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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군대에서 도둑놈이 돼야 했는가

지난번에 내가 군대에서 지독하게 맞았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구타에 시달리던 우리는 제대만 하고 나면 부대가 있는 쪽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가 군기가 빠지고 나면 이런 감정들도 함께 빠져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추억뿐이죠. 전우애. 무용담.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제가 직장 생활할 때 알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로키산맥에 있는 매킨린지 머큐린지 하는 산에도 올라갔다온 친굽니다. 듣기로는 로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용감하고 체력 좋은 친구도 군대에서 두드려 맞기는 일반입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병장이 되고 고참이 되어서도 이 원한을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대하자마자 자기를 구타하던 고참을 도끼 들고 찾아간 내 친구 

그리고 마침내 제대하던 날, 부대 정문을 나선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자기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가슴에 새겨준 왕년의 고참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 고참의 거주지는 말년 휴가 때 다 파악해 두었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손도끼를 하나 준비한 이 친구가 고참의 집을 들이닥쳤고,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답니다. 그 고참의 집은 진해였고, 이 친구가 근무한 부대도 진해에 있는 해군이었으며, 이 친구의 집도 진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군대는 참으로 공평한 곳이로군요. 이곳에선 학연 혈연 지연도 안 통하는 곳인가 봅니다.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이런 일을 벌이는 걸 보면. 오로지 짬밥만이 모든 걸 말해주는 곳이 군대란 곳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을 또 다른 나의 과거 동료가 있다면, 아마 싱긋이 웃고 있을 겁니다. 어쨌든 구타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두겠습니다. 아직도 제 또래의 친구들 중에는 과거는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이 "군대는 맞아야 돌아가!" 하는 친구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제 그런 사람은 갈 수록 수가 줄어들다가 결국 멸종하겠지요. 

그럼 이제 제가 군대에서 도둑질을 즐기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도둑질을 즐겼다는 게 좀 어폐가 있긴 합니다만, 사실 나중엔 진짜로 즐기게 되고 묘한 쾌감까지 오더군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소속된 교육중대는 본부중대와 앙숙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등병이라도 본부중대 소속 일병이든, 상병이든, 병장이든 경례를 하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반말까지 하는 건 아닙니다만, 고참 대접을 안 해주는 거죠. 그런데 그 본부중대와 우리 중대는 부대가 붙어 있던 관계로 식당도 세면장도 식기 보관대도 다 붙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식기는 통제군번의 지휘 아래 졸병들이 모아서 세면장에서 빨래비누를 묻힌 수세미로 닦습니다. 

식판과 숟가락을 확보하기 위한 보급투쟁, 절도 

그리고 식기 보관함에 보관하는 거죠. 식판, 숟가락, 젓가락, 식기 세척용 빨래비누 이런 것들이 식기다이에 보관됩니다. 우리가 훈련소에 입대하면 식판, 숟가락, 젓가락, 반합을 하나 씩 지급 받게 되는데 이 보급품은 제대할 때까지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관을 잘 해야죠.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끔 멍청한 고문관들이 어디나 한 두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식판이나 숟가락을 분실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부대 인사계가 비품 점호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걸리면 비상이 걸리게 되겠지요.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에서 달밤에 체조를 하게 되는 거지요. 

유능한 통제군번은 바로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 상병은 가끔 우리에게 이런 지시를 내립니다. 본부중대의 식기다이를 털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털면 탄로가 날 수 있으니까 보급품 확보 작전이 시작되면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씩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씩 털도록 지시합니다. 

우리는 전방처럼 초소근무를 할 필요는 없지만 맥아더 장군이 "작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긴 이래 모든 병사는 경계근무가 의무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동초란 것을 나갑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불침번 1명, 동초 2명 이렇게 조를 짜는 거지요. 

본부중대 식기다이를 털 것을 지시 받은 동초 근무조는 총을 등에 비껴 맨 자세로 동초근무지로 가지 않고(또는 갔다가 30분 앞당겨서 오거나) 본부중대의 식기다이로 향합니다. 그리고 훈련 받은 익숙한 솜씨로 식기다이 자물쇠를 열고(경우에 따라선 드라이버로 보관함 뒤쪽을 따기도 한다) 임무를 완수합니다. 

그리고 의기양양 내무반으로 돌아와 다음 근무조와 인수인계를 하고 행복한 취침상태로 빠져드는 것이죠. 다음날 통제군번의 칭찬에 어깨가 우쭐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는 식판과 숟가락을 확보하기 위한 보급투쟁 작전 외에도 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가장 빛나는 절도 작전은 다음이었습니다.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한다

하루는 중대장이 고참들을 집합시켰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불안해서 술렁거리는 게 당연했겠지요. 왜냐하면, 중대장이 고참들을 집합시켰다는 것은 곧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튈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철모르는 이등병이라도 한 달만 짬밥 먹고 나면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발달합니다. 이런 눈치도 없는 병사를 보통 고문관이라 부르지요. 

