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9.10.20 '선덕여왕' 미실의 최후는 미실의 선택 by 파비 정부권 (2)
  2. 2009.10.10 김춘추와 선덕여왕, 진골 대 성골의 대결? by 파비 정부권 (5)
  3. 2009.10.09 왜 우리나라 왕들은 대머리가 없을까? by 파비 정부권 (107)
  4. 2009.09.15 김유신이 선덕여왕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22)
  5. 2009.09.12 미실이 황후가 된다면 세종과는 이혼해야 할까? by 파비 정부권 (3)
  6. 2009.09.04 선덕여왕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은 누구일까? by 파비 정부권 (5)
  7. 2009.08.26 '선덕여왕' 옥에 티, 황제가 짐이 아니고 과인? by 파비 정부권 (8)
  8. 2009.08.13 선덕여왕, 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일까? by 파비 정부권 (6)
  9.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은 살고 천명이 죽어야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11)
  10. 2009.07.29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by 파비 정부권 (4)
  11. 2009.07.08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68)
"김춘추가 골품제는 천박한 제도라며 왕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갈을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라고 제 블로그에서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계속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건 문제 축에도 들지 못하는 문제죠. 답은 뻔히 미실 일파입니다. 미실 일파 중에서도 세종공이 가장 즐겁겠죠.


골품제 비판, 춘추는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종공은 사태를 읽는 명석한 두뇌가 없습니다. 주제에 넘치게 욕심은 많지만 재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설원공은 머리는 명석하지만 타고난 출신의 한계로 인해 사고의 한계 역시 명확합니다. 물론 설원공이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은 드라마의 설정일 뿐입니다. 출신이 미천하면 절대 병부령이 될 수 없는 게 바로 골품제죠.

그러니 그 설정이란 난센스입니다. 춘추와 미실조차도 넘을 수 없는 벽을 설원공이 넘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설총이나 최치원이 천하를 품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방랑의 세월을 살았던 것도 다 골품제 때문입니다. 6두품은 진골과 함께 중앙귀족을 형성하는 정치집단이지만, 제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관직에는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6두품이 본격적으로 골품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진골귀족들 간에 왕위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중앙과 지방의 정치혼란이 극심해지자 6두품은 반 신라적 입장을 취하거나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치원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 이들 6두품이 대거 진출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김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한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춘추는 6두품이 아니라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6두품의 입장에서 보면 골품제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가 맞습니다. 아니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분제도 자체가 아먄적이고 폭력적인 제도입니다. 

미실, 신분의 벽을 깨고 왕위에 도전할 수 있나

그럼 여왕은? 그건 신라사회에선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입니다. 이미 선덕여왕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여자가 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황남대총의 여주인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에 또는 왕자가 아직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르기 어려울 때 공주의 부마를 부군으로 삼아 왕위를 계승한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석탈해, 김미추도 그렇게 해서 왕이 된 사람들이죠. 

다시 말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상속권을 가졌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신라 하대에 이르러 유학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비판 받기 시작합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유학자로서 사대주의와 남녀차별적인 사고방식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을 역사의 불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 시대에 여왕이 등극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신라인은 드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신분의 상속은 공평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예로 지소태후가 이사부와 통정하여 낳은 아들 세종에게 전군(태자가 아닌 왕자)의 칭호를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 소리 듣는 김춘추도 마찬가지죠. 이는 조선시대에는 도저히 불가한 일입니다. 

자, 이쯤에서 미실이 얘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미실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덕만과 춘추입니다. 덕만은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춘추는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덕만이 아니라도 미실이 살던 시대에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큰 흠이 아니었습니다.

미실이 할 수 있는 일은 쿠데타밖에 없었나

오히려 덕만은 미실을 통해 왕이 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설정도 난센스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실 정도의 걸출한 인물이라면 그녀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틀림없이 왕위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었으므로 왕이 아니라 왕후가 되는 것에 만족하려 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라의 전통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권력을 취하는 길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흥왕을 독살하고 유언장을 조작한 것도 알고 보면 정통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덕만이 내놓은 조세감면정책에 대해 보인 미실의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미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왜 미실이 직접 나선 것일까요? 지금까지 미실의 권력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덕만공주요, 다른 하나는 춘추공입니다. 이 둘은 모두 현 왕의 직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이 출중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죠.

그래서 직접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실은 과거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방법은 정통성이 있는 왕족을 자기가 포섭하고 있거나 그런 왕족이 없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그게 힘들어졌으니 미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진즉에 덕만을 죽였어야 했지만, 미실이 크게 실수했던 거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미실의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그럼 미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변밖에 없습니다. 쉬운 말로 쿠데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를 겪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일으킨 구데타죠.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 권력을 쥐기 위해 가장 손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바로 군사정변입니다. 미실에게 주어진 카드는 결국 쿠데타뿐입니다.

미실이 칠숙과 나눈 잠깐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미실이 곧 난을 일으킬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칠숙은 미실에게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나는 가진 것이라곤 재산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이미 칠숙과 함께 난을 일으키는 것으로 돼있는 석품은 칠숙의 심복이 되어있습니다. 

오래전에 칠숙의 난을 위한 준비는 완료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의 소품 정도일 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미실은 사실상 신라의 지배자였으니 그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친위쿠데타가 되겠군요. 그러나 이것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중소귀족들의 신망이 미실로부터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미실의 난은 분명 실패하고야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덕만의 조세정책과는 반대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부자(귀족)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MB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미실의 난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실패했을까, 성공했을까?  

덕만을 죽이지 않은 실수의 결과, 미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튼 미실은 덕만을 죽이라는 상천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상천관을 독살하는 실수를 범했지요. 미실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그것은 황실을 압박해 마야부인을 축출하기 위해 덕만을 살려 이용하기 위함이었지만 말입니다. 스스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부서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미실의 최후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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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림토 2009.11.09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한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파비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골품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파비님의 의견이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에 관련된 제도가 아니라 '성골과 진골'에만 국한된 제도라는 연구 성과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고 한다면 김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한 것은, '성골과 진골을 구분 짓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해석이 되고 '성골과 진골을 구분 짓는 야만적'인 '골품제 때문에 춘추 스스로가 왕이 될 수 없음을 비판하는 것이 되어 파비님께서 제시한 '진골인 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논리와는 다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춘추의 골품제 비판은 '왕족을 성골과 진골로 구분하는 것은 원시적'이다라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1.09 04: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일반적으로는(가림토님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아직은'이란 수사를 달아야겠지만) 골품제라고 하면 골제와 두품제를 합쳐서 골품제라고 하는 걸로 압니다.
      그러나 가림토님의 말씀이 매우 일리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춘추가, 명색이 진골귀족인데, 두품들의 처지까지 고민했을리는 없지요.

김춘추가 골품제도를 일러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다. 그것도 성골 왕인 진평왕 앞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론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김춘추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오셨습니까? 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온 것 같습니까?"
 

사서에 등장하는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전략가였다.


김춘추, "나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김춘추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덕만공주도 오래전에 같은 말을 했었다. "신라를 먹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신라의 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바야흐로 왕이 되려고 한다.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꿈, 여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춘추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춘추는 말한다.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는 김춘추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김춘추의 마음을 그의 입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덕만에게 "나도 이모님과 마찬가지로 신라를 가지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라고 말했으며, 엊그제는 진평왕과 대등들 앞에서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래, 성골만 왕이 되란 법이 있소? 나 진골도 왕이 되고 싶소!" 이게 그의 진심인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입국하자마자 염종을 수하에 두고 비담을 포섭하기 위해 저울질 하는 등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미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을 안심시키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양동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가히 외교술의 귀재였다는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다면, 김춘추는 기골이 장대하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뛰어난 두뇌와 유창한 화술의 소유자였다. 당태종조차도 김춘추를 칭찬했다고 하니 그가 고구려와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전을 펼친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게다가 김춘추는 출중한 지혜뿐 아니라 대범한 용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전략가에 행동가였다

감히 누가 있어 용담호혈에 주저 없이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김춘추는 스스로 죽을지도 모를 길을 주저 없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에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그였으니 진평왕 앞에서 감히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라고 일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이다. 골품제도는 신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라가 아니라 신라왕실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다. 성골왕족을 부정하고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김춘추가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사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친손자이면서 동시에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성골남진한 상태에서 충분히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김춘추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친손자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진골귀족일 뿐이다.   
 
아무래도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역시 덕만공주의 부마가 되어 부군이 되는 것이다. 부군이란 태자가 없을 때 공주의 부마를 다음 왕위계승자로 삼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이런 제도는 근친혼이 성행하던(혹은 권장되던)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부마도 결국 같은 왕족이니까.   

실제로 부군의 지위에 올라 왕이 된 예는 많았다. 석탈해가 그랬으며 김씨족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그랬다. 내물왕과 실성왕도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케이스다. 그러니 성골 태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귀족 중 한 명을 성골 공주의 부마로 맞아 부군으로 삼는 것이 신라의 전통이며 자연스럽게 후계를 확정짓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김춘추의 위험한 발언, "성골만 왕이 되란 법 있나?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이미 미실과 계획한 것처럼 덕만공주와 혼인해 부군이 되면 될 일이다. 덕만은 김춘추에게 외가 촌수로는 이모(3촌)가 되지만, 친가로 보면 6촌 형제간이다. 근친혼을 신국의 도라 하여 권장하던 신라사회에서 6촌 형제간인 덕만과 춘추가 결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신라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도에 따라 연대나 인물 등에 대해 각색의 가위질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도 있는 법이다. 선덕여왕과 김춘추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진골인 김춘추가 성골 왕 진평왕 앞에서 감히 역모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폐하, 어찌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진골도 왕이 되고 싶사옵니다.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는 분명 매우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진평왕은 5촌 조카이면서 동시에 외손자이기도 한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위 인물들 중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러나 다른 신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당장 김춘추를 참하라고 소를 올릴 것이다. 만약 그들 귀족들도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특히 미실과 세종 일파의 경우에,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진골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때문에 속으로는 김춘추의 발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이고 있는 권력을 둘러싼 역관계로 보아 김춘추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왕위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세종이다. 이것은 미실이 평생을 꾸어오던 꿈, 곧 황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김춘추는 "성골만 왕이 되고 진골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야만적"이란 따위의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김춘추에게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덕만공주야말로 하늘이 예언한 개양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임금의 재목'이라고 진평왕에게 품해야 옳은 일이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덕만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추겨야 옳은 일이다. 그 길만이 "신라를 가지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하던 그의 야심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김춘추의 생각대로는 절대 될 수가 없다. 왜? 김춘추는 미실 일파가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패주의 자손이다. 그리고 진지왕을 패주로 만든 것은 미실과 세종, 설원공 등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김춘추는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7년을 합하여 무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에도 김춘추는 바로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귀족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알천공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알천공은 자신은 늙고 덕이 없음을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온갖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이든 총리 자리든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는 미담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미담은 대체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럼 왜 알천공이 왕 자리를 고사했을까? 바로 김춘추의 뒤에는 김유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월성전투의 승리로 비담의 난을 제압한 이후 김유신은 신라의 무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지만 후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비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목숨은 두 개가 아니니까.

