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04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 식자우환이다 by 파비 정부권 (19)
  2. 2009.07.14 ‘선덕여왕’ 미실이 대인배? 그럼 전두환도 대인배다 by 파비 정부권 (50)
  3. 2009.07.08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68)
미실의 난이 실패했다. 미실은 마지막으로 "그래, 덕만이 네가 이겼다!" 속으로 부르짖으며 화살을 날린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일까? 물론 덕만을 향해 날리는 화살일 터이다.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추국을 하기도 전에 신국의 공주를 죽이고자 하는 행동은 "나 역도요!" 하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미실의 도발적 행동, 왜 그랬을까?

도대체 미실은 왜 그랬을까? 옆에서 놀라 제지하는 아우 미생에겐 아랑곳없다는 듯이 그저 묵묵히 화살을 뽑아 시위에 장전해 날리는 모습은 마치 벌써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빨랐다.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미실이 아니던가. 


어쩌면 미실은 정변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덕만과 춘추로부터 자신은 한 번도 꾸어보지 못한 꿈에 대하여 들었을 때 자신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새롭게 떠오르는 두 마리 용의 기개와 지략을 보며 그들을 상대하기엔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은 너무 노쇠했다는 사실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고 싶다고…. 그리고 실제 자기가 말한 대로 찬란하게 부서질 각오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정변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당한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계산에 능한 미실은 간파했다. 

싸움은 이미 끝났다. 노련한 프로 바둑 기사가 수읽기를 통해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지듯이 미실도 그렇게 한대의 화살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 화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덕만이 맞게 될지, 아니면 화랑들 중 누군가가 대신 맞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출중한 고수가 출현해 화살을 받아낼 것인지….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미실의 난은 실패했다. 그런데 왜 미실의 난이 실패한 것일까? 실질적으로 30여 년간 신국의 권력을 장악해왔으며, 군사력의 대부분을 쥐고 있고, 신료들과 지방귀족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미실이 어째서 덕만에게 패하게 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드라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부하들의 실수가 잦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칠숙은 다 잡은 덕만을 놓쳤다. 나는 칠숙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칠숙이었다면 복야회의 산채를 포위했을 때 그냥 화공으로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덕만은 추포되는 과정에서 죽여야 한다. 살아서 서라벌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석품의 주진공 암살 실패를 들 수 있겠다. 어떻든 석품은 주진공을 죽였어야 한다. 그런데 어설프게 작전을 감행하다 실패했다. 진평왕 말년에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대해 난을 일으켰다는 칠숙과 석품, 그 대단한 두 사람의 실수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은 지엽적인 것이다.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결정적인 실수는 다름 아닌 미실이 저질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측근들의 실수는 부분의 실수로서 다른 부분에서 만회하면 된다. 그러나 미실이 하는 실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미실은 덕만을 보는 즉시 죽였어야 했다. 그런데 미실은 오판했다.  

미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미실이 측근들에게 강조하며 경계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공주를 살려서 서라벌에 데려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추포되는 과정에서 저항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도록 해야 한다." 공주를 살려두는 것은 곧 정변을 일으킨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덕만이 대범하게도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물론 미실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게다가 옆에는 당나라 사신도 있다. 그러나 미실은 위국부령이다. 신국의 황제를 대신해 역도를 추국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을지라도 당장 평정심을 되찾아 덕만을 잡아 옥에 가두라고 명해야 본래의 미실다운 모습이다. 

비록 공주라고 하나 덕만은 역적 혐의를 받고 있는 몸, 포박하여 옥에 격리한다고 한들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더구나 위국령이 내려진 엄중한 시점에 말이다. 그러나 미실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 너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당나라 사신의 눈이 두렵고, 대신들의 눈이 두렵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미실이 아니라 세종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장 덕만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홉수를 내다보는 노회한 정치인, 여기에 미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공개추국? 쿠데타에 그런 공정한 재판은 없다

너무 똑똑한 미실, 식자우환이라고나 할까. 쿠데타는 그저 쿠데타일 뿐이다. 명분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다. 어차피 쿠데타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거짓 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마당에 무슨 대의 따위가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나중엔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어 있는 것을.

덕만의 죽음에 대해선 역모에 대해 추국하던 중 자결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자고 달려들 신료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 황제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해보자던 대신을 현장에서 죽였던 미실이다. 그런 미실이 이미 죄인이 되어 손아귀에 들어온 덕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춘추가 밖에 있다지만, 그래서 덕만을 죽이더라도 춘추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걱정은, 글쎄 그건 좀 난센스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서 패주의 자손이다. 설령 춘추에게 대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덕만을 죽이고, 귀족들을 단속하고, 군사를 장악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남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식자우환이다. 너무 똑똑해도 화근이다. 알렉산더처럼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단 칼에 실타래를 끊어 푸는 것처럼. 그런데 이거 오늘 내가 엉뚱하게 쿠데타 세력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많은 쿠데타를 겪어 마치 반란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훤하다.  

미실의 쿠데타 실패는 식자우환 탓 

그래서 내가 아니더라도 미실이 식자우환이란 것쯤은 누구든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미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출현했던 쿠데타 세력들과는 달리 대의와 명분을 통해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정권을 창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양심적인 쿠데타? 어허, 그러고 보니 나도 식자우환이다. 쿠데타면 쿠데타지, 무슨 대의니 명분이니…, 개뿔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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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eignman.tistory.com BlogIcon Reignman 2009.11.04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가는 분석 잘 보고 갑니다.
    추운날씨에 건강관리 잘 하세요. ^^
    행복한 하루 만들어 나가시구요~ ㅎㅎ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11.04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컴퓨터가 없어서 이틀동안 덕만이를 시청했습니다.
    그리곤 파비님의 기사를 기다렸지요.

    대단한 미실과 덕만이었습니다.
    미실이 - 요즘 어리버리한 남자들 보다 더 명분을 중요시했는데 - 참 마음에 들더군요.^^

    그 화살을 누가 받을까 - 국선으로 변장한 비담?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11.04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믹시가 이상하네요..
    암튼 여러가지 면에서 공감합니다.
    그러나 드라마이다 보니 미실의 가는 길을 조금 미화시키고 싶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라면? 당연히 잡았으니 죽였겠지요.
    쿠테타 일으킨 사람들 명분 만드는 것이야 간단할테니 명분이야 후에 만들면 됐을테고 말이에요.

  4. Favicon of http://dreamlive.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04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데타에대의 명분은 중요하지용. 믿지는 않지만..ㅋㅋ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1.04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의는 늘 들고 나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미 미실도 대의를 들고 나왔고.... 덕만이 정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한다는... 그러니 그 상황에선 미실이 미적거리면 안 되었다, 뭐 그런 말씀이죠. 이것도 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쿠데타계의 두 인물에게 확실히 배운 사안이죠... 특히 전모씨. 어차피 쿠데타 세력은 결심하는 순간 인간이기를 포기한 집단이니까...

