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1.30 눈물의 기록, '마산, 다시 한국역사를 바꾸다' by 파비 정부권 (3)
  2. 2009.03.16 3·15 의거 기념식에서 느끼는 황당 시츄에이션 by 파비 정부권 (4)
  3. 2008.11.03 교사폭력은 군사독재의 유령이다 by 파비 정부권 (33)
  4. 2008.10.27 10·26의 추억, 부마항쟁과 유신의 종말 by 파비 정부권 (5)
1979년 10월. 마산은 "유신독재 물러가라는 함성"으로 들끓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한발의 총성이 청와대 옆 한 비밀궁전에서 울려퍼졌다. 영원할 것 같던 독재자 박정희가 죽은 것이다. 이로써 마산은 두번에 걸쳐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는 진원지가 됐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의에 비해 마산이 받는 대접은 너무나 약소하다. 온갖 인사들이 정치판에 나와 과거의 민주화운동 이력을 들먹이지만,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주역들은 망각과 무관심의 그늘 속에 창동골목의 허름한 술집에서만 그 영광이 되살아날 뿐이다.

2011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뒷골목에 숨어있던 그늘진 영광을 끄집어내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최초로 발간하는 증언록에는 우선 40여명의 육성이 담겼다. 앞으로 더 많은 증언자를 찾아내 보완된 책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 첫번째 증언록을 만드는 데는 일부 나의 공도 들어있다.
나는 부마항쟁 당시 중학교 3학년짜리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실로 눈물겨운 녹음테이프를 활자로 옮기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숨도 무지 나왔다. 그 다음에 밀려드는 어쩌면 지독하게 처절하고 슬픈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공허함.
이게 모두 진짜로 벌어진 일들이었을까. 부마항쟁 며칠 후, "알아서 처리해주겠다'는 부모의 말을 믿고 애인을 밀고했고, 그 애인이 중정과 39사단에 끌려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갖은 고문이란 고문은 다 당한 것을 알고 자신은 결국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이란 말인가.  

12월 5일 오후 6시 30분. 창원역 맞은편 (구)가든예식장 1층에서 <부마항쟁 증언집- '마산, 다시 한국의 역사를 바꾸다'>가 망각과 무관심의 그늘로부터 과감하게 몸을 끄집어내 세상에 나온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 역사의 현장에 여러분을 모시는 글이다. 특히 블로거들이 많이 와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세상에 많이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파비 

이 증언집은 1989년의 『부마항쟁10주년 자료집』에 비해 증언자 수가 3배 가량이며, 다양한 신분의 입체적 증언이 풍부하게 수록되었다. 항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경남대·창원대 학생, 고교생, 교수, 시민, 노동자, 기자, 음악실 DJ 등은 물론, 유족 증언과 함께 전투경찰 소방관, 마산시청 공무원 등 40여명이 겪은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어 당대의 드라마틱한 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알 수 있다. 특히 생애사적 접근방법을 통한 인터뷰 방식으로 기술하였으므로 당대의 정치 ․ 사회 ․ 경제 ․ 문화 전반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가능하며 마산시민의 집단적 용기가 정의로운 저항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물망처럼 꼼꼼하게 그려서 부마항쟁을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다.

증언집 내용에 있어서도 부산항쟁 이전 경남대 학생의 목숨을 건 사전 시위 계획과 종교인의 지원 사실, 근로대중들의 잠재된 정치적 분노, 용기있는 현장 취재와 언론탄압 등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떠돌던 소문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풍부하게 드러났다.

이 증언집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크지만, 부마항쟁특별법 제정의 당위성을 촉구하는 근거로서의 의미도 크다. 또한 아직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의 환상과 실체를 되새기며, 새로운 정치·경제,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데 학계, 교육계를 비롯하여 각계에 매우 의미있는 자료가 되리라 판단된다.


<증언집 수록 내용>

김용백(당시 마산 상남성당 주임신부) • 미리 준비되었던 부마항쟁   23

김의권(당시 마산 수림음악실 디제이) • 음악실 DJ가 겪은 유신시대   37

김종대(당시 마산시청 공무원) • 억압세력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출  65

