위의 다른 씨족을 통제( 착취 !!) 하는 형태의 부족으로 나아가 그 부족의 큰 형태 즉 그당시의 국가.. 이때쯤 통치하는부족의 편의를 위한 법( 법이라기보단 단순 규칙정도?) 를 공포하는 수준이겠져.. 2차는 담에 ㅋ~~ 넘 길다

  11. thfql 2009.07.08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것 보다..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다른 댓글에서 보기도 했고.. 그것 참. 그럴 듯 합니다.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 어쨌든 연관이 있는 듯. 예전에 몽고쪽 유물 전시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북방 민족에는 6가지 민족이 있는데.. 그 민족들이 말을 이용하고 문자가 어쩌고..한 여러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글고 몽고 반점.. 몽고인이랑 닮기도 하고.. 어쩌고.. 언어가 어쩌고.. 그런 것 크면서 조금씩 들어 본 적 있는데 몽고족들과 비슷한 혈연일지도... 울 나라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군요.. 무튼 요즘 신기 신기..
    사극들을 보면서 엄청 역사에 흥미들을 느끼는 것 같고.. 저런 것 보면 근친혼이라고 비난이나 늘어놓던 사람들이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자명고..만 봐도 외삼촌이랑 결혼할 수도 있고.. 여기는 복잡해서 일일이 말할 수 조차 없는.. 그냥 재밌기만 하니.. 다 그냥 넘기고 있는 중.. 그냥 사회가 그렇다니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고..

  12. DARKJK 2009.07.08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머리를 압박해서 폭이 좁게하는 풍습은
    은근히 세계 곳곳에 많아요
    이집트도그랬고..
    아메리카남미쪽도 그랬고..
    지구반대편인데도 그런 풍습은 은근히 있더라구요
    특히 상위계급에서

  13. 정은희 2009.07.0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같은 조상님의 후손 이시네요~
    저도 지.백자. 호자. 할아버지의 후손 경주 정가 양경공파(이건 조선시대 때 갈라진거겠죠..?) 72대손 이랍니다...
    조상님 함자를 참으로 오랫만에 발견하니 반가운 맘에 몇자 적고 갑니다.

  14. 지나가는 사람 2009.07.08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화랑세기의 위작 여부를 넘어 논하자면....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랑은 설씨가 맞습니다만... 설원랑은 원효대사의 조부입니다. (증조부던가?) 원효대사의 속가명은 성은 설 이름은 서당이었구요. 설원랑은 그 아버지가 진골귀족이 아니었습니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이라고 하여 신라 진골 귀족이었는데 설원랑의 아버지는 미모로 유명한(?) 자로서 금진의 용양신(애첩과 비슷한 의미)였다고 합니다. 금진은 사다함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설원랑이 신분이 낮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에 기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설원과 사다함은 동모형제이지요.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혈통의 고귀함을 결정하는 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신분이 높으면, 그 아이들 역시 똑같은 특권을 누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딸인데, 법흥왕 계는 성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지소태후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성골이었기 때문에 세종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아버지가 아들인 세종과 말할 때는 말을 엎드려 신하의 예로 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신 국선 문노의 경우 아버지는 진골귀족이나 어머니가 야국(일본 혹은 가야) 출신 평범한 여인이라 처음엔 진골귀족에도 못 꼈다 하지요. 워낙 무훈이 높고 신망이 높았고 진지왕 축출 때 공이 커서 미실이 진골귀족으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말한 건 아니고 당시의 골품제도를 바탕으로 골족이 아니고서는 아찬 이상의 관등에 오를 수가 없다는 걸 말씀드린 거랍니다. 설씨든 최씨든 또 우리같은 정씨는 두품 중 최고인 6두품이라도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죠. 5두품 이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설원이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가 진골귀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가 설씨라면 화백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또는 반대로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했다면 그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 이런 식으로 논지를 편 겁니다. 모계혈통이 신라대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좀...

  15. 딩호 2009.07.0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문제는...