김춘추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화백회의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이 강화된 신라에서 화백회의는 왕의 괴뢰기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법흥왕 때부터 대등들을 각 행정기관의 장으로 배치해 왕권의 통제아래 두려던 시도는 김춘추가 왕이 될 무렵에는 거의 복종하는 관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춘추가 덕만공주에 맞서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드는 것은 난센스다. 아니 치명적 실수다. 지금은 은인자중할 때다. 조용히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영민한 그로서는 분명 언젠가는 자기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유학까지 한 김춘추라면 태공망의 고사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잠시 미쳤던 것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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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1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월요일엔 바쁘더라고요. 낼도 그렇고, ㅎㅎ (반향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그렇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님의 글 잘 읽고 있는데요. 아마도 님 글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그런게 더 필요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2. 동그랑땡 2009.10.11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의 발언은 미실측의 기회를 준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도있지만, 신라는 골의나라!!
    골이 천박하다면 진골의 존재도 부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춘추의 발언은 골에의해 지배자의 계급으로 올라선 진골에 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춘추의말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미실측에서도 그리 반가운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1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 생각까지 했습니다만...

      거기까지 나가면 너무 복잡해지고, 글도 길어지는데다, 안 그래도 글 길다고 불평하는 우리 동네 몇 분들에게 면목도 안 서고, 그래서 대충 성골과 진골의 대결 정도로만 정리했습니다. 아마도 내일 드라마에선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겠죠. 결국 춘추는 덕만 편이 되어야지만 살 수 있는 운명이죠. 김유신이 춘추를 등에 업으려고 문희를 내세웠다고 하지만, 실은 춘추도 아직 신흥귀족에 불과한 유신과 한배를 탐으로써 세력을 만들려는 야심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문희와 결혼한 것은 어쩌면 유신의 계략보다는 춘추의 의중을 읽은 유신의 대응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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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계의 한 장면. 아래 율 브린너 이미지는 모두 "다음영화"에서 인용


미국으로 건너간 율 브린너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왕과 나>에 태국 왕 역할로 출연했는데 이때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뮤지컬 <왕과 나>는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여기서도 주연으로 데보라 카와 열연했었지요. 저도 이 영화를 좋아해서 몇 번이나 보았지만, 율 브린너와 데보라 카가 춤추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여러분도 마찬가지시겠지만, 번쩍이는 대머리였습니다. 대머리는 바로 율 브린너의 매력 포인트였던 것입니다. 물론 강렬한 인상과 뛰어난 연기력이야말로 그를 불세출의 배우로 만든 자산이었음이 틀림없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게는 '율 브린너의 대머리'가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왕과 나'에서 태국 왕으로 출연한 율 브린너.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타 아카데미 최고배우상을 수상.

율 브린너는 <왕과 나> 외에도 <십계>에 람세스 2세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황야의 7인>, <대장 브리바> 등에서 열연했습니다. 하나같이 명작들이죠. 이 모든 영화들에서 율 브린너의 대머리가 빛났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왜 갑자기 뜬금없이 율 브린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황야의 7인'의 율브린너. 그 옆이 스티브 맥퀸, 찰슨 브론슨과 제임스 코번은 어디 있을까요?


<선덕여왕>을 보던 중에 문득 율 브린너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종반전을 향해 달리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아직도 20회 이상이 남았지만―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께서 몹시 편찮으십니다. 진심통(심장병)이라니 곧 돌아가실 모양입니다. 수척한 모습이 몹시 안쓰럽긴 하지만 바야흐로 여왕의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기도 한지라 반갑기도 합니다.

엥? 이래도 되나? 하여튼…

심장병으로 병환이 위중한 진평왕


그런데 곧 이승을 떠나야 할 노인네의 머리가 너무 곱고 탐스럽습니다. 진평왕이 54년을 재위했으니 최소한 70은 되었을 터인데 어쩜 저리도 머리가 검고 숱이 많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왕들은―물론 TV나 영화에서 본 것일 뿐이지만―대머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증조부이시며 진평왕의 조부이신 진흥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도 포스팅했지만, 진흥왕은 일곱 살에 등극하여 37년을 재위하다 마흔셋에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죽은 셈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개양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말하는 진흥왕이 너무 젊어서는 신비감이 없으리란 점을 고려했던지,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 늙은 왕으로 나왔습니다.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진흥왕

 

그런데 역시 머리카락이 쌩쌩하게 많습니다. 희끗희끗하기는 해도 마치 한 올도 안 빠진 것처럼 빽빽합니다. 그러고 보니 <태조왕건>에 나왔던 최수종도 그랬고, 세조대왕으로 나왔던 서인석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죽기 전에 비록 하얘지긴 했어도 머리카락 한 올 빠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왕들은 어째서 대머리가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좀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율 브린너처럼 멋진 대머리 왕도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골룸처럼 보기 흉한 대머리면 또 어떻습니까? 사람이 늙으면 머리털이 쇠거나 빠지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인 것처럼 대머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 참, 그렇군요. 이덕화도 대머리라고 했지요. 그런데 무수한 사극에 출연했던 그도 늙어 죽는 장면에서 대머리를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 한 번 보여줄 수는 없을까요? 물론 현대극 말고 사극 할 때 말입니다. 현대극에선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그러나 사극은 그나마 좀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실은 저도 언젠가는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아주 짙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나 고려시대처럼 남자들은 모두 머리에 모자를 똑같이 쓰고 다니는 그런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소심한 중생 중의 한 명이긴 합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을 보다가 문득 율 브린너가 생각난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쩍거리는 대머리를 오히려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율 브린너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ㅎㅎ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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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만디 2009.10.09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구한말 동학사를 다룬 '개벽'이란 영화에서 이덕화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의 역할을 맡으면서 영화 말미에 최시형이 체포되는 장면에서 자신의 대머리를 보여준적이 있습니다. 왕의 역할은 아니었지만 거의 공개하지 않던 그의 대머리를 보여주면서까지 열연했던 영화였답니다.

  3. 후랄라 2009.10.09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꿍예 있구만

  4. 한마디 2009.10.09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잔아 미륵 "나 미륵 이야 ~"

  5. dk 2009.10.09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발 썼을꺼같은데요! 가채도있는데 왕님들 가발이라구 없었을라구요~ ㅎㅎ

  6. 짜르 2009.10.09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통령은 대머리 있었는데

  7. sds 2009.10.09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역사학과인데요 옛날에도 대머리는 있었죠 근데 상투가발같은게 있었데요 그래서 그거 쓰고 다녔다는데..

    울 교수님이 이야기 해주시더라구요 조선시대 양반문화 배울때

    그렇다면 당연 왕들도 ㅋㅋㅋ

  8. 대머리후보 2009.10.0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머리 후보로서 한말씀 드리면 대머리 된다고 한들 뭐가 대수이겠습니까? 걍 율브린너 처럼 깍으면 되지요. 세상 사람들이 다 잘날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그 중에 좀 흉한 대머리가 된들 그게 크게 신경쓰일 일일까요?

    그리고 인상 좋으면 대머리도 커버됩니다. 웃으세요^^ 방긋

  9. 산 이슬 2009.10.10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적에 하늘을 믿는 백성들은 머리를 대머리처럼 미는 것이 금지 되었읍니다. 따라서 대머리가 된 경우라도
    고위직 분들은 가발을 써야만 했다는 것 , 서양의 경우도 동일하였으며 ....

    왕은 하늘님을 상징하였기에 머리는 물론 수염을 상하게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겠읍니다.

  10. 호롤롤로 2009.10.10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말이 있죠.

    스코필드도
    원빈도
    장동건도
    키아누리부스도

    대머리하면 멋있다.

    하지만 우린 아니다

  11.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09.10.10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구보다 잠시들림..

    글은 읽지 않았음...드라마를 보지 않아서임.(섭해하지 마세요)
    스크롤 내리면서 속독은 했음..ㅋ

    **이 부족해서 아닐까요...후다닥..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0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축구 어찌 됐나요? 아 어제밤에 불려나가 술집에 끌려가는 바람에... 그거 꼭 봐야 되는데. 자고 일나니까 억수로 후회됩니당~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0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쒸~ 져부렀넹^ 내가 안 봐서 진 건가? 에이 아침부터... 구르다님 어제 축구 져서 기분 별로 안 좋으셨겠네요.

    •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09.10.10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번 이길 수 있나요,
      질 때도 있어야죠. 축구시작전 내가 보면 지는데 보지말까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결국 져버려서,,,
      그래도 잘했습니다. 가나가 강팀이잖아요.

      축구보고 나서 포스팅은 완독했습니다.
      근데 오늘 날 너무 좋다..

  12. 호호호호 2009.10.1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놔...진평왕 머리 흐트러내린장면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진짜 심장이 좋지않아서 아픈 연기를 하시는 배우님께는 죄송하지만...가르마와 긴머리껼~에 웃지 않을수가 없었어효..껄껄껄껄...~~~

  13. d 2009.10.10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에겐

    옴마니 반메흠이 있습니다

    궁예 포에버

  14. 하유두잉 2009.10.10 0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스카와 아카데미는 같은 상 아닌가요?

    오스카남우상 = 아카데미 최고배우상이 아닌지?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0 0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원래 정확한 명칭은 아카데미가 맞고 아카데미상이 엉클 오스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제가 쓰면서 조금 실수했음. 일단 <오스카 남우주연상으로 아카데미 최고배우상을 수상> 정도로 고치께요. 죄송합니다.

  15. 2009.10.10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0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암만케도 김영철(궁예) 만한 왕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 ㅎㅎ 옴마니 반메홈이 그때 꽤 유행했는데 실제로 옴마니 반메홈만 외는 불교 교파가 있다고 하더군요. 진각종이라고 하던가? 정확치는 않습니당.

      아, 제가 그래서 또 영화광의 한사람으로 오늘 토욜을 맞아 <왕과 나>를 다시 한번 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왕과 나>는 아무리 봐도 안 질리더라구요. 율 브린너의 그 독특한 발음이 다시 그립네요.

  16. fd 2009.10.10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대머리 왕은 등장하지 않나요? 알고싶네요

    이런분들 때문에 블로그 글 보기가 무섭고 이제 클릭 안할래요 에라이

  17. 2009.10.10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신한문제를제기하신것같습니다..이글을보고나서어진짜네하는생각이들었어요 ㅎㅎ

    • 파비 2009.10.10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신한 문제라기보담은... 누워계신 분 머리를 보니까 갑자기, ㅎㅎ

  18. 제목에 낚이고 2009.10.10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과 현실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군요. 일단 제목부터 왜 우리나라 사극에는 대머리 왕이 없을까?로 고치셔야겠네요. 실제로 대머리 왕도 많았을 것입니다만 사극에서는 일부러 대머리를 잘 보여주지 않을 뿐입니다. 배우들 이미지도 있고 가짜 대머리 만들기도 힘들고 그 외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니까요.

    • 파비 2009.10.10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극과 현실을 헷갈리는 게 아니라 충분히 그런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고 보니 지금껏 대머리왕을 한번도 못봤네? 그런 의문이 한번쯤 드는 게 난센스는 아니죠. 그러나 어떻든 님이 드신 제목이 더 맘에 드는군요. 우리나라는 빼고 <왜 사극에는 대머리 왕이 없을까?> 그게 더 낫네요. 제목이 20자를 넘어가면 곤란하니 길이도 감안해야 하고, 너무 짧으면 성의 없다고 하고, 제목달기가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답니다.

