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31 터미널에서 만난 비키니 아가씨들 by 파비 정부권 (8)
  2. 2009.02.14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란 사실을 봄바람에 느끼다 by 파비 정부권 (5)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터미널에서 만난 간판속 비키니 아가씨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먼저 구미에 들렀다. 여기서 <우리땅걷기> 회원인 초석님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할 것이다. 일찍 서둘러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새로 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 성주IC를 빠져 나와 구미 방향으로 접어들자 오른편으로 드넓은 모래사장을 적시며 흐르는 강줄기가 보인다. 바로 낙동강이다. 감동이 밀려온다. , 언제쯤이면 우리는 이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구미종합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
. 먼저 육개장으로 허기진 창자부터 달랬다. 그러고도 한 시간 반이 남았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생각하다 터미널 주변을 걸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터미널 바로 앞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자 끝도 보이지 않는 기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아마도 상업지역인 듯싶다. 그 골목길을 터덜거리며 걸었다. ? 그런데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큰 상권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다니 .

 

그런데 어느 순간 불현듯 좌우를 둘러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온통 벌거벗은 아가씨들이 건물 벽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니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유혹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곳은 유흥가였다.

골목길은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백 미터는 족히 넘을 성싶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골목길이 아래위로 서너 개가 더 있었고 바둑판처럼 이어져 있었다. 내가 너무 좁은 세상에서만 살다 온 것일까? 왜 나는 그 동안 이렇게 차려진 골목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마산이나 창원에도 유흥가는 존재한다. 인구 백만에 달하는 도시가 아무래도 구미에 비해 유흥산업이 뒤떨어질 리도 없을 것이다창원은 밤이면 불야성이 따로 없다. 서울사람들도 강남에 비해 쳐지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이니….

 

그런데도 나는 이런 곳은 처음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환락의 거리 양 옆 대형간판에 비키니를 입고 뭇 사내들을 유혹하는 이렇듯 자극적인 거리는 실로 처음이다. 곧 땅거미가 지면 반짝이는 불빛과 더불어 사람의 숲으로 흥청거리게 될 터이다. 괜스레 이 길을 걷는 내가 민망스럽다.

 

문득 카메라 생각이 났다. 낙동강 기행을 위해 장만한지 오래지 않은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캐논450을 꺼내 들었다. 아직 조작이 서툴러 그냥 자동모드만 사용한다. 여기저기 셔터를 눌렀다. 저쪽 골목 각지에 위치한 24 슈퍼에서 아저씨가 나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할까? 혹시 감찰 나온 공무원? 그러나 등에 배낭을 매고있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리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터미널 앞으로 돌아왔다. 터미널 입구에서는 한 명의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자인 듯싶었다. 그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 부는 터미널 입구에서 손을 벌리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말투로 간절하게 흐느끼듯 말했다.

 

배거~ 언 만 배거~ ~ 언 만…”

 

그러나 백 원만을 간절하게 속삭이는 그의 부르튼 손에 쥐어지는 백 원짜리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빴다. 분주한 행인들에게 부정확한 발음에다 흐느끼듯 속삭이는 힘없는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예로부터 선산은 선비의 고장이다. 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갈파한 바로 그곳이다. 선산군 구미면이었던 이곳은 국가산업단지로 개발되면서 구미시가 되고 선산은 이제 구미시의 일개 읍으로 전락했다.  

 

택리지가 극찬한 영남일선(嶺南一善) 선산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 것인가. 이리하여 멀리서 찾아온 객을 맞는 것은 선비들의 옹골찬 숨결 대신 얼굴에 한없이 미소를 머금은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다.  

 

그러나 수백 리를 흘러온 낙동강은 여전히 선산을 휘감아 돌아가며 그 유장함을 뽐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밤 물결이 제 아무리 휘황한들 억만년을 지칠 줄 모르고 흘러온 낙동강에 견줄까. 낙동강은 이렇게 말하리라.

