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13 선덕여왕, 젊은 나이에 죽은 진흥왕이 웬 노인? by 파비 정부권 (16)
  2. 2009.07.11 선덕여왕, 미실의 출신성분은 무엇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8)
  3. 2009.06.11 선덕여왕도 색공을 받았을까? by 파비 정부권 (84)
천추태후를 함께 보던 아들놈이 질문을 합니다. "아빠, 그런데 천추태후는 왕이 네 번이나 바뀌었는데 왜 얼굴이 그대로야? 하나도 안 늙는 거 같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노? 니가 가서 직접 물어봐라."

그러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 진흥왕 말입니다. 드라마에선 진흥왕이 아니고 진흥대제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진흥왕은 천추태후와는 반대로 너무 늙었습니다. 진흥왕은 7살 때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해가 540년인데 37년간 재위하다 576년에 죽었습니다.

선덕여왕에 진흥왕으로 출연한 이순재 @mbc



그럼 잠깐 계산해보시죠. 7살 더하기 재위기간 37년 하면 44살입니다. 그러나 재위 첫해와 7살이 되던 해는 중복되므로 여기서 다시 1년을 빼야 합니다. 그러면 43살에 죽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진흥왕은 너무 늙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눈에는 80이 훨씬 넘은 노인네로 보였습니다.

이순재를 캐스팅한 자체가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사람을 늙어보이게 분장하긴 쉬워도 늙은 사람을 젊어보이게 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순재가 나이가 들긴 했지만, 진흥왕은 이순재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입니다.

이사부가 진흥왕에게 조언하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는 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입니다. 이때가 서기 545년입니다. 진흥왕이 12살 때란 이야기죠. 진흥왕이 아무리 총명하다고 하더라도 이사부의 말을 알아듣고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 어린 진흥왕을 대신해 섭정한 법흥왕비가 지시를 내린 것이겠죠. 진흥왕의 아비는 법흥왕의 동생 입종이며 진흥왕의 어미는 법흥왕의 딸입니다. 그러니 법흥왕비는 진흥왕의 외할머니인 동시에 큰어머니가 되는 셈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의 세계(世系)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만, 아무튼… 

드라마에서 국사를 편찬하도록 지시하는 진흥왕의 모습도 영락없는 80대 노인입니다. 뭐 재미를 위해 그런 거라고 이해는 합니다. 어린아이나 젊은 진흥왕보다는 나이가 지긋한 그래서 세상사에 통달한 듯 보이는 진흥왕이 훨씬 신비감을 주는 데 적절하다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게다가 우리 시청자들은 조선시대사에는 능해도 신라역사에는 약합니다.

잘 모르니 대충 넘어가도 큰 탈은 안 생긴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어쨌든 아들놈의 지적은 분명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천추태후는 왕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왜 그렇게도 안 늙는 것일까요? 게다가 어제는 칼까지 빼어들고 젊은 시절의 용력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늙는 게 정상입니다. 

물론 나이가 60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머리카락 색깔이 새까맣고 숱이 마치 울창한 원시림을 보는 것처럼 2~30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연배로만 따지면 삼촌뻘이 되는 제 손위동서 이야깁니다. "사람이란 게 나이가 들면 머리도 하얘지고 좀 빠지고 이래야 정상 아냐? 너무 닭살이야!" 물론 이건 저의 질투심입니다.

그래도 43살에 죽은 진흥왕의 조로증('조루증'이 아니고 '조로증'이다)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드는군요. 신비감을 주기 위한 제작진의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말입니다. …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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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2009.09.13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13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족보도 개족보고 - ^^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그렇게 캐스팅을 했나 봅니다.

    낮에 재방송 2회분을 시청했습니다.
    식구들이 올망졸망 둘러 앉아서요.^^

    • 파비 2009.09.13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새파란 사람이 나와서 전설 이야기를 하면 좀 그렇긴 하죠. 우리가 이해하고 넘어가야죠. 히히

  3.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09.09.13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와 신라인들이 서울말을 쓸가요?
    난 그게 젤로 맘에 안드어요..