  19. 낚시글이로 밖에 2009.10.11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만 대머리가 없었겟어요? 평민도 대머리 없고 장군도 없고 사극에 나오는 시체까지도 대머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데 좋을듯한데

    그냥 의문만 내놓고 글을 마무리하면 사람들이 낚였다고 생각하죠.
    또한 이런 글을 뽑아준 다음도 참.. 에효스럽네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1 1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낚시글로 생각하는 그 생각이 에효임
      2. 왕만 아니라 평민도 많겠죠. 다만, 모두 모자를 쓰고 있으니 표가 안 날 뿐일 거고,
      3. 역대 왕 중에 대머리 뿐 아니라 실제 나이 든 모습 제대로 고증 안 된 건 사실임.
      4. 그게 설령 배우 이미지, 기타 등등 이유가 있더라도 사실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긴 있는 것임.
      5. 뽑히는 글들은 대체로 이런 류의 글들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진지한 글들 중에 뽑힐 확률은 매우 낮음.
      6. 의문만 남기고, 라고 하셨는데... 대체 어떤 답을 원하는 것임? 궁금하다는, 그게 결론임.
      7. 세상을 너무 어렵게 살지 마시고 편하게 사시기 바람. 나도 그게 잘 안 돼서 잘 못 뽑히고 있음. 어떻게 하면 가볍고 편한 블로그가 될까 하지만, 매우 어려운 난제임.
      8.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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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드라마를 보신 분이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유신이 자기 입으로 말했으니까요. "가야세력이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2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공주님을 여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유신은 왜 선덕여왕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이 말합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왕이 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공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신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어야 하지만, 결코 1인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왕이 된다면 신라의 모든 귀족들이 연합하여 우리를 적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전이 일어납니다. 가야세력과 신라세력이 싸움을 벌이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어서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영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서라벌의 권력 판도를 한 눈에 꿰고 있습니다.

아마 김유신이 진평왕의 부마가 되어 왕이 되고자 한다면 그와 가장 절친한 알천마저도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알천 역시도 신라의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알천이 제 아무리 김유신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신라의 왕족으로서 가야계가 왕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을 터입니다(여왕의 부군이 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명부인이 김유신에게 한 말 말입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부마도 왕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답은 "네, 할 수도 있습니다."가 되겠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신라만큼 화통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한 나라가 천 년 동안 이어진 것은 로마와 신라뿐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여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로마는 철저한 부권사회였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함께 서구문명의 뿌리를 이룬 것은 로마법입니다. 

신라는 부마도, 외손자도 왕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정복이 전공인 로마는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을 추방하거나 노예를 만드는 데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로마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만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여왕이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신라는 달랐습니다. 신라는 처음부터 부족들이 연합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된 나라입니다. 차츰 고대국가의 틀이 갖춰지면서 배타적 왕권이 형성되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여전히 연합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화백회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신라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신라는 천년 역사를 통틀어 왕이 된 사위만 8명이 나왔습니다. 그 최초의 인물은 너무도 유명한 석탈해입니다. 미추왕,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흥덕왕, 경문왕, 신덕왕은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인물들입니다. 이 중 미추왕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최초로 김씨가 신라의 왕이 된 사람이죠.

외손자로서 왕이 된 경우도 흘해왕, 지증왕, 진흥왕 등 3명에 이릅니다. 여기에 더해 3명의 여왕도 나왔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이 그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계사회 이후 남녀평등을 가장 잘 실천한 나라는 신라였다고 말해도 그리 과언이라고 탓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이쯤에서 만명부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덕만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가야세력의 안전을 보장받지 않을까!" 그러나 김유신은 영리합니다. 영리한 만큼 계산능력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되면 오히려 신라귀족들의 반발에 직면해 멸망의 길을 가게 되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가야계를 지키기 위한 김유신의 치밀한 계략은 '선덕여왕 옹립'

그래서 그는 왕이 되기보다 왕을 옹립하여 제 2인자의 자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덕만공주를 사랑하던 김유신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덕만을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면서 연모의 정을 끊어버리겠다고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거기에 불만을 토로했었지요.

"아니 덕만이 왕이 되더라도 결혼할 수 있잖아. 그러면 되잖아. 여왕은 삼서제에 따라 세 명의 남편을 둘 수 있다며? 그런데 연모의 정을 끊겠다니 웬 황당한 소리야. 너무 웃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유신은 역시 역사가 말해주듯 매우 권력 지향적이고 냉철하며 계산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덕여왕을 향한 연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요. 그 정도는 돼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상 신하로서 대왕의 칭호를 얻은 공전절후의 인물 김유신이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어쨌든 김유신은 자기 부모님들에게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는 가야계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서현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계책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좀 짓궂은 이들 중에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혼인할 수 없는 이유를 드라마가 아닌 다른 곳(역사적 사실)에서 찾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유신에 비해 덕만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일부(혹은 다수)에서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다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어떤 확증적인 사료는 없습니다. 다만 유추하는 거죠. 그럼 우리도 역시 자유롭게 유추해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유신과 결혼하기엔 선덕여왕이 나이가 너무 많다?

천명의 아들인 김춘추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던 632년에 30세였습니다. 여기에다 덕만공주가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배척하고 삼국유사를 따른다면, 선덕여왕의 당시 나이를 50대 이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의 무대가 되고 있는 610년 경 덕만공주는 20대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습니다. 유신이 595년생이니 그래도 아직 15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생각합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남녀의 적당한 결혼연령차에 관한 인식은 모두 17세기 양대 병란 이후 어렵던 시절에 만들어진 꼬마신랑 같은 생각들입니다.  

여자가 한 10년 연상이라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아마 그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게다가 덕만은 공주입니다. 그것도 왕위계승권 1순위자. 그러므로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진정한 사유는 유신랑 본인이 고백한 것처럼 원대한 대의에 따른 것입니다. 

덕만공주을 왕으로 옹립하여 자신은 2인자가 됨으로써 가야계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 역시 김유신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실제로 김유신은 신라의 2인자로 확실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후 백년에 걸쳐 김유신의 가문은 권세를 누립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습니다. 김유신이 죽은지도 10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라계 귀족들은 가야계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가야계는 신라계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차츰 역모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김유신장군릉. 왕이 아닌 장군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그러나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릉'이 맞겠다.


미추왕과 담판을 지어 가야계를 구하는 김유신

마침내 혜공왕 15년(779년) 무덤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갑옷에 말을 타고 40여 명을 이끌고 나타난 김유신은 죽현릉으로 들어가 미추왕에게 따집니다. "신이 신라을 위기에서 구하고 삼한을 통일한 공이 있다. 혼백이 되어서도 신라를 지킬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경술년에 신의 자손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해 서운하기 짝이 없다. 신라를 떠나고자 한다." 

이에 미추왕(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의 영혼이 간곡히 만류하자 회오리바람은 왔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혜공왕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김유신의 묘를 찾아 사죄하고 김유신이 세운 취선사에 토지 30결을 바쳐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죽어서도 가야계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는 김유신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작가의 상상력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도 알았으므로 작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유신랑과 보종랑의 결투는 왜 이리 질질 끄는 겁니까? 오늘 결판 낼 줄 알았더니만…. 내일은 반드시 결판을 내겠지요. 결과를 알면서도 그게 자꾸 기다려집니다. 이건 아주 묘한 감정인데요. 아마 드라마 초반에 유신랑이 당한 수모를 빨리 갚아주기를 바라는 뭐 그런 심정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하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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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5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결혼할 수 없었던 관계인데 드라마에서 또 좋은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해주더라구요.
    그래서 드라마이지요.

  2. 흠냐. 2009.09.15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과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1등공신 김유신..

    • 파비 2009.09.15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사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해서 만주가 지금 우리 영토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건 그저 환상일 뿐이죠. 우리는 아무리 부정해도, 심지어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저같은 사람조차도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포로지요. 그러나 당시에 신라의 김유신이 고구려를 같은 민족으로 보고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어땠을까요? 사실 저는 그게 가장 궁금하거든요. 그때도 민족적 동질감이 있었을까? 백제와 고구려는 좀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신라쪽은 도통 그런 걸 보거나 들은 적이 없어서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1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역시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선덕여왕이 파비님의 선덕여왕입니다.

    며칠전 모임 후 천부인권님이 집까지 태워주었습니다.
    문화재의 같은 호가 지역구가 바꾸미에 찢어져 다른 문화재로 등록이 되었고, 해서 자연스레 지역통합 중, 마 창 진 통합 이야기가 나왔고, 마 창 진 통합으로는 부족하고, 부산, 경남, 울산이 통합을 통합하여 가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신가야 응?

    그리곤, 서운해 할 경북과 대구를 합친다면 완벽한 신라가 된다고 했지요. 신신라?^^

    오늘 아침을 먹을 때 식구들간 이야기를 했지요.
    그럼 전라도는 우짜노?
    우짜긴, 충청도와 통합하여 백제가 되는거지. 하하
    그럼 서울은?
    서울은 지금 잘 묵고 잘 사니까 그냥 서울로 살아가야지.

    암튼 여기가 가야땅이었고, 제가 수로왕 후손이다보니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천부인권님도 대단하시고요.

    날씨가 좋으니 슬슬 마실을 나가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만드셔요.^^

    • 파비 2009.09.15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수로왕 후손이셨군요. 제 아내도 그렇답니다. 내년 봄부터 <잃어버린 제국 가야>를 mbc에서 드라마 36부작인가? 한다고 하더군요. 미리 가야역사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요.

      참, 그리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놈은 김해 김씨 삼현공파인데 말끝마다 자기가 왕족이라나 이러면서 사람 놀리는데 그 짓을 20년 동안 봤습니다.

      천부인권님도 문화재 사진 찍으신다고 온 나라를 헤매시니 역사에 관심이 많으실 거에요.

  4.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09.15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준 높은 분석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오늘은 멋진 비재를 보겠군요~!

    • 파비 2009.09.15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놈의 비재 땜에 간이 애가 타 녹아나겠습니다요. 붙을려면 빨리 붙던가 안 하고, 원 ㅎㅎ

  5. 찾삼 2009.09.15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도 띠엄띠엄...
    역사도 띠엄띠엄 알아놔서..

    잘몰랐던 얘긴데 ^^
    좋은글을 보게 됐네요 ㅎㅎ

  6. Favicon of http://ㅇㅁ.채 BlogIcon 허허 2009.09.15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나야합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안되는거지요
    선덕,유신,미실 그외의 인물들 모두 실제의 인물을 가공의 이야기로 엮은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것이죠
    전 이런 사극 드라마가 끝나면 실제 역사를 고증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책임하게 배우들 나와서 스페셜이라고 떠들지 말고 말이죠
    주몽 끝나고 얘들이 주몽과 그외 인물들에 대해 드라마보고 공부한거 보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

    • 파비 2009.09.15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약간 삐딱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오히려 확실하게 왜곡해주는 게 역사왜곡을 피하는 방법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kbs에서 하고 있는 천추태후는 선덕여왕에 비해 고증에 철저한 듯하지만, 그래도 왜곡 혹은 각색이 있거든요. 그게 더 헛갈리게 하는 것 같아요. 선덕여왕은 아예 뒤죽박죽을 해놓으니까 차라리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특히 갓쉰동의 블로그가 공부를 많이 시켜주죠. 하하

  7. 달그리메 2009.09.15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작가가 되실 분이...
    실비단안개님 이야기처럼 이쪽 길로 선회하셔도 될 듯
    아주 대단하십니다.

    • 파비 2009.09.15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흐흐~ 고맙습니다. 제가 사극 특히 판타지 사극에 좀 관심이 많긴 하지만... 이번 선덕여왕은 주몽이나 태사기보다 훨 재미있는 거 같아요. 태왕사신기도 재미있게 봤지만 이번 선덕여왕은 완전 끝내줍니다.

  8. Favicon of http://neowind.tistory.com BlogIcon 김천령 2009.09.15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잘보지 않는 저도 선덕여왕에는 푹 빠져 있습니다.
    멋진 비평과 해설 잘 보고 갑니다

  9. 2009.09.15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무슨 이유인지..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3명의 씨내리가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 2009.09.16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09.19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설도 재밌다니까여. 그래서 2인자가 더 좋은 거였군여

  12. Favicon of http://ekann@hanmail.net BlogIcon ekann 2009.09.20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유신집안은 왕을 낼수 없는 집안입니다. 대신 왕비는 낼수있는 집안입니다. 그리하여 보희,문희를 춘추에게 시집보내는겁니다. 야망이 높은 사람인데 아무런장애가 없는데 왕을 포기 할까요? 아니죠...안되니까 못했던 겁니다. 대신 권력을 누렸지요.

