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썸네일형 리스트형 박근혜는 부마항쟁 군사진압 사과부터 해야 박근혜 후보는 부마민주항쟁 군사진압에 대한 사과와 진상규명 등의 요구에 대한 응답부터 하라 박근혜 후보진영에서 ‘부마민주항쟁기념식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박 후보가 꼭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 한다. 그리고 이번 주 중 ‘경남을 찾아 부마민주항쟁기념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14일 보도되고 있다. 먼저, 본회는 18일 창원시 마산의 부마민주항쟁기념식에 박근혜 후보는 물론 어느 대선 후보도 초청한 사실이 없음을 밝힌다.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에 의하면 박 후보는 부마항쟁 관련 국가 폭력 및 인권침해의 가해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3년간 역사적 재평가와 진상규명이라는 요구를 외면해 왔고, ‘부마민주항쟁’ 언급조차 없었으며,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념사업회가 박 후보를 먼저 .. 더보기 박근혜에게 부마항쟁은 아직도 폭도들의 난동인가? 기자 회견문 /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박근혜 후보에게는 ‘부마민주항쟁’이 아직도 ‘반국가적 폭도들의 난동’인가 ? 24일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관련 기자회견을 접하고 우리는 오히려 참담하고 시민적 공분이 끓어오른다. 1979년 10월의 ‘반유신 부산·마산사건’에 대해 박정희 정권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폭도들의 난동인 ‘부마사태’로 규정하고, 군대까지 동원하여 진압했다. 이후 끈질긴 진상규명, 명예회복 투쟁을 거쳐 적어도 1999년 이후에는 정치적, 법적으로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인 ‘부마민주항쟁’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정치 일선에 나선 이래 십 수년간 단 한 번도 부마항쟁과 이에 대한 군사진압과 고.. 더보기 눈물의 기록, '마산, 다시 한국역사를 바꾸다' 1979년 10월. 마산은 "유신독재 물러가라는 함성"으로 들끓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한발의 총성이 청와대 옆 한 비밀궁전에서 울려퍼졌다. 영원할 것 같던 독재자 박정희가 죽은 것이다. 이로써 마산은 두번에 걸쳐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는 진원지가 됐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의에 비해 마산이 받는 대접은 너무나 약소하다. 온갖 인사들이 정치판에 나와 과거의 민주화운동 이력을 들먹이지만,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주역들은 망각과 무관심의 그늘 속에 창동골목의 허름한 술집에서만 그 영광이 되살아날 뿐이다. 2011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뒷골목에 숨어있던 그늘진 영광을 끄집어내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최초로 발간하는 증언록에는 우선 40여명의 육성이 담겼다. 앞으로 더 많은 증언자를 찾아내 보완된 .. 더보기 3·15 의거 기념식에서 느끼는 황당 시츄에이션 어제가 3·15의거 49주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김태호 경남도지사,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이 3·15묘지에 머리 숙여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오늘 경남도민일보 신문 1면 머리에 실린 사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습니다. 3·15 영령들 앞에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개 숙인 저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또, 저분들의 절을 받고 있는 3·15 영령들은 지하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실까요? 자신들이 돌을 던지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리하여 마침내 4·19혁명의 불길로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던 그 자랑스런 역사를 한 순간에 군화발로 짓밟아버린 5·16군사정변의 후예들이 오늘날 갑자기 영.. 더보기 10·26의 추억, 부마항쟁과 유신의 종말 곧 10·26사태 29주년이다. 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날을 무엇이 기념할 것이 있어서 이런 제목까지 달고 추억하겠냐마는 그래도 이맘때만 되면 아련한 기억이 향수와 함께 밀려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산골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과 더불어 그곳을 마지막 떠나기 전에 일어났던 유신독재의 종말이라는 시대적 사건은 나에게 영원히 잊혀 질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 1979년 10월 27일,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매일 아침마다 3학년 교실에 문제풀이 시험지를 돌려야 하는 게 내 일이었다. 교무실에 가면 전날 밤에 등사된 문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골이라 고입을 앞둔 중학교 3학년이면서도 도시처럼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걸 받을 수 없었던 사정을 고려한 선생님들의 배려였다. 그날..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