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5.09 잡상인 취급받은 지율스님 4대강 사진전 첫날 by 파비 정부권 (40)
  2. 2009.07.18 낙동강은 산도 뚫고 흐른다 by 파비 정부권 (5)
  3. 2009.07.16 4대강에 이은 MB의 원대한 포부 by 파비 정부권 (8)
  4. 2009.03.31 별뜻없이 낙동강 명예를 훼손했네요 by 파비 정부권 (2)
  5. 2009.03.27 낙동강 천삼백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by 파비 정부권 (8)
"지율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진전 첫날부터 봉변을 당했다.
우리는 봉변이지만, 그러나 저쪽은 정당한 물리력 행사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요일 밤에 김훤주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일 별로 할 일 없나?" "별로 할 일이 없기는 없지." "그럼 내 대신 내서에 가서 낙동강 사진 전시 좀 해라." 김훤주 기자는 부인이 많이 아픕니다. 몇 년째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습니다. 마침 토요일에 간병인이 휴가를 빼고 늦게 오나 봅니다.

삼풍대 공원에 늘어놓은 낙동강 사진전. 그냥 늘어놓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달그리메님이 이벤트도 준비했지만 아무것도 못했다. 할 기분도 아니었다.


낙동강 사진전은 지난 목요일인지 수요일인지 급조된 모임(물론 김훤주 기자는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지만)에서 금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매주 2회 이상 하기로 한 행사입니다. 모임의 구성은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두어 명 있고, 경남아고라에서 너덧 명, 경남블로그공동체 회원들 몇 명 해서 열두 명입니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시간을 내어 전시회를 하게 됩니다. 일꾼은 앞으로도 계속 영입할 계획입니다. 

지율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진전, 금년 말까지 매주 열기로

원래 계획은 첫 사진전을 5월 14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기로 했고 모든 회원이 다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밤 김훤주 기자에게서 온 전화는 그 전에 내서에서 장이 열린다고 하니 거기에서 시범적으로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블로거 달그리메님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열리는 장이었으므로 달그리메님이 추천해서 급히 계획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아무튼, 별로 거절할 명분이 없었으므로 저는 다음날 아침 일찍 김훤주 기자가 사는 창원시 용호동으로 가서 지율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진 판넬들을 인수받았습니다. 아, 그 이야기를 안했군요. 낙동강 사진전은 지율스님이 공을 들여 찍은 낙동강 사진들을 전시하는 행사입니다. 아름다운 낙동강과, 같은 장소에서 찍은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는 낙동강을 함께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적은, 그래서 4대강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걸 굳이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차분하게 실물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자는 게 이 사진전의 취지가 아닐까 그리 생각합니다. 판넬은 일찍 인수했지만 출발은 1시에 했습니다. 11시까지 장터에 도착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들었던 저는 아침 8시부터 움직였지만 헛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헛고생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서로 가는 길은 무척 밀렸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앞에서 서마산 나들목까지 무려 30분이 소요됐습니다. 왜 빨리 안 오느냐는 달그리메님의 독촉전화가 몇 차례나 이어지고, 저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저로 말하자면 핀치히터인 셈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대타란 것이 기회가 왔을 때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발부터 토요일이란 특수성을 생각하지 못한 시간계산으로 욕만 먹게 생겼습니다. 내서에 들어서서 위치가 어디냐고 전화하니 내서여고를 돌아 삼풍대(?)란 공원이라고 했습니다. 달그리메님이 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차를 대고 트렁크에 실린 34장의 사진 판넬을 꺼내 옮겼습니다.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사진전 첫날부터 벌어진 소동 아닌 소동은 결국 진짜 소동으로

"어디 유치원에서 소풍 온 모양이지요?" "아니요, 이게 장텁니다." "아, 네." 네, 하고 대답했지만 아직 그게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했지만 더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바빴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무슨 행사를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장터람? 무슨 5일장 비슷한 게 열리는 줄 알고 왔던 저는 저으기 실망했습니다. 주로 초등학생들 천지였기 때문입니다.


늦게 도착한 이시우 기자가 판넬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저쪽에서 장터가 열리고 있다.


