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터지는 사법 비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이메일을 일선 판사들에게 보내 판결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며 부패한 사법부에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건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여전히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가 가진 저울이 권력에, 자본에, 구체적으로 삼성에 기울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아니, 그들만은 이 모든 사실들을 모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법조라 불리는 특수한 세계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 김두식도 바로 이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지나친 예우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영감이 된 것이다. 그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맑스가 말한 것처럼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성가족의 실체를 자신이 속한 특수한 세계의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타락하고 부패한, 거부할 수 없는 관계망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법복을 벗고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 숨겨진 양심에 따라 세상을 향해 신성가족을 고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날 주제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성가족의 일원으로 이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에 진실이란 옷을 입혀준다. 이 책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친구와 대화하듯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실의 구술자들은 모두 현직 판검사, 변호사들이다. 그들이 사법비리를 폭로하면서도 자기변명을 하는듯한 태도가 좀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그들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들과 함께 대포집에 앉아 마음껏 신성가족의 실체를 까발겨보자. 그리고 마음껏 분노해보자. 세상은 우선 까발기고 분노하는 것으로부터 변화의 싹이 트는 것이니까. 이 책은 바로 그 분노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 -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
위 글은 8/28일자(금) 경남도민일보 1면 <책이 희망이다>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래 이렇게 써 보낸 글이 너무 길다고 뒷부분이 살짝 잘렸습니다. 이발을 잘 해주신 덕에 신문에 난 글이 더 훌륭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는 원래 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원문을 여기 올려봅니다. 김훤주 기자의 전화 부탁으로 썼는데, 전날 심상정 초청 토론회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새벽까지 과음한 관계로 오전 내도록 해매는 중에 받은 전화였습니다.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네' 또는 '응'이 먼저 나가는 편입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오후 2시경 일어나서 부랴부랴 써서 넘겼습니다. 4시까지 마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다른 저명한 분들에게 여기저기 부탁하다가 너무 시간이 급하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제가 대타로 찍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찍어준 김훤주 기자에게 고맙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자기가 고맙다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신문에 이름 내기 어디 쉽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분도 계신 판에요. 그래도 한 잔 산다면 그것 역시 저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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