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23 근초고왕, 이혼녀의 재혼금지 필요한 이유? by 파비 정부권 (13)
  2. 2009.09.13 선덕여왕과 천추태후로 살펴보는 근친혼 by 파비 정부권 (54)

오랜만에 드라마 근초고왕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사실 근초고왕이 백제 역사상 가장 강성한 군주였다는 것은 알겠지만 요서지방까지 경략했다는데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감이  없지 않다. 당시의 백제는 아직 한강 일원만을 차지한 자그마한 나라에 불과했다. 여전히 경기남부, 충청 이남은 마한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민족적 자긍심을 세우는 데는 이만한 드라마도 없는 것 같다. 요동은 고구려가, 요서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가설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역시 나도 알량한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빨간 티를 입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가 사실 엊그제다.

그런데 이런 근초고왕을 민족적 자긍심까지 더하여 재미있게 보다가도 어쩌면 꼭 이렇게 이야기를 꼬아야 하나 하는 게 있다. 바로 근초고왕의 제1왕후 부여화가 낳은 아들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누가 아이냐 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요즘 거의 모든 드라마에 동시에 소재로 등장한 출생의 비밀이 여기서도 나오는 것이다.

부여화는 근초고왕 부여구와는 친족이다. 백제의 왕족들이 부여 씨라는 성씨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부여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후에 성왕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라 고치기도 했으니 이는 과장이 아니다. 백제 민족의 기원이 만주에 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부여화는 고이왕통의 후손이요, 부여구는 초고왕통의 후손이다. 이 두 세력은 왕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숙적으로 백제를 반분하고 있다. 비록 부여구가 어라하(왕)라고는 하나 고이왕통의 위례궁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하여 부여구는 제1왕후의 자리에 부여화를 앉힌 것이다. 이른바 정략결혼을 한 것.

그런데 문제는 이 부여화가 부여구와 혼인하기 전에 고구려 태왕의 왕후였다는 사실이다. 부여구가 왕이 되기 전 선대왕은 부여준이었다. 부여준은 부여화의 아버지다. 즉, 고이왕통의 수장으로 어라하가 되었던 것. 허나 초고왕통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그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기 위해 딸을 고국원왕에게 시집보낸다.

부여화는 우여곡절 끝에 백제로 돌아왔으며, 어라하의 위에 오른 부여구와 혼인했다. 그리고 곧 임신을 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여화가 고구려 태왕의 부인이었다가 부여구의 부인이 되고 다시 임신을 한 다음 아이를 낳기까지의 시간이 열 달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 

달을 채워 아이를 낳아도 의심의 눈초리들이 야수처럼 번뜩이는 판에 부여화는 칠삭둥이를 낳았다. 고이왕통의 근거지 위례궁을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노리는 부여구의 가신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은 부여화가 임신하자마자 소위 참요란 것을 만들어 민간에 퍼뜨렸다. 한번 들어보자.

콩밭에 콩을 심었는데 어째 팥이 열렸는가.
콩밭에 콩을 심었는데 어째 팥이 나는가.
어라하의 콩밭에 고구려 팥이 열렸네.
어라하의 콩밭에 고구려 팥이 열렸네.
팥은 팥밭으로 보내야지, 보내야지, 보내야지.
고구려 팥밭으로 보내야지. 

실로 불경스런 노래다. 백제의 왕후가 고구려왕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노래를 만들어 퍼뜨린 의도는 뻔하다. 부여화가 낳은 아이가 태자에 책봉되는 것을 막고 제2왕후 진홍란이 낳은 아이를 태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진 씨 가문은 전통적으로 초고왕통의 확고한 후견인.    

열 달을 채운 아이가 태어나도 고구려 왕의 씨앗이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에게 일곱 달 만에 아이를 낳은 부여화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마침내 국태공(부여구의 할아버지)은 아이를 엎으라고 명하고, 부여화는 위례궁에서 동원한 군사의 도움을 받아 궁궐을 탈출해 위례궁으로 간다.