  5. 지나가다 2009.11.07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자우환이 적절하네요.
    저도 미실이 주제 넘게(?) 명분을 더 챙기는 거 같아서 조금 안타까웠(?)습니당..
    어차피 아무리 잘해도 쿠데타인데..

    • 파비 2009.11.0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대체로 쿠데타들이란 최초 명분만 내세운 다음 그 다음부터는 막고로 가는 건데... 그 최초 명분이란 것도 사실은 뻥이지만, ㅎㅎ

  6. 가림토 2009.11.09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는 내용입니다만, 제가 보기에 미실이 쏜 화살은 덕만이나 그 외 화랑들이 맞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가 진평왕이 노쇠하여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라면, 기록에 의거하건대 마야부인은 너무 오래 살았습니다. ㅋㅋㅋ 기록대로만 보자면 마야부인의 승하로 진평왕은 승만부인을 황후로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평왕의 생명이 다해가는 이 순간까지 황후가 마야부인이라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드라마에서 승만부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야부인이 진평왕보다 먼저 붕(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미실의 측면에 만명부인과 앉아있던 마야황후가 득달같이 미실의 앞으로 달려들어 그 화살을 맞고 절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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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음뷰에서 선덕여왕 후기를 읽다 보니 이런 제목이 눈에 띈다. 《선덕여왕,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다》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라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제목만 빼고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미실은 그런 점에서 나름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랫사람을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권력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신뢰와 사랑이 빠진 다스림은 억압과 통제에 불과하다. 그런 다스림은 자그마한 불만들이 조금씩 누적되다가 언젠가 커다란 봇물처럼 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은 어디까지나 덕만의 생각처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만 그 빛을 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이에 앞장서는 심복들에게만 베푸는 신뢰와 사랑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악마의 간교함에 불과하다. 

미실이 대인배란 소리를 듣고 보니 전두환 생각이 났다. 전두환이야말로 한때 대인배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던 사람이 아닌가, 몰론 세속적인 아첨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에 비해 노태우는 매우 좁쌀스럽고 치사한 인간으로 전락되곤 했었다. 전두환은 부하들이 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는 반드시 전별금이란 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소위 노란봉투로 불려지는 그 두툼한 현금 뭉치는 충성을 바치는 자에겐 더없는 기쁨이며 더한 충성을 맹세할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그의 곁에는 과거의 부하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고 했던가. 물론 돈으로 산 충성은 돈이 떨어지면 끝이므로 그 돈이 마르기 전까지만 유효한 이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추운 겨울 어느날, 린다 김 집 앞에서 죽치던 기자들에게 설렁탕 한그릇 씩이 배달되었다. 기자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 따뜻한 설렁탕을 먹게 되니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한 기자가 말했다. "아, 이거 추운 겨울 난장에서 설렁탕 얻어 먹자니 몇 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나는구만…"

그의 회고에 의하면 린다 김 사건이 터지기 몇 년 전, 김영삼 정권 초기 전두환의 집 앞에 죽치던 기자들에게도 그 추운 겨울바람 속에 설렁탕이 한그릇씩 배달되었다고 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보름씩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배달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은 복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기자의 회고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노태우 집 앞에서는 보름이 넘게 죽치고 있어도 껌 하나 안 나오더라 이 말이지. 진짜 지독하더구만…"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MBC라디오 《격동50년》을 통해 들었던 어느 기자들의 대화 내용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에서 인터뷰 식으로 확인까지 했으니 나름 신빙성 있는 에피소드였으리라. 

무엇보다 전두환의 대인배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해주는 것은 역시 장세동이다. 5공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그의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은 전두환이 노태우가 아니라 장세동을 후계로 키웠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이 떠들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전두환이 보여준 부하에 대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그런 전두환이 일반 국민들에겐 어떤 짓을 했는지를.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자신의 상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통령을 감금하다시피 해서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자기 일파에 의해 의해 대통령으로 옹립(?)되었던 최규하는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진지왕이나 진평왕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지왕이나 진평왕보다 훨씬 못한 그러니까 그저 전두환이 시키는대로 도장이나 찍고 사인이나 하는 전두환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는 게 옳을 터이다.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국민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가했다. 광주에서만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거의 20년 만에 돌아온 칠숙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미실…, 그러나 그 미실은 또한 백성들에게는 어떠했던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반대파들에겐 어떠했던가.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병사의 목을 직접 베던 미실이 아니던가. 그 미실의 모습이야말로 전두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아래 사람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대인배의 진정한 도다. 자기 개인의 야욕을 위해 사냥개처럼 순종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면서도 반대파와 일반 백성들에겐 가차없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대인배와는 거리가 멀다. 

미실이 칠숙의 손등에 떨어뜨린 눈물은 악마의 눈물이다. 악마에게도 순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정이 싸늘한 눈에 물길을 잠시 내었다고 해서 악마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모름지기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보인 순정도 결코 미실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의 눈물을 받아 마신 장세동도 칠숙처럼 그랬을 것이다.  

미실은 대인배가 결코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사악한 전두환과 같은 야심 가득한 출세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실을 대인배라고 하는 것은 전두환을 대인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칠숙도 충신이 아니다. 칠숙을 충신이라고 한다면 장세동이도 만고에 충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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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7.15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은 귀찮아서 패스 했는데.. 미실과 전두환이 대인배가 아니라는건가?

    그럼 먼데..?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구에도 버리기 싫은 쓰레기들이죠. 우주에 내다버리고 싶지만 비용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스스로 떠나라고 하고 싶지만 돈도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니... 그 돈 벌써 다 썼을 텐데... ㅎㅎㅎ

    • chtqnf 2009.07.15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기가 귀찮아서 패스하고 댓글 다는 분,
      밥먹기 귀찮아서 패스하시면 되고,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시다
      구렁에 빠지시면 됩니다.

  3. dd 2009.07.15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어린애 투정같은 글이네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악마의 카리스마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그런 사람들 눈에는 폭력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요. 정의를 말하면 철 모르는 애들의 장난인 거고... 하여간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chtqnf 2009.07.15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걸 어린애 투정 같다 생각하시는 분???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사십니까?