김지근(당시 경남대 학생) • 여전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자부심  85

김채윤(당시 경남대 학생과 직원) • 빗방울 모여서 강물 되고 바다 되듯이  95

김철수(당시 마산대 학생) • 박정희 총통제 차단한 부마항쟁  107

김태만(당시 창원공단 내 대한중기 사원) • 형제가 겪은 3·15와 10·18  129

남부희(당시 경남매일 사회부장) • 부마항쟁은 제2의 3·15의거  139

박봉환(당시 경남대 학생) • 부마항쟁의 시민정신과 화해의 정신  167

박진해(당시 해군 장교) • 긴 역사에 대한 낙관론  185

박홍기(당시 자동차보험 대리점 운영) • 작지만 큰 저항의 몸부림  215

배장수(당시 전투경찰대원) • 유신의 전경  235

손해규(당시 자영업) • 불의에 항거한 정신 계승되어야  257

송윤도(당시 마산시 월영2동 동장) • 국민을 하늘 같이 여겨야지  295

신용수(당시 마산문화방송 기자) •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다  307

양석우(당시 자영업) • 부마항쟁, 올바로 자리매김 돼야  347

옥정애(당시 경남대 학생) • 자유와 용기를 갖게 해준 부마항쟁  365

유성국(당시 무직, 고 유치준씨 유족) • 내 아버지 죽음의 진실, 32년만에 밝힌다  385

이경호(당시 마산대 학생) • 모진 고문과 보상받을 길 없는 민주화 투쟁  401

이부웅(당시 마산소방서 소방관) • 소방차 포기하고 몸만 피신하다  433

이승기(당시 씨알의 소리 마산보급소장) • 박정희 정권을 더 연장시켜서는 안 된다  439

이윤도(당시 경남대 학생) • 영원히 잊지 못하는 노래  451

이재구(당시 마산대 학생) •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꾼 민주항쟁  481

이종상(당시 경남대 교수) 법학교수, 유신헌법 홍보를 거부하다  491

이창곤(당시 마산 경상고 학생) • 고등학생에게 가해진 야만적인 국가폭력  505

장정욱(당시 경남대 학생) • 박정희 유신정권의 누적된 문제들  527

정성기(당시 경남대 학생) • 역경을 극복하는 개인과 도도한 역사의 물결  541

정인권(당시 경남대 학생) • 역사의 소용돌이에 던져진 삶  575

정현섭(당시 공업전문대 학생) • 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을 만들어준 계기  605

정혜란(당시 무직) • 사람이 변해야 사회도 변해  623

조순자(당시 마산대, 경남대 음악과 강사) 마산은 두번이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특별한 곳  635

주대환(당시 서울대학교 제적생) • 억압됐던 민중의 본능이 자연스럽게 분출된 부마항쟁  643

지경복(당시 정비공장 직원) • 부마항쟁 참여로 고단하고 힘든 삶  669

진이호(당시 자영업) • 우리가 싸웠던 것은 제대로 살아보자는 뜻  687

최갑순(당시 경남대 학생) • 여성운동으로 다시 태어나  701

한석태(당시 경남대 교수) • 유신독재 붕괴 촉발시킨 부마항쟁  737

한양수(당시 경남대 학생) •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10·18  761

한철수(당시 회사원) • 마산 민주항쟁의 역사, 하나의 맥으로 연결되어야  783

현태영(당시 마산기동대 전경대원) • 마산에서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  795

황성권(당시 외국어대 휴학생) • 숨 막히는 독재를 끝낸 투쟁  813

다음카페 “부마항쟁” http://cafe.daum.net/buma1018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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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abinne BlogIcon 임종만 2011.12.02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되는데요 ^^

  2. Favicon of http://www.deutschland-moncleroutlet.net BlogIcon moncleroutlet 2011.12.06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한국의 역사를 바꾸다'>가 망각과 무관심의 그늘로부터 과감하게 몸을 끄집어내 세상에 나온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 역사의 현장에 여러분을 모시는 글이다. 특히 블로거들이 많이 와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세상에 많이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3. Favicon of http://www.minmetalschina.com BlogIcon tool steel 2012.02.13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sources like the one you mentioned here will be very useful for me!

어제가 3·15의거 49주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김태호 경남도지사,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이 3·15묘지에 머리 숙여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오늘 경남도민일보 신문 1면 머리에 실린 사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습니다.  3·15 영령들 앞에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개 숙인 저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또, 저분들의 절을 받고 있는 3·15 영령들은 지하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실까요? 자신들이 돌을 던지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리하여 마침내 4·19혁명의 불길로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던 그 자랑스런 역사를 한 순간에 군화발로 짓밟아버린 5·16군사정변의 후예들이 오늘날 갑자기 영령들의 무덤에 근엄한 표정으로 절을 하며 올해 3·15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내년 50주년 행사에는 반드시 이명박 대통령을 모시고 이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자고 입들을 맞추니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하고 놀라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곳 마산에서는 저런 류의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보기 드문 일도 아닙니다. 지난 가을 10·18 부마항쟁 기념식장은 또 어땠겠습니까?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마항쟁의 살아있는 진정한 영웅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타도를 외쳤던 유신독재의 잔당인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들과 시장들이 축사를 하고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마산과 부산시민들의 기개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 쓸쓸하게 부림시장의 막걸리집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산시 구암동 국립 3·15민주묘지에 참배하는 기관장 및 국회의원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김구연기자


전언에 의하면 내년에는 3·15의거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될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전원이 서명한 ‘3·15의거 국가기념일 제정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 접수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년 오늘 경남도민일보 1면 머리에는 위 사진에다 김태호 경남도지사 옆에 이명박 대통령이 또 엄숙하고 근엄한 듯한 표정으로 영령들에게 절하는 모습이 추가된 똑같은 사진이 실릴 것입니다. 

