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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우리딸, 관광지에서 발칙한 남녀의 키스를 방해하다

설 연휴에 잠시 짬을 내 거제도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싱그럽습니다. 와이프의 친구가 거제도에서 장사를 한답니다. 일이 바빠 마산에 넘어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둔 오피스텔에서 하루밤 묵었습니다. 그 친구의 백화점 내 골프웨어 가게에도 들렀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사 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피스텔 유리창 밖으로 조선소가 보인다.


우선 가격대가 사람 기를 팍 죽여 놓더군요. 거기 옷 한 벌이면 제 평생 입을 옷을 살 수 있을 듯싶었습니다. 물론 조금, 아니 과장으로 많이 화장한 말이긴 하지만…. 어쩌면 과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저로서는 계산이 잘 안 되는 숫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옷을 입고 아마도 골프를 치는 모양입니다.  

그 옆 가게에서는 골프채를 팔고 있었는데 가격대가 최저 25만원 대에서 최고 95만 원대까지 있더군요. 물론 그것보다 더 비싼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살펴보는 게 왠지 두려워서 슬쩍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보았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마음속으로는 저거 한 번 빼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싶었지만, 마치 부잣집 담 넘어보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거 혹시 못 가진 자의 비굴함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은 주제는 이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거제도에 갔으니 당연히 거제도 유람을 했겠지요? 추운 겨울날 어디를 갈까 고심을 하다가 바람의 언덕에 가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블로거스 경남>에서 바람의 언덕이 매우 훌륭한 관광지라고 격찬을 한 걸 보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발칙한 생각님이셨던가요?

몽돌해수욕장의 급경사에 쩔쩔매는 우리 딸내미. 뒤에 보이는 녀석은 아들내미.

그러나 바닷가에서는 승리의 V자.


그래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장승포를 돌아 구조라해수욕장을 지나고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거쳐 달렸습니다. 가던 길에 잠시 구조라와 몽돌해수욕장에 내려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을 머금은 구조라 해변의 모래사장은 정말 고왔습니다. 오래전 총각 시절, 친구 종길이와 신안 비금도에서 보았던 명사십리의 모래에도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은 구불구불 바닷가 언덕을 기어가고, 파아란 바다는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구불구불 해변을 달려 마침내 바람의 언덕에 닿았습니다. 바람의 언덕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즐거운 듯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언덕은 해변으로 달려오던 산이 멈칫거리며 뭉쳐져 만들어놓은 커다란 놀이터 같았습니다. 놀이터 아래는 절벽이 깎아지른 모습으로 서있었습니다. 이름처럼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무척 추운 날씨였지만, 바람이 참 시원하다고 느꼈습니다. 손사래 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나는 언덕위로 향했습니다. <전망대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왕 이곳까지 왔다면 당연히 전망대에 가서 사방을 조망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지 않는다면 전망대에 대한 무례이기도 하거니와, 두고두고 후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구두를 신은 폼이지만, 관광지의 전망대에 오르는 게 무에 그리 대수일까 싶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그래도 여기는 시원했다. 아지랑이 뭉실한 봄에 다시 오면 좋겠다.

저 위 올라가는 저 부부를 말리지 않은 게 후회가 됐다. 나중에 욕 좀 했을 거다.


제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습니다. 올라도, 올라도 끝없이 펼쳐진 구불거리는 나무계단들만이 우뚝 솟아있을 뿐 전망대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보니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태산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고 옛 성현은 갈파했습니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제발 돌아 내려가자고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반면, 비 오듯 땀에 젖은 머릿속은 손사래 치는 아이들을 나무라며 올라온 체면으로 갈등이 처연합니다. 결국 어리석은 체면이란 두개골에 포장된 뇌수의 명령에 따라 휘청거리며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 위에 전망대 비슷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질 듯 흐느적거리던 두 다리는 어느새 힘을 얻어 가뿐해졌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기쁨이 흐르는 땀방울을 타고 함께 흘러내리는 듯했습니다. 자,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고지가 바로 저기다!

이곳에서 만난 두쌍의 부부는 시청을 향해 투덜거렸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속았으니까.

나무들 사이로 다도해의 섬들이 펼쳐져 있다. 사진은 이렇지만, 실제 풍경은 빵점이다.

답답한 정상의 나무숲 너머로 멀리 외도가 보인다.


여러분, 저는 정상이란 것을 정복해본 숱한 경험 중에 이날처럼 허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산의 정상이란 늘 상쾌함, 시원한 전망, 포만감, 승리의 도취 같은 것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곳엔 그런 것은 고사하고 사방을 가린 소나무들로 인해 낭패감만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습니다.  

가파른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다리는 천근처럼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비탈길에 수술한 허리마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거 오늘 완전 왕재수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아들놈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도 안 오니까 어떻게 됐나 제 엄마가 가보라고 시킨 모양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오를 땐 몰랐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다 내려와서 정상 올라가는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표지판에는 누군가가 4.0km라고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4.0km면 산길로서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그러나 제 느낌으로는, 그처럼 먼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굳이 이렇게 친절하게 연필로 4km라는 어마어마한 단위를 적어놓았을까요?  

“여기 올라가시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되니 주의하시오!”  

혹시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저 뒤 언덕 너머에도 훌륭한 주상절리가 있다. 그러나 거긴 못 갔다. 여기서 너무 진을 뺐다.

외도 가는 유람선 선착장이 바람의 언덕 아래로 보인다.


역시 우리 딸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우리 딸을 보니 땀 흘려 내려온 보람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러더니 딸아이가 제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무슨 커다란 비밀이야기라면서 말입니다.

“아빠, 아빠, 저기 있잖아. 어떤 아줌마하고 어떤 아저씨가… 조오기서 둘이서 얼굴을 마주대고… 히힛~ 뽀뽀 하려고 그랬다~ 그런데 내가 딱 쳐다보고 있으니까, 하려다가 못했다. 히히.”

옆에 있던 우리 아들놈은 둘이서 무슨 이야기 했느냐고, 빨리 실토하라고 막 따집니다. 자기 흉 본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우리 아들은 늘 그런 식입니다. 제가 딸과 이렇게 귓속말을 하면 틀림없이 자기 흉을 봤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아줌마와 아저씨(실은 젊은 처녀총각이었겠지만. 우리 딸에겐 누구나 아줌마고 아저씨니까), 참 안됐습니다. 하필 우리 딸애가 보고 있었을 게 무어란 말입니까?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로군요. 하필 우리 딸애도 보고 있고 다른 사람도 많은 그런 곳에서 둘만의 은밀한 뽀뽀를 하려고 한 그분들이 잘못한 거지요. 물론 분위기에 도취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라고 이해는 합니다만, 그렇더라도 장소선택에 보다 신중했어야겠지요.  

그래도 저는 그 젊은 선남선녀가 부럽기는 합니다. 장소에 아무런 구애 받지 않고 버젓이 뽀뽀를 하겠다는 용기가 참으로 가상합니다. 우리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는 손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게 뭐 그리 큰 자랑은 아니겠지만요. 요즘 젊은 분들처럼 못해본 것이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군요.

그랬거나 말거나, 바람의 언덕엔 여전히 바람이 씽씽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2009. 1. 29.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