 

너희들의 노래도 단지 한때일 뿐이다. 너희들이 제아무리 교만을 떨어도 곧 세월에 정복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나에게로 올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갖고 오는 온갖 더러운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일찌감치 얄팍한 생각일랑 버리고 빨리 와서 나와 같이 생명의 찬가를 부르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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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마디만 2009.04.01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라고하기엔 길수도있겠군요
    아무튼 그곳은 구미에서도 그런(?)곳의 대명사격이죠
    다른도시도 그렇듯 구미의 그런지역일뿐입니다 ㅡㅡ;
    구미는 통산인구만 적을뿐 소비인구가 많은도시입니다
    아마 대구보다 더 놀곳이 많을꺼예요 그리고 터미널에 구걸하시는분..
    이것또한 다른도시와 마찬가지로 늘 그곳에서 그런 ㅡㅡ 음 설명이 어렵군요.
    아무튼 유흥도시인건 맞지만 그리 심하진않습니다. 구미중에서도 제일 쎈곳을 다녀오셨군요
    ㅡㅡ;; 구미에 대해 나쁜 인식은 안가지셨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4.01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겠지요. 원래 터미널 부근이란 것이. 마산이나 창원도 그렇답니다. 그러나 규모나 분위기 면에선 거의 압도적이더군요. 그날은 제가 겨우 두 시간 동안 머물며 느낀 감상이니 다분히 단편적이지요. 다음에 구미에 다시 가보야겠어요. 금오산도 한 번 올라보고...

      지금은 선산이란 이름은 사라지고 구미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야은 길재의 후예들이 이름을 드높인 고장이고 사육신 하위지가 태어난 곳이지요.

      요즘 KBS 사극 천추태후의 아들 개령군(후일 목종)의 개령도 이 부근이지요, 아마? 그래서 예향의 고장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었나봐요. 조만간 자세히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낙동강 길따라 가다 보면 곧 그리로 지나가기도 하겠군요.

  2. Favicon of http://raonyss.tistory.com BlogIcon 라오니스 2009.04.01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미가 유흥문화가 발달(?) 했다는 얘기는 듣긴 했는데...
    대단하구만요... 한편으로는 좀 씁쓸합니다.
    천삼백리길 시작하셨군요... 도착하시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4.01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좀 그렇더군요. 제가 고지식해서 그런지 몰라도, 뒤가 좀 땡기는 기분이... 고맙습니다. 낙동강은 10구간으로 나누어 걸을 예정입니다. 이제 겨우 1구간 끝냈는데, 입술이 부르터서 밥도 못먹고 있습니다. 무릎이 좀 아프다가 지금은 괜찮고... 무엇보다 입이 문제군요. 너무 운동을 안 했나봐요.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걷기훈련) 좀 하긴 했는데도... 그래도 지켜봐주세요. 참, 그리고 석포리에서 승부역을 지나 분천까지 강따라 걷는 경치가 거의 꼴까닥 수준입니다. 다음 2구간은 더 좋다고 하던데... ㅎㅎ

  3. 헉.. 2009.04.0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깜딱놀랐네요. 나의 고향 구미. ㅎㅎ

    사진 찍으신 곳은 구미의 환락가인 금오시장입니다. 말이 시장이지, 유흥가죠.

    성인유흥업소가 밀집되어 있지요. 커지다보니 터미널 앞까지 확장된거구요.

    터미널에 내려서 바로 금오시장으로 들어가시면 충분히 이런 생각하실만 하네요.ㅎ


    아무래도 구미는 구미역에 내려야 도심을 본다고 할 수 있구요, 터미널은 쫌 변방이에요.


    제가 중학교까지 선산에서 다녔었는데 초등학교 본관에 걸려있던

    조선인재 반재영남 영남인재 반재선산....

    이 귀절을 어린 가슴에 가득 담아놔서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조선의 인재다.. 라는 생각.. ㅎ



    블로그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많이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4.02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렇군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저는 도농통합 때 선산으로 안 가고 왜 구미로 갔을까? 아직도 아쉬움이 남네요. 뭐랄까. 역사와 문화 보다는 개발 쪽을 택했다고나 할까. 서운함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구미. 곧 한 번 더 갈 거에요. 금오산 도 올라야 하고... 길재 선생 유적 답사도 해봐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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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봄이다. 창문을 여니 봄내음이 확 코끝을 스친다. 어제는 비바람이 용천을 부리더니 오늘 이렇게 맑은 날씨를 선물하려고 그랬나보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산동네다. 해안가 산비탈에 도시가 형성된 마산은 모든 마을이 산동네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산을 차지하고 난 이후 그들의 방식대로 바다는 매립되었고 이제 평지도 꽤 넓어졌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도 매립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바다를 메우는 간척을 영토 확장 사업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바다가 어떻게 메워지고 있으며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배웠고 시험도 치렀다. 어느 선생님은 간척사업을 (거의 찬양에 가깝게) 칭찬하면서 박통은 광개토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산만이 시원하다. 멀리 창원도 보이고, 두산중공업도 보인다. 아들놈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마산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
수년 전에 경남도민일보가 기획으로 연재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아마 1976년이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마산시청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니 그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곳이 193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것이다. 바다라도 보통 바다가 아닌 아주 특별한 바다 말이다. 바로 마산시청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다.