    지역말로 하면 더 실감날건데..

    • 파비 2009.09.13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는 서울이 경주였으니까 경주는 서울말 썼겠지요, 뭐. 근데 저도 갱상도지만 갱상도말로 사극하면 좀 웃길 거 같아요. 꼭 코미디처럼...

  4.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14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 중 대부분이 나이를 속이고 있어요.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들, 나이, 인물들과의 관계 등에서 거의 역사와는 다르지요.
    저도 한동안 욕하다가 지금은 드라마는 드라마다라는 마음으로 그저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ㅎㅎ

    • 파비 2009.09.14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렇습니다. 이거 시비 걸려고 한 건 아닌데... 아들놈이 옆에서 딴소리를 하니 저도 그냥 생각나서요. 하긴 너무 젊은 진흥왕이 나와서 낼 곧 죽을 것처럼 하면서 예언 따위를 얘기하면 좀 우습겠죠. ㅎㅎ

  5. Favicon of http://www.ymca.pe.kr BlogIcon 이윤기 2009.09.14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사극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엉터리 역사를 보면서 진짜 역사를 알아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다행이지 않을까요?

    • 파비 2009.09.14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요즘 사람들 대개 똑똑합니다. 옛날하고는 다릅니다. 사회가 그만큼 개방된 탓이겠죠. 드라마 덕에 역사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특히 고려 이전 고대사에 관심들을 많이 가지는 것 같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 Favicon of http://www.koreahealthlog.com BlogIcon 양깡 2009.09.14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비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드라마 속 설정이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파비 2009.09.1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렇네요. 서울생활 재미있으시죠? 저도 거기 좀 살아봤지만, 우리는 갑갑해서... 요즘 앵커도 하시더군요. ㅎㅎ

  7. 임돌 2009.09.23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분께서 얼마나 나이가 되시는지는 모르지만.
    최고 원로에 속하는 배우에 대한 호칭이 좀 그렇네요.
    ~씨를 붙이는게 낳지 않을까요^^;;
    저분이 젊은 배우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래도 좋은 정보 보고갑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09.23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사십대 중반입니다. 엊그제 삼십대 중반이었는데, 슬프군요. 저는 원칙적으로 글 본문에 ~씨를 안 붙이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불가피할 경우에만 붙입니다. 누구는 붙이고 누구는 안 붙이는 것도 공평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그리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시사포스팅에서 김일성은 호칭 안 붙여주면서 박정희는 붙여주는 건 예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이는 쥐박이 하면서 존경스럽다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꼬박꼬박 대통령님 하면 좀 거시기 하지요? 그냥 제 취향이긴 합니다만...

      이순재에게 꼭 씨를 붙여야 한다면 차라리 이순재 선생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선생은 아무에게나 붙이는 호칭이 아니긴 합니다만, 이순재 정도면 선생이란 극존칭을 붙여드릴 만하죠.

      그리고 좋은 정보였다니 고맙습니다.

  8. 오스칼 2009.10.03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추태후는 20이 되기 전에 혼인하여 목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10년정도 컷을 시기에 채시라분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그리고 또한 그 아들 목종도 20이 되기 전에 황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목종이 승하한 것이 30정도였다 하니 처음 황후가 된 시기가 20이었다 치고 목종이 황위에 오를 때까지가 20년. 그리고 승하한 것이 10년으로 대략 50년(50세)로 보면 되겠네요.
    물론 그 시기쯤 되면 힘도 없고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힘이 딸려 죽을 뻔 한 것도 드라마상으로 그리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젊은시절의 용력이라기 보다는 젊은시절에 익힌 기술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파비 2009.10.0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기도 하겠군요. 엊그제 아들하고 하루종일 자전거를 탔는데 못 따라가겠더군요. 슬프더군요. 참고로 아이는 초딩 6년차입니다.