자, 그런데 이 지점에서 따져볼 것이 있다. 부여구가 부여화를 제1왕후로 삼은 것은 고이왕통을 따르는 세력 때문이다. 그들에겐 초성리의 군사력이 있다. 이들을 끌어안지 않고서 부여구가 마한을 경략하고 고구려와 대방 땅(지금의 황해도 일대)과 요서지역을 놓고 다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위례궁의 공주 부여화에게 제1왕후 자리를 준 것이다. 제2왕후는 초고왕통의 핵심이며 자신의 가장 확실한 후원자인 진 씨 가문에 내어주었다. 백제는 아마도 왕후를 두 명 두었던 모양인데, 이는 두 파로 갈라진 백제의 세력균형을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그처럼 용의주도한 부여구가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한 것일까? 고구려 왕후를 데려다가 자신의 왕후로 삼았을 땐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다. 탕평책으로 분열된 백제 내부를 하나로 통일하겠다던 근초고왕의 계획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혼인한지 일곱 달(혹은 여덟 달) 만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부여구의 심정은 어떨까? 그도 사람인즉,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남자들이란 그렇다. 루이지 조야는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어머니가 ‘원초적 존재’인데 반해 아버지란 존재는 ‘제도적 산물’이라고 폄하한다. 즉, 아버지와 자식은 불완전한 관계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이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자기와 닮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요즘에야 시대가 변해 많이 달라졌다지만, 옛날 사람들은 누군가가 아이를 보고 “아이고, 아버지는 안 닮고 엄마만 닮았네”라고 하면 매우 경망스럽거나 남의 가정에 돌을 던지는 아주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비난했다.

그럴진대 부여구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찢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의심하면서도 마치 칭기즈칸처럼 행동할는지 모른다. 칭기즈칸은 사랑하는 부인 보르테가 낳은 아버지가 불분명한 첫 번째 아들 주치를 자신의 장자로 인정했다.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었던 보르테는 구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산을 했던 것이다.

우리 속담에 “소 도둑질은 해도 씨 도둑질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부자지간은 어디가 닮아도 닮아야만 한다는 족쇄로 귀결된다. 이런 속담을 철썩 같이 믿는 한 남자가, 만약 내 아이가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무지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다면? 돌아버릴 것이다.

하긴 부여구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그는 백제의 전성시대를 구가할 근초고왕이다. 그는 아마도 칭기즈칸처럼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초고왕통과 고이왕통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하지만 그가 내미는 다정한 손을 고이왕통은 잡을 생각이 없다. 부여구의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이 부여화의 조산을 이용하려 한다.

한차례 피바람이 불 것이다. 한 여자의 이른 출산으로 인한 피바람.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과거의 전철을 우리 민법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민법 811조에 보면 ‘재혼금지기간’이란 것이 있다. ‘여자는 혼인관계가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무슨 말인가. 단서를 보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란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이미 낳았으므로 더 이상 분쟁의 소지가 될 사정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조항은 여성의 입장에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입법취지는 태어난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확정함으로써 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분명히 여성에 대한 지나친 인권침해다. 태어날 아이와 이혼한 전 남편과 재혼할 새로운 남편의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를 여성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 조항은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차라리 남녀 모두 재혼금지기간을 두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낡은 기억에 의하면, 10여 년 전부터 이 조항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폐지하자는 입법 움직임이 있었지만,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반대로 이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측에선 민법상의 이 규정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서 남녀 모두 1년이 경과해야 재혼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부여구의 명백한 실수다. 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부여화와 동침하는 것이 급했을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게 사랑했던 사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어라하다. 백제의 군주, 위대한 백제를 일군 근초고왕이 바로 그가 아닌가.

고구려왕으로부터 부여화를 탈취해온(구출이라고 해야 되나?) 후에 바로 혼인을 할 것이 아니라 6개월의 재혼금지기간이 지나고 혼인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긴 그러면 너무 재미없을 것이다. 부여화의 조산은 위례궁의 고이왕통과 근초고왕 세력의 투쟁에 불을 붙였다. 제2왕후 진홍란(원래는 부여국 마여왕의 자손 위홍란)과의 싸움도 재미다.

그러고 보니 부여화가 칠삭둥이를 낳은 것은 모두 시청자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불만을 할 일은 아니다. 주인공 근초고왕 역을 맡은 감우성의 연기는 역시 볼만하다. 실로 그는 명배우다. 그런데 북방의 대유학자라는 고흥 역의 안석환, 너무 웃긴다. 자꾸만 추노의 그 방화백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으힝, 임자, 오늘밤 어뗘?” 하던 그가 “그러니 네가 유학을 잘못 배웠다는 것이야” 하고 점잔을 피울 땐 정말이지 웃음이 아니 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것일까? 그의 연기에 감탄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아무래도 고흥을 보면서 자꾸만 방화백이 흘리던 그 음흉한 웃음이 생각나니…. 으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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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11.03.23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낙 진지한 톤으로 이거저거 처리하는 드라마다 보니
    고흥과 두고, 파윤이 제일 코믹해지더라구요...
    아무리 왕후에 세우는게 급하다 해도
    첫날밤이라도 미루던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아마 평생 기다리던 연인이라 마음이 급했다는 설정일까요
    하여튼 가장 얄미운 캐릭터가 가장.. 분란이 생길만한 일을 했습니다