아 참, 경남도민일보 이시우 기자는 제가 태워 가기로 했지만, 달그리메님의 늦었다는 독촉에 버스 타고 오라 그러고 혼자서 먼저 출발하는 소동 아닌 소동도 잠깐 있었습니다. 이시우 기자가 없으니 일손도 그만큼 달렸습니다. 풀어보니 장수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공원 가운데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공원 울타리쪽으로 길게 판넬을 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판넬을 널고 있는데 작은 소란이 들렸습니다. 저쪽 끝에서 역시 판넬을 널고 있던 달그리메님과 어떤 여자분 한 분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분이 돌아가고 나서 제가 달그리메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요? 혹시 동사무소에서 나왔던가요?" 그러나 달그리메님은 정확한 설명도 없이 혼자 투덜거리기만 했습니다. "자기들이 뭔데 우리한테 허가를 받니 안 받니 하는 거야."

저는 그냥 웃고 넘어갔습니다. 이런 일이야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며칠 전 모임 때도 그런 걸 예상했었습니다. 경찰이나 관공서 등에서 분명히 저지가 있지 않겠느냐,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이나 관변단체 회원들로부터 못 볼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사진전이 사전에 시청 등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모임의 대표로 뽑힌 김훤주 기자는 "민주노총에 알아보니 사진전은 집회가 아니므로 사전에 허가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진전이 선관위 등에서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던 만큼 마찰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허가 따위를 받고 하게 되면 이 사진전은 결코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모두들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왜 우리 허락도 안 받고 함부로 사진을 전시하는 거냐!"

그런데 이 허가에 관한 문제가 첫날부터 불거진 것입니다. "에이, 동사무소 직원쯤이야, 뭐."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한 저는 계속 판넬을 널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이번에 서너 명의 여자분들이 다시 달그리메님에게 다가왔고 무슨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두세 명의 남자들이 추가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엔 아까처럼 작은 소동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왜 허락도 안 받고 여기다 판을 펼치는 거야?" 거의 반말조의 새로 온 남자는 거칠게 달려들었습니다. 달그리메님은 여기에 이렇게 받아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왜 우리가 허락을 받아야 되지요? 아니, 여기 장터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방해 안 되게 하려고 이렇게 구석에다 그냥 사진만 널어두고 있고, 그런데 이걸 왜 댁들한테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요."

송순호 내서 창원시의원 후보와 이시우 기자가 대화하고 있다.


저는 그때까지도 그분들이 동사무소 직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제 생각이 좀 짧았다는 점을 지금은 알겠습니다. 무슨 동사무소 직원들이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몰려다닐 리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로서는 동사무소 직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누구라고 생각했을까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분들은 그 공원에서 장터를 열고 있던 푸른내서주민회 회원들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이렇게 몰아붙였습니다. "왜 허락도 안 받고 여기다 판을 펴는 거냐? 빨리 철수해라." 나중에 달그리메님과 나눈 의견이었지만, 그들은 자기들 영역에 우리가 들어온 것이 몹시 불쾌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달그리메님과 그 일단의 군중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서서히 제가 서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되고 말았고, 그 이후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가 한 남자분에게 물었습니다. "아, 저, 동사무소에서 나오셨나요?"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그분들이 동사무소 직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기 주최측이요, 주최측." 그때서야 저는 아, 이분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주최측이란 말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주최측이라니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허락 받지 않은 사진전, 빨리 철거해라

"저기 공원 입구에 붙여놓은 플래카드가 안 보인단 말이요? 저것도 안 보고 여기 들어왔어요?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글쎄요, 저로서는 무엇이 상식인지 모르겠지만, 플래카드를 보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너무 늦었고, 그 때문에 미안했으므로 너무 바빴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데 들어오면 입구에 붙은 플래카드는 읽어보고 오는게 상식이지" 하면서 참 무식한 사람 보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있는 저를 향해 이번엔 다른 한 남자가 십 원짜리 욕설을 뱉으며 다시 몰아붙였습니다. 
골자는 달리 말할 것 없이, "왜 허락을 안 받고 여기다 판을 폈느냐? 빨리 철수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막말을 듣고 가만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거대한 덩치를 몰고 뛰어서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힘껏 떠밀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배가 제 몸에 부딪힐 때 저는 그것이 마치 산돼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척추디스크를 수술한 환자입니다. 요 며칠 새에도 다시 허리가 아파 고생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것은 매우 조심하면서 그리고 약간의 또는 심한 통증을 참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입니다. 가만 서있다가도 아무런 사전 예고나 징후도 없이 주저앉는 일은 제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이런 사정을 남들은 알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 덜컥 겁이 났던 것입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다고 힘차게 어깨를 치는 것도 두려워(그리 되면 한참을 종아리가 저릿저릿 아프니까요) 피하는 제가 이 순간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휘청하고 중심을 잃은 제 몸은 어디로 가야할지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마침 뒤에는 잔디화단이 조성되어 있었고 저는 거기에 일부러 벌렁 누워버렸습니다. 그래야 안 다치니까요.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저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등이 굽은 할머니처럼, 또는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가끔 있는 일이므로 크게 불안하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내일이면 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일생생활을 하게 되겠지요. 다행히 오늘은 일요일이기도 합니다.