요사이  MBC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신라의 풍속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특히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화랑들의 이야기로 세상이 뜨거운 것 같다. 화랑세기는 그 위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라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화랑도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특히 미실이란 여인은 화랑세기가 아니고서는 만나볼 수가 없다. 화랑세기는 사실상 미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할 때는, 그가 서문이나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들의 세계(世系)를 밝히고자 함이었다. 그들의 계보를 통해 우리는 화랑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대문의 집안은 세습 화랑의 집안이었다. 이 가문은 540년 화랑도가 시작한 이래 681년 폐지될 때까지 1세 풍월주 위화랑부터 시작해서 4세 이화랑, 12세 보리공, 20세 예원공, 28세 오기공 등 모두 5대에 걸쳐 풍월주를 세습했다. 나머지 풍월주들도 대부분 부자가 세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대문의 가문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32대에 걸친 풍월주들의 전기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실이다. 그녀는 5세 풍월주 사다함부터 시작해서 16세 풍월주 보종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풍월주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신분의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나는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http://go.idomin.com/268) 라는 글을 통해 미실은 분명 김씨족임이 자명하다고 호언한 바 있다. 신라는 골품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골품도 없는 여인이 화랑들을 발 아래 두고 국왕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랑세기에서도 미실의 세계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랑세기의 목적이 풍월주들의 세계와 세보를 기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 미실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독자가 댓글을 통해 내 글에 반론을 제기했다. 미실은 김씨족이 아니라 박씨라는 것이다.(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또한 모든 네티즌들, 뿐아니라 위키백과에서도 미실을 박미실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나의 관심사는 미실이 김씨족인가 박씨족인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라라는 신분제 사회의 특성상 진골귀족 신분이 아니고서 화백회의나 중앙정치를 주무를 수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미실의 역할이 그러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김씨족일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골품제도는 법흥왕 7년(520년) 율령이 반포되면서 정립된 제도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골품제는 이미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법흥왕에 의해 골품을 받은 귀족들은 원래 왕족이었던 박씨족 일부와 김씨족, 그리고 가야의 왕족, 보덕국왕 안승의 후예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박씨족 일부도 진골의 골품을 받았지만, 그들이 신라가 융성했던 중고시대나 중대에 중앙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약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내물왕 이후 김씨족들이 왕권을 확실히 장악한 이후에 박씨족들은 6부 중 하나인 모량부에 이주해 살면서 가끔 왕비를 배출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고로 화랑세기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실이나 미생의 역할로 보아 틀림없이 이들의 조상은 김씨족일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다. 그럼에도 여러 독자들이 미실은 박씨라는 주장을 하며 정정을 요구하였고, 심지어는 내물왕의 4대손이며 세종의 아비요 하종의 조부인 이사부조차도 박씨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어 부득이 다시 자료를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부나 거칠부가 김씨족인 것은 이미 사기에서 밝히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설명은 무의미할 듯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미실의 남편이며 아들인 세종과 하종도 김씨족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미실에 대해서만 보다 더 확실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그녀에 대한 기록은 화랑세기를 빼고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미실의 부모에 대하여 화랑세기에 언급이 있으므로 그녀의 부계와 모계를 확인해 보면 그녀의 출신성분을 알아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싶었다. 미실의 아비는 2세 풍월주 미진부이며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미진부의 아비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비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비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공이다. 복호공은 내물왕의 아들이다. 

미실의 부계를 살펴보건대, 미실은 내물왕의 후손인 것이다. 내물왕은 신라의 김씨 왕조를 확립한 인물이다. 내물왕 이전에 미추가 김씨족으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김씨족의 전제 왕권을 확립한 것은 내물왕이다. 그러므로 김씨 왕조의 사실상 시조는 내물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물왕 이후 왕비들은 대부분 김씨족으로 채워졌는데, 이는 김씨족의 배타적 왕권을 확립하려는 결과였다. 이와 같은 근친혼으로 왕권의 지위는 더욱 초월적인 것으로 공고해졌다. 세기에 의하면, 아시공은 법흥왕이 미실의 조모인 옥진과의 사이에서 난 비대공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해 지소태후와 더불어 진흥왕을 옹립하는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의 권력은 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녀가 비록 세습적으로 색공을 하는 여인이었으며 미색이 출중하고 교태가 남다르다 해도 출신이 미천하고서는 권력에 다가서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조부인 아시공은 당대의 실력자였으며, 아비는 진흥왕의 총애로 2세 풍월주를 거쳐 최고 관등인 대각간에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미실의 모계는 어떨까? 미실의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묘도궁주는 영실공과 옥진궁주의 딸인데, 영실공은 수지공과 법흥의 누이 보현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성골이다. 또 미실의 조모인 옥진궁주는 누구인가. 그녀는 1세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위화랑은 진골로서 이찬에 오른 인물이다. 위화랑 역시 옥진의 소생인 비대공을 반대해 진흥왕을 옹립했다.