안홍준 의원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3·15의거는 유일한 도 기념일인데 이렇게 도 단위 기관장이 적게 참여해서는 국가기념일로 해달라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 … 우리 모두 자신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인지 반성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할지도 모를 내년 기념식에는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안홍준 의원처럼 약자를 괴롭히고 탄압하는데 앞장서는 한나라당 사람이 약자의 편에 서서 독재에 저항했던 3·15열사들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부터 보이시오. 게다가 내년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이 자리에 서신다고 하니 더욱 그리 하시는 게 옳을 듯하오. 그러지 아니하면 영령들께서 지하에서 돌을 들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 틀림없소.”

그나저나 저분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한들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위에 적은 내 생각은 그저 부질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무튼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3·15와 4·19의 혁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거기에 이의를 달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런데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내년 오늘은 더 크게 한바탕 웃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숨가쁜 기대로 온몸이 충만합니다. 허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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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효창 2009.03.16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비약이 너무지나친것같소
    어찌하여 이렇게 막연한 글을 썼소
    특정정당 비하 억지 소리 기관장들은 모두 독재의 하수인이라는 말이요?
    좀더 이해할수있는 누구나 동의 할수있는 글올리시오.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3.16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선생님이 어찌 생각하시건... 제 눈에는 독재의 하수인이 아니라 본당으로 보이는데요. 저기 가서 절하고 돌아가서는 눈에 가시 같은 공무원노조 간부 잘라내는 게 저분들 하는 일이고요. 오늘 신문 기사 보니 경남공무원노조 간부였던 마산시청 임종만 씨를 해고했다가 법원이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시해 복직판결을 받고 복직하자마자 다시 정직 2개월 먹였다는군요. 법원판결까지 무시하면서 말이죠. 그러고서 저기 가서 절하는 거, 가증스럽지 않습니까? 개도 웃겠습니다. 가증스럽다고...

  2. Favicon of http://blog.daum.net/gabinne BlogIcon 林馬 2009.03.17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5 정말 소중한 민주항쟁의 역사지요.
    마산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솟구치는 사건이기도하고요.
    그런데 보이기위한 전시성 구호와 행사보다는 내실있는
    실천적 3.15를 간직하는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지금의 마산은 민주도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위에 고개숙인 작자들의 손에
    처단되는 모순된 형태가 지속되고있습니다.
    3.15정신을 현실에 맞게 변형시킨것일까요?
    쪽팔리는 짓거리들 정말 안했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3.17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그런데 임마님. 저기 위 사진 속의 인사들 중, 유독 마산시장 만 고개를 푹 안 수그리고 들고 계신데요. 그래도 스스로 고개 숙이기가 부끄러운 줄 아시는 거 아닐까요? 하하... 죄송합니다. 농이 지나쳤나요?

초등 2학년생에 대한 과잉 체벌 사태에 이어 또다시 체벌 논란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대구의 모 여고에서 교사가 단체로 학생들을 체벌하는 과정에서 한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유포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전북 익산의 한 여학교 운동장에서 교복치마를 입은 여학생 40여 명을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엉덩이에 5대씩 몽둥이로 구타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는 등 체벌 사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서 야구배트로 학생들을 구타하는 장면은 실제 우리네 모습이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잔인한 추억