  4. dk 2009.07.15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제가 보기엔 말이죠.. 그 미실이 대인배다도 읽어봤는데.. 이런것 같아요.
    한때.. 뭐 요즘도 그렇지만 삼국지에서 2천년간 악역이었던 조조와 휘하 장수들을 재해석했던게 유행이었잖아요.
    대충.. 악역의 재발견.. 정도로 해두죠.
    흥부전에서 자본주의적 인간상인 놀부에 대해 재해석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입신에 성공한 춘향전의 변학도도 재해석 해보기도 하고.. ㅎㅎ
    네~네.. 물런 진지하게 접근하면 빼도박도 못한 악역이죠. 누가 난 놀부가 될거야, 변학도가 될거야.. 하면..
    한번 픽 웃고 말거나 뒤집어서 생각하지 글자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잖아요.
    그 글도 그런식인것 같아요. 악역에 대한 재발견, 뒤집어서보기.. 이런거식인거죠.
    유학식으로 말하자면
    배울것이 있다면 지나가는 개도 스승이다... 뒤집어서 털어서 발견하고 뭔가를 얻는것 말이죠.

  5. 좋은글이네요 2009.07.15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조가 대인배가 못되었듯...
    전두환이 대인배가 아니듯...
    미실도 그저 권력가일뿐이란 생각이
    이글을 통해 확 와닿았습니다..

    좋은글이네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글을 써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미실을 전두환에 비교한 건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미실이 저에게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지 않을지... 미실로서는 엄청난 모욕이겠지요. 전두환과 비교되었다는 사실이... 조조도 마찬가지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조조는 천하통일의 대의라도 있었지만, 전두환은 도대체 무슨 대의가 있어서 힘없는 국민들을 그렇게 못살게 굴고 죽이고 그랬는지...

  6. 알천랑~ 2009.07.15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저능 미실이 대인배라는 글 읽고 공감했다가 이 글 보니 또 공감을.. ㅎㅅㅎ
    오늘 미실이 한 대사가 대박이었어요.
    "백성들은 1000년전에도 도탄에 빠져있었고 지금도 그렇지 않느냐. 아마도 10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맞는 말 같음.. 암튼 대단..ㅎㅎ
    전두환은 머.. 할 말이 없습니다. 29마논................ㅠ_ㅠ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저도 그 글 읽고 공감은 많이 했습니당~ 그러나 미실은 그냥 악마죠. 똑같은 약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7. ........ 2009.07.15 0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쨌든 참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요즘에 이런글을 보면 많은 공감이 가요. 사람이란게 권력에 좌우되고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독해지고..... 아뭏튼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젯밤 아는 형님 회사 앞에서 저녁에 술 한잔 하고 그 형님도 선덕여왕 봐야된다고해서(그 형님은 제가 블로그에 쓴 후기 보고 선덕여왕을 1회부터 인터넷으로 싹 봤다고 하니 선덕여왕 제작팀에 저도 일조를 한 셈이죠) 8시 반에 헤어졌는데... 저는 그만 집에 오자마자 술이 취해 곯아떨어졌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거금 1000원 내고 봤답니다. 드라마 보기 전에 잠깐 뉴스 검색해 보았는데 천검사가 결국 검찰총장 직 포기했군요. 이명박이가 그토록 유인촌이니 천성관이니 집착하는 이유가 미실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참 씁쓸합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었을 때 그렇게 코드니 뭐니 떠들던 인사들이, 특히 조중동, 입이 돌아갔는지 말 한마디 없어요. 우리는 코드를 나무라는 게 아니죠. 제대로 된 코드를 뽑아라 이런 말이잖아요. 어디서 순 썩은 코드만 골라 오니... 그러고 보면 이명박이보다 미실이 훨씬 훌륭한 거 같기는 해요.

  8. 진희 2009.07.15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소!

  9. 너무 심한것 아니야? 지금 죽은사람도 아닌데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는게...너도 권력가져봐라~~ 넌 더 심할꺼다! 2009.07.15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심한것 아니야? 지금 죽은사람도 아닌데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는게...너도 권력가져봐라~~ 넌 더 심할꺼다!
    어디 미실이한테 견주는지.... 솔직히 미실이처럼 살구 싶은게 여자의 맘이라 생각이 든다...괜히 동경하면서 헐뜯는게 사람의 이치지뭐~~~~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악마"를 동경하는 사람도 있긴 있다니까요. 그렇게 사세요. 나는 권력 같은 거 갖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답니다. 우리 애 한테도 그런 인생 살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우리 애도 그런 인생은 피곤해서 정말 싫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디 미실이한테 견주느냐!" 그건 동감이에요. 님과는 정반대의 심정으로... 어디 전두환이 따위를 미실에게 견주다니... ㅎㅎ

  10. 너도 권력가져봐라? 2009.07.15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권력가지면 천국만들겟다. 자샤!
    별 이사한 반문명론자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괜히 힘든게 아니다.
    불의와 악의를 숭배하는 노골적인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삶이 적자생존이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당장 네 고기를 사료로 써야 겠구나?
    문명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시만의 도덕적 기준을 설파한다.
    즉 문명에대한 거부 보편성에대한 거부의 수단으로 아노미적 반문명론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자기중심적 도덕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좀 모자라서 내뱉는 말이다.

    • chtqnf 2009.07.15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적자생존이라는 논리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가져왔지요.

      그것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반성하고
      지금은 함께 사는 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고 있습니다.

      역사는 인류가 함께 살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 두분의 말씀 너무 훌륭하십니다.

      왜 사람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남을 죽여서 내가 행복해지는 그런 것만 배웠을까요? 인류가 탄생한 이래 99%의 기간 동안은 평등하게 서로 도와가며 살았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1%의 시기에 이런 꼬라지가 난 것 아닐까 싶네요. 청동기와 철기로 칼을 만들면서부터지요. "역사는 인류가 함께 살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정말 동감하는 말씀입니다.

  11. 악당은 악당일 뿐이다. 2009.07.1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당을 미화한다고 공감을 불러오는것은 아니다.
    미실이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고 그녀의 존재가 정당화 되는것은 아니다.
    수많은 아름다운 팜므파탈의 캐린터들이 존재하지만
    정상적인 도덕적 가치기준을 가진 보편성에의하면
    그것은 하나의 고발될 대상일 뿐이다.
    대인배? ㅎㅎㅎㅎㅎㅎㅎㅎ

  12. 악당은 악당일 뿐이다. 2009.07.1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이런 논란이 어제 오늘일 아닙니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영민분)이란 캐릭터에대해서도
    사실 그는 보편적인 도덕적 관념과 거리가 먼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무었이라도 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결국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불행한 삶을 마감하고 마는 스토리지만
    마치 그런 캐릭터의 모습을 우상처럼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헌데 한가지 중요한것은 우리 사회저변에 장준혁이나 미실과 같은 삶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비춰 연민을 가지게 하는 캐린터였던 것이지요?
    다라서 소위 악역의 캐릭터를 우상하는 사람들의 근처에 있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크다고 봅니다.

