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약속한대로 섣부른 판단으로 드라마의 일부 내용을 비판한 점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겠다. 나는 <아이리스> 1부를 본 소감을 포스팅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관련글; 아이리스, 감동 속에 숨겨진 불편한 막장]
"매우 기대되는 드라마다. 최고의 배우들이 벌이는 스릴과 서스펜스,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하는 카메라 속도는 최고가 될 것을 예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옥에 티가 하나 있다. 북한 최고인민위원장을 암살을 지시하면서 유럽소풍에 비교한 것은 난센스다. 그리고 그것이 유럽소풍이 독일 통일에 단초가 되었듯 한반도 통일에 단초가 될 것이라 믿는 엘리트 요원 김현준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옥에 티일 뿐이며, 옥이 너무 찬란하므로 별로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다."
대충 이런 요지로 글을 썼는데 반론이 많이 제기됐다.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어떤 분은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아야지 왠 정치적인 잣대로 드라마를 재느냐는 분도 있었다. 후자의 비판에 대해선 여전히 수용하기 어렵다. 이건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다. 전쟁을 유발시킬지도 모르는 암살과 평화적 통일도 구분 못하는 최고의 요원이란 그 자체로만 보면 억지 시나리오다. 억지 시나리오로 만든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며 많은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이 비판의 칼을 대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 <밥 줘> 등이 대표적 케이스였는데 그 중 <너는 내 운명>은 억지 설정뿐 아니라 반사회적 내용으로 수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너는 내 운명> 등의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와 반사회적 내용에 대해 막장드라마란 비판의 화살을 날리면 안 되는가.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로 보아야지, 라고 말하며 어떤 부조리에도 눈감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그렇소!" 라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단정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터다.
사실 <아이리스>를 그런 드라마들과 비교하는 것은 커다란 실례일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리라. 그러나 1회 첫 장면을 본 순간적인 느낌이 그랬을 뿐이다. 사소한 일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대작을 만들면서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 설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 4회를 보면서 그건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김현준이 다시 NSS 부국장 백산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오늘 나온 것이다. "이유가 뭡니까?"
하긴 이유를 묻는 것도 냉혈 킬러들에겐 난센스다. 그러나 김현준을 비롯한 NSS 요원들은 냉혈 킬러가 아니다. 그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은 국가 안보를 책임진 공무원 신분이다.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조직의 명령에 맹동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이리스의 전문 킬러 빅으로 충분하다. NSS(국가안보국)와 아이리스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다. 아이리스가 아직 베일에 가려있지만, 악의 화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백산은 김현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질문과 답변은 1부에는 없었는데, 변명하자면 이는 내 어설픈 판단의 원인이었다. "ICBM.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 발사체 관련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왔어. 이젠 미국 본토까지 직접 공격이 가능한 미사일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어. 그 마지막 과제가 핵탄두의 소형화야. 윤성철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이곳 헝가리에서 구 소련 관계자들과 비밀회동을 가질 예정이야. 북한이 핵미사일 보유국이 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순 없지 않나?"
그러나 백산의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어떤 보고도 들은 바가 없으며 그 외 국가안보 관련 보좌관이나 정보기관 수뇌부들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다. 북한 최고인민위원장 암살 음모의 배후에는 NSS가 아니라 아이리스라는 비밀 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백산은 NSS가 아니라 아이리스를 위해 일하는 인물이다. <아이리스> 홈피에서도 백산은 아이리스 한국지부장이라고 소개해놓았으니 이는 틀림없는 일이다.
스키복장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눈밭에서 벌이는 멋진 추격전도 예상된다.
아무튼 1부 첫 장면 암살을 지시하는 대목이 억지 설정이며 이는 작지만 막장 요소였다고 비판한 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의 결과였고, 매우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추신으로 밝혔던 것처럼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사과하는 의미로 포스팅을 따로 하겠다고 했으므로 오늘 이렇게 <아이리스>에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물론 <아이리스>에 대한 나의 비판은 그저 옥에 티를 보고 투덜거리는 정도였을 뿐이며, 옥이 너무 빛나므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오늘 4부는 손에 땀을 쥐고 보았다. 본 시리즈 3편을 거의 몇 차례씩이나 볼 정도로 나는 첩보영화를 좋아한다. <아이리스>는 4부를 통해 본 시리즈에 전혀 손색없는 스릴을 보여주었다. 이병헌이 <아이리스>의 주연으로 발탁된 이유도 충분히 보여주었던 4부였다. 시나리오도 훌륭하고 연출도 멋지다. 빠른 전개가 만들어내는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벌써부터 5부가 기다려진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아이리스>에 진심으로 사과하며 무한한 기대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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