저는 얼마 전 초등생 구타 사건이 났을 때,
“초등생 체벌사태를 보며 드는 잔혹한 추억”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말죽거리 잔혹사」란 영화에서 나왔던 장면이 제가 고1 때 우리 급우 한명이 담임선생님에게 폭행당하던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붙였던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지긋지긋한 폭력교실에서 일상화되고 제도화된 구타를 인내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밀대자루(밀걸레 자루)로 속칭 빳다 20대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습시간에 조용히 공부하지 않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해서 하나 둘 세어가며 맞았던 것입니다. 물론 맞은 것이 이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래서 그때 엎드려뻗쳐해서 빳다 20대를 하나 둘 세어가며 맞던 제 모습과 어린 제 아들놈을 가끔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저는 맞은 기억 외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치심에 몸을 떠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79년에 저는 까까머리 중3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대대장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에 ‘전체조회’를 했습니다. 저는 30리가 넘는 산골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딱 한 번 지각을 했는데, 하필 이날이 ‘전체조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전체조회’를 빠트린 저는 교무실에 불려가 예의 빳다를 맞은 다음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 벌을 받게 됐습니다. 교무실 양 옆으로 좌측에는 3학년 남학생 교실이 우측에는 3학년 여학생 교실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 빳다를 때린 그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이새끼, 손 똑바로 못 들어? 안 되겠군.” 하시더니 자기 책상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와서는 한 입 크게 베어 무시더니 남은 사과를 제 입에 척 물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떨어뜨리면 각오하라는 협박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폭력은 교사 스스로를 비인간화 시킨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후의 제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시리가 믿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이 동급생인 여학생들 앞에서 당했던 수모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제가 매주 두 번씩의 ‘전체조회’를 어떻게 진행했으며, 또 남은 학교생활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정말이지 아득합니다. 그런데 그 전한○ 선생님이 단지 조회 한 번 빼먹었다고 저한테 그러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지요.

이 선생님은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걸 잃어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담임인 반의 저와 친한 친구 한 놈이 그걸 훔쳤다고 의심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가 이 선생님 집에 가서 구두며 신발들을 가끔 도랑에다 내버리는 통에 슬러퍼를 끌고 학교에 오신 적이 많았었거든요. 선생님도 자기에게 자주 맞던 그 친구가 그랬으리라고 짐작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친구를 지서에 신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선생님의 신발을 가끔 훔쳐다 버리는걸 아는 제가 다그쳐 물어봤더니 자기는 절대 안 훔쳤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겁니다. 이 친구는 저보다 국민학교 3년 선배였고 소위 ‘꼴통’이었지만 저하고는 아주 친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거짓말 할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무실에 계신 그 선생님에게 가서 “걔는 절대 안 훔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만 오해를 풀어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지서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그 선생님이 제게 앙심을 품었을 거라는 짐작을 ‘조회 사건’ 이후 하게 됐습니다. 산골 오지에 살았던 저는 니콘 카메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였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폭력은 결국 군대와 사회로 이어져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유신독재와 5공화국에서 교사의 존재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의 교사들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팽배한 군사문화의 폭력적 경향에 최면이 걸린 불행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일제시대 교사들이 칼을 차고 가르치던 시대를 추억하는 엉터리 같은 선생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 최면의 피해자라고 이해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옛날 교련 선생님들은 이렇게 군복을 입고 학생을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부터 길들여진 폭력 문화는 결국 사회 전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맞은 놈이 더 잘 팬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주입된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은 군대에서 그 절정에 다다르고 결국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입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대화를 통한 모색보다는 폭력을 통한 손쉬운 해결을 추구하는 습관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학교가 민주주의의 적을 훈련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학교와 사회를 지배하던 폭력적 군사문화도 유신정권이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종말을 고하고, 전두환의 5공화국도 6월 항쟁으로 막을 내리면서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유신도 아니고 5공도 아닌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버젓이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폭력이란 것들이 모두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입니다.

9살짜리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여고생의 뺨과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여고 2학년은 학생이란 신분만 뺀다면 성숙한 여성입니다. 아무리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성숙한 여고생의 뺨을 후려갈기고 허벅지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치마 입은 여학생들을 운동장에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킨 상태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드려 패는 장면은 무슨 말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와 교사가 폭력을 조장하고 가르쳐서야

이건 폭력이나 구타의 수준을 넘어 변태라고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바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딸아이들 둔 부모로서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금년 5월 춘천에서는 한 여고생이 체벌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당국이나 교육청은 은폐에만 급급합니다. 

얼마 전, 초등생 체벌사태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울산의 어느 학교 학부모들이 체벌동의서란 것을 학교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체벌은 폭력의 동의어일 뿐입니다. 체벌은 군사독재의 잔재일 뿐입니다. 이러니 세상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극우적 경향의 사람들이 무시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사람이 총 들고 나타나서 확 후려잡아야 돼.”

저는 이런 망발조차 학교에서부터 익숙해진 폭력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졸병 때 고참에게 얻어맞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듯, “졸병놈들은 뒈지게 맞아야 돼. 그래야 군대가 잘 돌아가.” 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미 자기는 졸병생활 지났다는 거지요. 소위 ‘맞아본 놈’이 더 때리는 것입니다.  

폭력교실은 결코 성숙한 인격도야의 장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지식만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성숙한 인격체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구타로 괴롭히며 폭력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질풍노도의 미성숙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기로서니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스스로 교사이기를 포기한 자가당착입니다.