아니나 다를까 고참들이 돌아오더니 이번엔 통제군번을 불렀습니다. 우리의 노 상병, 긴장한 표정으로 고참들 앞에 끌려갔습니다. 아, 통제군번을 어떤 부대에선 기지개 등으로도 부르더군요. 하여간 우리는 좀 유식하게 통제군번이라고 불렀습니다. 빼치카 뒤로 사라진 우리의 통제군번, 잠시 후 퍽퍽 거리는 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사라졌던 빼치카 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노 상병의 뺨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곧 모든 졸병들이 집합 당했음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아실 것입니다. 매타작이 시작된 것도 물론입니다. 우리는 이날 뒤지게 맞았습니다. 인간성 좋은 노 상병도 이날만큼은 인간성을 내무반에 버리고 온 듯했습니다. 아니면 고참들에게 빼앗겼든지.

사건의 전모는 이랬습니다. 중대장의 자전거가 빵구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빵구 난 자전거를 며칠 동안 중대장실 앞에 그대로 놔둔 채 출퇴근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고참들 중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중대장이 고참들을 불러모아놓고 분풀이를 한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로 매타작 정도로 사태를 무마할 순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우리 부대는 당분간 빙하기에 빠져 추위에 벌벌 떨게 될 것입니다. 노 상병의 사태 수습책은 이거였습니다. 중대장의 낡은 자전거를 새 자전거로 바꿔놓는다. 

물론 고참들의 지시였지만, 고참들의 지시는 단순히 여기까지였습니다. "낼모레 아침까지 중대장의 자전거를 당장 새 걸로 만들어 중대장실 앞에 갖다 놓을 것!" 그럼 우리의 노련한 통제군번 노 상병의 계책은 무엇이었을까요? 다 아시다시피 당연히 다른 부대에 가서 훔쳐오는 것입니다. 노 상병의 월급 3,000원으로는 새 자전거 살 수도 없으니까요. 

가장 빛나는 절도작전, "낡은 중대장 자전거 새 자전거 만들기" 

훈련소에는 많은 수의 훈련병 연대가 있습니다. 23연대, 24연대, 25연대, 26연대, 27연대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교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다는 걸 아실 수 있으시겠지요? 네, 바로 이걸 노리는 겁니다. 우리의 노련한 노 상병은 만약 어느 한 연대의 자전거를 집중적으로 털게 되면 사건화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각 연대에서 한 대 이상을 훔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낼모레 아침까지 새 자전거를 만들어 진상해야 했으므로 이날 밤 모든 동초들이 총 동원됐습니다. 다음날 아침 8대의 자전거가 거의 비어있다시피 한 교육생 막사에 모였습니다. 모두 삐까번쩍하게 광이 나는 싱싱한 자전거들이었습니다. 

노 상병은 이미 작전 당일 오후 각 연대를 돌며 물색을 해두었던 것입니다. 노 상병의 지시로 동초들은 따로 자전거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몇 연대 몇 중대 어느 장소에 있는 자전거를 들고 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란 참으로 대단한 곳입니다. 이곳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대엔 한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부터 시작해서 자전거 수리공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자전거 수리공이 아니라 자전거 수리에 능한 기능공이 맞는 표현이겠지요. 어쨌든 이날 새 자전거가 한 대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봐도 멋진 자전거였습니다. 보고를 받고 자전거를 확인하러 온 고참들도 흐뭇하다는 듯 노 상병을 치하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한 중대장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찢어졌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중대장이 내무반에 들어서자 침상에 늘어져 있던 고참들이 일제히 일어나 경례를 붙였습니다. "멸공!" 그러자 중대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쉬어, 쉬어, 그냥 편히 쉬어. 어이 김 병장, 박 하사, 그냥 누워 있어. 우리 테레비나 보자고."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이렇게 해서 돌아가는 거다

그럼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어땠을까요?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힐끔힐끔 분위기를 살피는 우리 졸병들의 가슴도 활짝 펴졌음은 물론입니다. 행복하더군요. 세상에. 이런 정도로 행복해지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습니다. 하여간 그때 그 시간은 무척 안도했고 행복했고 그랬던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무엇이 뿌듯했냐고요? 그야 우리가 그동안 수많은 도둑질을 했지만 이처럼 보람찬 도둑질을 해보긴 처음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부대의 평화가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 공이, 우리에게 돌아온 건 별로 없지만 우리의 것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오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쭈욱 펴면 고향의 안방~
을싸 좋다 ○○○ 신나는 어깨춤
우리는 한 가족 팔도 사나이♬"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