  13. chtqnf 2009.07.15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아주 좋습니다.
    방금 전에 어제 미실의 행위에 대해 극찬하는 듯한
    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이런 말씀을 읽으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 역사는 진실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치는 바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
    '백성을 위해 일할 시간이 없는 자는
    군주가 될 시간도 없다.'라고
    작가께서 항상 주장하시는 말씀입니다.

  14. 철자틀림 2009.07.15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인은 그냥 대인 으로 쓰고용
    소인배를 지칭할때만 배를 붙임

  15. 아연 2009.07.1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한 건 미실이나 전두환은 머리가 좋다는 거...
    일단 사람을 잘 부리 줄 아니깐..
    전두환이 확실히 똑똑하다 생각을 함..
    상대적으로 노태우가 너무 멍청해서 전두환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 일 수도 있지만...
    근데 이상하게 덕만이보다 미실이가 더 좋다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똑똑하긴 노태우가 똑똑하다고 스스로 그러던데요. 노태우가 재임시절 어린이날, 청와대에 벽지의 어린이들이 초대되었죠. "대통령 할아버지는 공부 잘하셨어요?" "음, 잘했지요. 나는 전교에서 5등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어요. 반에서는 늘 1등이었고."

      그거 테레비로 보다가 얼마나 배꼽 잡았는지... ㅎㅎㅎ

      그러고 보니, 전두환이 잘 쓰던 말 "본인은..." 노태우는? "나는..." 유독 이 두분은 말 앞에다 꼭 이 말을 넣었답니다. 옛날 왕들이 "짐은..." "과인은..." 하듯이

  16. 정의는 그대로 2009.07.1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한때 조폭영화가 유행한적이 있었죠. 대표적으로 요즘 드라마로 만들어진 '친구' 그 때도 말이 많았죠.
    그때는 저도 조폭을 동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치 않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았죠.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심리인듯 합니다.
    뛰어나고 카리스마있는 인물을 한 때 동경하는 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머지 않아 드러나죠.

    얼마전에 언듯 본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남자이야기'든가.
    그기서 한 의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이코패스는 양심이 없다. 양심이 없다는 건 아주 능력이 뛰어나고, 매너도 좋고, 주위사람에게 존경받는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자기자신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뿐이다' 라고

    양심이 없다 이 말은 일반인들은 아무리 해도 이해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남자 이야기 봤습니다. 그 대사도 생각나는군요. 좋은 드라마였다고 생각했는데, 흥행엔 실패했지만...

  17. Favicon of http://qlcanfl.tistory.com BlogIcon 빛무리 2009.07.1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추천 드립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의 방문과 추천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8. Favicon of http://blog.naver.com/ledzeppeline BlogIcon 후추상사 2009.07.23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대인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군자한테나 쓰일 말입니다.
    전두환이나 미실은 군자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파비님 좋은 글에 반말 찍찍하면서 욕설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악당들 팬이 참 많은 것 같아요.

  19. 콩레기 2009.11.05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의 취지에 전혀 동감이 가진 않지만 글은 잘쓰셨군요....
    건강하세요 ^^;

  20. dd 2010.11.21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무슨소리입니
    까??ㅎㅎ

  21. dd 2010.11.21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ㄴㄳㄹㅇㄴ?

『선덕여왕』에 드디어 칠숙이 등장했다. 소화와 함께 서라벌에 나타난 칠숙으로 인해 드라마 선덕여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 그래도 내심 불안했었다. 칠숙이 소화를 구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은 진즉에 있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만약 칠숙과 소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과연 누가 덕만의 정체를 증명해줄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진흥대제(드라마에서 자꾸 대제라고 호칭하니 나도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대세에 편승해서 대제로 부르기로 한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라면 이런 걸 무척 싫어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수밖에…)의 신물인 작은 칼 정도로 진평왕이 자기 딸을 확신하기에는 너무 무리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진평왕이 덕만을 떠넘긴 소화다. 소화의 증언이야말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명백한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화를 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덕만을 보면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소화에 대한 감사와 신뢰는 바다를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칠숙과 소화의 등장은 부질없는 내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칠숙은 어떤 인물인가? 칠숙은 기록에 의하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도 역시 화랑이었으니 진골귀족이다. 화랑은 진골귀족의 자제들 중 용모가 수려하고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선발한다. 이처럼 화랑도가 내면적 정신 못지 않게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신라인들의 영육일체, 선미합일의 미적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체적이다.

어떻든 이렇게 본다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은 모두 같은 씨족들로서 형제자매들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이나 설원공이 스스로를 천한 신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내부에서의 역관계일 뿐이고 이들은 모두 신라 최고의 관등에 오를 수 있는 진골귀족들이다. 그러니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만약 설원공(혹은 설원랑)이 김씨가 아닌 설씨라면 그는 화랑도 될 수 없었겠지만 병부령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다. 더구나 대등들만이 참여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 화백회의가 매우 민주적인 제도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이처럼 독특한 골품제와 화백회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권장되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만명부인은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김서현과 결혼해 김유신을 낳았다. 만명공주는 성골의 신분이었지만 골족이 아닌 가야 출신 김서현을 선택함으로써 귀족 신분을 잃게 된다.

김서현이 공을 세워 만명부인의 어머니인 진흥대제 황후의 배려로 다시 진골귀족의 신분을 얻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만명공주가 귀족신분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족외혼을 강행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에 투항한 공을 인정받아 진골 작위를 받고 공주와 결혼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명공주가 족외혼을 고집해 귀족의 작위를 잃었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드라마가 옳든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이 옳든)간에 신라는 언제부터인가 족내혼이 하나의 관습이요 제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씨족사회도 아니고 부족사회도 아닌 국가 체제가 정비된 고대의 강국 신라에서….

언젠가 아키히토가 황태자이던 시절, 천황족 외부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몰고 왔던 적이 있다.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천황이 생긴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도 족내혼의 관습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파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족내혼을 선택했다느니 하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나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내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중에 신라 금관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금관은 성인의 머리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둘레를 재어보았더니 너무 좁아 머리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식용이었을까? 그런데 어느 학자가 그 비밀의 동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밀의 열쇠는 고대에 행해진 풍습에 있었다.  

신라 왕족들의 머리는 모두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북방 흉노족의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돌을 올려놓아 머리를 늘어뜨리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금관의 둘레가 좁아 성인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흉노의 이런 관습 때문이란 것이다. 

편두 풍습으로 머리가 가늘고 길쭉해지면 충분히 금관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흉노의 일파인 북방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의 신화는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그 가설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하나의 가설을 더 추가해보는 것도 그리 엉뚱해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의 천황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를 장악한 경주 김씨들도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골품제도를 만들고 골족 내부의 의견을 통일하고 연대를 제고하는 기관으로 화백회의를 둔 것은 아닐까? 