이렇게 미실의 부계와 모계를 살펴보니 양쪽 모두 진골귀족 출신이다. 진골일 뿐 아니라 왕권에 가장 근접한 권력의 핵심들이었다. 미실의 권력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미실의 힘이 어느날 갑자기, 또는 드라마에서처럼 사다함의 매화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자,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독자들의 궁금증이 하나 더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설원랑이다. 나는 앞서「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에서 미실 뿐 아니라 설원까지도 김씨족일 거라고 단정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의도한 오류였다. 설원랑은 세기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진골귀족이 아닌 풍월주다.

화랑의 대부분이 진골귀족으로 채워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골귀족이라 하더라도 아무나 화랑에 뽑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권문세가의 자제여야 하고 인물이 출중하고 덕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선발의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설원은 어떠한가. 그는 진골귀족도 권문세가의 자제도 아니다.

더구나 그의 아비인 설생은 아비의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천한 출신이다. 다만 설생의 어미가 습비부촌의 설씨 가문의 자손이므로 어미의 성을 따라 설씨가 되었다고 한다. 설생은 용모가 출중했는데,그가 모시던 구리지가 전장으로 나간 틈에 구리지의 여인 금진낭주와 관계를 가져 설원을 낳았다고 한다.

금진낭주는 사다함의 어미이기도 하니 설원은 사다함과는 동모이부의 형제인 셈이다. 사다함은 구리지의 아들이며 내물왕의 7세손으로 진골귀족이다. 금진낭주 또한 위화랑의 딸로서 진골귀족이니 설원은 비록 아비가 출신을 모르는 미천한 사람이었다고는 하나 모계로 보면 역시 귀한 자손이며 미실에겐 외숙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부계계승사회인 신라에서 설원랑은 진골은 고사하고 두품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화랑이 되고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미실의 권력을 웅변해주는 대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상에서처럼 설원이 지배집단의 화백회의에 참여하고 병부령의 지위에 올라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미실의 권력이 아무리 태산처럼 높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신라의 골품제를 뒤흔드는 일로서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실이라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화랑은 골품제의 규정을 비교적 덜 받는 자치조직이었으므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관직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6두품으로 뛰어난 문재를 자랑했던 설총이나 최치원이 비운의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골품제가 초기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주요한 도구로 기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라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결국 신라를 패망으로 인도하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는 금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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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7m.net BlogIcon 東氣號太 2009.07.11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처음부터 보지 못해 요즘 하나티비를 통해 다시 보고 있지만
    드라마적인 요소는 잘 구성되어 있으나, 역사적 배경이 궁금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달그리메 2009.07.11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요~
    모르는 것은 찾아가면서 아주 열공을 하고 있습니다.^^

    저번에 경주에 갔을때 김유신 묘와 무열왕의 묘를 비교하면서 봤는데
    김유신 묘가 왕릉 같았고, 무열왕릉은 오히려 평범했거든요.
    묘를 보면서 조금 궁금했습니다. 물론 만드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 해서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1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김유신은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됐지요. 신하로서 대왕에 추존된 사람은 김유신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걸로 알고 있네요. 그러나 역시 권력은 무상한 것이라서요. 김유신 일족의 세도도 결국 100년을 못 넘어가지요.

