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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무제 노란 보안등 불빛만이 잠에서 깨어 창밖을 지키는 두시다. 쌔에에~ 혹은 끼이이이~ 혹은 우우우우~ 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왼손과 오른손 검지로 두 귀를 막아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들린다. 외부가 아니라 뇌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온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다. 다른 모든 소리들이 잠든 고요한 이 밤, 오로지 뇌세포들만이 주름진 골짜기를 행군하며 내는 거친 숨소리다. 왜?자야겠다. 잠만이 정적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데 잠들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공장에서 야근할 때 변전소 옆을 지나며 듣던 소리 같기도 하다. 마치 귀곡성을 듣는 것처럼 짜릿한 전율이 돋았었다. 배배 꼬여 양팔 벌리고 애자에 매달린 두툼한 전선이 토해낸 뜨거운 기운이 쏜살같이 정수리.. 더보기
새벽에 하는 괜한 걱정 노란 보안등 불빛이 창밖을 지키는 새벽, 눈을 뜨다. 고양이가 걱정되다. 한쪽 눈은 에메랄드빛으로 사람의 혼을 빨아들일 듯이 깊은 색이고 다른 눈은 보는 이에게 마법이라도 걸 것처럼 노랗게 빛나는 오더아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이 하얀 이 오더아이는 우리 집 계단 밑에서 태어난 고양이인 거 같은데, 벌써 살이 찔 대로 쪘다. 아마도 새끼를 밴 모양. 엊저녁에 잠깐 골목에서 보았는데, 우리가 쳐다보자 저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 신비한, 몽환적인 눈으로 우리를 마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검은 비닐봉지를 뒤지는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든지. 이 고양이가 가끔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 정좌하고 앉아서는 마치 제집인양 길도 비켜주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로 보아 틀림없이 여기가 고향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더보기
58년 개띠 우리 형 58년 개띠 우리 형은 매우 재능있는 형이었다. 우선 형은 우리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형 덕에 나는 늘 왕자 대접을 받았다. 뒷산에 가면 큰 바위에 둘러싸인 산채가 있었는데, 아래쪽 바위에 움푹 패인 구멍은 나무칼, 활 등을 넣어두는 무기고이고 위에 움푹 패인 홈은 대장들 의자였다. 우리 형은 맨 위에 앉았고 나도 그 밑에 한자리 얻어 앉았었다. 형은 그림을 아주 잘 그려 전국대회에서 문교부장관상도 받은 적이 있다. 공부도 아주 잘 했다. 전교 1등이었는데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1등을 주고 자기에겐 2등을 주었다며 씩씩거리며 항의도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어린이였다. 전교어린이회장도 했고 100미터 선수였으며 축구부 주장도 했다. 60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형은 아직도 책 보길 즐긴다. 함께.. 더보기
통닭 세마리에 혹해 만원 날리다 엊저녁 집에 오는 길에 길가에서 통닭구이 파는 트럭이 500미터 간격으로 두 대나 보였다. 길거리 음식 사먹지 마라는 애들 엄마의 늘 하는 잔소리는 원래 이럴 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배도 엄청 고픈데다가 두 마리에 칠천 원이고 만원 주면 세 마리나 준단다. 세 마리를 샀다. 동네슈퍼에서 소주도 두 병 사고. 아들,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와, 맛있겠다” 하면서 서로 뒤질세라 허겁지겁 뜯기 시작했는데 한입 물자마자 “어? 맛이 왜 이래” 모두 상이 일그러졌다. 정말 맛없었다. 맛없는 정도가 아니라 끈적끈적한 느낌에다 뭐랄까? 먹으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느낌……. 우우, 내 돈 만원, 순간 괜히 샀다는 생각과 함께 만원이 한없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젠장, 돈 없는 게 죄다, 돈만 많았으면 멕시콘.. 더보기
맞아떨어지는 예언이 하나도 없어 머릿속이 온통 시커먼 연기에 뒤덮인 듯 혼란스럽다. 마치 깜깜한 터널 속을 홀로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잠시 정신을 돌려 다른 생각을 좀 해보기로 한다. 일전에 심심풀이땅콩으로 에 대해 썼던 적이 있다. 아마도 트로이가 멸망한 원인은 왕따 당한 한 여신의 질투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야기했다. 사소한 불화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사실은 또 얼마나 많은 불합리가 내포돼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우선 나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트로이 멸망의 원인이 된 불화는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비롯됐다. 에리스가 던진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란 문구가.. 더보기