죽은 줄 알았던 소화가 돌아왔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는 왕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6부족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연맹체였을 것이다. 이 6부족의 평화로운 연맹을 위해 6부족장이 아닌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혁거세거서간의 신화는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남해차차웅의 사위로서 유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석탈해의 경우도 그렇다.

석씨 부족이 철기문화를 가진 강성한 군사력으로 왕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기나 유사를 인용한다면 이때도 평화로운 연맹체가 지향이었으며 왕권은 6부족이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덕망있는 사람이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가 계림에서 얻었다는 김알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흉노족이었다면 정복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피정복민들을 지배할 효과적인 수단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골품제도는 그렇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은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역사적 함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 때에 가서야 비로소 김씨가 왕위에 등극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설을 풀어보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가설이 아니라면 그들의 근친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경주 김씨들은 원래 문란한 성전통을 가져서? 그건 아니지 않나.

경주 김씨가 정복민족이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골품제도를 만들고 족내혼을 했으며 나아가 다산을 위해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권장했다는 사실을 뒷바침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칠숙이 돌아왔다. 그도 화랑이다. 그러므로 그도 설원이나 세종처럼 미실을 사랑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그러면 아무리 칠숙랑이 우직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실에 대한 사랑은 15년 세월을 만주를 거쳐 타클라마칸까지 유랑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 칠숙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화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작가의 의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너무 걸레조각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칠숙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면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발해 일으키게 될 반란은 어쩌란 말인가?

실로 귀추가 주목된다. 칠숙, 한 눈 팔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를… 그리고 그건 법도에도 어긋나는 짓이란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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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uf 2009.07.08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공은 설씨입니다. 화랑세기를 읽은지 몇년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진골귀족이 동네를 지나다가 용모가 뛰어난 평민아이를 보고 따라갑니다. 거기서 낭도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평민아이 엄마)를 만나 아이와 함께 거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그 마을의 촌장인 설씨(6두품) 집안으로 입적시켜 귀족을 만들어 주었죠. 그 설씨 또는 그의 아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화랑도 될 수 있었고 풍월주도 될 수 있었는데요. 돌싱이 된 공주와 혼인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분이 딸려서 그의 위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풍월주로 만들어주었던가 했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게 설이 분분한데요. 설씨라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김씨라는 게 최소한 이 드라마에선 맞는 것 같네요. 예를 들면 이사부가 이씨냐? 그는 김씨거든요. 거칠부는 그럼 거씨인가? 그도 김씨죠.

      게다가 6두품은 아찬 이상의 고급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병부령 벼슬은 절대 불가능하고 대등이 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겠지요?

      설씨 중엔는 설총이란 훌륭한 분이 계시죠. 원효대사가 공주와 사랑을 하여 낳았다는... 그는 한글연구의 바탕이 되었던 이두를 창안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어떤 높은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지요. 최치원 선생도 마찬가지로 6두품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세월을 보냈지요. 결국 이 골품제도 때문에 신라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만...

      물론 설씨라는 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드라마 상에서는 해명 불가능한 거랍니다. 그럼 오늘날의 설원공은 없어야 되는 것이지요.

      경주에는 설씨 이외에 최씨, 이씨, 안씨, 손씨, 정씨 등 신라6성이 있는데요, 저는 그중 지백호의 후손이라고 통한답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2천년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하하~ 좋은 하루 되십시오.

    • duf 2009.07.08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에 설원랑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사부는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중국식 이름과 순우리말 이름이 같이 쓰이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중국식 이름은 태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족 맞습니다. 그리고 골품제도가 완전히 굳어진 것은 통일 후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설원랑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왕족과 맺어지며 신분이 높아졌다고 봐야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수도 있겠군요. 김유신처럼... 그래도 설씨 성을 가지고 대등이나 병부령이 되는 건 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거니까요. 김유신은 그래도 가야의 왕족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6두품이 두품 중 최고의 등급으로 양골과 함께 귀족계급을 형성했다고는 하나 그 한계가 너무 명확했거든요. 이게 나중에 신라 패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고... 어쨌든 좋은 의견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umean2me.egloos.com BlogIcon elly 2009.07.08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사부는 박씨입니다. 박이사부 혹은 박태종이죠.
      그래서 미실의 남편으로 나오는 세종도 박세종이고, 그의 아들인 하종도 박씨입니다.

      그리고 알천랑도 김씨는 아닙니다. 알천랑은 현재 진주 소씨의 시조입니다. 알천랑이 소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하더라도 왕족인데 굳이 다른 성을 줄 이유는 없었겠죠. 그래서 알천랑은 박김석씨가 아니라도 신라를 구성한 국가들의 후손이고, 성씨가 소씨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진골이거나 성골이어서 진골로 화랑에 편입될 수 있었을 수도 있구요.)

      김씨가 왕족을 이룰 수 있었던 건, 혈통(내례부인 혹은 옥모의 혈통)상의 적통이거나, 다른 정치적인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 가림토 2009.09.01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파비님....신라 6성 중 안씨는 없는데요? 배씨겠죠? ^^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네요. 배씨가 맞네요. 죄송^^ 밤 늦게 졸면서 달다 보면 실수가 좀 있을 수도... 그래도 이건 좀 심한 실수군요. 남의 집 족보를 ㅎㅎ

  3. 강해산 2009.07.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꼴깝을 떨어요 아주 ㅎㅎ 봤냐 니가? ㅋㅋ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안 본거 너는 봤냐? ㅉㅉ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일 뿐이니, 니가 본 이야기를 하는 걸로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이러심 우리 모두 입 닫고 살아야 된답니당.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관습이나 제도들도 모두 기껏 삼백년도 안 된 것들이 대부분이니 우리가 아는 건 진짜 별로 없답니다.

  4. 낭만고양이 2009.07.08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근친혼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확실한) 방법이라고들 생각해서
    그런걸껍니다 유럽의 금융계에서 유명한 집단은 지금도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 친인척인 만큼 배신하거나 권력이나 부가 외부로 빠저나가지 않죠 이때문에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서로 서로 권력가나 다른 재벌들과 결혼하는 이유도 이와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자기들의 부와 이에따르는 돈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혈연을 맺는 비슷한 이유겠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전에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언론개혁운동을 하는 신학림 기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명박의 가계도를 그리면 삼성, 조선일보 등 정재계의 거의 모든 가문이 사돈의 팔촌으로 엮인다고 하더라고요. 신 기자가 그려주는 그림을 한참 따라 그리다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답니다. 하하

  5. 광빨 2009.07.08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관이 좁다고 그러는데 저는 정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왕관이 커서 머리에 어떻게 썼을까?에 대한 의문~ 예전에 역사 스페셜에서 봤는데 이 왕관이라는 것이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이 죽으면 소위 말하는 왕관을 목까지 내기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슴 뿔 같은걸로 머리를 감싸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두의 관습은 신라가 아닌 고대 가야지역에서 행해졌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본인의 추측으로 역사적 유물들을 본인의 입맛에 맞게 왜곡을 하시는군요~
    본인의 추측을 역사적 사실인양 말도 안되는 유물들을 가져다 껴 맞추기 하면서 본인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하시는거 쩝이네요~

    물론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신라 귀족이 김씨 하나만 있다는 전제로 글을 전개하시는 것도 좀 아닌거 같네요..