    '화랑세기'가 진위인가가 문제이죠. -_-;
    백날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두고 해석해봤자...설득력은 없다는.~.~


    그냥 드라마로 봐야..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저도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글을 쓴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중심으로 말한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나 사기, 유사를 빌어오면 복잡해진답니다. 우선 연대도 안 맞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시공을 넘어 만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완전 타임머신 되는 거죠. 아마 첫회에서 그런 자막이 뜬 걸로 아는데요. 연대가 수십년을 넘나드는 것은 드라마의 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니 이해를 바란다고... 언뜻 지나가는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16.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montreal 2009.07.09 0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칠수과 소화의 재등장은 드라마를 훨씬 복잡하게(재미있게) 만드는거 가타여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두 그리 생각해여~ 그런데 칠숙과 소화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풀릴 것 같기도 하고요. 꼬는 놈이 있으면 푸는 놈도 있어야 한다는 ^^-

  17. 쏘쏘 2009.07.09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금관이 성인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크기인 이유는 그 용도가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관을 보시면 머리에 쓰고 있을 수 없게 아주 얇은 두께로 제작되었고,
    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왕족들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설은 신라 금관의 용도가 장례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죽은 시체의 얼굴 위에 씌우는 것입니다. 그 방법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머리에 쓰는게 아니라
    얼굴을 덮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분에서 출토될 당시 대게 얼굴 위를 감싸는 상태로 발굴 되었기때문입니다.

  18. 미실은 '박'씨입니다. 2009.07.09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은 '박'씨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족과 왕비족이 있어요. 신라에서도 왕비족은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지요. 미실은 '김'씨가 아니랍니다.

  19. 2009.07.09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가요. 근데 일본황태자는 왕태자아닌가요..이거 어떤 데선 왕,왕족이라고하는데 다른데선 황족이라고하고..근데 그냥 왕족이 맞지않나싶어요. 왕태자랑..굳이 올려서 말할필요가..우리랑은 원수나 마찬가지니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위에 있는 댓글에서 설명했는데... 하여간 지들이 천황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한번 불러준거에요. 왕이나 황이나 뭐가 다를 게 있나요? 영국은 국왕이라 부르고 독일은 황제라고 부르지만 영국국왕이 오히려 더 권위있어 보이지 않던가요? 그렇지만 감정이 다들 그렇다고 하시니깐 앞으로는 그냥 일왕이라고 부를 게요. 그리고 잘 읽고 가셨다니 고맙습니당.

  20. qkqlen 2009.07.12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m음 성골 진골 뭐 이런것 때문이지 않
    을까 ?!!

  21. 가림토 2009.09.0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 달렸던 댓글에 관한 내용을 종합해서 글 올리겠습니다.


    1. 미실의 성씨
    미실은 아버지가 미진부공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부인으로 둘 다 김씨입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진부의 아버지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버지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버지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다. 복호는 내물왕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실과 미생은 김씨가 되겠습니다.


    2. 근친혼에 관한 간단한 고찰
    화랑세기 제6세 풍월주 세종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미추대왕이 광명을 황후로 삼으면서 후세에 이르기를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세상에서 이 계통을 진골정통이라고 한다. 옥모부인은 곧 소문국 왕의 딸인 운모공주가 구도공에게 시집가서 낳은 딸이다. 옛날부터 진골은 아니다."
    이 말은 위의 지적처럼 혈통과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근친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씨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후손들에게 령(현재 개념으로 말하면 불문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골정통은 어머니에서 딸에게로만 전해지는 혈통을 말하는데,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현재의 성씨의 전래와 똑같이 여자에게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짜피 같은 여자의 혈통으로 이어진다면 그 여자의 성씨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씨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라 김씨왕계의 근친혼의 원인과 결과입니다.


    3. 신라 금관의 크기와 편두
    사실 신라 금관의 내경이 작아서 실제로는 쓰고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또한 실용물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은 금판이 너무 얇아서 실제 사용했다면,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휘어지기도 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실용기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에 누군가가 지적하셨던 것처럼 죽은자에게 씌워 보낸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데드마스크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편두에 대한 언쟁이 위에 있는 것 같은데, 신라의 고분에서는 제대로 된 유골이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인골 가운데 편두의 습성이 확인된 곳은 부산대학교에서 발굴한 김해 예안리의 인골에서 뿐입니다. 또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한전에 편두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 있으니, 편두의 습성을 가진 것은 변한 - 가야로 이어지는 계통이지 진한 - 신라로 이어지는 계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확언하지만 신라에서 편두의 습관이 있었다는 기록과 고고학적인 근거는 모두 발견할 수 없습니다.