탈출 개 사살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입장은? 어제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마치 여름날 장마철 바람처럼 돌풍이 부는 것이 몹시도 음산한 하루였습니다. 외투에 묻은 빗물을 손으로 털어내며 들어온 직원 한분이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너그 사회주의자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한번 들어봐라.” 말인즉슨, “사육 중인 개떼들이 단체로 탈출을 했다. 하여 사람을 물 위험이 발생하자 안전을 위해 일단 몇 마리는 사살을 했다. 그러자 동물단체 회원들이 떼로 일어나 항의를 하고 인터넷에다 난리를 지기자(‘난리를 지긴다’는 것은 ‘난리를 친다’는 말의 경상도식 표현입니다만 어디까지나 그분의 표현일 뿐입니다) 이번엔 ‘사살하지 말고 포획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대해 너희 사회주의자들은 어찌 생각하노?”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한쪽 .. 더보기
나는 저승에 다녀온 것일까? 이슥한 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담배연기인지 김인지 모를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천장을 타고내리며 희미한 백열등을 더욱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식당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역자 형으로 생긴 부엌에선 세 명의 여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은 중년이 조금 넘은 듯 보이고 한명은 나이가 지긋한, 이제 노인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나이로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본체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 취급하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는 오래된 단골손님이라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그저 들어오건 말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매우 친밀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금단의 선을 넘어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 더보기
왕따가 만든 역사상 최대의 비극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모든 인간과 신들이 초대되었지만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이가 있었다.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다. 그녀를 왜 초대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결혼당사자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결혼식에 불화의 전령사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는 어쩌면 누군가가 에리스를 초대하지 말 것을 조언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에리스는 누구도 못 말리는 화근덩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펠레우스와 테티스가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기피해 초대하지 않은 행위는 사상 최대의 불화를 낳았다. 사소한 ‘왕따’ 하나가 하나의 도시를 영원히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불행을 잉태하리라고 누군들 상상이.. 더보기
주일날 일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문제 해결 되나요? 의료원에도 가운 식으로 만든 병원유니폼을 입은 전도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전도사는 여자였다. 전도사에게 나이 많은 환자가 묻는다.“그거 무슨 책이요?”“성경책입니다. 교회 다녀보셨어요?”“아니 안가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묵고살기 바쁜 서민이 거 갈 시간이 오데 있소.”“그래도 다니셔야지요. 주일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날입니다. 자기 일보다 먼저 주님을 위해 주일을 바치면 다 복을 주십니다.”“에이고, 그래도 그런 데 다니는 것보다 우선 묵고사는 기 급하요.”전도사의 왼쪽 겨드랑이에는 두터운 성경과 국민일보 1부가 끼어있었다. 갑자기 그 전도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정말 주일날 일하지 않아도 복을 주나요? 먹고사는 문제 해결 되나요?”내게는 아주 가까운 친척 중에 교회장로가 한분.. 더보기