      삼국유사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혜공왕 때니까 대충 700년대 후반, 김유신의 묘에 회오리 바람이 일며 홀연히 김유신과 40여명의 병사들이 나타나 말을 몰아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죽현릉은 미추왕의 묘다. 김유신이 미추왕을 향해 따졌다. "신이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삼한을 통일했다. 죽어서도 신라를 구할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어찌 신의 자손을 죄 없이 죽이는가? 서운하기 짝이 없다. 이 나라를 떠나고자 한다." 그러자 미추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이 나라를 지키지 아니하면 백성은 어찌하란 말인가?" 이에 김유신과 병사들은 다시 돌아갔다고 하지요.

      김유신의 자손들이 어떻게 고초를 당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이런 설화가 있는 걸로 봐서 세월이 흐르면서 세도를 부리던 김유신가도 결국 토사구팽의 길을 걸은 듯... 그러나 김유신은 살아서도 상국의 영광을 누리고 죽어서는 대왕의 칭호까지 받았으니 그렇게 섭섭해하는 것은 매우 염치없는 짓이라고 생각되네요. 흐흐

  3. 2009.07.12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책(세기와 유사)도 읽어보는 여유를 부리긴 했습니다만(제가 본래 역사책을 좋아한답니다. 제가 닉으로 쓰는 파비란 이름도 한니발과 대적했던 역사적 인물의 이름으로부터 딴 것이니까요), 신상문제란 그처럼 한가한 것은 아니고 좀 더 복잡한 문제랍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2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참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시대 아닙니까? 워낙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라... 그러나 아직 넘쳐나는 정보들도 신뢰성에는 문제가 많이 있답니다. 다음 위키백과사전의 박미실 정보가 하나의 예입니다. 미실이 박씨가 아니란 건 제가 본문에 말씀드린 바와 같고요. 미실은 부계도 모계도 모두 김씨입니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더라도 신중하게 확인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그래서 책이 필요한 거지요, 여전히. 그리고 추모제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셨네요. 먼 길을...

  4. 가림토 2009.09.01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원랑은 진골은 고사하고 두품조차 받지 못했다.

    이렇게 서술하신 부분은 수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원의 증손자인 원효가 6두품 신분이었고,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의 아버지인 담내는 내말 벼슬에 있었으므로, 두품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요?

    설원공의 지위를 보자면, 그의 아버지 설성을 구리지공은 급간 설우휘라는 6두품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서자로 입적시킵니다. 따라서 설원의 지위 역시 6두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설원이 벼슬자리에 있었따는 기록은 없고, 549년에 나서 606년 7월에 죽었다는 기록과, 579년 풍월주 자리를 문노에게 양위한 후 미실을 따라 영흥사에 들어가서 평생 그녀를 호위하다가 죽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요즘 선덕여왕이 화제다. 더불어 화랑세기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를 베껴 썼다고 주장되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그러나 위작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끄러운(?) 조상의 역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라거나 “현재의 시선으로 당시를 재단하는 오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미실이란 여인은 거의 모든 풍월주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아비가 2세 풍월주였던 그녀는 5세 풍월주 사다함과도 연인사이였을 뿐 아니라 6세 풍월주 세종의 부인이며 동시에 7세 풍월주인 설원랑과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난 하종이 11세 풍월주이고 설원랑과의 사이에서 난 보종은 16세 풍월주가 되었다. 또한 32세 풍월주는 그녀의 원손이다.  


그 외에도 미실은 진흥왕, 동륜태자, 진지왕, 진평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신라의 왕들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미실이 매우 문란한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때의 성풍속이 그러했고 나아가 이를 권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실은 색공(色供)을 하는(또는 해야 하는) 신분의 여자였으니 아주 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미실의 실제 남편인 세종은 이사부 장군과 왕비의 사이에서 난 자식으로 진흥왕과 어머니가 같다. 미실 또한 진흥왕비의 조카라고 하니 그 관계도를 그려보면 매우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미실을 가운데 두고 미실의 남편이거나 자식들인 진골귀족들이 모여 미실의 혼사문제를 논하는 장면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근친상간은 신라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덕여왕보다 조금 빨리 시작한 천추태후를 보자. 거기도 선덕여왕 못지않은 복잡한 성풍속이 우리를 어지럽게 한다. 천추태후는 태조왕건의 손녀로서 자기와 배다른 오라비인 경종에게 시집을 간다. 그것도 친동생과 함께 경종의 비가 되는 것이다.