장터와 사진전. 사진전엔 아예 관심도 없다. 그러니 이게 장터에 전혀 방해 되는 게 아닌 셈이다.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절차상의 문제

아무튼, 그렇게 작은 소동이 있었고, 덕분에 분쟁은 거기서 종결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큰, 산돼지 같다고 느꼈던 그 남자도 가고 여자분들도 모두 갔습니다. 한 남자만이 남아 있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너희들이 잘못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라. 왜 인정 안 하느냐. 이런 걸 전시하려면 우리한테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전화라도 미리 할 수 있었던 거 아니냐."


달그리메님이 다시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아니 푸른내서주민회가 무슨 권력단쳅니까? 왜 우리가 주민회에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요? 나도 거기 회원으로 있었지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이 사진전이 푸른내서주민회 장터 취지하고 뭐 배치되는 게 있습니까? 특별히 방해되는 게 있냐고요. 그리고 이렇게 구석에서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공원은 우리가 빌린 것이므로(공원을 통째로 푸른내서주민회가 빌렸다는 말도 저는 도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누구든지 이 공원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우리에게 허락을 받아야 된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해서 결정한다,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판단이 들었던 것은 분쟁 중에 마지막에 남았던 남자분이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시종 그 산돼지 같은 남자와는 달리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속에서도 우리를 잡상인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끝까지 우리의 항복을 요구하는 분위기였으므로 제 입장에선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거 싹 걷고, 새로 까세요."

지금 당장 다 걷어내고 새로 깔라고?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부로 허락은 해주겠는데, 이전에 깔았던 것은 허가 받고 한 일이 아니므로 철거해라, 그런 다음 새로 까는 것은 허가 받은 행위로서 합법적이다, 뭐 그런 뜻이었을까요? 우리는 그 말에 더 황당해졌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아서는 그것을 매우 당연한 듯 여기고 있었습니다. 확신에 찬 어조와 표정, 당당함 같은 것을 그들의 태도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전시회는 그냥 진행됐지만, 방치된 상태로 제멋대로 사진전

더 이상 그들과 대화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그만 가보시죠. 철수하든지 어쩌든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달그리메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만 철수합시다. 이 기분으로 이거 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거 같네요." 달그리메님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 남자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달그리메님이 말했습니다. "경찰들하고 싸우기라고 했으면 신이라도 났지. 이거 대체 뭐야." 


이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고 늦게 나타난 이시우 기자가 뛰어오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셨지요. 판넬을 다 깔았습니까?" "그게 아니고 철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 말하고 싶은 기분 아니니까, 달그리메님에게 물어보세요." 잠시 후 이시우 기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일단 제가 푸른내서주민회 회장님을 한 번 만나 볼게요. 그래도 그냥 갈 수야 있습니까?"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철수하려면 다시 판넬을 걷어야 하는데 그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것이지요.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 푸른내서주민회 회장이 왔습니다. 그는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이해를 하라고 했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좀 와일드한 회원들인 모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회원들 중에는 운동권 출신이나 당 쪽에 있는(아마 민노당을 말하는 듯)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분들이 좀 거칠고 드세다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해하고 기분 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장님 같으면 기분이 풀리겠습니까?" 그러자 회장이 말했습니다. "일단 제가 가서 사람을 찾아보고 다 데리고 와서 사과를 시킬게요."

사진을 본다면 무척 느끼는 것이 많을 텐데, 아쉽다. 사람은 별로 없지만, 사진은 정말 훌륭했다.


