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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선덕여왕' 최초의 진골 왕 김춘추, 진실일까? by 파비 정부권 (11)
김춘추는 자신이 주도하게 될 일대 혼돈을 앞두고 묘한 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신라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야.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물론 이는 최초의 여왕인 덕만과 최초의 진골 왕인 자신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왕이었다는 것은 삼국사기에 근거한다. 김부식은 사기에서 혁거세거서간으로부터 진덕왕까지 28대의 왕들은 성골이었으며 태종무열왕 이후로는 진골이 왕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이 말은 진실일까? 애석하게도 김부식은 여기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내놓지 않은 채 그저 간단하게 그렇다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성골과 진골이 무엇이며 그 분류기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그럼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에 관한 특별한 기록이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이 짤막한 기사에 대한 의존도가 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김부식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즉, 박혁거세왕으로부터 진덕여왕까지는 모두 성골 왕이었으며 김춘추가 최초로 진골로서 왕이 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덕여왕』의 인기는 그동안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많은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선덕여왕』의 역사왜곡이나 자의적 해석에 대해 일각에서 비판의 날이 날카롭기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또한 그렇게 정교하고 정확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딱히 드라마를 탓할 게재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얼마나 역사적 고증에 철저했는가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선덕여왕에 대해, 신라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이렇게 따져보니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분명 격동기였다. 외부적으로는 삼국이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기다. 진평왕 말기와 선덕여왕 말기에 일어난 칠숙의 난과 비담의 난만 보더라도 당시의 권력암투가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부분 드라마 작가의 편이다. 『선덕여왕』은 드라마라는 도구를 이용해 고대 신라사회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선덕여왕』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생활상을 감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연대나 인물에 대한 각색이 좀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전체적 맥락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회에서 김춘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하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 말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식으로부터 나온 것이긴 하지만.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여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전하는 왕위 계승도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왕보다 권력이 더 센 왕후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앞서 <황남대총금관으로 본 선덕여왕 탄생의 비밀> 에서도 살펴보았다. 미실의 권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신라는 여왕이 등극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여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없다. 다만,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었다는 삼국사기의 기사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김춘추 이전에도 성골이 아니면서 왕이 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실성왕은 왕족이 아닌데도 왕의 사위로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물론 실성왕만 왕족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고 석탈해도 왕족이 아니었을 것이며, 김미추도 본래 왕족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김춘추 이전의 왕들은 모두 성골이고 김춘추 이후는 모두 진골이라고 했을까? 이 점을 해명하기 위해선 우선 성골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성골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낸 학자는 없다. 다만, 김부식의 짤막한 기사에 의존하여 성골과 진골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대세일 뿐. 김부식은 왜 이다지도 불친절한 기사를 작성했을까? 사실은 그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이상 아는 게 없었던 때문이었을까? 하긴 그도 선덕여왕 시대로부터 무려 500년 후의 사람이다.  