경종이 죽자 천추태후의 여동생이며 경종의 왕비였던 헌정왕후는 태조왕건의 아들인 왕욱(경주원군)과 사랑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가 곧 대량원군으로 나중에 고려 제8대왕 현종이 된다. 태조왕건 이후 목종에 이르기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왕위세습은 현종 조에 안정을 찾아 이후 모든 고려왕들은 현종의 자손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 현종이 우리시대의 시선으로 말하자면, 불륜의 씨앗인 것이다. 그럼에도 왕족의 혈통이라 하여 원군(태자)의 칭호를 내리고 나중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사부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왕비의 자식이라 하여 전군(태자-왕자-전군으로 이어지는 왕족의 호칭)에 봉해진 세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물론 태종이라 불리는 장군 이사부도 내물왕의 4대손이니 김씨로서 왕족이다.


자, 그런데 내가 오늘 주목하는 대목은 이렇게 신라와 고려를 거쳐 유행했던 복잡한 성풍속도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좀 어지럽긴 하지만, 이해할만 하다. 저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자기가 꿈꾸었던 이데아를 지탱해줄 주요한 장치는 바로 부인공유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통치계급인 철인들의 이기심을 막을 장치로서…


물론 신라 성골-진골 귀족들의 성풍속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석기시대―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구석기시대이며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극히 미미한 일부분에 불과하다―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이은 것이든 아니면 골품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든 말이다.


여기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색공(色供)이란 제도에 대해서다. 나는 처음에 드라마가 시작될 때 미실이 색공술을 펼친다고 해서 무협지에 등장하는 여마두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색공이란 왕이나 왕족의 세대세습을 위해 색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색이란 애매모호한 표현은 다름 아닌 섹스를 말함이다.


미실이 바로 색공을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진흥왕부터 그의 아들인 동륜태자와 진지왕, 그리고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 대에까지 색공을 했다. 그뿐 아니라 진흥왕의 씨 다른 형제인 세종의 정실부인이었으며 자기의 외가 쪽 5촌 아저씨뻘 되는 설원과도 교제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럼 색공은 여자만 하는 것이었을까? 선덕여왕은 어땠을까?


선덕여왕의 남자관계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신라 말의 진성여왕은 매우 문란하여 황음을 하다 결국 나라를 망쳤다는 기록들이 많지만, 현명한 군주로서 추앙받는 선덕여왕에게 스캔들(?)과 관련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지식-문화원형>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의 자식들인데―선덕여왕에게는 숙부뻘이다―선덕여왕을 받들도록 했다. 처음에 용춘이 진평왕의 명으로 선덕을 받들었으나 자식이 없어 물러나고 용수가 받들었다. 역시 자식이 없어 물러났다. 선덕이 왕위에 오르자 용춘이 다시 선덕여왕의 지아비가 되었으나 역시 자식이 없어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글쎄… 확실하지는 않지만, 선덕여왕도 색공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물론 여왕에게 색공을 했던 남자들은 모두 성골이거나 진골 귀족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왕실의 혈통이 보존되니까…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더 알고 싶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그때처럼 개방적인 시대라면 남자왕족이 색공을 받았다면 여자왕족도 틀림없이 색공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색공이란 제도가 있기는 있었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과연 드라마에서 그런 내용을 다룰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시대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아 참,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용수와 용춘은 모두 선덕여왕의 언니인 천명공주의 남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천명과 용수(공식적으로는 용춘)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다. 그러고 보면 진평왕의 공주들은 실로 대단한 스캔들의 소유자들이었다. 선덕여왕의 동생인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하여 의자왕을 낳지 않았던가.   