  2. 지나가다가... 2011.03.23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 민법 811조 다시 찾아보시죠.. 2005년에 삭제된 걸로 알고 있는데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11.03.23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낡은 기억에 의하면..." 하고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10여년 전에 그런 논의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 입법안도 만들어 국무회의 통과한 줄로 압니다만, 그 이후에 국회에서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겁니다.
      잘 처리되었다면 다행이지요. 아무래도 우리 국회가 보수적이라... 슬그머니 처리 안하고 사장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잘 처리됐다면 다행입니다. 여자는 금지시키고 남자는 아무 제약도 안한다면 이는 분명 차별이죠. 할려면 둘 다 같이 금지키시든지... 그래야겠죠. 아무튼,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ps; 확인해 보니 2005년 3월 31일부로 폐지 개정됐군요. 아마 남녀평등에도 위배된다는 점, 실효성이 없다는 점, 유전자 감식 기술이 발달했다는 점 등이 감안된 것 같군요.

  3. 답답합니다 2011.03.23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민사관에 빠진 분인듯해서 답답해서 한글 남겨봅니다
    요서를 경영했다는 건 이제 기정사실입니다
    오히려 식민사관에 의해 규모가 축소되어
    우리가 배운 국사교과서엔 영향력만 미쳤다는 식으로 표현되어있죠
    중국역사서를 보면 중국국가들이 백제와 전쟁을 한곳이 다 중원입니다
    중원에 백제가 있지않으면 불가능하죠
    지금 서백제와 동백제 두개가 존재했다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11.03.23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게 그 정도일 뿐이니...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도 없고요. 이해해주세요. 듣고 보니 앞으로 관심을 많이 가져봐야겠네요. ^^-

  4. bean 2011.03.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누구나 사귀면 잠자리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이혼후 6개월은 어느 누구에나 해당되는 사항인 것 같습니다.

    선봐서 조건맞춰 남친 버리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에
    남편 아이인지 전 애인 아이인지 모르고 낳는 여자도 있고
    여자만 탓할게 아닌게, 남자분들도 어디서 자기도 모르는
    씨 뿌리고 다니는건 아닌지 조심하셨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여러가지로 성은 제한될수록 좋은건데.. 씁쓸하네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11.03.23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초적 본능을 어찌 하오리까...
      정답은 없는 거 같은데...
      저는 아무튼, 교육과 성찰 뭐 그런 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자제하는 법을 배우고 터득하도록 하는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생각되네요.
      물론 남자들이 특히 조심해야죠...

      저도 남잔데... 그런데 저는 능력이 별로라서...
      별 걱정이 없을 듯싶습니다만. 흐흐~

  5. 그놈 2011.03.23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제의 요서 경영은 일본쪽에서 많은 반박을 하였구요.
    앞에 분의 말씀대로 기정 사실에 가깝습니다.
    중국 사료 몇개만 적고 갑니다.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 1,000여리 밖에 있었다. 그뒤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송서>권97,[이만열전],백제국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에 있었다. 진晉나라때 이르러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양서>권54,[동이열전],백제;<남사>권79,[이맥열전]하,백제

    '올해 위나라 오랑캐가 또 기병 수십 만을 동원, 백제를 공략하여 국경을 넘었다. 모대는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등 장군을 보내어 무리를 이끌고 오랑캐의 군대를 습격하게 하여 크게 격파하였다.'<남제서>권58,[동남이열전],백제



    위의 진평현은 지금의 하북성 동북방이고, 3번째 사료는 490년 백제 동성왕 12년, 후위(=북위=위나라) 효문제의 태화 14년때의 일입니다. 즉 위의 대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한반도의 국경이 아닌 요서쪽의 백제땅과 북위사이의 국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대는 백제 동성왕이자 무령왕의 아버지입니다. 이처럼 실제로 있는 중국쪽의 사서를 일본의 학자의 반박만 보고 없었던 일인것처럼 할 이유가 없네요

    마지막으로는 삼국사기네요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기에는 100만의 대군을 이루어 남으로는 오.월을 쳐들어갔으며, 북으로는 연,제,노를 위협하여 중국에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삼국사기>권46,[최치원열전]

  6. 백두서방 2011.03.24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다.'