월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던 명소였단다. 인천의 송도와 더불어 조선팔도에 쌍벽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해수욕장으로 인해 경성에서 마산까지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고 할 정도니 가히 그 명성을 알만하다. 하긴 산 위에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 한쪽에 자리한 모양이 해수욕장의 입지로서 그만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수욕장을 따라서 길게 송림이 있었다고 하니 그 운치가 오죽했으랴.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월영이란 사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월영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월영이란 달그림자.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 퀴퀴한 냄새나는 마산만에 도대체 달그림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 이름을 지었다는 분이 다름 아닌 고운 최치원 선생. 아, 이분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드높은 학식은 이 좁은 땅을 넘어 당나라에까지 떨쳤다.

그러나 인걸이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방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도 권력에서 밀려나 20여년의 방랑 끝에 택리지를 썼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종이 천주학쟁이(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돼 한강에서 목이 잘리었으며, 또 다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 자신도 18년 유형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가 권력의 품 안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면 우리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읽어보면 눈물 난다. 참말로 옛날엔 저리 살았나.

따스한 봄볕 아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부부가 부럽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월영대의 전설이 어린 마산, 그러나 이제 달그림자 대신 쓰레기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 고매하신 최치원 선생이 어째서 마산의 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를 짓고 시가를 읊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은 매립에서 나왔다. 최치원이 감동해서 3년을 머물렀다는 월영대. 그 월영대가 바라보던 바다는 매립되어 이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아름다운 밤바다는 이제 휘황한 네온사인과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어느 취객이 웩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다.

어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산은 퇴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와 국도, 낡은 건물,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오염된 바다로 이제는 그 초라함을 감출 수가 없다. ……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마산 앞바다가 현재 마산의 실상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마산 시내의 도로에 대한 불평을 달고 마산을 가로질러 달린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단다. ‘로시난테’라고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서. 그렇다면 녀석은 틀림없는 돈키호테일 터. 그러나 녀석의 말은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책이름은 <『달리는 거야 로시난테』글/사진 양성관, 즐거운상상>, 문장이나 구성이 신선하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너댓시간씩 죽치며 공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데 이 책은 너무 좋아 직접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다 읽고 아들에게 물려 주려고….

사실 마산은 도로도 엉망이고 가로수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마산이다. 노인들에게는 편리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선에 가까운 교통망하며 인근에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터이다.

지금 마산은 매립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공장을 유치한단다. 그러면 마산의 인구가 늘고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생필품이 된 시대에 STX가 수정만에 들어오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산에 정착하고 창동 상권이 살아날까? 몇 년 지나보면 자연히 알 일이다.

차이나 최가 뽑는 옛날 손짜장은 정말 맛있다. 한 번 가 보시길. 만날재에 올라 마산만도 감상하시고.

그래도 만날재 공원이 있어 마산만은 아직 푸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겨울이 바로 엊그제, 너무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그저 만날고개 꼭대기까지만 올라가 봄바람을 마음껏 쐬기로 했다. 만날고개 입구에 ‘만날재 옛날 손짜장’ 집이 있다. 최점구 씨가 하는 가게다. 그의 별명은 ‘차이나 최’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보신 분은 수긍하겠지만, 그는 꼭 무술영화에 나오는 검객(또는 권객)처럼 생겼다. 주먹도 엄청 큰 게 진짜 강호에 태어났더라면 한 가닥 했을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일단 요기부터 했다. 아들은 짜장면, 나는 짬뽕. 계산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마산 앞바다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준다. 아들녀석이 돝섬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 요즘은 돝섬에 사람이 아무도 안 가나봐.”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녀석을 데리고 돝섬에 갔었다. “어떻게 아는데?” “봐라. 배가 안 다니잖아. 배가 안 가면 사람이 어떻게 가는데?” ‘음, 역시 젊은 놈이라 관찰력이 나보다 뛰어나군.’