저는 사소한 체벌조차 반대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상담 등의 노력을 통해 교사와 문제 학생이 일체가 되는 경험을 가끔 접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체벌 외에 다른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당국 만이 아니라 전교조를 비롯한 참교육을 추구하는 여타의 단체들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구타 등 폭력이 도대체 어떤 생활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독재의 수단일 뿐입니다. 폭력을 조장하는 교사가 학교 내 학생들간에 벌어지는 폭력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학교에서 체벌, 구타, 폭력 등이 어떠한 이름으로도 자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가 민주적 시민의식을 제쳐두고 폭력과 독재를 가르친다는 오명을 덮어써서야 되겠습니까? 

2008. 11. 3.  파비

※ 독서의 계절 가을과 람사르 총회를 맞이하여 추천하는 책 한권/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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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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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김주완 2008.11.03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좋은데, 조선 동아의 뉴스뱅크 이미징코리아를 홍보해주는 사진이 거슬리네요.

  2. 고래의 꿈 2008.11.03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클래식이란 영화에서도 교사가 학생을...더불어 교사에게 위임받은 학생이 완장차고 동료를 구타하는 장면들이 나오죠...아직도 그게 없어지지않고 대물림되는거 보면 폭력의 중독성이 마약같은 듯...더 웃긴건 군대도 안 갔다 온 여교사들이 군대식으로 학생들 기합줄때...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는다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 전, 강릉에선 교사의 권위를 빌린 학생회장이 후배를 구타하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었죠. 구타로 죽음을 당한 학생도 억울하지만, 그 학생회장도 살인자가 되고 말았죠.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학교폭력이 일소될 때까지 문제제기해야 합니다.

  3. 나그네 2008.11.03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은 체벌 보다는 학점 깍거나 정학시킨다던데..

    심한 애들은 스쿨 폴리스(경찰)불러 버리고..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율학습 빠졌다고 뺨을 때리고 하면 안 되죠. 자율적으로 하라고 해놓고 빠진다고 때리면, 선생님이 거짓말하는 게 되니 아주 비교육적이란 비난 면키도 어렵고... 아니면 자율의 사전적 의미가 개정되기라도 했다는 것인지...
      구타보다는 상담을 통한 가르침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분 블로그에서 보았는데 외국(아마 프랑스?)에선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켜 지도상담 받는 걸 매우 겁내며 부끄러워 한다고 하더군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미국은 별로 예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배울 게 하나도 없는 나라입니다. 학교에서 총격사건도 나고 골치 아픈 나라죠. 학력 차별도 심한 나라입니다. 소위 아이비 리그 출신 아니면 대통령 못하는 나라죠.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식 교육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원 폭력 더 심해집니다. 애들 성적 올려 상위대 진학율 높여야 되는 교사 입장에서 보충수업 빠진 애들이 용서가 되겠습니까? 학생이든 선생이든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거죠.

    • ㅋㅋ 2008.11.03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그네! 너 전교조지? 이 씨팔새끼야
      좆같은 새끼가 낄데안낄데 다 껴대며 좆까는 소리는 짖어대더니~~ ㅋㅋㅋ
      이 씹새끼 내 눈에 띠면 쌍판때기를 함몰시켜 버릴텐데 씹팔새끼
      더러운 절라디언 씹새끼
      붉은쥐새끼 ㅋㅋㅋ
      도망다녀라 이 씨팔새끼야 걸리면 찢어죽여버릴테니~

  4. 길손 2008.11.03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사의 폭행은 일제시대의 잔재가 아닐까요? 조선시대에도 훈장의 폭행(?) 은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의 폭행과는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교사의 폭행이 없어지려면 교사 자신이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야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 나라도 선진국처럼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수업시간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교사의 감정적 폭행은 절대 용서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아울러 폭행이 없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사극 열심히 봅니다만, 훈장 선생님이 학생 귀쌰대기 날렸다는 거 본 적 없습니다. 도저히 안되는 녀석에겐 오히려 회초리를 주며 자기를 때리라고 하셨지요. 이런 매는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 교육현실에서 사랑의 매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교사는 일류대로 진군하는 학생이란 병력을 관리하는 상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5. 해바라기 2008.11.03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벌동의서는 체벌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걸핏하면 친구 때리고, 부모도 자기자식만 잘난 줄 알고 난리치고,
    징계위원회 소집해서 전학보내면 그 학교에서 또 전학처분 받아서 다시 그 학교로 돌아오고..
    체벌을 대체할 수 있는 규정 없이 무조건 폭력 없애자고 하면 아이들이 먼저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짜 무서운 폭력은 교사가 아닌 친구의 폭력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폭력교사가 학교 내 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도 폭력을 쓰면서 무슨 낯으로 폭력을 없애자고 하겠습니까? 또 폭력교사는 거꾸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조장하고 가르치는 효과도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학교나 교육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는 스스로 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문제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범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6. ㅋㅋ 2008.11.03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교조 씹새끼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며 개거품물고 있지 ㅋㅋㅋ
    이번에 좆불에 동원된 여중여고빠순이들 알지!
    걔네들도 전교조쥐새끼들이 때려죽인다고 협박해서 나왔다더라 ㅋㅋㅋㅋㅋㅋ
    안나오면 좆나게 패고 강간을 하니 여중고생 빠순이들이 안나올재간이 있겟냐?
    전교조씹팔새끼들과 걸레년들이 시키는대로 광우병소처먹으면 뒈져요 난 오래살고 싶어요 라고 미친척하며 울부짖는수밖에 없지 ㅋㅋㅋㅋㅋ