    민법 제811조 재혼금지기간에 관한 규정은 6년 전인 2005년 3월 31일부로 폐지되었다.

    해당규정이 폐지된 것은 단순히 양성평등 때문만은 아니다.

    이 규정이 없더라도 민법 제844조제2항 중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이혼이나 사별 후 300일 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남편의 자녀로 법률상 추정된다.
    즉, 재혼녀의 아이에 관한 문제는 재혼금지기간 규정으로 부자관계를 확정짓는 것이 아니었다.

    원초적으로는 재혼금지기간규정은 성관계를 막을 수 없다. 혼인신고만을 막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재혼금지기간에 동거하여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가 한때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출생증명이 허술한 편이어서 인우인의 보증만 있으면 생일을 늦춰 이혼한 지 300일이 지나 아이를 해산한 것으로 출생신고가 가능하고 제때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여자측에서도 친생부인의 소가 가능하지만, 일본은 병원용 출생증명서가 없으면 출생신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남자(전남편)측에서만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어서 이혼 후 300일 내에 태어난 아이들이 호적을 갖지 못하는 일이 꽤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일본 법무성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글이 길어져 생략)

    일본은 현재도 이혼 후 6개월 내 재혼을 금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동아시아권에서는 유일)인데, 불필요한 분쟁이 해소되었나?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규정을 가지고 아무리 이를 옹호해봐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아닌가?
    그리고, 없어진 줄 알았다면 "우리 민법 811조에 보면 ‘재혼금지기간’이란 것이 있다."따위의 글을 수정해야 옳지 않나?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11.03.24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귀를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군요. 사라진 규정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저도 그런 실효성도 없고, 양성평등에도 위배되는 규정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취지로 썼는데... 게다가 아마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확인을 못해 잘 모르겠다.. 이랬으면 대충 누구라도 알아 들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님께서 계속 불편하시다면 "있다"를 "있었다"로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입장에선 진실이 아닙니다. 왜냐, 제가 있는 건 알지만, 있었다로 된 사실은 글을 쓸 당시 인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11.03.24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 상식은 혼인을 하지 않으면 성관계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막을 수는 없지만 하지 않는 게 상식이죠.

우리는 선덕여왕을 통해 신라가 얼마나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인가 하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신라민 전체에 해당되는 건 아니고 골족, 즉 성골과 진골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개방적인 성풍속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처용가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처용가는 개방적인 성풍속과는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내의 외도를 눈 감아주는 마음 넓은 처용에 대한 이야기지요. 이에 감복한 도깨비(역신)가 은혜를 갚는 뜻에서 처용의 그림이 붙어있는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룰을 세웁니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처용의 관용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입니다.

신라에 이어 등장한 고려왕조도 성풍속이 개방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족내혼에 관해선 신라보다 더 발달했을지도 모릅니다. 고려왕실의 족내혼은 왕씨 정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족내혼을 권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방 호족세력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친혼을 통한 결속은 필수였을 것입니다. 

엊그제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공주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문노의 계책이었지만, 족내혼에 관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습니다. 비담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인 비형과 실존인물 비담의 합성모델로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즉 진평왕과는 사촌지간이란 얘기죠. 덕만공주에게는 5촌 당숙이 됩니다.  

우리나라 민법에는 8촌 이내의 친족은 결혼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4촌 이내의 친족이 아니면 결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법으로 말하면 지금이라도 덕만과 비담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불법입니다. 2005년 이전에는 동성동본간 결혼도 불법이었습니다. 이런 법외혼 관계는 부정기적인 정부의 특별법을 통해 구제받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민법규정(동성동본 금혼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이 일어나자 유림에서는 "동성동본금혼제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군건국초부터 전래되면서 관습화된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서 전통문화의 하나" 라고 주장했지만, 최근 드라마 천추태후나 선덕여왕을 보면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쨌든 고려시대까지도 근친혼은 불법이 아니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권장되기까지 했습니다. 신라시대는 1부1처제 사회였습니다. 물론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왕은 달랐을 것입니다. 왕은 나라를 통치하지만 한편 자손을 번창시켜 왕실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왕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입니다. 미실의 경우에 색공을 드는 여인이란 특수한 신분을 빼면 그녀도 1부1처제의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만약 미실이 그녀의 계책대로 황후에 올랐다면 어땠을까? 이건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랬다면 세종과는 이혼해야 되겠지요. 아무리 미실이지만 두 사람과 결혼관계를 유지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일국의 황제입니다. 미실과 설원공의 관계는 단지 연인관계일 뿐입니다. 미실과 설원공의 사이에서 난 보종은 실제 친자관계를 인정하여 미실의 아들로 인정 받습니다만, 설원공은 그저 연인일 뿐입니다. 세종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죠. 기분 나쁘면 이혼할 수도 있겠으나, 이사부 장군의 아들 세종은 감정보다는 권력을 택했습니다.