    일반인의 대충 때려 맞추기식 추측은 추측으로 끝나야지 이렇게 글을 올리시면 또다른 왜곡으로 다가 옵니다.
    자중하시길~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금관은 아이 머리에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랍니다. 그건 확실한 정보니까 착오가 없습니다.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편두의 관습에 대해선 정설은 아니지만, 금관의 크기와 신라 왕릉에서 발굴된 미라를 근거로 편두의 관습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논문이 나왔고 그 이유를 흉노의 편두관습에서 찾았다는 발표가 있었고 방송도 한번 탔을 겁니다.

      그리고 이글은 논문이 아니랍니다. 드라마 후기죠.

  6. 문용진 2009.07.0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우선 이미 KBS 역사 스페셜에서 김알지의 근원이 이미 나왔었고요. 추사 김정희가 조선시대때 이미 추론하여 더이상 조사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까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역사스페설을 참조하시면 어설프게 이야기 하는 것들과 말 안 섞으셔도 될거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주인장님의 이론에 동감하고요. 씨족 사회는 원래 그렇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저도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본 것 같습니다. 이참에 역사스페셜 책으로 엮어져 나온 걸 한번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물론 스페셜은 정사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7. 이거 완전소설이네요 2009.07.08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전공자로서 이런 소설은 정말 봐주기 힘들군요. 사실관계를 반대로 서술한 것도 있고요. 정확한 지식이 아니면 글을 쓰지 마시죠. 도대체 신라왕릉급 고분 어디서 두개골이 출토 됐다는 겁니까. 그리고 편두는 남방계 풍습입니다.신라 왕릉급 고분 이라는 말은 쓰지만 누구도 신라 왕릉이라고 말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명확하게 이것이 신라왕릉이다라고 밝혀진 고분이 없으니까요. 추정만 할뿐이지 . 삼국시대의 고분중 피장자를 명확히 알수있는 유일한 왕릉은 백제 무녕왕릉입니다. 그외는 고분의 크기.양식.부장품등으로 왕릉급고분을 추정할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만, 저도 추론이라고 했고요. 제 글은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금관의 크기가 작다는 건 확실한 팩트지만 그 이유는 아직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답니다. 역사전공자라시니 그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고요. 다만 그 이유를 북방 선비족의 풍습에서 찾는 연구가 있었고, 그게 윗분이 댓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사스페셜에 방영된 일이 있는 것 같군요. 함 확인해 보시지요.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글의 주제는 드라마 후기랍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족내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은 열렬한 시청자의 권리에 해당하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고 소설을 소설로 보아야 하듯 블로그도 마찬가지랍니다. 이건 시사포스팅도 아니고요. 다만, 이렇게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지요. 이제 역사든 정치든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게 된 거지요. 인터넷으로 인해서...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왕릉이란 표현은 고분으로(사실 신라의 고분은 모두 주인을 알 수 없으므로 총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고치고, 두개골 출토 부분도 고칩니다. 주제가 근친혼이고 금관이나 고분 이야기는 이를 뒷바침하기 위한 소재에 불과합니다만, 고증 없는 자료는 고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수정합니다. 고맙습니다.

  8. 잘 보는이 2009.07.08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도 그랬듯이 근친혼은 대체로 지배층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죠. 신라의 근친혼이 심하다보니 같은 성씨가 왕과 왕비로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신라에서 올라온 표문을 보고 왕와 왕비의 성이 같아서 매우 놀랐다는 기록도 있지요. 신라에서는 이러한 것을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왕비의 성을 지어서 표문을 올렸습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근친혼=성적 자유 사회 라는 도식이 성립하는지 궁금하군요. 근친혼은 단순히 왕실이 선택한 권력의 유지 수단이고 규율이 미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근친혼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 대한 인정이 근친혼까지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것을 보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다라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렇다면 근친혼이 만발하였던 19세기 유럽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시대인지요?). 자유 연예는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중기에서도 조선후기에서도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지배층들이 어느 정도 자유 연예를 했냐? 안했냐의 차이일 뿐이죠. 신라사회에서도 중매를 통한 결혼을 정식으로 여겼고 자유 연예의 결혼 같은 경우는 野合이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괜히 김서현이 왕의 장인의 아들인 숙량흘이 김서현과 자신의 딸 만평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한 결합은 야합 즉, 자유 연예로 인한 결혼이었지 중매를 통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릴 적 기억이 나는군요. 의무적으로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다가 사촌간의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엥? 이게 무슨... 이 무슨 불경스러운 이야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흐흐... 우리 모두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요 ^-^

    • 잘 보는이 2009.07.08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너무 신라사회를 양성평등, 혹은 여성우위의 사회로 보고 그 증거를 근친혼으로 드는 경우가 많아서 단순히 한탄해 본 것입니다. 유사이래부터 현대이전까지는 부계사회, 남성위주사회이지 결코 영성평등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여성의 상대적 지위가 높냐 낮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말씀입니다. 드라마에서 미실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걸로 나오지만,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은 기껏 황후 자리였죠. 석기시대라면 모를까 그 이후는 남자, 즉 무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대였던 게 맞죠.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혼란스러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9. 박현주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이 부분은 고치시는 게 어떠실지....본인 스스로 그냥 드라마 감상평이라고는 하시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들이 사실인량 적혀져 있어서 보기에 거슬리네요. 미실은 박씨이고, 설원랑의 성씨도 의견이 분분한데 '자명한 일이다.'라고 쓰시는 건 좀 아닌 듯 싶어 한마디 남깁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의 성씨가 설씨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란 생각엔 변동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실이야 박씨든 김씨든 상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들 박씨나 석씨도 왕통이니까요. 제 주장은 설씨로서는 절대 대등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병부령조차도 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체제에 대한 반역이죠. 그럼 김유신은? 그는 가야의 왕족으로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더군요. 설씨가 특혜를 받을 이유가 없지요.