  13. Favicon of http://www.casquemonsterbeatsxr.com/ BlogIcon monster beats pas cher 2013.01.06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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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진평왕이 미실을 받아들여 황후가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어떤 결과들이 일어났을까요?


물론 미실이 왕권을 틀어쥐고 신라를 농단했겠지요. 아니면 지증왕이 내린 교지에 따라 삼한통일의 대업에 앞장섰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의 말처럼 그녀가 황후가 된다면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누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황후가 되지 못했고, 따라서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의 권위를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실과 진평왕을 결혼시키는데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다름 아닌 미실의 하나뿐인 남편―설원공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설원공은 남편이 아니라 연인입니다. 단지 세종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죠. 세종은 감정보다는 권력을 택한 약은 사람입니다. 비굴해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입니다.

세종은 화백회의의 수장 상대등입니다. 상대등은 유사시에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상대등이 왕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등은 관료사회의 최고 기관인 이찬이나 각간과는 달리 특별한 관직이 아니라 화백회의 구성원인 대등들을 대표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자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장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아마 국회의장보다는 훨씬 힘이 셌던 모양입니다. 그런 세종이 자기 부인인 미실을 처음에는 진지왕에게 다시 진평왕에게 시집보내려고 안달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럼 자기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나요? 저는 늘 그게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만역 진평왕이 미실과의 결혼을 받아들여 미실이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랬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실은 이제 진골귀족이 아니라 성골왕족이므로 귀족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 말은 미실이 황후가 되기 전에는 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과 동지였지만, 황후가 되고부터는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설원공은 진골귀족이 아니니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진골귀족이 아닌 설원이 병부령이란 고위직에 오른다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수차 지적했었죠―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은 미실과 맞서거나 아니면 그 동안 누려오던 권력을 내놓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만약 미실이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면 남편인 세종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해야 되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네요. 쓸데없는 고민을 다 한다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게 제일 궁금하답니다. 

아무리 천하를 주무르는 미실이지만 남편을 두고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일국의 황제입니다. 또한 신라시대는 1부1처제가 확립된 부계사회였습니다. 설원공이요? 그는 미실의 남편이 아니라 연인일 뿐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튼 어떻습니까?

"미실이 황후가 되면 세종과는 이혼을 해야 할까? 이혼하지 않아도 될까?"

이거 헌법재판소에 물어볼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요? 그나저나 만약 제 생각대로 미실이 황후가 된 후에는 이혼해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종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세종은 무엇 때문에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야 당연히 멍청하기 때문이라고요? 아~ 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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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3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상상ㅎㅎㅎ
    아마 세종공은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했을겁니다.
    황제가 되는 방법이야 많지요. 진지왕에서 보여주었다시피 폐위하는 방법도 있고, 독살하는 방법도 있고...
    상대등의 자리를 이용해 화백회의에서 황제를 폐위시키는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ㅎㅎㅎ
    재미있는 상상이었어요~

    • 파비 2009.09.13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웃기는 상상이었지만, 사실 세종이 자기 마누라를 왕에게 시집 보내겠다는 발상도 웃긴 거지요. "아내가 두 번 결혼했다" 영화 못 봤는데 그거부터 함 볼까 생각중이네요. ㅎㅎ

  2. Favicon of http://asi.airmaxusoutletx.com/ BlogIcon nike air max 2013.05.03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상으로 대조하고 연구하였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진평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국의 황제가 가장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진지왕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개 궁주인 미실에게 끌려 다니다 결국 왕좌를 잃고 죽음을 당했다. 덕분에 그의 아들들, 용수와 용춘은 성골의 자리에서 밀려나 진골로 족강되었다.
 

그러면 이 두 명의 황제가 이토록 한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황실을 보호하려는 대의에 따른 것이든 권좌를 지키려는 사욕이든 그 출발은 욕심이다.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두려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이 두 황제가 욕심을 버리고 과감한 결단의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군권을 쥐고 있는 미실을 대적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효과는 거둘 수 있었다. 미실에게 역적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지왕이라면 특히 그랬어야 했다. 어차피 그는 죽은 목숨이 아니던가. 

진평왕의 경우는 더 기가 막히다. 그래도 진지왕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노력은 했다. 미실을 끝까지 황후에 봉하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그런데 진평왕은 어떤가? 아내의 황후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자식을 버렸다.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평왕은 약간의 부성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부성은 인류의 발명품이다?

물고기들이 보여주듯이 원래 생명체가 바다에 있을 때 새끼를 번식하고 키우는 책임은 수컷에게 있었다. 루이지 조야가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암컷은 물속에 난자를 방출함으로써 모성을 완수하고 떠나는 첫 번째 존재였다. 그 다음 임무는 수컷이 정액을 난자들에 발산하고 이어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책임까지 맡았다.

그러나 생명체가 바다에서 나와 마른 대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본능적 방식은 역전된다. 정자와 난자를 함께 위탁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물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체내수정을 시작한 생명체들은 암수의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수컷은 먼저 생식 행위를 종결짓는 첫 번째 존재가 되고 번식의 임무를 암컷에게 넘겼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고등한 동물 수컷일수록 가족관계에 정자의 제공이란 역할 외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부성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통해 부성이 돌아왔다. 오늘날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루이지 조야에 의하면 모성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부성은 문명적인 것이다.  

즉 인류에게 부성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또는 부성의 귀환이 문명의 발생을 촉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부성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발명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날 인류에게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 10점
루이지 조야 지음, 이은정 옮김/르네상스

모성과 달리 '본능을 억누르면서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 부성이라는 루이지 조야의 가정이 아니더라도 부성은 모성과 달리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마야부인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자. "폐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다른 거란다. 게다가 네 아버지는 아버지기 전에 왕이다."

자식을 앞에 두고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진평왕은 한심한 것일까, 이기적인 것일까?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진평왕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확하게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버린 것이다. 혹독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했다는 가정도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진평왕은 딸을 지키려는 것도 마야부인을 지키려는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안위와 황제의 지위가 불안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부성을 발휘해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 중 하나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했던 것이라면 덕만의 말처럼 20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모순이다. 그에겐 문명적 부성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덕만이 일식을 이용해 본래의 신분을 되찾고자 몸부림치는 중에도 진평왕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이때 과감히 몸을 던져 나선 것은 마야부인이다. 그녀는 어머니였다. 그녀의 모성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뜨거운 피로 용솟음친다. 그러나 이런 모성 앞에서도 부성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왕이기 때문에? 

물론 모성의 강력한 이끌림에 진평왕도 마침내 부성을 발휘해 덕만을 공주로 선포하는 조처를 취하긴 하지만, 그 한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여성들의 역할이다. 그 중심에 덕만과 미실이 있다. 물론 모성이 생략된(또는 생략한) 특수한 여성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강하다.

반면에 남성들은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다.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연약한 남성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그에 반해 마야부인의 모성은 원시적 본능에 투철하다. 역시 문명의 힘보다는 자연의 힘이 위대한 것인가. 아직 부성은 태초에 부여받은 원초적 본능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인가.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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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ㄹㄹ.ㄹㄹㄹ.채ㅡ BlogIcon 선덕여왕의 부친은 2009.09.04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은 비록 딸을 버렸으나 그는 당시 최선의 선택을 한것이라고 믿습니다.
    비열하고 어리석고 정이없어보이기는 하나
    그가 부정을 살려 딸둘의 존재를 내보였다면 아내와 딸 둘이
    쫓겨났을것이고 미실은 그들을 추격하여 흔적조차 없애버렸을것입니다.
    만약 진평왕이 그들과 함께 궁을나가 보호하려했다면 그는 왕실에서 쫓겨났을것입니다.
    그리되면 미실이 진평왕 또한 추격하여 죽였을것입니다.
    미실은 그후 새로운 왕을 추대할 수 있을 권한이 생겼을것이고
    천하가 미실안에 있었을것입니다.
    진평왕은 왕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내와 두딸과 나라를 살렸습니다.
    덕만이 태어나던 짧은순간안에 그 모든것을 계산하여 모든것을 살렸습니다.
    비록 미실의 손아귀에서 20년동안 벗어나지못하고 꼭두각시 왕으로 살기는 하나
    그것은 진흥대제의 유언에 따르면 어쩔수 없는일입니다.
    미실을 대적할 자는 덕만이 아니면 없으니까요.
    진평왕이 미실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면 그가 북두칠성의 별이 여덟개로 변하는날에
    태어났어야 되지 않았을까요
    진평왕은 모두에게 원망을 사기는하나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가 어떤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는 원망을 샀을테니까요

    오히려 지금 그가 현명한 왕이라는것을 선덕여왕은 알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4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겠군요. 저도 진평왕의 처지가 이해됩니다. 그러나 결국 상황을 돌파한 것은 모성이란 본능이지 계산된 부성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 선택인 부성이 본능적인 모성보다 약하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특히 남자는 늙고 힘이 약해지면서 생존에 집착하는 이기적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건 제 관찰의 결과고 확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남자는 갈등하는 존재죠. 사실은 자식과의 유대가 확실치 않거든요. 인정 혹은 선택이란 과정을 통해 가족이 형성되는 거니까요. 대신 모성은 다릅니다. 확실한 유대가 있죠. 남자는 가지지 못하는 생물학적인 확신은 모성의 출발점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일부에선 아이들이 부친을 주로 닮는 이유를 생존본능에서 나온 진화로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외탁이란 특수한 경우에 사용하는 말도 있지요. 대체로 아이들은 외모가 아버지 쪽을 닮는 특성이 있긴 있는 거로 보입니다. 그게 진짜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평왕을 현명한 왕이라고 인정해주긴 어려워도 자기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다는 건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하긴 제가 인정해 봤댔자 소용 없겠죠? 인정해드리면 폐하가 힘을 좀 내시려나?ㅎㅎ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05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진평왕처럼 하지않(았)을까요.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은 다르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어머니의 역할이 좀 다르지요. 이상하게 흘러가는 모계사회랄까 -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6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루이지 조야의 결론은 아마 부성의 귀환이 아니라 귀환한 부성의 종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생계를 책임지는 경제적 능력으로 평가 받던 아버지의 지위도 이제 흔들리기 시작하니까요.

      진평왕에 대해선 좀 그렇네요. 마야부인과 대조되니까요.

  3. Favicon of http://www.nflnikejerseysshopx.com/ BlogIcon NFL Store 2013.01.06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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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보건대 연말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작년에 김명민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단연 선덕여왕입니다. 작년 MBC 대상은 송승헌과 김명민의 공동수상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꼭 그렇지는 않군요. 김남주의 내조의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율 등 충성도에서는 선덕여왕이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요원 씨, 방심하지 말고 분발해야겠군요. 김남주가 워낙 거물이니… 


선덕여왕을 만든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장금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그는 우석훈 씨의 선배이며 운동권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제가 늘 선덕여왕 후기를 올릴 때마다 적었지만, 미실의 모습에서 이명박 정권의 잔혹한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선덕여왕은 재미도 있지만, 철학도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늘 선덕여왕 칭찬만 침이 마르도록 해왔던 제가 오늘은 안티를 좀 걸어야겠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록 시공을 너무 초월해서 픽션을 만들어낸다는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란 이해를 합니다. 대가야의 후예들과 금관가야의 후예들이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동맹을 한다는 허구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니 동질감을 가진다는 건 김훤주 기자의 지적처럼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눈 딱 감고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드라마에 몰입하기만 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충분한 행복을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훤주 기자가 그의 블로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지퍼 달린 군화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 사소한 선덕여왕 스탭들의 실수를 옥에 티로 블로깅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참기 힘든 옥에 티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평왕 말입니다. 사실은 선덕여왕에선 진평왕을 진평왕이라 하지 않고 진평제 혹은 진평대제라 불러야 할 겁니다. 물론 시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료들이 의논하여 올리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신라의 왕은 황제입니다. 실제로 신라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왕이 황제보다 격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중국의 시황제가 이전의 왕들과 자신을 구별짓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주나라 시대까지 제후들에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지요. 제나라 환공이니 노나라 양공이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습니다. 진시황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황제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 왕 대신 황제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다른 나라 왕들이 갑자기 황제보다 격이 낮아진다는 건 엉터리입니다. 