나이 안먹는 방법 없을까? 제가 가끔 뉴턴의 운동3법칙을 빌려 인생에 비유하곤 합니다만, 오늘처럼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노라면 정말이지 그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관성의 법칙은 인간의 습관 혹은 습성에 관한 것으로써 넘어서기가 참 힘들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노력하면 꼭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토인비가 갈파하기를 인간사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했다지만 역시 극복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뉴턴의 세 가지 법칙 중에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 실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바로 가속도의 법칙이 아닌가 합니다. 세월 가는 것은, 그리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는, 그야말로 운명입니다. 어떻습니까? 누군가 이 두.. 더보기
막내딸 아내, 내게 처제가 있었다니 암흑 속으로부터 문득 정신이 돌아왔다. 꺼져있던 TV가 켜지면서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 화면으로부터 치이이 하는 정규방송 전에 나는 소음이 들려오는 듯이 느껴진다. 눈을 뜰까말까 망설이다 눈을 뜬다. 아직 방안은 캄캄한 어둠 속이다. 희미한 오렌지빛깔 보안등 불빛이 창가에 서서 흐느적거린다. 목이 마르다.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이불속으로부터 끄집어낸다. 억지로 일어나 방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대낮처럼 환한 빛살에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두 눈을 찡그린다. 아, 뭐하는 거지? 거실은 온통 살림살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책장에 얌전히 앉아있어야 할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선풍기가 날름 그 위에 올라앉아있었다. 장롱에서 막 뛰어나왔을 옷가지들은 그 옆에 제멋대로 뒹굴고 의자.. 더보기
이왕 해주시려거든 10억쯤 해주세요 107번 버스 안. 전화가 왔다. “농협캐피탈입니다. 고객님 연 5.7퍼센트에서 7.5퍼센트 저리로 5천만원 한도 대출해드리세요. 고객님. 혹시 필요한 자금 없으세요?”“10억 필요한데요.”“10억은 안되시고요. 5천만 원 한도 되세요.” “5천만 원은 필요 없고 10억 해주세요.” “그럼 담보대출 있으세요?” “없습니다.” “그럼 안 되세요. 고객님. 끊습니다.” 끊는다는 소리는 대개 단호하고 야멸차다. 그런데 이 아줌마, 내가 담보대출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럼 안 되세요” 하고 끊었을까? 담보대출 없다는 말은 담보여력 있다는 말인데... 서로 쓰는 국어가 다른 모양이다. 캐피탈님. 저 담보여력 있으세요. 왜 그러세요? 앞으로는 그러지 마실께요. ㅋㅋ ps; 그러고 보니 요즘 서비스 업종들의 국어가 이.. 더보기
권리금이란 게 대체 뭘까요? 내가 요즘 책상을 놓고 일하고 있는 곳은 광토공인중개사사무소다. 상남동에 소재한 이 부동산사무소는 주로 상가건물을 많이 취급한다. 그러다 보니 권리금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오늘도 "권리금에 대해선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냐?"는 말을 들었다(여기서 내가 부동산중개업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도 귀가 달려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자, 그래서 권리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봤다. 대체 권리금이란 게 뭐지? 시설권리금에 대해선 굳이 권리 주장할 필요도 없이 시설비용에 감가상각비 마이너스 시켜 계산하면 그만이니 권리금이라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시설비보상금이라 해도 된다. 그럼? 이른바 영업권과 바닥권리금이 문제다. 영업권이란 것, 이게 참 아리송한 건데, 회계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 .. 더보기
어느 골목빵집 사장의 자살 소식을 듣고 1. 며칠 전, 11월 28일 부산에서 13년간 제과점을 운영하던 이른바 골목빵집 사장이 자살했다. 의견들이 분분하다. 대형제과점들의 등살에 죽었다고도 하고 과열된 자영업 창업 열풍(과당경쟁) 탓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 빵집 주변에는 서너개의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둘러쌌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 최후의 정글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정글에 들어서지 말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변 지인들이 충고하지만 결국 정글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 물론 그것은 나의 현실이기도 하다. 죽더라도 정글에 가야만 하는 것이 실제상황이니까. 스스로 패자의 선택을 한 빵집사장님의 명복을 빌면서 자영업자란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스스로 자신을 고용한 노동자!2. .. 더보기