어쩌면 미실보다 세종이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아니라구요? 멍청해서 그렇다구요? 음,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습니다. 하긴 드라마에서 세종과 하종 부자는 좀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배밖에 나와 왕이 되고 싶어 안달입니다. 다 미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하여간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멍청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왕족은 철저하게 족내혼을 통해 혈통을 보존합니다. 현 아키히또 일왕이 역사상 최초로 왕족 외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앞서 제 블로그에서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이같은 족내혼 또는 근친혼은 최근 들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0년대 들어 TV사극에 자주 등장합니다.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그리고 가장 최근엔 천추태후, 이 천추태후는 그야말로 근친혼을 다룬 드라마라 할 만큼 본격적이고 노골적이었습니다. 사촌형제들이 결혼을 하거나 숙질 간에 혼인을 하는 예는 허다한 일에 속합니다. 심지어 자매가 동시에 왕후로 간택되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경종에게 시집 간 천추태후와 헌정왕후가 그렇습니다. 

경종과 이들 두 자매는 사촌지간입니다. 경종이 죽자 헌정왕후는 숙부인 왕욱과 연애를 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되는데 이가 곧 대량원군입니다. 그리고 이 대량원군이 강조의 정변으로 실각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바로 현종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왕욱과 헌정왕후는 결혼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연인었지만, 부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그들 사이에서 난 아들을 왕족으로 인정하여 대량원군이란 칭호를 내리고 마침내는 왕좌에까지 앉혔습니다. 법도보다는 혈통을 중시한 것입니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법도 위에 신국의 도가 있다." 김대문의 조부인 예원공은 유학에 심취하여 근친간 결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의 모친이 타이르며 한 말입니다. 신국의 도. 도대체 이 신국의 도란 무엇일까요? 예원의 모친이 말한 바처럼 인간의 도리보다 위에 두었다는 것은 국가의 존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천추태후>에서는 목종이 물러나고 현종이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현종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선대왕인 성종의 딸과 혼인을 합니다. 성종으로 말하자면 현종의 어미인 헌정왕후의 오라비이니 성종의 딸은 모계로 보면 4촌지간입니다. 그러나 현종의 아비 왕욱은 성종과 헌정왕후의 숙부가 되니 부계로는 5촌 당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국혼으로 다시 실권을 잡은 성종대의 경주 유학파들은 여세를 몰아 천추태후를 탄핵하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사유가 장히 헛갈립니다. 천추태후가 사통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들이 세운 현종 임금 역시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가 사통을 하여 낳은 혼외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종은 결코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지요. 

드라마가 역사를 각색하다 보니 일어난 혼선이라고 보여집니다.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역도로 몰아 처단하는 것으로 끝냈다면 간단한 것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고려시대에도 신라의 신국의 도와는 좀 다르겠지만 그 비슷한 사상이 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친혼도 결국 역사의 산물이었다, 이런 말입니다.

천 년도 훨씬 전의 일을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친형제 자매가 아니고선 혈족이란 유대감도 별로 없었을지 모릅니다. 삼촌이니 사촌이니 하는 개념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개념들보다는 신국의 도가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대체 그 신국의 도란 무엇이었을까요?  

근친혼에 '도'라는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한 걸 보면 어떤 특별하고 심오한 사상이 숨어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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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두두발이 2009.09.13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조선조 호주제도를 가지고 근친을 막는 법이다 라고 말하는 일부 유생들의 말이 근거가 없다는 거죠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쪽 근친을 막는 법이다가 맞지 어머니쪽으론 여전히 근친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겹사돈도 매우 비일비재 했고요 예를들면 조선조 인종역시 피는 썪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외사촌동생을 후궁으로 삼았고요
    문정왕후의 오빠의 딸을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죠

    • 파비 2009.09.13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이번 개정민법은 친가, 외가를 불문하고 8촌이내의 친족을 근친으로 규정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 전엔 친족은 8촌, 외족은 4촌 이런 식으로 차등을 두었었죠. 동성동본금혼법 폐지는 진작에 됐어야 했지요. 제 친구 중에도 동성동본 결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거 웃기는 게 제 처는 김해김씨 삼현공파인데, 제가 아는 김해 김씨는 전부 삼현공파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김씨들이 거의 천만명 쯤 되나요? 하하

  3. 두두발이 2009.09.13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조선 초기에 세조 부인이나 성종의 아내2명 전부다 같은 집안에서 왔고요 어머니쪽 근친은 오히려 더 장려되었던거 아닌가요

    • 한반도주민 2009.09.13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시대에는 이성(異姓) 6촌 간의 금혼도 원칙이었습니다.