어떤 사학자는 법흥왕의 율령반포 이후에 신장된 왕권을 바탕으로 성역화된 것이 성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왕위계승권의 범위를 성골로 축소함으로써 왕과 왕의 형제들과 그 가족들의 신분을 신성한 것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이론도 법흥왕 이전의 성골/진골을 제대로 해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왕으로서 최초의 성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왔으며, 그의 왕후 알영부인도 하늘에서 왔다. 김부식의 의중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마도 그는 박혁거세 시조왕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아 왕위를 계승한 왕과 왕족들을 성골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석탈해는 남해왕의 공주와 혼인함으로써 성골을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역시 부마가 되어 김씨족으로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왕도 마찬가지다.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등도 모두 부마였다. 이런 사실들은 신라의 전통은 사위에게도 성골의 정통성을 이을 자격을 주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리하여 성골에 관하여 게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시조왕 혁거세거서간으로부터 왕통으로 이어진 집단이 성골이다.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에는 사위를 부군으로 삼아 계승시켰다. 이렇게 보면 박혁거세왕으로부터 진덕왕까지 꾸준하게 성골이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별로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16대 임금 흘해이사금은 15대 기림이사금이 아들이 없이 죽자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흘해는 10대 내해이사금의 손자였으나 어쨌든 당대의 왕통과는 거리가 먼 친척일 뿐이다. 그런 흘해가 기림이사금의 사위로 부군이 되어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흘해왕을 끝으로 석씨족은 왕좌에서 멀어지게 된다. 흘해왕 역시 아들이 없이 죽자 그의 사위였던 내물마립간이 왕위에 오르고 이후 김씨족의 전제왕권이 확립된 것이다. 내물왕 또한 그의 아들들이 어린 이유로 사위 실성을 부군으로 삼아 왕통을 계승시켰다. 실성왕에 이어 왕이 된―사실은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지만―눌지도 역시 실성왕의 사위였다.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왕이었다는 김부식의 주장은 그렇다면 김춘추는 현존 왕의 사위가 되어 부군의 자리에 오른 다음 그 자격으로 왕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흘해왕의 예외가 걸리긴 하지만, 굳이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이만한 논리가 따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남는 의문이 하나 있다. 김부식은 태종무열왕이 최초로 진골로 왕이 된 이래 신라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춘추는 진골이었지만 그가 왕이 된 이후 그의 왕통을 이어받은 자손들은 모두 성골이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닐까? 김춘추 이후 형성된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은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말하자면, 성골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그런데 왜 김부식은 김춘추 이후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라고 했을까? 김부식이 이 기사를 쓰면서 성골이란 무엇이며 진골이란 무엇이라고 부연 설명을 달아주는 친절함을 보였다면 오늘날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굳이 억지 해석을 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박혁거세거서간의 성골 전통을 이어받지 못한 김춘추 이래의 왕들은 모두 진골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반드시 최초의 진골 왕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선덕여왕』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다. 바야흐로 자고 있던 용이라고 표현되는 미실이 깨어났다. 그녀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최초의 여왕 덕만과 최초의 진골 왕 춘추다.
 

미실은 그동안 자신이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두 가지를 이 두 사람을 통해 깨달았다. 하나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골이 아닌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미실이 정리했다는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녀도 왕이 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아무튼 미실의 새로운 도전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도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었다는 데 대해선 회의를 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소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만큼은…. 요 며칠 매일 술자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화요일 『선덕여왕』을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보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궁금증이 바로 이것이었다. 

‘춘추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맞기는 맞나?’ 술이 덜 깬 것일까? 별 희한한 궁금증도 다 있다. 공부 많이 하신 훌륭한 분이 그냥 그렇다고 하면 믿으면 될 일이지…,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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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5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오래전에 덕만이 왕이 되기 위해선 미실의 절대적 조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덕만은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는데 이는 우선 내부의 통일이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는 인식에서죠. 물론 그 전까지는 치열한 경쟁을 하겠지만요. 작가가 어떻게 끌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마지막엔 결국 덕만이야말로 왕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손을 들어주는 미실의 마지막 모습으로 장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은 20여회가 남았으므로 최후의 일전은 피할 수 없겠죠. 그래야 시청률이 유지되는 거니까요. 하여간 동감입니다.

  2. krisna 2009.10.15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골이나 진골의 개념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만든 개념일 뿐이고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라는 개념조차 허구이죠.)
    당시에 왕이 죽고 왕위를 결정하는 것은 화백회의의 결정입니다.
    덕만이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덕만의 능력이 뛰어났고 당시에 왜에서 이미 여왕이 등장했기 때문에 논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지 그가 유일한 성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또한가지 춘추가 왕이 될 때 원래는 화백회의에서 알천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러나 알천이 자신은 늙었기 때문에 춘추가 적임자라 하며 춘추를 왕으로 옹립합니다.

    • Favicon of https://go.idomin.com BlogIcon 파비 정부권 2009.10.15 1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수도 있겠군요. 성골남진은 삼국사기가 들고 있는 선덕여왕 등극의 이유지요. 어출쌍생은 확실히 픽션일 겁니다.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 말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3. 다음양 2009.10.15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골은 부계 혈통만 성골이어야하는게 아니라 모계 혈통도 성골이어야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 파비 2009.10.16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그게 헷갈리고 있습니다. 김부식 식으로 말하자면 어느 한쪽이 성골이고 왕통을 이어받으면 성골이 되는 거죠. 말씀드렸듯 석탈해, 김미추, 실성왕 등은 원래 성골이 아니었겠죠? 그러니 성골/진골의 존재에 대해서도 논란이 생기는 겁니다. 물론 최근의 일이죠.