친구가 특수절도죄로 구속된 이유 어제 20년 전 신나통 들고 죽겠다던 친구 이야기를 했다. 1989년 4월 1일, 노조민주화파업투쟁이 처절하게 깨지던 날 아침의 이야기였다. 그 친구를 엊그제 만났을 때 “야, 그때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냐? 너 그때 진짜 죽으려 그랬냐?” 하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그럼, 진짜 죽으려고 그랬지. 그때 심정은 그랬다.” 그리고 어제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오늘은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노조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제일 먼저 구속된 것은 그 친구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흔히들 적용되는 노동쟁의조정법,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특수절도죄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창원공단에는 노조민주화 바람이 한.. 더보기
신나통 들고 죽겠다던 친구 20년만에 만나다 어제 참으로 오랜만에 20여 년 전 동지들과 술을 한잔 마셨다. 1989년 4월 1일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 그날 그 친구는 쇠파이프에 머리를 얻어터지고 기절하고야 말았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다시금 날아드는 백골단 화이바에 얻어맞고는 한 번 더 기절.글쎄, 나는 이친구가 첫 번째 기절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두 번째 기절한 것은 기억이 없다. 실은 닭장차(전투경찰버스)에 개처럼 끌려가 실리고선 나도 그놈에 백골단 화이바에 복날 개 맞듯이 얻어터지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시간이 아침 7시가 조금 못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닭장차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백골단 놈에게 얻어터지며 을 부르고 있을 때, 철창이 쳐진 창문 너머로 4열종대로 줄지어 달려오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나중에 듣기로 그들.. 더보기
꿈에 노무현대통령 만난 이야기 등 1. 어젯밤에 기석이 형님이랑 종길이랑 어시장서 술 먹다가 창동으로 진출해서 피아노 갔더니 문 닫아 다시 숨 갔더니 문 닫아 다시 그 밑에 이프 갔더니 또 문 닫아 택시 타고 자산동 어디 갔더니 또 문 닫아 그래서 대충 어디 호프 들어가서 한잔 더 하고 술이 취해 집에 들어가서 일찍 잤다(12시 전이면 일찍 자는 거다). 그러다 꿈을 꾸었는데, 글쎄 노무현대통령을 만났다. 아마도 노무현 추도집회였던 거 같은데, 거기에 노무현이 왜 나타났는지... 지금도 좀 몽롱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노무현대통령이 글쎄 내게 딸내미 갖다가 주라면서 뭔가를 집어주었는데 보니 편지가 하나 있고 그 밑에 신사임당 마나님 자태가 선명한 노랗고 빳빳한 5만 원짜리였던 것이다. 편지에는 정동지 고생 많았다, 딸내미는 많이.. 더보기
앞니 세개가 부러졌는데, 꿈이었다 어젯밤 꿈 얘깁니다. 전에도 제가 꿈 이야기를 한번 썼던 적이 있었죠? 그건 아래에다 링크해드릴 테니까 보고 싶으신 분은 한 번 더 보시구요. 상남동 어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광토부동산사무소(내가 요즘 이 사무소에 책상을 두고 1년 기간으로 연구용역 일을 하고 있다)에 잠깐 일 보러 가려는데 문득 돌아보니 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것이었다. 돌아가서 살펴보니 펑크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고 큰일 났네” 하고 있는데 마침 건너편에 세차장 겸 정비소가 보인다. 이 지형을 잘 아시는 분이라면 거기가 어디쯤인지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정비소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한손에는 펑크 때우는데 쓰는 드라이버와 무슨 기구를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에어호스에 건을 달아서는 줄을 끌고 오는데, 내가 “아이고 미.. 더보기
택배탑차까지 사고 한달만에 정리해고 당한 사연 택배회사에 취직했다. 새벽 5시부터 낮 12시까지 하는 일이다. 탑차를 사야한다고 해서 650만원 주고 중고 리베로탑차 샀다. 한달 가까이 열심히, 신나게 일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만두란다.왜? 일감이 줄어 인원을 반으로 줄여야겠단다. 그럼 탑차는 인수할 거냐? 그랬더니,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다음주까지 생각해보겠단다. 아, 억울하다. 인생 조까타. 사장을 확 패주고 싶다. 그러고 오후에 투잡으로 하는 택배회사에 배달하러 갔다. 나는 월영동 구역인데 합성동 배달하는 놈이 내 물건을 지 차에다 실어놓고 있다. 보았더니 한집에만 스물 몇 개가 한꺼번에 들어가는 거다. 아, 씨바, 뭐야? 했더니 경리왈, "아저씨,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들뻘이나 되는 그 젊은 놈도 말이 없고... 이건 무슨 시.. 더보기