생각할수록 흥미진진하다. 과연 이 복잡한 관계를 MBC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흐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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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지막 2009.06.1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에 쓴 웃음이 왠지 음흉해 보이십니다. 흐흐흐~ 재밌는 글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은 첨에 그 뒤에 (음흉한 웃음)이라고 적어넣었다가 남사시러버서(저 경상도 놈임) 지웠습니다.

  3. 들리우스 2009.06.11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네요

    맨날 밤새 게임만할게 아니라..이렇게 흥미진진한 역사공부를 해야겠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4. QWE 2009.06.11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큼 신라의 골품제가 폐쇄적인 신분제라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기득권은 어떻게든 유지하려 기를 쓰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낮은 신분에서는 벗어나고자 하는 신분상승의 꿈을 표출하는 사회상으로

    이해해야죠....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결론은 버킹검이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저도 그리 생각한답니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의-물론 귀족계급에 국한된 얘기겠지만-성적 결정권이 어느 정도는 존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회가 오히려 후진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5. 모래 2009.06.11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서제도"를 찾아보시죠...
    여왕에게는 3명의 남편을 거느릴 수 있다는...
    이런 얄팍한 지식으로.. 쯧쯧쯧

    • 을채 2009.06.11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서제도는 자식이 없는 선덕여왕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졌던 '제도'입니다. 색공이나 마복자처럼 '자리잡은 전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그래서 선덕여왕이 죽자 흐지부지 폐지된 제도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나 고려시대 성풍속이 매우 독특하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궁금했지만, 색공에 대해선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삼서제도도 물론 금시초문이었고요. 그러니 얄팍한 지식은 맞습니다. 다만, 저도 신기해서 소개하는 것 뿐이고 나름대로 조사하고 공부하는 건 했답니다. 일단 선덕왕을 위한 삼서제도란 게 있었다니 여왕도 색공을 받은 것은 확실하나봅니다요. 감사~

  6. sun 2009.06.11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읽었네요.. ㅎㅎㅎ 신라시대는 드라마로 본 기억이 없었는데 이번에 천추태후 자명고 선덕여왕처럼 여자들을 주제로 드라마를 많이 만드네요... 음모론으로 가자면 박그네의 대권을 노리는 장치다? ㅎㅎㅎ 이런 얘기도 들어봤고..... 저때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위해 근친상간을 많이 했던거 같네요...
    옛날이야기로 생각할수도 있지맘 요즘에도 재벌, 권력자, 언론사들이 사돈지간을 맺는거 보면 요즘도
    저런제도로 기득권들이 정권을 유지하고 떵떵거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ㅎㅎㅎㅎ 암튼 요즘엔 뭐이리 부정적이 됐는지.....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언론소비자주권운동하시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님의 강연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MB혼맥도를 그리면 대한민국 재벌, 언론 안 걸치는 곳이 없다더군요. 말하자면, 거미줄을 친 가운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7. 미시 2009.06.1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다 재미있지만 색이 들어가면 더욱 흥미진진..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8. 김미영 2009.06.11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댓글까지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6.11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눈에 쏙들어 오는 글이네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글인지라 그런지 쏙쏙 들어와요
    전 지금 브로그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글 을 다듬고 있는데요
    너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시간 되실때 한번 오셔서 조언 좀 부탁드릴꼐요 ^^

  10. 장마 2009.06.11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못 봤지만 인터넷 상에서 떠오르는 뜨거운 감자네요
    선덕여왕에 관해 궁금해서 관심있게 보는 데
    정말 잼 있게 봤어요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1회와 2회에서 고현정의 미실 연기가 압권이었죠. 고현정의 인기가 단지 얼굴만 이뻐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입증했다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11. 위작일 가능성이 큽니다. 2009.06.1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작년 동아일보를 보면 박창화가 화랑세기를 필사하기 전에 쓴 45쪽짜리 소설이 발견되었다고 나옵니다. 소설이 만들어진 시기가 앞섰고 필사본과 내용과 용어가 유사하다는군요.
    또, 한겨레에는 당시 사용되지 않던 용어가 쓰여있고, 시대와 맞지 않는 후기 불교신앙이 나타나기 때문에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외국 학자의 주장도 실려 있습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2120095
    http://www.hani.co.kr/section-021015000/2007/11/021015000200711150685054.html