    4. 설원공의 성씨와 설원공의 지위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원효불속'의 내용을 보면
    "성사 원효는 속성이 설씨다. 그의 할아버지는 잉피공인데, 적대공이라고도 한다. 지금 적대연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고 하여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하는 고려 후기까지 잉피공의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화랑세기 설화랑전에는
    "(설원)공은 아들 다섯 명과 딸 일곱 명이 있다. 정궁부인인 준화낭주는 큰아들 웅, 작은 아들 잉피, 적녀인 정금낭주를 낳고는 죽었다(...중략). 잉피는...원효의 할아버지다."라고 하여, 설원이 원효의 증조할아버지인 것이 확인됩니다.
    위 두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속성이 설씨라고 하는 원효의 증조부가 설원이 되므로 설원의 성씨는 설씨가 분명합니다.

    다만,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의 아버지는 설성인데, 설성의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가 신라6부의 고야촌장 호진공의 후손으로 설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 성씨를 알 수 없는 설원의 할아버지가 진골인 김씨일 수가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할머니가 구리지공(사다함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 중에 '좋은 낭도를 만나 설성을 낳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진골 김씨의 경우 화랑이었지 낭도가 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원공의 지위를 보자면, 그의 아버지 설성을 구리지공은 급간 설우휘라는 6두품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서자로 입적시킵니다. 따라서 설원의 지위 역시 6두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설원이 벼슬자리에 있었따는 기록은 없고, 549년에 나서 606년 7월에 죽었다는 기록과, 579년 풍월주 자리를 문노에게 양위한 후 미실을 따라 영흥사에 들어가서 평생 그녀를 호위하다가 죽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따라서 설원이 병부령이라는 것은 드라마상의 설정일 뿐이지 그의 지위를 추정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 김유신의 진골 신분 및 이사부, 알천랑의 성씨
    신라에는 합병한 왕국의 왕족을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관례가 있다. 예를 들면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했을 때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킨 바 있으며, 고구려 보장왕의 외손인 안승이 신라에 투항했을 때 역시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김유신의 할머니인 만호태후가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결혼을 반대했던 것이 진골계층 내부에서도 서열이 존재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화랑도 내부에 발생한 파벌관계에서 만호태후는 진골정통으로써 한 파를 형성하고 있었고, 김서현은 가야파였기 때문에 그 계통을 달리하는 파벌로 인하여 만호태후는 김서현과 만명의 결혼에 적극 반대했다고 보여집니다.

    별담으로 elly님께서 이사부는 박씨라고 하셨는데 이사부의 계통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이사부장군은 내물왕 4세손으로 나오는 분이니, 내물왕이 박씨가 아닌 이상 이사부는 김씨가 맞겠죠?^^

    또 하나의 별담으로 역시 elly님께서 올리신 내용인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는 내용인데, 이기백 교수님의 글로 그 주장에 가름합니다.
    "1979년의 일인데,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의 한 분이 종친회보를 가지고 연구실로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러면서 진주 소씨의 시조는 신라시대 상대등이던 알천인데, 회보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알천은 김씨이므로 소씨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구실을 들어 거절하여 보냈다. (중략) 그 뒤에 필자는 신라 말기에 김해 지방에서 활약하던 김율회가 때로는 소율회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김(金)과 소(蘇)는 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金은 음이 '김','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알천의 성이 소인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6. 선비족과 흉노족의 계통
    thfql님께서 쓰신 '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라는 댓글에 파비님께서 '선비도 흉노의 일파지요?'라고 하셨는데, 계통상의 착오가 있으신 듯 합니다. 결코 선비는 흉노의 일파가 아닙니다.

    위서(魏書)에는 선비가 동호족(東胡族)의 한 갈래로서 언어와 풍습은 오환과 같으며, 흉노족의 '묵특선우'에게 패해 요동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동호족은 세 갈래로 흩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흉노로 흡수되었고, 하나는 오환, 나머지는 선비입니다. 이후 서기 91년 후한의 부탁으로 남흉노, 정령, 선비는 북흉노의 정벌에 동원되는데, 이 싸움에서 선비는 북흉노를 멸망시켰고, 후한은 그 댓가로 북흉노가 유목하고 있던 토지를 선비에게 넘겨주면서 북흉노인 50여만 명을 선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때 선비는 인구 100만 이상의 되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라 김씨의 선조가 선비족이라는 학설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신라의 문화가 흉노와 유사한 점이 있다면 서기 91년 선비에 편입된 흉노인들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진주 소씨는 경주 김씨의 일파란 말이네요. 이기백 교수님 말씀처럼 김 또는 금을 소로도 발음한 그런 것일 거라는 가설이 맞다면요. 그 시조가 알천랑이고. 어쨌든 왕으로도 추대된 알천이 김씨인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