황제나 왕이나 동격입니다. 중국에서만 황제가 왕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신라의 왕들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건, 마립간이라 부르건 또는 황제라 부르건 이는 위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평왕이든 진평제든 황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자신을 호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흥대제를 이어 황제가 된 진평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아예 중국처럼 황제들에게 붙이는 묘호인 조와 종을 썼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도 태종이란 묘호를 쓰긴 했습니다만, 신라시대에는 아직 중국의 제도나 문물이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와 종을 선대의 왕들에게 올리는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하던 전통대로 그냥 무슨무슨 왕이란 시호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부른 것은 난센스였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짐이라고 불렀는데 어제 프로에서만 짐이란 황제의 자기 존칭을 까먹고 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도 앞에서는 진흥왕도 자기를 짐이라고 했고 진평왕도 그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에 적시한 다른 것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그렇네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건 지퍼 달린 군화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다 폐하를 전하로 부르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대본을 만들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습니다. 조민기는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늘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덕여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아무튼 황제가 스스로 짐을 과인으로 깎아내린 사건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긴 조민기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퍼 달린 군화를 신고 나오든 짐을 과인이라 부르든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이런 사소한 실수가 한 번씩 두 번씩 나올 때마다 김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에이,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자꾸 드니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제 1막이 끝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소화에게 안겨 사막으로 쫓겨갔던 덕만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실과 어떻게 싸움을 벌여갈지 궁금 또 궁금입니다. 그나저나 문노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겁니까?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하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네요, 속 터지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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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6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8.26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너무 칭찬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꼬투리를 한번 잡아봤지만, 겨우 이 정도군요. ㅎㅎ

  2. dddd 2009.09.09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남주가 거물은 아니죠. 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고현정이 대상 받을 수 있거든요

    • 파비 2009.09.10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럴 수도 있지요. 죄송합니다만, 그렇지만 연기력 면에선 저는 김남주를 더 쳐주는 편입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갠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3. 세코 2010.02.15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과인과 짐의 용어는 모두 사용되고 실록에도 기록이 되어있죠. 그렇다면 위에 과인이나 짐이나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둘다 보통의 자칭대명사도 아니고 자신을 낮추는 말이었고, 왕의 입장에선 낮추어야 할 일(자신의 부덕함, 신이한 존재에 대한 대비, 선왕이나 상왕등에 대비, 대명사에 대한 대비 등)에 과인이나 짐을 사용했으니 그냥 내가나 나등으로 사용하는게 오히려 옳은 표현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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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굳이 억지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성골은 왕족이고 진골은 귀족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善德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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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reamlive.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3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후에 이종욱 교수의 성골.진골론을 비판해야 할것 같습니다.. ㅋㅋ

    왜 역사학계는 성골.진골의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할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8.13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고~ 존경하는 갓쉰동님께서 다녀가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이야 늘 갓쉰동님의 몫이죠. ㅎㅎ 우리는 그렇게 그림 그려가면서 연구하라고 한다면, 마치 다시 학생이 되어 주기율표를 외라고 하는 것같은 고문이 될 텐데요.

  2. what the.. 2009.08.19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소린지 모르겠어

  3. 보다보니 궁금증이! 2009.09.16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 대목에서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

    <그것은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라고 하셨는데,

    승만공주는 진평왕이 왕일때나 성골이지
    선덕여왕이 왕일때, 승만공주는 진골이 아닌가요?
    (왕이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구성됨 -> 승만공주는 선덕여왕의 사촌동생 -> 사촌동생은 왕의 부모의 형제의 자녀이므로 왕의가족, 왕의 형제, 왕의 형제와 그 가족 아무것에도 속하지않음)

    이 글에서 볼때 용수가 자신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왕이 됨에 따라 진골로 된것처럼요.
    그렇다면, 승만공주가 왕위를 계승할수 있는 성골이라는것은 말이 안되지않나요?

    • 파비 2009.09.1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위 해석은 이종욱 교수의 주장을 차용한 것인데요. 진덕여왕의 경우에 허점이 있군요. 고맙습니다. 삼국사기에 진덕여왕까지 28대는 성골, 그 이후 태종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순왕까지는 진골이라고 하고 있지만, 성골과 진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니 해석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왜? 덕만공주가 선덕여왕 자리에 올랐을까요? 천명공주는 무엇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일까요? 그보다 한술 더 떠 (드라마상이긴 해도) 천명공주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삼국사기는 덕만공주를 진평왕의 장녀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진평왕의 장녀는 천명공주이며 덕만공주는 차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도 또한 유사와 같이 덕만을 차녀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고 보니 유사와 세기가 비슷한 점이 많고 사기만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째서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선덕여왕이 되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라는 중앙관료가 정권 차원에서 집필한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당시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잘 반영된 기사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기와 유사는 집필자의 의도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기사 작성이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가 더 진실에 근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덕만을 장녀로 묘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신라왕조의 후예인 김부식으로선 당연한 기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든 집필자의 자유로운 의도든 주관이 개입되어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유사가 사기에 비해 150 년 정도 후대에 씌어졌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선 두 기사 모두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화랑세기의 위작논란도 사실 생각해볼 대목이 많습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위작일 가능성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역사서든 어느 정도의 위작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양의 유명한 역사서로 사서의 바이블이라 할 사마천의 사기도 결국은 기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선 위작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마천이든 김부식이든 일연이든 고증에 많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의 위작논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랑세기는 김대문이란 당대의 인물이 당대의 이야기를 저술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했을 때 그 폭발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사실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왜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을까? 물론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유사나 세기의 기사를 사실로 가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기의 입장에 서면 이런 질문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 당연히 장녀인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게 순리니까요. 

그러나 세기나 유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당연히 들 수 있는 궁금증입니다. 성골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장녀인 천명을 제치고 덕만이 왕위를 계승했을까? 진평왕이 재위 54 년 동안 왕자를 한 명도 생산하지 못했거나 생산했더라도 모두 죽었다는 성골남진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일단 덮어두기로 합시다. 유사에서도 선덕여왕 등극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성골남진을 지목했으므로 지금으로선 성골남진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여왕 출현의 이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덕여왕 등극의 이유는? 천명이 무능했기 때문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지 성골남진을 지목했을 뿐 차녀인 덕만이 등극한 이유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화랑세기가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요.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에 힘입어 출판계에서도 선덕여왕 출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서점의 신간 코너에 가보면 온통 선덕여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화랑세기를 텍스트로 하는 이 소설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한 권으로 된 소설 선덕여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창해출판사가 간행한 신진혜 저 선덕여왕입니다. 전질로 된 선덕여왕에 질린 독자라면 300여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부피에 우선 안도할 것입니다. 이 책은 주로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경위와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해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박진감 넘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들을 이 한 권의 책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천명공주는 장녀로서 부군(태자가 없을 경우 왕위 계승권 1순위자에 내리는 칭호로서 태자가 생기면 그 지위는 해소된다)의 위치에 오르지만 매우 유약하여 결단력이 없습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 1의 자질은 결단력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참모가 해주더라도 오직 하나 이 결단만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결단은 오로지 최고 지도자의 몫입니다. 천명공주에겐 이것이 부족했습니다. 이 결단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전반부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에서 차용한 것이겠지요. 천명부군은 용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용춘은 세속에 관심이 없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합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용춘의 형인 용수는 세속적 권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쨌든 용춘을 좋아하는 천명은 어느 날 모후에게 털어놓습니다. "어머니, 저는 용숙이 좋아요. 용숙공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용숙을 용수로 잘못 알아들은 마야부인과 진평왕은 천명의 남편으로 용수를 정하고 맙니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천명공주의 우유부단함이 작용했습니다. 천명이 차마 용춘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고 용숙(龍叔)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 말하면 응당 자기 마음을 알고 있는 모후가 용춘을 부마로 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마음이 유약하고 온순한 사람의 특성이 바로 이겁니다.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고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길 기피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은 사실 연약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말 실수로 용춘이 아닌 용수에게 시집가는 천명공주
사태가 어그러졌으면 문제를 일으킨 본인이 해결해야 함에도 천명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덕만이 부왕 앞으로 나가 사태의 진실을 고하고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왕실의 혼사는 번복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지요. 이때 진평왕의 옆에서 덕만공주를 바라보던 원광법사는 그녀의 자질이 왕재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진평왕에게 덕만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하지요. 헤게모니가 천명에서 덕만으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오늘 드라마를 보니 내일 천명이 죽게 될 모양이군요. 화랑세기의 기사나 소설 선덕여왕들이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천명공주는 지금껏 강인한 결단력으로 화랑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김서현까지도 발아래 꿇게 만들었지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내일 천명공주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에 두 명의 공주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 누가 하나 먼저 죽든 말든 어출쌍생은 일어난 것이며 성골남진의 저주도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성골남진의 저주가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죽어야 했을까요? 아니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이 드라마에선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이 되려면 천명이 무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드라마에서 천명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하의 김서현을 발아래 꿇리고 알천과 유신을 복종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부왕인 진평왕보다 더 뛰어난 지도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천명공주가 살아있는데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도 모르는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면 이건 천지개벽이죠. 그러니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가 죽지 않고서 선덕여왕이 탄생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딜레마는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요. 아마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천명을 죽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덕만의 왕위계승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덕만으로 하여금 미실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입니다. 이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덕만의 가슴에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겠다는 집념과 더불어 불타는 증오와 분노가 얹어졌습니다.
 
천명공주의 죽음은 덕만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드라마 제작진의 고육지책
바야흐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군요. 그러나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천명공주의 결단성과 지도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시청자들의 실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명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간 천명에게 성원을 보내던 수많은 시청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손실조차도 드라마 제작진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그 실망과 허탈감은 미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 분노는 덕만과 유신에 대한 응원으로 승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천명공주의 죽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글 중에 "쌍생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경우의 수로 쌍생의 저주를 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첫 번째 방법으로 가고 마는군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저주가 풀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골남진이면 성골여왕이 등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썼던 시절의 우리들에게도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제였을 성골남진을 신라인들은 너무나 쉽게 처리했습니다. "남자만 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성골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왕이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천명공주를 죽이지 않고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천명이 죽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장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장녀인 천명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출쌍생의 저주는 천명의 죽음으로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 벌써 내일 드라마가 기다려지는군요. 요즘 사는 낙도 없는데 선덕여왕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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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천명이여~ 2009.08.11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글 잘읽어보았습니다^^

    저도 천명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천명이 잘 못나가야 덕만을 왕으로 올릴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데
    제작진은 그걸 못만든거 같습니다.쩝;;

    그리고 덧붙여 제생각으론
    먼저 덕만을 공주로 만들어야 하는데 미실에 의한 공주도 못되고
    그렇다고 왕실에 의한 공주도 못되는 그러한 딜레마 속에
    그 옛날 열애사(맞나요;...) 사건 때 천명이 김유신 일가를 서라벌로 불러올리듯
    왕실에서 천명의 죽음으로 덕만을 공주로 만들고 황후도 지키고 미실도 꼼짝못하게 만들고...
    아무튼 이러한 전개로 나가지 않을까하는 제 짧은 소견입니다.