      고려말부터는 외가에 대한 근친금혼도 엄격해집니다.
      충렬왕 때에는 외 4촌, 공민왕때에는 이성(異姓) 6촌 간의 혼인을 금하였고, 이성(異姓) 6촌 간의 금혼은 조선 성종 조에 확립된 원칙이 됩니다. 다만, 동성불혼의 원칙이 워낙 강조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이성친족에 관한 금혼규정은 등한시해서 외, 고종은 6촌간에도, 이종의 경우는 심지어 4촌 간에도 결혼하는 경우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죠.
      이런 이유 때문인지 동성동본불혼을 주장하는 유림측에서도 이성(異姓)친족 간의 금혼은 현재의 8촌이 아닌 6촌이면 족하다고 주장하더군요.

      사견으로는 동성(同姓)친족은 8촌금혼, 이성(異姓)친족은 6촌금혼이면 족하고 봅니다.
      현행 민법은 획일적인 평등의 기준을 강조하다보니 규정만 따져 보면, 역사적으로 혼인을 막은 일이 없고 친족의식도 박약한 이성(異姓)7촌, 8촌 간 결혼까지 금지시키고 무효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조할머니의 본가쪽 친족이나 외할머니의 본가쪽 친족에 대하여는 친족개념이 전무하다 싶이해서
      지킬 수도 없고 실효성이 없이 혼인의 자유만 제약하는 규정이라고 평가할 만 합니다.

  4. 두두발이 2009.09.1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촌이내면 다 가까운 친척 아닐까요 요즘처럼 애안낳는 시기에 2대만 독자를 낳아도 가장가까운 친척이 8촌인데

    • 파비 2009.09.13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를 안 낳으니 오히려 8촌은 고사하고 6촌은 아예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더군요. 그리고 애 한명만 낳는다 이리 보면 사촌은 없어지는 거지요. 당연히 6촌도 없는 거고... 이 촌수란 게 애를 많이 낳아야 생기는 거잖아요. ㅎㅎ

  5. 아하... 2009.09.13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것은 모르겠고. 우리나라 전통에 대해서 유림은 말할 자격이 없다. 유림에 의해 망가진 전통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유림이 한 짓이 중국에 새대하는 짓이었는데 그게 우리 민족의 전통인가? 더욱 웃기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중구의 것을 따르느 것만이 인가의 도리라고 하다가 지금은 일제가 남긴 악법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다. 이게 유학과 유학자들이 모인 집단인 유림의 정체다.

    • 한반도주민 2009.09.13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친금혼 문제에 있어 유림을 빼고 논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제사나 장례 등은 또한 어떻습니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온고지신하고,
      (동성불혼의 획일적 법적금지나 호주제 따위를 없앤 예와 같이)
      합리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고루한 것은 폐습으로 타파하면 그만입니다.

    • 파비 2009.09.13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반도주민/ 일단 온고지신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온고지신, 정말 좋은 말입니다.

  6. 호라 2009.09.13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친혼은 혈통 외에 재산과도 관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친혼이 과학적으로는 나쁠 지 몰라도 인간관계로만 따지면
    오히려 외부 사람보다 더 안전하고 서로의 안녕을 위해
    안전할 수 있지요.
    근친혼을 나쁘게는 생각 안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사촌간에도 결혼이 가능한 걸요.

    • 파비 2009.09.13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친도 일단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아야 생긴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고 모두들 생산활동에 열심히 노력합시다. 흐흐. 이러니까 이거 꼭 가족계획협회에서 나온 거 같네요. 우리 어릴 때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이게 구호였는데... 격세지감이죠?

  7. 일본 2009.09.13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사촌이내면 혼인이 안된다고 하셨는데 4촌이내가 아니라
    3촌이내의 혈족인 경우에 혼인이 금지됩니다.
    4촌끼리의 결혼은 허용됩니다.


    근친계수를 구할때 양쪽이 서로 혈연관계가 0임을 전제로 할 경우에는
    쉽게 구할수 있습니다.
    2의 n승 분의 1입니다.