그러나 거기 모였던 마지막 한 명이 떠날 때까지도 사과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가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전시한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한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과 따위는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부분에 대해선 맞을 짓을 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푸는내서주민회의 회원이기도 한 모 마산시의원이 한 공무원을 회식자리에서 폭행 했다는 기사가 났을 때도 일부 사람들은 맞을 짓을 한 놈은 맞아도 된다는 반응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폭행에 대해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이 저지르는 폭행은 야만적이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해할 정도인 것입니다.


참 서글픈 것은 분쟁의 상대방이 경찰이나 공무원 혹은 관변단체 쪽 사람들이 아니라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푸른내서주민회는 민노당 당원,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축이 된 단체라고 했습니다. 물론 평범한 시민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푸른내서주민회를 잘 모르는 제가 장담할 순 없지만, 그 성격이 진보적이라고 분류할 만하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들로부터 지율스님의 4대강 사진전이 잡상인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거 혹시 우리 때문에 저 분들이 4대강사업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거 아닐까? 그리고 또 서글펐던 것은 푸른내서주민회 회장이 대신 사과와 위로를 하고 간 다음에도 어떤 여자분이 다시 달그리메님에게 와서 "허가는 아니라도 전화라도 미리 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달려들었다는 것입니다. 

달그리메님은 대화 상대가 안 될 거 같아 "그만 치웁시다" 하고 말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모여 우리를 성토하고 있어나 봅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공원을 푸른내서주민회가 빌렸다는 것, 어떻게 공원을 특정단체가 통째로 빌릴 수 있는가 하는 것,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 공원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그 옆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푸른내서주민회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하는 것들입니다.  

저녁에 저와 달그리메, 이시우 기자, 그리고 늦게 김훤주 기자가 모였습니다. 이유는 분쟁은 달그리메와 있었는데 봉변은 제가 당했으므로 위로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술이 한 잔 들어가자 저는 갑자기 시셋말로 쪽팔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말이죠. 그 사람들이 '당신들 어디서 나왔어요? 어느 단체인지 빨리 말해요, 했을 때 제가 뭐라 그런지 아세요?"

나약해진 파비, 그러나 사실 진짜로 겁난다

"제가요. 그때 억수로 겁이 나더라고요. 쪽팔리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잖아요. 저 우리는요, 무슨 단체 그런 거 아니고요, 그냥 개인인데요, 저도 실은 배달 나온 거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보조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게 말했잖아요. 얼마나 닥달을 하든지 그만 나는 사실 심부름꾼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변명한 거지요."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달그리메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오늘 파비님 확실히 알아봤다. 그렇게 나약해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사진전 이거 할래요? 또 내일부터 겁나서 나 못하겠다, 그러는 거는 아니겠지? 앞으로 갈 길이 태산인데 오늘 이거는 좋은 연습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요. 좀 나약해지지 말고 힘 좀 내소, 힘." 그래서 내친 김에 쪽팔린 얘기를 하나 더 했습니다. "그런데요, 내가 허리를 잡고 인상을 쓰고 있으니까 그 남자가 그러더군요. '아픈 척 하지 말고…', 하하~."

그런데 달그리메님, 저 아픈 척 하는 거 아니거든요, 진짜 아프거든요,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글쎄 화장실을 못 가겠는 거 있지요, 허리가 구부정한 게 걸을 때마다 왼쪽 엉덩이 윗부분과 종아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요, 엊저녁 술마실 땐 종아리가 찌릿찌릿한 게 마치 안마 받는 것처럼 기분 좋다고 했지만, 오늘은 영 기분이 안 좋거든요, 꼭 시장에서 굽은 허리로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 같거든요.  

내일 세번째 블로거 인터뷰로 전수식 후보 인터뷰장에도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괜찮아지겠지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누워있으면 괜찮아지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컴퓨터 앞에 꾸부정하니 앉아 있으면 그때까지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그럼 내일 블로거 인터뷰장에서 저 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제 경험에 의하면 복대 메고 하루 정도 요양하면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진답니다.

사진전을 함께 했던 다른 분들과 술자리를 여느라 집에 좀 늦겠다고 전화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대뜸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떠밀렸나? 정신이 있는 기가 없는 기가. 떠밀리면 어떻게 된다는 거 모르나? 그리고 푸른내서주민회가 하는 장터에 왜 갔노? 알면서도 갔단 말이가? 그러니 그런 일 당하는 게 당연하지." 

낙동강 사진전 첫날의 감상, "산 넘어 산이다!"

민노당 송순호 의원과 이시우 기자.