    얼릉 퇴근하고 집에서 시원한 맥주한잔 들이키며 선덕여왕을 시청했으면 좋겠습니다ㅜㅜ

    정말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ㅜㅜ

    글 정말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8.11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원한 맥주, 좋지요! 그런데 오늘 비가 많이 오니 맥주보다는 막걸리에 파전이 좋겠네요. 파가 없으면 김치전이라도...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8.11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를 시청않지만, 파비님의 기사로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8.11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직접 보시는 게 재미있을 텐데요. ^.^ 확실히 선덕여왕은 사극이라기보다 드라마가 맞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스토리가 흥미진진 하답니다. KBS 정통사극과는 다른 신선함도 있고요.

  3. Favicon of http://mbcdrama.x-y.net BlogIcon 선덕여왕 1-24회 다시보기 2009.08.11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슬퍼지네요 ....

    힘내십시요 (__)

    ☞ 아, 벌써 내일 드라마가 기다려지는군요.
    요즘 사는 낙도 없는데 선덕여왕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4. .. 2009.08.12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천명 죽는거 보고 노무현 대통령 생각나던데 ...

    처음엔 어디서 많이 보던 거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있으니 생각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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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핵심 소재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다. 성골남진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등장하는 기사다. 성골남진, 말 그대로 성골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의미다. 성골이란 무엇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일컬어 성골이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럼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고대신라는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의 사회였다. 석탈해나 내물왕처럼 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계승한 인물도 있고, 왕의 동생으로 왕권을 이어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또는 왕에게 왕위계승권자가 없을 경우에 왕의 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왕위계승에는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질서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체계화된 법으로 정비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골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유력한 가설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성골은 왕위계승권자인 왕족의 집단으로 그 구성은 새로 왕이 등극할 때마다 바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진지왕의 아들들인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는 성골이었지만, 진평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진골로 족강되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의 저자 이종욱 교수의 말을 빌자면, 성골이란 왕과 왕의 형제의 가족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도 성골이었지만, 진평의 사촌들인 용수와 용춘은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성골남진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어림잡을 수는 있을 듯하다. 그래서 진평왕은 이의 타개책으로 용수를 천명공주와 혼인시켜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신라에서는 고래로부터 써오던 방법이었다. 석탈해가 그랬고 내물왕이 그랬다. 게다가 용수는 선대왕의 아들이며 성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골이란 어떤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란 사실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에 불과한 것이며,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용수에게 왕위가 가지 않고 선덕이 후계지가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에 주목한 것 같다. 왜 용수에게 왕권이 넘어가지 않고 선덕이 왕이 되었을까? 드라마에서는 용수를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수와 용춘으로 하여금 선덕여왕을 받들게 하고도 아들이 생기지 않자 을제와 흠반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하였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럼 왜 드라마에서 용수는 젊은 나이에 김춘추를 임신한 어린 부인 천명공주를 두고 죽어야 했을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성골남진의 원인으로 어출쌍생이란 픽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골남진이란 왕위계승권자가 없어진 상황은 중대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성골남진이란 상태가 단지 정통 권력계승자가 사라진 것일 뿐 위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그렇다. 사위에게 왕권을 넘기기도 하고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하기도 한 유연한 신라사회에서 성골남진이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로 화각을 좁혀보면 분명코 위기다. 정통 계승자가 없으니 당연히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기 직전 칠숙과 석품이 일으킨 난이 이를 반증한다. 

성골남진에 어출쌍생을 접목시켜 하나의 예언을 만들어낸 것은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권력을 흔들고 쟁투의 장을 만드는데 예언보다 유용한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왕건이 왕이 되기 전에도 예언이 있었으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서도 예언이 필요했다. 심지어 사초위왕의 예언에 빠져 죽은 조광조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드라마는 진평왕이 덕만을 죽이지 않고 소화를 통해 살려 보냄으로써 성골남진을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등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덕만이 비록 먼 이국땅 타클라마칸의 사막에 버려졌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한 쌍생의 저주는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왕자들의 죽음으로 성골남진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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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 드디어 칠숙이 등장했다. 소화와 함께 서라벌에 나타난 칠숙으로 인해 드라마 선덕여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 그래도 내심 불안했었다. 칠숙이 소화를 구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은 진즉에 있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만약 칠숙과 소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과연 누가 덕만의 정체를 증명해줄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진흥대제(드라마에서 자꾸 대제라고 호칭하니 나도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대세에 편승해서 대제로 부르기로 한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라면 이런 걸 무척 싫어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수밖에…)의 신물인 작은 칼 정도로 진평왕이 자기 딸을 확신하기에는 너무 무리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진평왕이 덕만을 떠넘긴 소화다. 소화의 증언이야말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명백한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화를 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덕만을 보면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소화에 대한 감사와 신뢰는 바다를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칠숙과 소화의 등장은 부질없는 내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칠숙은 어떤 인물인가? 칠숙은 기록에 의하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도 역시 화랑이었으니 진골귀족이다. 화랑은 진골귀족의 자제들 중 용모가 수려하고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선발한다. 이처럼 화랑도가 내면적 정신 못지 않게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신라인들의 영육일체, 선미합일의 미적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체적이다.

어떻든 이렇게 본다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은 모두 같은 씨족들로서 형제자매들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이나 설원공이 스스로를 천한 신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내부에서의 역관계일 뿐이고 이들은 모두 신라 최고의 관등에 오를 수 있는 진골귀족들이다. 그러니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만약 설원공(혹은 설원랑)이 김씨가 아닌 설씨라면 그는 화랑도 될 수 없었겠지만 병부령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다. 더구나 대등들만이 참여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 화백회의가 매우 민주적인 제도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이처럼 독특한 골품제와 화백회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권장되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만명부인은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김서현과 결혼해 김유신을 낳았다. 만명공주는 성골의 신분이었지만 골족이 아닌 가야 출신 김서현을 선택함으로써 귀족 신분을 잃게 된다.

김서현이 공을 세워 만명부인의 어머니인 진흥대제 황후의 배려로 다시 진골귀족의 신분을 얻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만명공주가 귀족신분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족외혼을 강행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에 투항한 공을 인정받아 진골 작위를 받고 공주와 결혼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명공주가 족외혼을 고집해 귀족의 작위를 잃었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드라마가 옳든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이 옳든)간에 신라는 언제부터인가 족내혼이 하나의 관습이요 제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씨족사회도 아니고 부족사회도 아닌 국가 체제가 정비된 고대의 강국 신라에서….

언젠가 아키히토가 황태자이던 시절, 천황족 외부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몰고 왔던 적이 있다.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천황이 생긴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도 족내혼의 관습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파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족내혼을 선택했다느니 하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나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내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중에 신라 금관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금관은 성인의 머리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둘레를 재어보았더니 너무 좁아 머리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식용이었을까? 그런데 어느 학자가 그 비밀의 동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밀의 열쇠는 고대에 행해진 풍습에 있었다.  

신라 왕족들의 머리는 모두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북방 흉노족의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돌을 올려놓아 머리를 늘어뜨리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금관의 둘레가 좁아 성인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흉노의 이런 관습 때문이란 것이다. 

편두 풍습으로 머리가 가늘고 길쭉해지면 충분히 금관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흉노의 일파인 북방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의 신화는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그 가설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하나의 가설을 더 추가해보는 것도 그리 엉뚱해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의 천황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를 장악한 경주 김씨들도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골품제도를 만들고 골족 내부의 의견을 통일하고 연대를 제고하는 기관으로 화백회의를 둔 것은 아닐까? 

죽은 줄 알았던 소화가 돌아왔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는 왕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6부족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연맹체였을 것이다. 이 6부족의 평화로운 연맹을 위해 6부족장이 아닌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혁거세거서간의 신화는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남해차차웅의 사위로서 유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석탈해의 경우도 그렇다.

석씨 부족이 철기문화를 가진 강성한 군사력으로 왕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기나 유사를 인용한다면 이때도 평화로운 연맹체가 지향이었으며 왕권은 6부족이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덕망있는 사람이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가 계림에서 얻었다는 김알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흉노족이었다면 정복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피정복민들을 지배할 효과적인 수단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골품제도는 그렇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은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역사적 함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 때에 가서야 비로소 김씨가 왕위에 등극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설을 풀어보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가설이 아니라면 그들의 근친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경주 김씨들은 원래 문란한 성전통을 가져서? 그건 아니지 않나.

경주 김씨가 정복민족이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골품제도를 만들고 족내혼을 했으며 나아가 다산을 위해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권장했다는 사실을 뒷바침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칠숙이 돌아왔다. 그도 화랑이다. 그러므로 그도 설원이나 세종처럼 미실을 사랑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그러면 아무리 칠숙랑이 우직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실에 대한 사랑은 15년 세월을 만주를 거쳐 타클라마칸까지 유랑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 칠숙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화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작가의 의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너무 걸레조각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칠숙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면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발해 일으키게 될 반란은 어쩌란 말인가?

실로 귀추가 주목된다. 칠숙, 한 눈 팔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를… 그리고 그건 법도에도 어긋나는 짓이란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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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uf 2009.07.08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공은 설씨입니다. 화랑세기를 읽은지 몇년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진골귀족이 동네를 지나다가 용모가 뛰어난 평민아이를 보고 따라갑니다. 거기서 낭도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평민아이 엄마)를 만나 아이와 함께 거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그 마을의 촌장인 설씨(6두품) 집안으로 입적시켜 귀족을 만들어 주었죠. 그 설씨 또는 그의 아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화랑도 될 수 있었고 풍월주도 될 수 있었는데요. 돌싱이 된 공주와 혼인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분이 딸려서 그의 위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풍월주로 만들어주었던가 했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게 설이 분분한데요. 설씨라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김씨라는 게 최소한 이 드라마에선 맞는 것 같네요. 예를 들면 이사부가 이씨냐? 그는 김씨거든요. 거칠부는 그럼 거씨인가? 그도 김씨죠.

      게다가 6두품은 아찬 이상의 고급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병부령 벼슬은 절대 불가능하고 대등이 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겠지요?

      설씨 중엔는 설총이란 훌륭한 분이 계시죠. 원효대사가 공주와 사랑을 하여 낳았다는... 그는 한글연구의 바탕이 되었던 이두를 창안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어떤 높은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지요. 최치원 선생도 마찬가지로 6두품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세월을 보냈지요. 결국 이 골품제도 때문에 신라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만...

      물론 설씨라는 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드라마 상에서는 해명 불가능한 거랍니다. 그럼 오늘날의 설원공은 없어야 되는 것이지요.

      경주에는 설씨 이외에 최씨, 이씨, 안씨, 손씨, 정씨 등 신라6성이 있는데요, 저는 그중 지백호의 후손이라고 통한답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2천년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하하~ 좋은 하루 되십시오.

    • duf 2009.07.08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에 설원랑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사부는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중국식 이름과 순우리말 이름이 같이 쓰이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중국식 이름은 태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족 맞습니다. 그리고 골품제도가 완전히 굳어진 것은 통일 후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설원랑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왕족과 맺어지며 신분이 높아졌다고 봐야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수도 있겠군요. 김유신처럼... 그래도 설씨 성을 가지고 대등이나 병부령이 되는 건 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거니까요. 김유신은 그래도 가야의 왕족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6두품이 두품 중 최고의 등급으로 양골과 함께 귀족계급을 형성했다고는 하나 그 한계가 너무 명확했거든요. 이게 나중에 신라 패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고... 어쨌든 좋은 의견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umean2me.egloos.com BlogIcon elly 2009.07.08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사부는 박씨입니다. 박이사부 혹은 박태종이죠.
      그래서 미실의 남편으로 나오는 세종도 박세종이고, 그의 아들인 하종도 박씨입니다.