    남매 1/4 4촌간에는 1/16 이 됩니다. 사촌간의 경우 6퍼센트 정도가 나오는데
    이 정도의 비율은 비 혈연관계에서 나오는 유전이상 확률보다 다소 높긴 하지만
    여자가 노산일 경우에 자연히 올라가는 경우의 수치와 비슷하다고 하니
    실제로 4촌 끼리의 혼인은 유전적 이상이 발현될 소지는 미미 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많은 국가들이 오늘날 까지도 사촌간의 혼인을 인정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촌간의 혼인을 금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전적 이유라기 보다는
    유교 문화라는 사회문화의 특수배경에 있다고 생각되네요...

  8.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13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나 우리 선조들이나 근친혼은 눈 감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권장사항인데,
    동성동본 뿐 아니라, 이성동본인 김해 김씨, 김해 허씨는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문중에서 허락이 되지않는 성씨들입니다. 다른 성씨도 이런 경우가 있지요.

    근친혼을 선호하거나 장려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파비 2009.09.13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아내도 김해 김씨거든요. 이분들 그런데 워낙 인구가 많아서 이 집안에서 근친결혼(동성동본간 결혼)이 많았을 것 같거든요. 지금이야(2005년 이후) 민법이 개정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9. 전에 읽은바론... 2009.09.13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시대는 잘 모르겠으나 신라시대 같은경우에 근친혼이 많았던 것은 신분유지 및 상승 때문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후대에 갈수록 성골은 적고 진골은 많아지니. 성골을 자신의 배우자로 둠으로써 조금이라도 자신의 후예의 피가 왕족중에서도 순수한 혈통임을 보여주는 식이라고 전 이해했는데. 실제로 부부생활이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에 관한 다른 블로그도 본거 같은데.

    우리가 보기엔 형의 부인을 형 죽자마자 바로 맞이 한다던지 작은 어머니를 내 부인으로 맞이 한다던지 하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그런 측면이라면 그 시대상이거니 하고 이해할순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대엔 평균 수명도 낮았는데 현대 수명으로 비추어볼때 할머니 되기 직전인 사람을 자기 부인으로 맞을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논리가 더 와닿았는도 모르겠네요.

    • 파비 2009.09.14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것은 그 시대의 눈으로 봐야지 현대인의 시각으로만 재단하려고 하면 어려워지죠. 결혼제도란 것도 결국은 문명의 소산인데... 처음부터 원래 존재했던 것은 아닌 것이고. 학설에 따라 갈릴 수는 있겠지만, 모성이란 본능적으로(원초적) 존재하는 것이지만 부성은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거든요. 오늘날에도 모성과 부성의 차이는 존재하죠. 모성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늘 찬사의 대상이지만...

      형사취수는 고대로부터 많은 지역에서 행해져왔고 요즘도 파키스탄 같은 데선 있다고 그러던데요. 이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제도가 없다면 굶어죽을 수도 있죠. 우리나라처럼 산업화가 고도화된 나라에선 상상이 안 가는 일이지만...

  10. 흠.. 2009.09.13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사촌간의 결혼이 허락되는 사회라도... ㅡㅡ; 이상하네요. 울 사촌오빠나 사촌 동생을 생각하면... 우웩!
    지금 자연스럽게 사촌끼리 결혼하는 사회라면....? 이상하다.

    • 파비 2009.09.14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나 과거에 민법은 과도하게 근친의 범위를 확장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측면이 있죠. 8촌이내의 친족에 들지 않으면 결혼을 허용하도록 한 것은 불과 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이런 법도 사실은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17세기 이후 나라가 병란에 휩싸이면서 요즘으로 말하자면 강경보수파(노론)가 득세하면서 만들어진 풍습이라고 하더군요.

  11. 허참 2009.09.14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미부터머을 넘들 많군요
    지애비부터먹을년도 많구여
    에라이숸 개종자들이로고

  12. 혼혈파워 2009.09.14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촌간에 낳은 자식이 열등한 인간을 낳을 확률이 적다고는 하나,
    유전형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한 형질의 인간만 늘어납니다.

    원래 생물은 무성생식(자기복제)에서 유성생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왜냐?

    무성생식은 자신과 동일한(또는 비슷한) 형질의 후손을 생성하는데, 이것은 환경이 변화할 경우 치명적입니다. 쉽게 말해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싸그리 몰살한다는 얘기죠.