그러나 어떻든 정말 시원하다. 마산에도 이렇게 시원한 공원이 있다. 나는 예의 그 돈키호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탁 트인 호수 같은 바다를 조망하며 등산까지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이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아느냐? 보아라. 예서 보니 마산 바다가 얼마나 푸르고, 봄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단 말이냐.”

만날재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이 불쌍해보였다. 저놈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저것들이 훌쩍 커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나는 백발을 날리며 여기 기어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할 테지. 그리 생각하니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대체 마산의 조상님들은 지금껏 무얼 하셨단 말인가.’

하긴 못난 놈이 조상 탓이다. 가수 이용 생각이 난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배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하여간 나무를 많이 심자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은 앙상한 뼈대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 애처로운 나무들도 머잖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되겠지.

만날공원 내에 주막집도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허름하던 옛집을 신축한 모양이다.

새로 지은 주막 옆에 오래된 옛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공원 안에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서려니 불룩한 배가 장히 부담스럽다. “아, 이거 나도 배가 꽤 나왔는데. 운동을 너무 안 했나?” 그러자 옆에서 아들 녀석이 응수한다. “아빠.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배에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배에는 왕자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다
너무나 바싹 말라 불쌍해 보이는 녀석이 언젠가 자기 배를 내어 보이며 왕자를 살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배에 새겨진 것이 왕자 같기도 했고, 또는 너무 말라 뼈대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살찌지 않는 체질은 실로 복 받은 일이라는 데 둘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아들아. 이 아빠도 어릴 때 별명이 자그마치 ‘며르치’였단다. 그러나 이제 80Kg에서 1~3Kg이 들락거리는 ‘살찐 며르치’가 되었단다. 오늘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내일을 염려하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어야한단다. 그리해도 겨우 자기를 보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게 인생이란 것이지.

그런데 녀석이 안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 나 먼저 내려갈게.” 하며 내려갔었지. 나는 아래쪽 공연무대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그러라고 했었다.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아빠, 나 지금 중앙캐스빌에 와 있는데. 먼저 내려간다고 했잖아. 친구랑 좀 놀다 갈게.”

중앙캐스빌은 월포초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의 집이다. 아, 이럴 수가, 아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터덜거리며 혼자 내려오는 길이 외롭다. 화도 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다. 결국 아들들이란 모두 배신자다. 나도 배신자가 아니던가?

그래, 배신자여. 너는 네 갈 길로 떠나라. 나도 내 갈 길로 가련다. 아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딸내미를 데리고 풍물 연습하러간다고(또는 구경) 갔다. 모두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재미있나보다. 에이~ 배신자들….

이 녀석이 바로 배신자다.


2009. 2. 14. 토요일
오후 6시 정각.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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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2.14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는 하늘이 정말 용천을 했습니다.
    달리는데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져 차를 치지않나 -

    마산의 역사 잘 읽었구요, 모두 배신자가 맞습니다.
    토요일이라 아이들이 더 바쁜네요.
    가정의 날 옛말인 듯 - ^^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2.14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들은 들어왔구요. 아내는 풍물놀이 끝나고 여자들끼리 어울려 시내에서 찬지 곡찬지 하는 모양입니다. 아들과 둘이서 돼지갈비 사러 롯데마트에 내려갔다 올라왔습니다. 마누라가 없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고 고기가 먹고 싶군요. 그런데 고기 하나 사려고 해도 롯데마트까지 가야되니... 동네에 언제부터 식육점이 다 사라졌지요? 그러고보니 약국도 사라졌군요. 약국과 식육점, 참 친근한 이웃이었는데요. 저만 그리 생각하남???

  2. Favicon of http://blog.daum.net/gabinne BlogIcon 林馬 2009.02.15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날재로군요.
    잘 지내시죠.
    변변찮게 인사도 못드리고...
    지금도 전쟁중입니다.
    언제 쏘주 한잔 살께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02.15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에서도 규탄성명서를 냈군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노조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조합원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사회정의, 공무원의 사회적 책임, 모두 중요한 것들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조합원도 보호 못하는 노조는 존재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계장님, 고생 많으세요. 언제 한가하면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 막걸리나 한 잔 하시죠. 곧 따뜻해질 테니... 두부에 김치하고 함께 먹으면 원기보충에도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요? ㅎㅎ

  3. Favicon of http://www.michaelkorspursesx.com/ BlogIcon michael kors purses 2012.12.28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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