      그리고 알천랑도 김씨는 아닙니다. 알천랑은 현재 진주 소씨의 시조입니다. 알천랑이 소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하더라도 왕족인데 굳이 다른 성을 줄 이유는 없었겠죠. 그래서 알천랑은 박김석씨가 아니라도 신라를 구성한 국가들의 후손이고, 성씨가 소씨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진골이거나 성골이어서 진골로 화랑에 편입될 수 있었을 수도 있구요.)

      김씨가 왕족을 이룰 수 있었던 건, 혈통(내례부인 혹은 옥모의 혈통)상의 적통이거나, 다른 정치적인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 가림토 2009.09.01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파비님....신라 6성 중 안씨는 없는데요? 배씨겠죠? ^^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네요. 배씨가 맞네요. 죄송^^ 밤 늦게 졸면서 달다 보면 실수가 좀 있을 수도... 그래도 이건 좀 심한 실수군요. 남의 집 족보를 ㅎㅎ

  3. 강해산 2009.07.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꼴깝을 떨어요 아주 ㅎㅎ 봤냐 니가? ㅋㅋ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안 본거 너는 봤냐? ㅉㅉ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일 뿐이니, 니가 본 이야기를 하는 걸로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이러심 우리 모두 입 닫고 살아야 된답니당.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관습이나 제도들도 모두 기껏 삼백년도 안 된 것들이 대부분이니 우리가 아는 건 진짜 별로 없답니다.

  4. 낭만고양이 2009.07.08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근친혼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확실한) 방법이라고들 생각해서
    그런걸껍니다 유럽의 금융계에서 유명한 집단은 지금도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 친인척인 만큼 배신하거나 권력이나 부가 외부로 빠저나가지 않죠 이때문에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서로 서로 권력가나 다른 재벌들과 결혼하는 이유도 이와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자기들의 부와 이에따르는 돈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혈연을 맺는 비슷한 이유겠지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전에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언론개혁운동을 하는 신학림 기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명박의 가계도를 그리면 삼성, 조선일보 등 정재계의 거의 모든 가문이 사돈의 팔촌으로 엮인다고 하더라고요. 신 기자가 그려주는 그림을 한참 따라 그리다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답니다. 하하

  5. 광빨 2009.07.08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관이 좁다고 그러는데 저는 정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왕관이 커서 머리에 어떻게 썼을까?에 대한 의문~ 예전에 역사 스페셜에서 봤는데 이 왕관이라는 것이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이 죽으면 소위 말하는 왕관을 목까지 내기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슴 뿔 같은걸로 머리를 감싸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두의 관습은 신라가 아닌 고대 가야지역에서 행해졌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본인의 추측으로 역사적 유물들을 본인의 입맛에 맞게 왜곡을 하시는군요~
    본인의 추측을 역사적 사실인양 말도 안되는 유물들을 가져다 껴 맞추기 하면서 본인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하시는거 쩝이네요~

    물론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신라 귀족이 김씨 하나만 있다는 전제로 글을 전개하시는 것도 좀 아닌거 같네요..

    일반인의 대충 때려 맞추기식 추측은 추측으로 끝나야지 이렇게 글을 올리시면 또다른 왜곡으로 다가 옵니다.
    자중하시길~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금관은 아이 머리에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랍니다. 그건 확실한 정보니까 착오가 없습니다. 신라 귀족사회에서 근친혼이 있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편두의 관습에 대해선 정설은 아니지만, 금관의 크기와 신라 왕릉에서 발굴된 미라를 근거로 편두의 관습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논문이 나왔고 그 이유를 흉노의 편두관습에서 찾았다는 발표가 있었고 방송도 한번 탔을 겁니다.

      그리고 이글은 논문이 아니랍니다. 드라마 후기죠.

  6. 문용진 2009.07.0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우선 이미 KBS 역사 스페셜에서 김알지의 근원이 이미 나왔었고요. 추사 김정희가 조선시대때 이미 추론하여 더이상 조사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까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역사스페설을 참조하시면 어설프게 이야기 하는 것들과 말 안 섞으셔도 될거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주인장님의 이론에 동감하고요. 씨족 사회는 원래 그렇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저도 언젠가 역사스페셜에서 본 것 같습니다. 이참에 역사스페셜 책으로 엮어져 나온 걸 한번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물론 스페셜은 정사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7. 이거 완전소설이네요 2009.07.08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전공자로서 이런 소설은 정말 봐주기 힘들군요. 사실관계를 반대로 서술한 것도 있고요. 정확한 지식이 아니면 글을 쓰지 마시죠. 도대체 신라왕릉급 고분 어디서 두개골이 출토 됐다는 겁니까. 그리고 편두는 남방계 풍습입니다.신라 왕릉급 고분 이라는 말은 쓰지만 누구도 신라 왕릉이라고 말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명확하게 이것이 신라왕릉이다라고 밝혀진 고분이 없으니까요. 추정만 할뿐이지 . 삼국시대의 고분중 피장자를 명확히 알수있는 유일한 왕릉은 백제 무녕왕릉입니다. 그외는 고분의 크기.양식.부장품등으로 왕릉급고분을 추정할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만, 저도 추론이라고 했고요. 제 글은 모두 확인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금관의 크기가 작다는 건 확실한 팩트지만 그 이유는 아직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답니다. 역사전공자라시니 그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고요. 다만 그 이유를 북방 선비족의 풍습에서 찾는 연구가 있었고, 그게 윗분이 댓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역사스페셜에 방영된 일이 있는 것 같군요. 함 확인해 보시지요.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글의 주제는 드라마 후기랍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족내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은 열렬한 시청자의 권리에 해당하죠.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고 소설을 소설로 보아야 하듯 블로그도 마찬가지랍니다. 이건 시사포스팅도 아니고요. 다만, 이렇게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지요. 이제 역사든 정치든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게 된 거지요. 인터넷으로 인해서...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왕릉이란 표현은 고분으로(사실 신라의 고분은 모두 주인을 알 수 없으므로 총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고치고, 두개골 출토 부분도 고칩니다. 주제가 근친혼이고 금관이나 고분 이야기는 이를 뒷바침하기 위한 소재에 불과합니다만, 고증 없는 자료는 고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수정합니다. 고맙습니다.

  8. 잘 보는이 2009.07.08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도 그랬듯이 근친혼은 대체로 지배층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죠. 신라의 근친혼이 심하다보니 같은 성씨가 왕과 왕비로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신라에서 올라온 표문을 보고 왕와 왕비의 성이 같아서 매우 놀랐다는 기록도 있지요. 신라에서는 이러한 것을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왕비의 성을 지어서 표문을 올렸습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근친혼=성적 자유 사회 라는 도식이 성립하는지 궁금하군요. 근친혼은 단순히 왕실이 선택한 권력의 유지 수단이고 규율이 미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근친혼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 대한 인정이 근친혼까지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것을 보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다라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렇다면 근친혼이 만발하였던 19세기 유럽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시대인지요?). 자유 연예는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중기에서도 조선후기에서도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지배층들이 어느 정도 자유 연예를 했냐? 안했냐의 차이일 뿐이죠. 신라사회에서도 중매를 통한 결혼을 정식으로 여겼고 자유 연예의 결혼 같은 경우는 野合이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괜히 김서현이 왕의 장인의 아들인 숙량흘이 김서현과 자신의 딸 만평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한 결합은 야합 즉, 자유 연예로 인한 결혼이었지 중매를 통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릴 적 기억이 나는군요. 의무적으로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다가 사촌간의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엥? 이게 무슨... 이 무슨 불경스러운 이야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흐흐... 우리 모두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요 ^-^

    • 잘 보는이 2009.07.08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너무 신라사회를 양성평등, 혹은 여성우위의 사회로 보고 그 증거를 근친혼으로 드는 경우가 많아서 단순히 한탄해 본 것입니다. 유사이래부터 현대이전까지는 부계사회, 남성위주사회이지 결코 영성평등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여성의 상대적 지위가 높냐 낮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말씀입니다. 드라마에서 미실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걸로 나오지만,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은 기껏 황후 자리였죠. 석기시대라면 모를까 그 이후는 남자, 즉 무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대였던 게 맞죠.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혼란스러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9. 박현주 2009.07.0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이 부분은 고치시는 게 어떠실지....본인 스스로 그냥 드라마 감상평이라고는 하시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들이 사실인량 적혀져 있어서 보기에 거슬리네요. 미실은 박씨이고, 설원랑의 성씨도 의견이 분분한데 '자명한 일이다.'라고 쓰시는 건 좀 아닌 듯 싶어 한마디 남깁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8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원랑의 성씨가 설씨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란 생각엔 변동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실이야 박씨든 김씨든 상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들 박씨나 석씨도 왕통이니까요. 제 주장은 설씨로서는 절대 대등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병부령조차도 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체제에 대한 반역이죠. 그럼 김유신은? 그는 가야의 왕족으로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더군요. 설씨가 특혜를 받을 이유가 없지요.

  10. 고니 2009.07.0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왕조의 근친혼?? 글쓰신 분이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그것도 1000년이 넘는 시대를 말 하시는듯 ~한반도의 국가기원을 기원전 4세기로 보는 것이 우리가 배운 바입니다.. 여기서 오류에 빠지기 쉬운것이 그 국가라는 것이 지금의 한 정부 체제하에 있는 그런 국가 형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원전 4세기 .. 한반도 뿐만아니라 극동 아시아 특히 중국 대륙까지 ~~ 기본적인 사회 구성이 씨족 개념이었읍니다.. 씨족의 개념이 뭔가요? 한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씨족을 바탕으로 한 강한 씨족( 머리수가 많은 ^^*;;)이 주위의 다른 씨족을 통제( 착취 !!) 하는 형태의 부족으로 나아가 그 부족의 큰 형태 즉 그당시의 국가.. 이때쯤 통치하는부족의 편의를 위한 법( 법이라기보단 단순 규칙정도?) 를 공포하는 수준이겠져.. 2차는 담에 ㅋ~~ 넘 길다

  11. thfql 2009.07.08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것 보다..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다른 댓글에서 보기도 했고.. 그것 참. 그럴 듯 합니다.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 어쨌든 연관이 있는 듯. 예전에 몽고쪽 유물 전시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북방 민족에는 6가지 민족이 있는데.. 그 민족들이 말을 이용하고 문자가 어쩌고..한 여러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글고 몽고 반점.. 몽고인이랑 닮기도 하고.. 어쩌고.. 언어가 어쩌고.. 그런 것 크면서 조금씩 들어 본 적 있는데 몽고족들과 비슷한 혈연일지도... 울 나라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군요.. 무튼 요즘 신기 신기..
    사극들을 보면서 엄청 역사에 흥미들을 느끼는 것 같고.. 저런 것 보면 근친혼이라고 비난이나 늘어놓던 사람들이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더군요.. 자명고..만 봐도 외삼촌이랑 결혼할 수도 있고.. 여기는 복잡해서 일일이 말할 수 조차 없는.. 그냥 재밌기만 하니.. 다 그냥 넘기고 있는 중.. 그냥 사회가 그렇다니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고..

  12. DARKJK 2009.07.08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머리를 압박해서 폭이 좁게하는 풍습은
    은근히 세계 곳곳에 많아요
    이집트도그랬고..
    아메리카남미쪽도 그랬고..
    지구반대편인데도 그런 풍습은 은근히 있더라구요
    특히 상위계급에서

  13. 정은희 2009.07.0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같은 조상님의 후손 이시네요~
    저도 지.백자. 호자. 할아버지의 후손 경주 정가 양경공파(이건 조선시대 때 갈라진거겠죠..?) 72대손 이랍니다...
    조상님 함자를 참으로 오랫만에 발견하니 반가운 맘에 몇자 적고 갑니다.