    그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고등생물체는 모두 유성생식을 합니다. 물론 문명이 발달했으니 날씨가 좀 바뀐다고 다 죽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후손의 유전형질이 선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퇴보요 순리에 거스르는 역리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8촌의 근친제한 ....... 이것은 너무나 약합니다. 두자리수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13. 혼혈 확대 2009.09.14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촌간의 결혼을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것에 경악을 하게 되는군요.
    이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찰스 다윈이 사촌하고 결혼하게 자식을 낳았는데, 빌빌대는 자식들을 보며 결국 죽을때까지 후회했다는 사실.

    근친혼은 철저히 억압하되, 정반대인 혼혈을 적극 권장해야 하는 이 때,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들인지..

    개인적으로는 8촌 제한도 불만입니다. 무슨근거로 8촌을 운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30촌까지 샅샅이 조사해서 금지범위를 더더욱 넓히고 이를 어길경우 강력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왜 30 이냐면 8도 근거가 없는 숫자이니 30이라고 안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지요.

    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 뭐다 하는데, 한가지 자명한게 있지요. 부모의 유전형질이 서로 다르면 다를 수록 그 자식의 유전자는 보다 월등해집니다. 그런데 겨우 생각들을 한다는게.. 4촌간의 결혼이 그렇게 열등한 자식을 낳는게 아니라니 ....

    동양인이 백인보다 신체적으로 확실히 떨어집니다. 이건 확실히 자명한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차이입니다. 농경민족도 족외혼을 한다고는 하지만 별로 족외혼 답지도 않은 가까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목민족은 이동하면서 그나마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혼인을 했지요. 이게 몇백년만 쌓여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근친혼은 범죄니 거론할 필요조차 없고, 비공식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같은 민족내의 결혼도 공식적으로 권장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혼혈은 적극 권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자연의 순리입니다.

  14. 혼혈파워 2009.09.14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참고 : 인류의 역사와 역겨운(!) 근친혼의 성행 >

    생각외로 인간들의 근친혼은 엄청나게 성행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부모의 수는 2명,
    조부모 4명(2의 2승),
    증조 8명(2의 3승),
    고조 16명(2의 4승),
    현조 32명(2의5승)...
    이 됩니다.

    즉 1대를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2의 거듭제곱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 개개인의 40 대 선조는 몇명일까요~~?


    <답> 1조명이 넘습니다.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말이죠.

    40대라 하면 대단한 것 처럼 보이는데, 1대를 평균 25년으로 치면 1000년 밖에 안됩니다.
    1000년전 한반도의 전체인구는 1천만에 훨씬 미달했습니다.
    이것은 조상의 중복이 그만큼 심했다는 반증입니다.

    • 파비 2009.09.14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 세 분 <혼혈>은 한분이라고 보고 답글 답니다/ 그렇게 계산하시니 우리는 모두 한 자손이란 말이 맞는 거 같네요. 그럼 우리끼린 아무도 결혼 못하는 거네요. ㅎㅎ 이건 일단 농담이고요. 내 조상의 숫자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 못해봤군요. 우리는 오로지 한명, 즉 십대를 올라가도 오로지 한명의 조상만 생각하도록 훈련되었던 탓일까요.

    • 혼혈확대 2009.09.14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죄송합니다.

      제가 3개를 썼는데 이름을 다르게 작성했군요 ㅎㅎ

  15. 답답한 2009.09.14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물이라는소리가듣고싶으십니까?

    • 파비 2009.09.14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도 모두 동물입니다. 결혼제도는 문명과 더불어 발생했죠. 아니면 결혼이 생기면서 문명이 생겼을 수 있고. 이 말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름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들도 고작 2~3백년의 역사밖에 안된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고요. 유림들이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근친혼을 찬성하는 게 아니라 근친의 범주를 명확히 시대에 맞게 해야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민법도 개정된 것이겠고.

    • 문화인 2009.09.15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교 광신도인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이 무엇일까? 이성일 것이다. 온갖 법과 도덕, 제도도 인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이성을 발휘하여 고안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이나 제도기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억압하고 괴롭힌다면, 이에 대해 의문을 품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이성을 지닌 인간의 특성일 것이다. 그러나 폭압적 질서에 대해 "도대체 왜?"라고 질문하면 "미풍양속이니까" 혹은 "신의 뜻이니까"라고 우기고, 비판자들을 "짐승" 혹은 "마귀"라고 부르며 핍박하는 것이 광신도들의 특징이다. 이들에게서 어떤 인간의 덕성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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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BlogIcon 카일 2015.04.28 0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니 이런 뻘소리가 나오네.
    <화랑세기>공부 좀 하고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