  4. 레아 2009.10.15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눌지마립간(삼국유사에 17대 내물마립간부터 22대 지증마립간까지 마립간이란 칭호를 넣었다고 하네요)은 실성마립간의 사위가 맡긴 하지만 내물마립간의 장남(장남이란 것에 의문도 크더군요. 내물마립간 사망 당시 나이가 꽤 들었다고 하는데 장남이라고 하는 눌지마립간이 어려 사위인 실성마립간이 즉위했다고 하니)이기도 합니다. 실성마립간이 왕의 사위이긴 한데 그것두 13대 미추이사금. 아무리 태자가 어려도 내물마립간의 사위도 아닌 선대왕의 사위가 즉위한게 신기할 따름이예요.
    골품제도가 이상하긴 하죠. 정확한 명제가 없으니. 성골, 진골 보면 둘 다 비슷한데 나눈걸로 보면. 족내혼을 하면 성골로 보는건지 저도 보면서 그건 좀 어지럽더라구요. 신라시대가 남녀가 평등해서 선덕여왕이 즉위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들었어요(그 주위 국가에서 여자가 왕이 되었다고 깔봤다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겠죠. 그냥 재미로 봤음 좋겠는데 사극은 재미로 보기가 힘들더라구요^^

    • 파비 2009.10.16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하나씩 배우는 거죠, 뭐. 우리가 아는 우리의 상식은 사실 오래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죠. 요컨대,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였을까? 신사임당은 남편 이원수가 공부는 안하고 농땡이 친다고 자주 쫓아냈다고 하던데요. 흐흐. 그 쫓겨난 이원수가 대관령을 넘던 길을 요즘 찿아다니는 분도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 하면 혼나겠죠?

  5. 역사 2009.12.12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영부인은 월성이씨 예전경주 지명이며 현재 경주이씨 시조인 표암공 알평공 딸입니다...신라건국이전에 6부촌장중 한분입니다...성골 진골은 모계로 나온거라고 보시면 됩니다...말그대로 왕족출신입니다...

  6. 레아 2010.02.13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는 현존하는 왕의 사위가 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물론 족내혼이 성행하던 시기이니 이모와 조카가 뭐 결혼할 수도 있었겠지만 김춘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모와 조카가 부부가 되는 경우가 없기도 했고요. 그리고 현존하는 진평왕의 외손자요. 전왕인 진지왕(현재의 임금인 진평왕의 작은 아버지) 친손자이기도 하니 더욱 그럴 겁니다. 그리고 사실 김춘추는 성골 신분을 가질 수도 있었어요. 친 조부인 진지왕이 폐위되지만 않았다면 아버지 쪽 신분을 따라서라도 성골신분을 가질 수 있었을 거고 그리고 신라사회에선 모계신분도 따를 수 있어서 아들이 없는 진평왕에게 왕위계승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는 역시 성골신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용수공이 죽고 용춘공과 재혼하고 덕만공주를 왕이 후계자로 심중에 두고있자 왕은 천명에게 왕위계승자의 자격을 버리고 월성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당시엔 왕족이 월성인 경주를 떠나서 살면 성골이어도 성골신분을 잃어버리고 왕위계승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죠. 그리고 드라마에선 할아버지인 진지제가 족강되어서 성골신분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신라에선 모계신분 또한 부계신분 못지않게 중요시했고 천명이 드라마상에서 처럼 월성에서 거주하고 있는 경우라면 김춘추는 얼마든지 할아버지의 폐위 유무에 상관없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서 성골이 될 수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역사에선 천명공주가 성골신분을 유지하고 살면 그 아들인 김춘추또한 어머니쪽 신분을 따라 성골신분을 획득하게 되고 그러면 덕만공주의 왕위계승 구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덕만공주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진평왕이 덕만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해 천명공주에게 서라벌을 떠나서 살라(성골신분을 버리)고 한것 이며 천명이 다른 욕심없이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므로 김춘추에게서 완전히 성골신분이 제거 될 수 있었던 계기를 잃어버린것은 할아버지의 폐위가 아닌 어머니 천명공주가 월성 즉 지금의 경주를 용춘공과 함께 떠나면서 잃어버리게 된 것으로서 김춘추는 왕족이 맞으나 왕족의 상징인 성골이 아닌 성골혈동에 가까운 진골신분의 왕족이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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