    얼마전 어떤 전교조씨팔새끼가 여고생들이 지나는 대로변에서 자지를 꺼내놓고 딸치다 짤렷다지? ㅋㅋㅋㅋㅋ
    근데 붉은전교조쥐새끼들이 복직시키라 지랄을 떤다며? 그야말로 전교조스럽다 씨팔새끼들

    절라디언 빨갱이 새끼들이 저런짓을 하는거다.
    교원평가제 즉시 실시되야 하며 9살싸지 여자애의 엉덩이를 피로 물들인 발정난 암캐 씨팔년(이년 이름이 안지*)이라며? ㅋㅋㅋㅋㅋㅋㅋ 애미없는 애는 100대씩 때렷다는 좆같은 씨팔년!
    바로 이런년들이 놈현이 새끼가 말하는 참교육자인가보지? ㅋㅋㅋ

    놈현이 때 학교에서 전교조씹새끼들의 강간이 폭증햇다. 물론 아무 문제 없었지 다 놈현이 덕이다.
    놈현이 이 찢어죽일 씹좆같은 새끼가 강간하던 전교조새끼들을 비호해서 뻑하면 강간 폭력 삥뜯기 왕따 만들기 등 이루말할수 없는 범죄가 저질러졋지. 다 놈현이 새끼덕이다.

    안지* 이 씨팔좆보지같은년 스스로 변태라고 씨부려 놨던데~~
    이 좆같은 년 파면시키지 않는다면 공개해서 아주 초대형 사고를 터뜨려주지 ㅋㅋㅋㅋㅋ

  7. 바이러스조.. 2008.11.03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자율학습 시간에 우리 친구들 졸다가 걸리면 당시 야자 감독하던 체육선생님 으로 부터 골프채로 맞았어요.. 다행히 저는 안맞았지만 맞은 친구들의 허버지를 보면 눈 뜨고 볼수 없었죠...18년이 지난 지금 교장선생님이 되셨던데...경주0학교 오,,,뭐뭐뭐 선생님....제발 손자 들이 골프채로 맞으시길 간절히 바랄께요......

  8. ㅋㅋ 2008.11.03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정난 씨팔년인 안지* 좋은 말로 할때 파면시키는게 좋을거다.
    애새끼를 뱃다는 씨팔년이 저지랄을 하는걸보면 애새끼 애비가 누군지 모르나? 씨팔좆같은 년
    파면시키는게 좋을거다.

    그리고 정신나간 교장과 교감도 즉시 물러나게 해라
    좋은말로 할때~~~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3 1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선생님의 폭언은 학원폭력 이상의 사회악에 해당한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중해 주세요.

    • 이건 뭐지? 2008.11.03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개소리 떠는데..

      선생들 폭력 잘못 맞는데 너같이 개소리로 떨면

      폭력교사를 몰아내는게 아니라 반대로 된다.

  9. ㅋㅋ 2008.11.03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고하는데 안지ㅎ 파면시키고 형사처벌해라.
    안그럼 이년의 실체를 밝히는 수밖에 없다.
    발정난 암캐인 이년이 어떤 년인지 알려지게 되면~~ 휴우
    감당 못할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건 뭐지? 라는 씹새끼야 좆까는 소리는 니 에미한테나 씨부려 이 씨발놈아 너 전교조쥐새끼지? ㅋㅋㅋ

  10. Favicon of http://www.dalpeng2.com BlogIcon 이기원 2008.11.03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상에서 인간이 인간을 때릴 권리는 아무도 없다고 권영길 의원이 발의한 학교자육에 관한 법률을 읽고 다시 생각합니다. 헌법에도 민법에도 교사가 학생을 때릴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매와 체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깊게 교사들에게 각인되어있습니다. 미성년자를 하나의 완성된 인격의 성인으로 만드는 것이 학교 교육이지요. 오랜 시간과 세월 속에서 곰삭고 기다려야만 완성되는 인격을 키워줘야 하는 학교가 순간적인 아니, 교사의 비인격적인 체벌로 인해 학생의 인권과 자유가 무참히 깨지고 부서집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교사의 인격과 사랑을 통해서 학생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알아가는 기간까지 말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체벌로 아이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폭력적인 학생들로 변화시키기는 쉽지요. 인권교육과 인격을 키워내주는 학교에서의 체벌은 사라져야 합니다.