저는 얼른 변명을 했습니다. "아, 그런 게 아니고, 나도 몰랐다. 그냥 5일장 같은 거 열리는 줄 알았다. 내가 알았으면 갔겠나. 그라고 어제 김훤주가 꼭 부탁해서 거절도 못하겠고, 애민씨 몸도 안 좋은데 간병인도 없다 그러잖아. 그리고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더라. 아, 한 명 있었네. 민노당 당원, 마산시당 운영위원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고, 하여간 민노당 당원 한 명은 봤다."

달그리메님과 저, 이렇게 두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 틈에 그 민노당 당원이 서있었지만, 그는 구경만 할 뿐 말려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말려줄 것을 기대했지만 사실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아마 그도 우리가 허락 받지 않고 자기들이 펴놓은 장터에 끼어든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는 민노당에 대해 자주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저를 싫어하는 민노당원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정말 부질없는 생각이었으며 잠깐이라도 섭섭하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신 사과와 위로를 베풀어 주신 푸른내서주민회 회장님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행사를 하게 되면 꼭 허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달그리메님은 그래도 절대 사전에 허가 받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만, 저는 허락 받지 않고서는 절대 푸른내서주민회가 여는 장터 옆에서 4대강사업 반대 사진전을 열지 않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옳든 그르든 그 입장을 떠나서 주최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주변에 사진을 전시한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과를 하고 보니 그렇다면 앞으로 사진 전시회를 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과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제가 사과를 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건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사과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군요. 이보다 더 험한 일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역시 달그리메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렇게 나약해가지고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약한 말 해보겠습니다. "저, 김훤주 심부름 간 거거든요. 그냥 보조였는데요. 아, 그런데 이거 봉변 당하고 보니 기분이 좀 그렇네요." 이상 주저리주저리였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3년후에도 우리는 낙동강을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을까?
물은 부드럽습니다. 물보다 더 부드러운 건 세상에 없습니다. 음~ 공기가 있군요. 그러나 아무튼 물보다 더 부드러운 건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물은 부드러운 만큼 참 유연합니다. 산이 앞을 가로막으면 돌아갑니다. 소를 만나면 서두르지 않고 쉬었다가 동료들이 많이 모이면 다시 넘쳐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즐겨 말하기를 "물처럼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물은 유연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태백은 물속에 뜬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썼습니다.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이태백이 놀던 그 달도 실은 물에서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태백이 달을 잡으러 물로 뛰어들었다지요?

낙동강이 내려가다가 산을 만났다. 돌아갈 길도 없다. 바로 구무소다.


태백산은 낙동강과 한강이 발원하는 곳입니다. 한줄기는 북으로 흘러 강원도와 충청도를 적시고 경기평야를 일군 다음 황해에 몸을 담급니다. 나머지 한줄기는 남으로 흘러 경상도 땅을 휘돌아 김해에 드넓은 삼각주를 만들고 마침내 남해와 몸을 섞어 어느덧 태백산에서 헤어진 두 개의 물줄기는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낙동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채 30 리도 못가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합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은 유연합니다. 가로막으면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곳에선 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아, 이럴 때 물은 어찌 해야 할까요? 그러나 물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물이 단단한 바위벽을 뚫기 시작합니다.  

강은 결국 산을 뚫고 지나가기로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물줄기는 산을 뚫고 아래로 흐릅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동굴은 낙동강이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남해에 다다르기 위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이름 하여 구무소입니다. 요즘은 한자음을 따서 구문소라고도 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산을 뚫고 나온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동굴 벽면을 자세히 보시면 각자가 보이실 겁니다.

'오복동 자개문'이라고 한답니다. 자개문은 확실히 알겠는데 그 앞의 글자는 한문 실력이 형편없는 저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혹시 각자의 정확한 음과 뜻을 아는 분이 계시면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비결을 전하는 정감록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없어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가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오복동이란 이상향이 나온다." 이처럼 자시에 문이 열린다고 해서 자개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굴 안쪽 햇빛과 그늘이 갈라지는 지점에 "오복동 자개문" 각자가 보인다.