  10. 고니 2009.07.0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왕조의 근친혼?? 글쓰신 분이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그것도 1000년이 넘는 시대를 말 하시는듯 ~한반도의 국가기원을 기원전 4세기로 보는 것이 우리가 배운 바입니다.. 여기서 오류에 빠지기 쉬운것이 그 국가라는 것이 지금의 한 정부 체제하에 있는 그런 국가 형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원전 4세기 .. 한반도 뿐만아니라 극동 아시아 특히 중국 대륙까지 ~~ 기본적인 사회 구성이 씨족 개념이었읍니다.. 씨족의 개념이 뭔가요? 한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씨족을 바탕으로 한 강한 씨족( 머리수가 많은 ^^*;;)이 주위의 다른 씨족을 통제( 착취 !!) 하는 형태의 부족으로 나아가 그 부족의 큰 형태 즉 그당시의 국가.. 이때쯤 통치하는부족의 편의를 위한 법( 법이라기보단 단순 규칙정도?) 를 공포하는 수준이겠져.. 2차는 담에 ㅋ~~ 넘 길다

  11. thfql 2009.07.08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것 보다..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다른 댓글에서 보기도 했고.. 그것 참. 그럴 듯 합니다.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 어쨌든 연관이 있는 듯. 예전에 몽고쪽 유물 전시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북방 민족에는 6가지 민족이 있는데.. 그 민족들이 말을 이용하고 문자가 어쩌고..한 여러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글고 몽고 반점.. 몽고인이랑 닮기도 하고.. 어쩌고.. 언어가 어쩌고.. 그런 것 크면서 조금씩 들어 본 적 있는데 몽고족들과 비슷한 혈연일지도... 울 나라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군요.. 무튼 요즘 신기 신기..
    사극들을 보면서 엄청 역사에 흥미들을 느끼는 것 같고.. 저런 것 보면 근친혼이라고 비난이나 늘어놓던 사람들이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자명고..만 봐도 외삼촌이랑 결혼할 수도 있고.. 여기는 복잡해서 일일이 말할 수 조차 없는.. 그냥 재밌기만 하니.. 다 그냥 넘기고 있는 중.. 그냥 사회가 그렇다니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고..

  12. DARKJK 2009.07.08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머리를 압박해서 폭이 좁게하는 풍습은
    은근히 세계 곳곳에 많아요
    이집트도그랬고..
    아메리카남미쪽도 그랬고..
    지구반대편인데도 그런 풍습은 은근히 있더라구요
    특히 상위계급에서

  13. 정은희 2009.07.0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같은 조상님의 후손 이시네요~
    저도 지.백자. 호자. 할아버지의 후손 경주 정가 양경공파(이건 조선시대 때 갈라진거겠죠..?) 72대손 이랍니다...
    조상님 함자를 참으로 오랫만에 발견하니 반가운 맘에 몇자 적고 갑니다.

  14. 지나가는 사람 2009.07.08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화랑세기의 위작 여부를 넘어 논하자면....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랑은 설씨가 맞습니다만... 설원랑은 원효대사의 조부입니다. (증조부던가?) 원효대사의 속가명은 성은 설 이름은 서당이었구요. 설원랑은 그 아버지가 진골귀족이 아니었습니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이라고 하여 신라 진골 귀족이었는데 설원랑의 아버지는 미모로 유명한(?) 자로서 금진의 용양신(애첩과 비슷한 의미)였다고 합니다. 금진은 사다함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설원랑이 신분이 낮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에 기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설원과 사다함은 동모형제이지요.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혈통의 고귀함을 결정하는 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신분이 높으면, 그 아이들 역시 똑같은 특권을 누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딸인데, 법흥왕 계는 성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지소태후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성골이었기 때문에 세종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아버지가 아들인 세종과 말할 때는 말을 엎드려 신하의 예로 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신 국선 문노의 경우 아버지는 진골귀족이나 어머니가 야국(일본 혹은 가야) 출신 평범한 여인이라 처음엔 진골귀족에도 못 꼈다 하지요. 워낙 무훈이 높고 신망이 높았고 진지왕 축출 때 공이 커서 미실이 진골귀족으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말한 건 아니고 당시의 골품제도를 바탕으로 골족이 아니고서는 아찬 이상의 관등에 오를 수가 없다는 걸 말씀드린 거랍니다. 설씨든 최씨든 또 우리같은 정씨는 두품 중 최고인 6두품이라도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죠. 5두품 이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설원이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가 진골귀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가 설씨라면 화백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또는 반대로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했다면 그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 이런 식으로 논지를 편 겁니다. 모계혈통이 신라대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좀...

  15. 딩호 2009.07.0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문제는...

    '화랑세기'가 진위인가가 문제이죠. -_-;
    백날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두고 해석해봤자...설득력은 없다는.~.~


    그냥 드라마로 봐야..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저도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글을 쓴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중심으로 말한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나 사기, 유사를 빌어오면 복잡해진답니다. 우선 연대도 안 맞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시공을 넘어 만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완전 타임머신 되는 거죠. 아마 첫회에서 그런 자막이 뜬 걸로 아는데요. 연대가 수십년을 넘나드는 것은 드라마의 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니 이해를 바란다고... 언뜻 지나가는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16.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montreal 2009.07.09 0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칠수과 소화의 재등장은 드라마를 훨씬 복잡하게(재미있게) 만드는거 가타여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두 그리 생각해여~ 그런데 칠숙과 소화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풀릴 것 같기도 하고요. 꼬는 놈이 있으면 푸는 놈도 있어야 한다는 ^^-

  17. 쏘쏘 2009.07.09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금관이 성인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크기인 이유는 그 용도가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관을 보시면 머리에 쓰고 있을 수 없게 아주 얇은 두께로 제작되었고,
    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왕족들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설은 신라 금관의 용도가 장례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죽은 시체의 얼굴 위에 씌우는 것입니다. 그 방법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머리에 쓰는게 아니라
    얼굴을 덮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분에서 출토될 당시 대게 얼굴 위를 감싸는 상태로 발굴 되었기때문입니다.

  18. 미실은 '박'씨입니다. 2009.07.09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은 '박'씨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족과 왕비족이 있어요. 신라에서도 왕비족은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지요. 미실은 '김'씨가 아니랍니다.

  19. 2009.07.09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가요. 근데 일본황태자는 왕태자아닌가요..이거 어떤 데선 왕,왕족이라고하는데 다른데선 황족이라고하고..근데 그냥 왕족이 맞지않나싶어요. 왕태자랑..굳이 올려서 말할필요가..우리랑은 원수나 마찬가지니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위에 있는 댓글에서 설명했는데... 하여간 지들이 천황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한번 불러준거에요. 왕이나 황이나 뭐가 다를 게 있나요? 영국은 국왕이라 부르고 독일은 황제라고 부르지만 영국국왕이 오히려 더 권위있어 보이지 않던가요? 그렇지만 감정이 다들 그렇다고 하시니깐 앞으로는 그냥 일왕이라고 부를 게요. 그리고 잘 읽고 가셨다니 고맙습니당.

  20. qkqlen 2009.07.12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m음 성골 진골 뭐 이런것 때문이지 않
    을까 ?!!