  11. Favicon of http://oanmail.net BlogIcon 후라보노 2008.11.03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등학교때..지각했다고,,,30분가량을 쳐맞던,,,그새끼 지금도 못있고 있습니다

  12. 체벌 반대 2008.11.03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13. Favicon of http://gleam8500@hanmail.net BlogIcon 작살 2008.11.03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한체벌 기억으로는 초등학교때 볼일보고 들어와보니 청소시간에 청소안하고 장난친다고 학생들한테 의자를 집어던지더라고요 맞지는 않았지만 겁준거겠죠

  14. oiuiou 2008.11.03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생각하면, 군복입고, 학교에서까지 아이들앞에서 원산폭격 시키던 체육교사랑 교련 선생들 참 우습습니다. 그렇게 군대의 향수를 느끼고 싶나. 정작 월남 다녀온거 자랑하던 교사들은 죄다 후방에서 빵팔다 온놈들이고, 정말 아이들 안때리고, 군복도 안입고, 군대 이야기도 안하던 교련 선생님이 훨 인간적이였지.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8.11.04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소수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안 좋은 인상만 남는 것입니다.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 법이니까요.
      참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다는 점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15. Favicon of http://enormousseo.com BlogIcon Directory Submission Service 2012.05.25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밀대자루(밀걸레 자루)로 속칭 빳다 20대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습시간에 조용히 공부하지 않고 떠들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해서 하나 둘 세어가며 맞았던 것입니다. 물론 맞은 것이 이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래서 그때 엎드려뻗쳐해서 빳다 20대를 하나 둘 세어가며 맞던 제 모습과 어린 제 아들놈을 가끔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상이

곧 10·26사태 29주년이다. 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날을 무엇이 기념할 것이 있어서 이런 제목까지 달고 추억하겠냐마는 그래도 이맘때만 되면 아련한 기억이 향수와 함께 밀려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산골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과 더불어 그곳을 마지막 떠나기 전에 일어났던 유신독재의 종말이라는 시대적 사건은 나에게 영원히 잊혀 질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

1979년 10월 27일,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매일 아침마다 3학년 교실에 문제풀이 시험지를 돌려야 하는 게 내 일이었다. 교무실에 가면 전날 밤에 등사된 문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골이라 고입을 앞둔 중학교 3학년이면서도 도시처럼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걸 받을 수 없었던 사정을 고려한 선생님들의 배려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문제지를 돌리기 위해 아침 일찍 등교했다. 그런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보다 먼저 온 녀석이 있었다. 기종이란 친구 녀석이 책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반 부실장이기도 한 이 친구는 공부도 매우 잘하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도가사상에 심취해서 늘 가방에 장자를 넣고 다니던 친구였다. 그래서 내가 “어이, 도사님.” 하며 놀리곤 했었다.

만주군 장교 시절 박정희/위키미디어

나보다 먼저 온 것도 의외였지만, 어깨를 흔들며 흐느끼는 친구를 보니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난처하다는 듯이 녀석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야 기종아, 도대체 왜 그러나.”

내가 물어보자 녀석은 더 슬프다는 듯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어~어엉 어엉 엉~ 각하께~서 돌아~가~셨~다~.”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라.”

나는 이 친구가 정녕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장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통곡하며 우는 모습과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물었던 것이다.

“대통령 각하께서 어엉 엉~ 서거 하셨단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친구는 진정 각하의 서거가 애통해 우는 것 같았지만, 나는 전쟁을 생각했다. 국가원수가 죽었다는 슬픔보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먼저 나를 엄습했다.

잠시 후 교무실에 불려간 나는 급히 비상조회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모든 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교단에 올라서신 교장선생님은 운동장에 집결한 학생들에게 슬픈 소식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예외적으로 학교 육성회장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도 참석했다. 많은 학생들이 슬픔에 잠겨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눈물을 흘리는 저 많은 학생들은 모두 내 친구 기종이처럼 정말 애통해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전쟁의 불안으로 몸서리치는 공포에 떠는 아이들도 있는 것일까? 그날 아침은 학교 뿐 아니라 온 나라 온 천지가 비통한 슬픔으로 눈물바다가 된 것만 같았다.