이란에선 정말로 마라톤을 금지하고 있을까요? 2차 페르시아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왕과 전사들의 옥쇄를 소재로 만든 영화 이 유명하지요. 스파르타의 명예를 드높인 감동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그리스 승리의 주역은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마라톤평원에서 치러진 전투에서의 승리를 전하기 위해 42.195킬로미터(실측한 결과는 34킬로 정도였다지만)를 내달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하고 외친 뒤 죽었다는 병사를 기념해 오늘날까지도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지요. 2차 전쟁 이후로 그리스의 맹주는 아테네가 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의 주역 역시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였습니다. 이번엔 페르시아가 해군력으로 침공하게 되는데 스파르타는 배가 7척인가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살라미스해전에서 거둔 그리스해군의 승리는 온전히 아테네의 몫이었습니다. 이후 아테.. 더보기
자기 부인 이름이 어이 여자? “어이 여자, 물티슈 있나, 없나? 있나? 어?” 방금 전 창원 상남동 cu마트 앞을 지나다 마주한 풍경이다. 벰베 한 대가 마트 앞에 서있고 그 안에는 예의 여자가 조수석에 앉아있었으며 차 옆에는 너덧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 둘이 서있다. 남자는 막 마트 문을 열고 들어설 모양으로 고개를 뒤로 돌린 채 마치 따가운 햇살을 마주했을 때 양 미간을 찌푸리는 것과 같은 표정을 하고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따지듯이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내가 경상도 사람이 아니었다면 서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어이 여자, 물티슈 있나, 없나? 있나? 어?” 여자의 반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익숙하게 늘 그러듯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혹은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 더보기
잊히지 않는 청국장 냄새의 추억 점심으로 맛난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문득 오래전 상주 공성면소재지에서 먹었던 청국장 생각이 난다.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청국장도 그 맛을 낼 수는 없었다. 아아, 그윽하고 진한 그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음식 맛을 다 보았지만 공성면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주름진 할머니가 내오던 그 청국장만큼 오래도록 기억을 떠나지 않는 냄새는 없었다. 그때의 그 청국장 냄새는 향기였다. 마침 비도 추적추적 내려 진한 향기는 이른 봄날 초가의 굴뚝연기처럼 오래도록 바닥을 맴돌았었다. 다시금 그곳에 가면 그 집과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더보기
추어탕을 보신탕으로 착각해 벌어진 사연 창원 상남동 삼원회관 추어탕집에서 점심 먹은지가 한시간도 채 안됐는데 또 배 고프다. 한그릇 더 먹을 걸 그랬나? 아무튼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고사가 하나 있다. 고사라 해서 너무 긴장들 마시라. 10년 전 내 이야기다. 상남에서 잠깐 부동산업을 하던 시절, 전날 밤 고주망태로 술을 먹고 삼원추어탕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는지 청도식 혹은 밀양식 추어탕이 나오던데 그때는 남원식 추어탕이 나왔다. 경상도 추어탕이 맑은 국물에 싱싱하게 푸른 시래기를 얹어 나오는 것과는 달리 남원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뻑뻑한 국물이 특징이다. 술이 덜 깨 알딸딸한 상태였던 나는 추어탕을 주문해놓고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 뻑뻑한 국물을 보자 그만 보신탕으로 착각했던가보다. 대뜸 산초를 크게 두 숟가.. 더보기
내가 열흘 만에 해고된 사연 해고됐다. 점심 늦게 먹고 왔다고. 재보니 35분에서 40분 정도 걸렸다. 식당 가는데 5분, 오는데 5분, 밥 기다리는데 5분 쓰면 벌써 15분이다. 나머지 20분으로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고 양치 하고 그러면 대충 딱 맞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가라면 나가야하는 게 피고용자의 운명. 사장에게 물었다. “시급을 얼마 계산해주실 겁니까?”“4천원입니다.”“법정최저임금이 4580원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봐라, 봐라, 이자 나오네. 이제 드러나는구먼. 나는 이런 사람들은 고대로 대접해줍니다. 내가 생각 좀 할라켔는데, 마음대로 하이소. 노동청에 가서 고발부터 하이소.”“그럼 4천원 계산해서 얼마나 지급해주실 건가요?”“아마 한 10만원 될 겁니다.”작업하다 실수해서 물어내야 할 돈이 25만 원쯤 된단다... 더보기