  21. 가림토 2009.09.0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 달렸던 댓글에 관한 내용을 종합해서 글 올리겠습니다.


    1. 미실의 성씨
    미실은 아버지가 미진부공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부인으로 둘 다 김씨입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진부의 아버지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버지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버지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다. 복호는 내물왕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실과 미생은 김씨가 되겠습니다.


    2. 근친혼에 관한 간단한 고찰
    화랑세기 제6세 풍월주 세종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미추대왕이 광명을 황후로 삼으면서 후세에 이르기를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세상에서 이 계통을 진골정통이라고 한다. 옥모부인은 곧 소문국 왕의 딸인 운모공주가 구도공에게 시집가서 낳은 딸이다. 옛날부터 진골은 아니다."
    이 말은 위의 지적처럼 혈통과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근친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씨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후손들에게 령(현재 개념으로 말하면 불문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골정통은 어머니에서 딸에게로만 전해지는 혈통을 말하는데,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현재의 성씨의 전래와 똑같이 여자에게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짜피 같은 여자의 혈통으로 이어진다면 그 여자의 성씨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씨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라 김씨왕계의 근친혼의 원인과 결과입니다.


    3. 신라 금관의 크기와 편두
    사실 신라 금관의 내경이 작아서 실제로는 쓰고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또한 실용물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은 금판이 너무 얇아서 실제 사용했다면,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휘어지기도 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실용기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에 누군가가 지적하셨던 것처럼 죽은자에게 씌워 보낸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데드마스크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편두에 대한 언쟁이 위에 있는 것 같은데, 신라의 고분에서는 제대로 된 유골이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인골 가운데 편두의 습성이 확인된 곳은 부산대학교에서 발굴한 김해 예안리의 인골에서 뿐입니다. 또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한전에 편두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 있으니, 편두의 습성을 가진 것은 변한 - 가야로 이어지는 계통이지 진한 - 신라로 이어지는 계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확언하지만 신라에서 편두의 습관이 있었다는 기록과 고고학적인 근거는 모두 발견할 수 없습니다.


    4. 설원공의 성씨와 설원공의 지위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원효불속'의 내용을 보면
    "성사 원효는 속성이 설씨다. 그의 할아버지는 잉피공인데, 적대공이라고도 한다. 지금 적대연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고 하여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하는 고려 후기까지 잉피공의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화랑세기 설화랑전에는
    "(설원)공은 아들 다섯 명과 딸 일곱 명이 있다. 정궁부인인 준화낭주는 큰아들 웅, 작은 아들 잉피, 적녀인 정금낭주를 낳고는 죽었다(...중략). 잉피는...원효의 할아버지다."라고 하여, 설원이 원효의 증조할아버지인 것이 확인됩니다.
    위 두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속성이 설씨라고 하는 원효의 증조부가 설원이 되므로 설원의 성씨는 설씨가 분명합니다.

    다만,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의 아버지는 설성인데, 설성의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가 신라6부의 고야촌장 호진공의 후손으로 설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 성씨를 알 수 없는 설원의 할아버지가 진골인 김씨일 수가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할머니가 구리지공(사다함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 중에 '좋은 낭도를 만나 설성을 낳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진골 김씨의 경우 화랑이었지 낭도가 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원공의 지위를 보자면, 그의 아버지 설성을 구리지공은 급간 설우휘라는 6두품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서자로 입적시킵니다. 따라서 설원의 지위 역시 6두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설원이 벼슬자리에 있었따는 기록은 없고, 549년에 나서 606년 7월에 죽었다는 기록과, 579년 풍월주 자리를 문노에게 양위한 후 미실을 따라 영흥사에 들어가서 평생 그녀를 호위하다가 죽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따라서 설원이 병부령이라는 것은 드라마상의 설정일 뿐이지 그의 지위를 추정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 김유신의 진골 신분 및 이사부, 알천랑의 성씨
    신라에는 합병한 왕국의 왕족을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관례가 있다. 예를 들면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했을 때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킨 바 있으며, 고구려 보장왕의 외손인 안승이 신라에 투항했을 때 역시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김유신의 할머니인 만호태후가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결혼을 반대했던 것이 진골계층 내부에서도 서열이 존재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화랑도 내부에 발생한 파벌관계에서 만호태후는 진골정통으로써 한 파를 형성하고 있었고, 김서현은 가야파였기 때문에 그 계통을 달리하는 파벌로 인하여 만호태후는 김서현과 만명의 결혼에 적극 반대했다고 보여집니다.

    별담으로 elly님께서 이사부는 박씨라고 하셨는데 이사부의 계통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이사부장군은 내물왕 4세손으로 나오는 분이니, 내물왕이 박씨가 아닌 이상 이사부는 김씨가 맞겠죠?^^

    또 하나의 별담으로 역시 elly님께서 올리신 내용인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는 내용인데, 이기백 교수님의 글로 그 주장에 가름합니다.
    "1979년의 일인데,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의 한 분이 종친회보를 가지고 연구실로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러면서 진주 소씨의 시조는 신라시대 상대등이던 알천인데, 회보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알천은 김씨이므로 소씨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구실을 들어 거절하여 보냈다. (중략) 그 뒤에 필자는 신라 말기에 김해 지방에서 활약하던 김율회가 때로는 소율회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김(金)과 소(蘇)는 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金은 음이 '김','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알천의 성이 소인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6. 선비족과 흉노족의 계통
    thfql님께서 쓰신 '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라는 댓글에 파비님께서 '선비도 흉노의 일파지요?'라고 하셨는데, 계통상의 착오가 있으신 듯 합니다. 결코 선비는 흉노의 일파가 아닙니다.

    위서(魏書)에는 선비가 동호족(東胡族)의 한 갈래로서 언어와 풍습은 오환과 같으며, 흉노족의 '묵특선우'에게 패해 요동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동호족은 세 갈래로 흩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흉노로 흡수되었고, 하나는 오환, 나머지는 선비입니다. 이후 서기 91년 후한의 부탁으로 남흉노, 정령, 선비는 북흉노의 정벌에 동원되는데, 이 싸움에서 선비는 북흉노를 멸망시켰고, 후한은 그 댓가로 북흉노가 유목하고 있던 토지를 선비에게 넘겨주면서 북흉노인 50여만 명을 선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때 선비는 인구 100만 이상의 되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라 김씨의 선조가 선비족이라는 학설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신라의 문화가 흉노와 유사한 점이 있다면 서기 91년 선비에 편입된 흉노인들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진주 소씨는 경주 김씨의 일파란 말이네요. 이기백 교수님 말씀처럼 김 또는 금을 소로도 발음한 그런 것일 거라는 가설이 맞다면요. 그 시조가 알천랑이고. 어쨌든 왕으로도 추대된 알천이 김씨인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