1966년 각국 정상과 함께한 박정희 대통령/위키미디어공용


나는 10·26사태가 나기 불과 며칠 전에 부산에 다녀 온 적이 있다. 부산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특차모집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였다. 기차를 탔다. 차창 밖에서 달려드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낯설고 신기한 풍경들에 나는 마음을 흠뻑 빼앗겼다. 읍내에도 몇 번 가보지 못한 산골 소년에겐 시험을 치러 간다는 부담감조차 까맣게 잊을 만큼 화려한 외출이었다. 곧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가는 대도시 부산이다.

그런데 부산역에 내린 나를 맨 먼저 반겨주는 것은 줄지어 늘어선 군인들과 탱크들이었다. 난생 처음 본 육중한 탱크는 철모르는 어린나이에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졸이며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여인숙을 잡고 저녁을 먹은 다음 내일 시험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러나 역시 부담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잠이 오지 않았다.

여인숙을 나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해운대 백사장을 돌아 동백섬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를 식혀주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이끌려 나는 계단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갯바위에 기대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지켜보고 있는 인어상도 보였다. 나도 그 모양으로 바위 한쪽을 차지하고 저 멀리 깜깜한 수평선 너머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부산에 진주한 계엄군/신동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환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연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무슨 일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절며 시키는 대로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몹시 가파르고 멀었다. 다 올라오니 내려올 땐 보지 못했던 철책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계단 입구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군인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아직 어린 학생이구나. 몇 학년이냐? 이런데 들어오면 안 되는 거 모른단 말이냐?”

너무나 놀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대충 중학교 3학년이며, 입시를 위해 멀리 시골에서 왔고,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인지는 몰랐으며, 문이 열려있기에 내려가 본 것뿐이고, 내일 시험도 치러가야 하니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빌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군인은 마음씨가 좋아보여서 시골에서 온 어린 학생이라 예외적으로 한 번 봐줄 테니 어서 가서 자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안고 여인숙에 돌아온 나는 부랴부랴 잠을 청하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바로 가까운 곳에 있던 학교에 가서 시험을 쳤다. 그리고 나는 다음 해부터 3년간 그 학교를 다녔다. 나중에 그곳에 다시 가보았는데, 그곳은 늘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였다. 그리고 인어상 주변에도 밤낮없이 사람들이 파도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으며 놀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는 부마항쟁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시내에 계엄군대가 진주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백섬 일원의 해안선에도 무장경계가 실시된 모양이었다. 산골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에 파묻혀 도시에서의 긴박했던 순간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10월 27일 아침에 느닷없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우리는 하교 길에 면사무소에 긴급히 마련된 분향소에 들러 다시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눈물을 흘렸다. 면사무소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여든 동네 어른들로 붐비고 있었다. 비명에 죽은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전,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잠깐 잡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여느 지역에 비해 슬픔이 배는 더 했으리라.

국장이 끝나고 채 열흘이 가기 전에 바로 그 국민학교 교정에 봄에나 피어야 할 꽃이 피었다고 했다. 요즘은 기상이변으로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노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수군거렸다. 이 이야기는 신문기자에게도 전해져 세상에 알려졌다고 했다.

10·26이 나던 날과 다음날에도 나는 이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나도 그때는 하늘이 노해서 그런 것인 줄 알고 다시 한 번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순진하게도 산골에서 ‘유신교육의 해’ ‘근면 자조 협동’ 같은 선전문구를 건물 이마에 매단 학교에 다니고, 냇가에서 멱 감으며 놀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허옇게 고추를 내놓은 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렬로 늘어서서 마치 비오는 날 승용차 와이퍼가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 듯 질서정연하게 손을 흔들던 산골소년도 이제는 안다.

하늘이 노해서 꽃이 핀 것이 아니라, 국민이 노해서 유신철권통치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비명에 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월은 인간에게 망각이란 선물을 주어 슬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만, 또한 역사는 끊임없는 비판과 각성의 바늘을 주어 잘못된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열어준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흔드는 계절이 오면 나는 의례히 30여 년 전 그때를 기억한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의 편린을 더듬으며 기종이 녀석 생각도 한다.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늘 장자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대통령의 죽음을 자기 부모의 일처럼 애통해하던 감성이 풍부하던 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보니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2008. 10. 23.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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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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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msa.net BlogIcon 양깡 2008.10.26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생한 당시의 기억을 공유해주시니 좋은 간접 경험이 되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mygoki.tistory.com BlogIcon 카메라를 든 여전사 2008.10.28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마항쟁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다시보니 새롭네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른 글도 봐야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www.nflnikejerseysshopj.com/ BlogIcon nfl football jerseys 2013.01.03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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