  14. 지나가는 사람 2009.07.08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화랑세기의 위작 여부를 넘어 논하자면....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랑은 설씨가 맞습니다만... 설원랑은 원효대사의 조부입니다. (증조부던가?) 원효대사의 속가명은 성은 설 이름은 서당이었구요. 설원랑은 그 아버지가 진골귀족이 아니었습니다. 설원랑의 어머니는 금진이라고 하여 신라 진골 귀족이었는데 설원랑의 아버지는 미모로 유명한(?) 자로서 금진의 용양신(애첩과 비슷한 의미)였다고 합니다. 금진은 사다함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설원랑이 신분이 낮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에 기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설원과 사다함은 동모형제이지요.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혈통의 고귀함을 결정하는 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신분이 높으면, 그 아이들 역시 똑같은 특권을 누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딸인데, 법흥왕 계는 성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지소태후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성골이었기 때문에 세종 역시 성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아버지가 아들인 세종과 말할 때는 말을 엎드려 신하의 예로 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신 국선 문노의 경우 아버지는 진골귀족이나 어머니가 야국(일본 혹은 가야) 출신 평범한 여인이라 처음엔 진골귀족에도 못 꼈다 하지요. 워낙 무훈이 높고 신망이 높았고 진지왕 축출 때 공이 커서 미실이 진골귀족으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말한 건 아니고 당시의 골품제도를 바탕으로 골족이 아니고서는 아찬 이상의 관등에 오를 수가 없다는 걸 말씀드린 거랍니다. 설씨든 최씨든 또 우리같은 정씨는 두품 중 최고인 6두품이라도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죠. 5두품 이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설원이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가 진골귀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가 설씨라면 화백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또는 반대로 "대등으로서 화백회의에 참여했다면 그는 김씨인 것이 자명하다" 이런 식으로 논지를 편 겁니다. 모계혈통이 신라대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좀...

  15. 딩호 2009.07.0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문제는...

    '화랑세기'가 진위인가가 문제이죠. -_-;
    백날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두고 해석해봤자...설득력은 없다는.~.~


    그냥 드라마로 봐야..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저도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글을 쓴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중심으로 말한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나 사기, 유사를 빌어오면 복잡해진답니다. 우선 연대도 안 맞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시공을 넘어 만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완전 타임머신 되는 거죠. 아마 첫회에서 그런 자막이 뜬 걸로 아는데요. 연대가 수십년을 넘나드는 것은 드라마의 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니 이해를 바란다고... 언뜻 지나가는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16.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montreal 2009.07.09 0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칠수과 소화의 재등장은 드라마를 훨씬 복잡하게(재미있게) 만드는거 가타여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두 그리 생각해여~ 그런데 칠숙과 소화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풀릴 것 같기도 하고요. 꼬는 놈이 있으면 푸는 놈도 있어야 한다는 ^^-

  17. 쏘쏘 2009.07.09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금관이 성인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크기인 이유는 그 용도가 머리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관을 보시면 머리에 쓰고 있을 수 없게 아주 얇은 두께로 제작되었고,
    왕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왕족들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설은 신라 금관의 용도가 장례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죽은 시체의 얼굴 위에 씌우는 것입니다. 그 방법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머리에 쓰는게 아니라
    얼굴을 덮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분에서 출토될 당시 대게 얼굴 위를 감싸는 상태로 발굴 되었기때문입니다.

  18. 미실은 '박'씨입니다. 2009.07.09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은 '박'씨로 알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족과 왕비족이 있어요. 신라에서도 왕비족은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지요. 미실은 '김'씨가 아니랍니다.

  19. 2009.07.09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가요. 근데 일본황태자는 왕태자아닌가요..이거 어떤 데선 왕,왕족이라고하는데 다른데선 황족이라고하고..근데 그냥 왕족이 맞지않나싶어요. 왕태자랑..굳이 올려서 말할필요가..우리랑은 원수나 마찬가지니까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09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위에 있는 댓글에서 설명했는데... 하여간 지들이 천황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한번 불러준거에요. 왕이나 황이나 뭐가 다를 게 있나요? 영국은 국왕이라 부르고 독일은 황제라고 부르지만 영국국왕이 오히려 더 권위있어 보이지 않던가요? 그렇지만 감정이 다들 그렇다고 하시니깐 앞으로는 그냥 일왕이라고 부를 게요. 그리고 잘 읽고 가셨다니 고맙습니당.

  20. qkqlen 2009.07.12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m음 성골 진골 뭐 이런것 때문이지 않
    을까 ?!!

  21. 가림토 2009.09.0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 달렸던 댓글에 관한 내용을 종합해서 글 올리겠습니다.


    1. 미실의 성씨
    미실은 아버지가 미진부공이며 어머니는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부인으로 둘 다 김씨입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진부의 아버지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버지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버지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다. 복호는 내물왕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실과 미생은 김씨가 되겠습니다.


    2. 근친혼에 관한 간단한 고찰
    화랑세기 제6세 풍월주 세종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미추대왕이 광명을 황후로 삼으면서 후세에 이르기를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세상에서 이 계통을 진골정통이라고 한다. 옥모부인은 곧 소문국 왕의 딸인 운모공주가 구도공에게 시집가서 낳은 딸이다. 옛날부터 진골은 아니다."
    이 말은 위의 지적처럼 혈통과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근친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씨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후손들에게 령(현재 개념으로 말하면 불문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골정통은 어머니에서 딸에게로만 전해지는 혈통을 말하는데,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현재의 성씨의 전래와 똑같이 여자에게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짜피 같은 여자의 혈통으로 이어진다면 그 여자의 성씨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씨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라 김씨왕계의 근친혼의 원인과 결과입니다.


    3. 신라 금관의 크기와 편두
    사실 신라 금관의 내경이 작아서 실제로는 쓰고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또한 실용물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은 금판이 너무 얇아서 실제 사용했다면,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휘어지기도 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실용기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에 누군가가 지적하셨던 것처럼 죽은자에게 씌워 보낸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데드마스크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편두에 대한 언쟁이 위에 있는 것 같은데, 신라의 고분에서는 제대로 된 유골이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인골 가운데 편두의 습성이 확인된 곳은 부산대학교에서 발굴한 김해 예안리의 인골에서 뿐입니다. 또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한전에 편두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 있으니, 편두의 습성을 가진 것은 변한 - 가야로 이어지는 계통이지 진한 - 신라로 이어지는 계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확언하지만 신라에서 편두의 습관이 있었다는 기록과 고고학적인 근거는 모두 발견할 수 없습니다.


    4. 설원공의 성씨와 설원공의 지위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원효불속'의 내용을 보면
    "성사 원효는 속성이 설씨다. 그의 할아버지는 잉피공인데, 적대공이라고도 한다. 지금 적대연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고 하여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하는 고려 후기까지 잉피공의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화랑세기 설화랑전에는
    "(설원)공은 아들 다섯 명과 딸 일곱 명이 있다. 정궁부인인 준화낭주는 큰아들 웅, 작은 아들 잉피, 적녀인 정금낭주를 낳고는 죽었다(...중략). 잉피는...원효의 할아버지다."라고 하여, 설원이 원효의 증조할아버지인 것이 확인됩니다.
    위 두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속성이 설씨라고 하는 원효의 증조부가 설원이 되므로 설원의 성씨는 설씨가 분명합니다.

    다만, 화랑세기에 의하면 설원의 아버지는 설성인데, 설성의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가 신라6부의 고야촌장 호진공의 후손으로 설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 성씨를 알 수 없는 설원의 할아버지가 진골인 김씨일 수가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할머니가 구리지공(사다함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 중에 '좋은 낭도를 만나 설성을 낳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진골 김씨의 경우 화랑이었지 낭도가 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원공의 지위를 보자면, 그의 아버지 설성을 구리지공은 급간 설우휘라는 6두품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서자로 입적시킵니다. 따라서 설원의 지위 역시 6두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설원이 벼슬자리에 있었따는 기록은 없고, 549년에 나서 606년 7월에 죽었다는 기록과, 579년 풍월주 자리를 문노에게 양위한 후 미실을 따라 영흥사에 들어가서 평생 그녀를 호위하다가 죽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따라서 설원이 병부령이라는 것은 드라마상의 설정일 뿐이지 그의 지위를 추정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 김유신의 진골 신분 및 이사부, 알천랑의 성씨
    신라에는 합병한 왕국의 왕족을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관례가 있다. 예를 들면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했을 때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킨 바 있으며, 고구려 보장왕의 외손인 안승이 신라에 투항했을 때 역시 진골귀족으로 편입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김유신의 할머니인 만호태후가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결혼을 반대했던 것이 진골계층 내부에서도 서열이 존재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화랑도 내부에 발생한 파벌관계에서 만호태후는 진골정통으로써 한 파를 형성하고 있었고, 김서현은 가야파였기 때문에 그 계통을 달리하는 파벌로 인하여 만호태후는 김서현과 만명의 결혼에 적극 반대했다고 보여집니다.

    별담으로 elly님께서 이사부는 박씨라고 하셨는데 이사부의 계통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이사부장군은 내물왕 4세손으로 나오는 분이니, 내물왕이 박씨가 아닌 이상 이사부는 김씨가 맞겠죠?^^

    또 하나의 별담으로 역시 elly님께서 올리신 내용인데, 알천랑은 진주소씨의 시조라는 내용인데, 이기백 교수님의 글로 그 주장에 가름합니다.
    "1979년의 일인데,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의 한 분이 종친회보를 가지고 연구실로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러면서 진주 소씨의 시조는 신라시대 상대등이던 알천인데, 회보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알천은 김씨이므로 소씨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구실을 들어 거절하여 보냈다. (중략) 그 뒤에 필자는 신라 말기에 김해 지방에서 활약하던 김율회가 때로는 소율회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김(金)과 소(蘇)는 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金은 음이 '김','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알천의 성이 소인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6. 선비족과 흉노족의 계통
    thfql님께서 쓰신 '울 나라 선조가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던데, 여기서는 신라 왕족이 선비족이라고 나왔군요'라는 댓글에 파비님께서 '선비도 흉노의 일파지요?'라고 하셨는데, 계통상의 착오가 있으신 듯 합니다. 결코 선비는 흉노의 일파가 아닙니다.

    위서(魏書)에는 선비가 동호족(東胡族)의 한 갈래로서 언어와 풍습은 오환과 같으며, 흉노족의 '묵특선우'에게 패해 요동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동호족은 세 갈래로 흩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흉노로 흡수되었고, 하나는 오환, 나머지는 선비입니다. 이후 서기 91년 후한의 부탁으로 남흉노, 정령, 선비는 북흉노의 정벌에 동원되는데, 이 싸움에서 선비는 북흉노를 멸망시켰고, 후한은 그 댓가로 북흉노가 유목하고 있던 토지를 선비에게 넘겨주면서 북흉노인 50여만 명을 선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때 선비는 인구 100만 이상의 되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라 김씨의 선조가 선비족이라는 학설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신라의 문화가 흉노와 유사한 점이 있다면 서기 91년 선비에 편입된 흉노인들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01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진주 소씨는 경주 김씨의 일파란 말이네요. 이기백 교수님 말씀처럼 김 또는 금을 소로도 발음한 그런 것일 거라는 가설이 맞다면요. 그 시조가 알천랑이고. 어쨌든 왕으로도 추대된 알천이 김씨인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