정겨운 소시적 사투리, "어디 가여?" “뭐 해여?”“어디 가여?”“나 학교 가여.” “논에 물 대러 가여.” “소꼴 베러 가여.”이거 내가 어릴 때 쓰던 말투다. 중학교 때까지. 부산으로 고등학교 갔는데, 거기선 갱상도놈, 전라도놈, 강원도 감자바우, 멍청도, 서울촌놈 마구 뒤섞여 있었는데 이런 말투를 가진 친구는 거의 없었다. 예천 아이들이 좀 비슷하긴 했는데 그래도 문경말투는 아주 독특했다. 지나가는 여학생 보고 “야, 이야기 좀 하자” 그러면 그 여학생은 “놔여...” 하는 말로 거부의 뜻을 전했는데, 아아, 지금도 그 “놔여~” 하던 목소리가 정겹고 그립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인터넷에 보니 온통 우리 고향 말투가 넘치고 넘쳐나더라. “여”로 끝나는 그 정겨운 말투가 인터넷 대표 사투리가 되었더라는 이 놀라운 사실. 그러나 나는 .. 더보기
우리집 태풍 볼라벤 피해상황 우리집 태풍 피해상황은 마당에 심어놓은 고추나무가 쓰러진 거 외엔거의(아직 발견 못한 게 있을 수 있으므로) 없네요. 마당에 나온 딸내미, “에이, 너무 싱겁다. 재미가 없잖아.” 하면서 짐짓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대충 맨 아래 사진 모양과 비슷한데요, 아쉽군요, 사진을 못찍어놔서...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배우 해도 되겠어요. 사진 맨 위는 태풍 오기 전의 고추나무 모습이고, 중간은 태풍 지나간 뒤의 모습입니다. 빠알간 고추는 제가 미리 다 땄습니다. 고추나무가 사진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으므로 약 50여개쯤 됐습니다. 이상, 상황 끝. 더보기
장대비에 빠알간 고추는 더욱 붉게 빛나다 여름을 떠나보내듯격렬한 몸짓으로 떨어지는 장대비에빠알간 고추가 선홍색 핏빛으로 더욱 붉게 빛난다.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폭염은 두려운 듯 재빨리 머리 숙여 물러나고 대지를 달구던 열기는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무슨 말이냐고?걍 시원해서 기분 대빵 좋다는 말이다.2012/ 8/ 22/ 페이스북 담벼롹 더보기
비 오는 날 '치맥'하자는 초딩딸 “아빠, 오늘 비도 오는데 치맥이나 할까?”딸이 말했다. “……”“치킨은 내가 다 먹고 맥주는 아빠 혼자 다 마시고, 어때?”“……”“좋은 생각이잖아.”“돈은 누가 낼 건데?”“당연히 아빠가 내야지.”좋은 의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암튼, 우리딸, 확실히 영재가 맞는 거 같다. 같다. 2012/ 8/ 23/ 페북 담벼롹 더보기
스탠스와 나이브에 대한 잡생각 한때 ‘스탠스’란 용어가 유행하다 잊혀진 가수의 유행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나이브’란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했다. 나이브 역시 잊혀져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도 가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지성의 공증인이라도 되는 듯이 불려나온다. 나도 이 나이브란 뜻 모를 말을 언젠가는 꼭 한번 써봐야지 했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다.더 이전에 ‘디테일’이란 말이 또 많이 썼었는데 어느 토론프로그램에서 이 디테일이란 말을 하는 걸 보고 “그냥 적나라하게, 라고 하면 더 좋을 걸 꼭 디테일이라고 해야 되나?” 했었는데, 영문과 나온 와이프가 옆에 있다 “정말 그렇네” 하고 맞장구쳐주어서 으쓱했던 적이 있다. 어떤 경우엔 우리말보다 외국어가 더 어울릴 때도 있지만(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주니까), 대부분의.. 더보기
내 꿈은 환타풀장에서 수영하는 것이었다 엊그제 딸이 내게 물어봤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솔직히 대답할 게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난 꿈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게 어떤 꿈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난 아무런 꿈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나름 꿈이 하나 생겼는데 금오공고나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해 빨리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내 꿈이라기보다는 집안에서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사항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특차로 학교장 추천이 필요했던 이 두 학교 중 어느곳이든 원하는 곳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물론 그후 불과 몇 달만에 내 인생은 처참한 종말을 맞게 되지만... 아베베 실습장에서 기름범벅으로 서있는 내 실습대 앞을 하얀 카라의 여고생들이 원숭이 구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