    더 이상 변명의 여지 없는 위작 아닐까요? 반론이 있기는 합니다. (기사참조) 당시에도 엄연히 농경사회였고 사유재산과 그에 따른 계습이 생기고 상속이라는 게 생겨 났기 때문에 여성의 성은 억압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보다는 열려있었겠지요.
    아무튼 사회구조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어느정도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게된 현대사회에 산다는게 감사할뿐입니다.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는 위작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요. 물론 진짜일 수도 있고요. 단, 선덕여왕이 성골을 만들기 위해 진지왕의 아들들을 남편으로 삼았다거나, 천명공주 역시 그이들과 혼인관계를 가졌다거나, 진흥왕의 왕비가 장군 이사부의 아들을 낳았으며 그가 세종이고 미실의 남편이다, 하는 것들은 모두 사실 같습니다. 어쨌든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면 이처럼 장구한 역사와 인물들의 전기를 썼다는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되지요. 만약 위작이라면 왜 굳이 필사본 화랑세기라고 했을까가 궁금하군요. 저 같으면 나의 창작물이다, 이랬을 텐데요. 그게 여전히 궁금해요...

  12. ㅇㅇ 2009.06.11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저 시대는 성별보다 신분이 우선시 되는 사회였으니까요.

    남녀를 불문하고 신분이 높으면 받는 거고
    낮으면 바친 거죠 뭐..

  13. 역사바로알기 2009.06.1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이라는 것은 본디 무예집단이 아니고 남색 집단이었다. 반반한 귀족 자제들이 모여서 남색을 즐겼다. 본디 신라는 그 출발이 모계사회였으므로 화랑이 종종 귀족 여성들의 성적욕구를 채워주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화랑이 비난받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1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 면에서 인류역사의 99%가 모계사회죠. 백만년 중 우리가 알고 소위 문명사(?)란 기껏 5천년도 안 되니까... 그래도 화랑에 대한 평가가 너무 좀 거시기 하군요.. 그래도 화랑도는 신라부흥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14. 아하... 2009.06.11 2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여. 그럼 백제 의자왕과 신라 무열왕은 사촌지지간이란 말인가? 사촌간에 서로 죽이고 나라 망하게 하고 그랬다는 겨?

  15. 김준택 2009.06.11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근친혼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저런 류의 폐쇄적 혼인관계는 늘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하겠지요..

    조중동을 필두로한 재벌들의 혼인 카르텔이 엄연히 존재하는것을 보면 저것이 쾌락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

    득권 유지라는 측면에서 봐야겠죠. 현대판 족내혼이라고 해야겠죠 이걸..

  16. 지금보면 2009.06.11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가 어찌보면 상당히 진보된 사회엿던거 같음.

    • Favicon of http://go.idomim.com BlogIcon 파비 2009.06.12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조선시대를 진보라고 하기는 좀... 제가 알기론 조선후기보다는 중기 이전이 훨씬 나은 세상이었다고는 하던데요. 여권 측면에서 특히...

  17. 지나가는 2009.07.04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화공주와 백제무왕은 사실이 아닌걸로 드러났으니 패스하고...

    신라는 정복적인 문화를 가졌고, 백제는 침투하는 문화를 지녔습죠.

    고구려는 패권을 차지하는데만 골몰했을 뿐이고요.

    색공은, 그 자체를 한문으로 미화했뿐, 실제 풍속은 좀더 다채롭고?! 대수로운 일로 여겨졌을듯 하군요.

    한의학이 아무리 좋아도 당시 출산율과 위생풍속을 고려한다면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이 여성의 1순위였죠.

    그런면에서 미색에 지성에, 사회적 신분까지 겸했다면, 색공을 두루했다 한들 큰 흉이라고 보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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