중국의 도연명이 설명한 무릉도원도 그 입구가 구무소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무릇 사는 곳은 달라도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는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그런데 구문소 보다는 구무소가 훨씬 부드럽고 듣기 좋은데 왜 굳이 한자음을 따르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구무소라 하면 구멍과 소가 합쳐진 말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지만, 구문소라 하면 별로 다가오는 느낌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인근 동네의 소벌이 한자음을 빌려 우포늪으로 불리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되어 한편 씁쓸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인공동굴 위에 새겼다는 흐릿한 각자



"옛날 구무소가 생기기 전에 황지천과 철암천에는 각각 커다란 소가 있었는데, 황지천에는 백룡이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았다. 이 둘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루는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을 뚫고 청룡을 기습하여 제압함으로써 오랜 싸움을 끝내고 승천하였다. 이때부터 구무소가 생겼다."

이외에도 구무소에는 무수한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엄종한이란 어부가 구무소에 빠져 용궁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야기며 선덕여왕의 아들 효도왕자와 월선낭자의 사랑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혹은 문집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무소의 옆에는 동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동굴이 아니라 사람이 뚫은 굴입니다. 일제시대에 한 일본인이 뚫었다고 하는데 그는 굴을 뚫고 그 윗부분에 자개문의 각자를 흉내 내어 글을 새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글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천한 한문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자가 너무 흐릿했던 탓이기도 합니다. 자개문에 비해 각자의 정성이 부족했던 게지요.

그래서 그 이후로 물만 이 석벽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차도 지나다니게 되었습니다.

황지천이 구무소를 지나면 바로 철암천과 합류한다.


백룡이 구무소를 뚫어 청룡을 물리친 석벽 위에는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자개루입니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워낙 경사가 가파른지라 올라가는데 땀 깨나 뺐습니다. 그러나 위에 올라가니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백룡이 구무소를 지나 청룡을 습격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석벽을 뚫어낸 물은 물론 황지천입니다. 아마 백룡과 청룡의 전설이 만들어진 것도 결국 산을 뚫고 흐르는 황지천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낙동강의 발원천도 황지천입니다. 결국 낙동강을 지배하는 것은 황지천, 즉 백룡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구무소 위 석벽 위에 지어진 자개루.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다 한 컷.


4대강 살리기 하고 나면 낙동강 천리길에 지천으로 깔린 모래사장들은 다 어디로 갈까?  
이제 물은 계속해서 남으로 흐릅니다. 이렇게 물길은 계속 흘러 육송정을 지나고 석포리를 건너 봉화를 지나고 하회마을을 휘돌아 남으로 남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태백산에서 출발한 우리는 지금 상주 경천대를 지났습니다. 태백산을 뚫고 내려온 낙동강은 경천대에서 대지를 굽이치는 강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려놓았습니다.

뱀처럼 휘어지는 강줄기 옆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경천대의 절경에 취해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가슴 한구석에서는 그러나 답답한 슬픔이 아프게 배어있었습니다. 저렇듯 뱀처럼 굽이치는 강물과 빛나는 백사장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대표 신정일)>의 낙동강 도보기행에 따라나서기로 결심한 것도 사실은 그것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 것 같다는 불안 말입니다. 이 정권은 온 국민이 대운하에 반대하는데도 굳이 '4대강 살리기'란 묘한 이름을 만들어 강 죽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명박 정권의 목적이 오로지 강을 파헤쳐 건설수요를 창출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돈 때문이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국민들의 혈세를 걷어다 자기 동족인 건설족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지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저 아름다운 자연,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사장은 어떻게 될까요? 3년 6개월 후에도 우리는 저 모습을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6m 깊이까지 파헤쳐져 모래들은 모두 속세로 실려나가고 결국은 수로로 변한 참담한 모습만을 보게 될까요?


상주 경천대 (사진=경천대 홈피)


제가 낙동강 1차 도보기행에서 위의 사진들을 찍은 날은 3월 28일이었습니다. 당시는 가뭄으로 태백시내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 데모가 벌어지던 상황이었지만, 보시다시피 낙동강 발원천은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발원지(문헌상) 황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물이 마르면 나라에 변고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4차 기행까지 마쳤으며 상주 경천대를 지났습니다. 아직 절반도 못 내려왔습니다. 다음주에 2박 3일 일정의 5차 기행을 떠납니다. 그러면 아마 상주 낙동을 거쳐 구미를 지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낙동강 칠백리 뱃길을 걷게 되는 것이지요. 이명박은 혹시나 조선시대에 뗏목이나 작은 배가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거대한 선박을 띄울 생각을 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pabi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명박은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국민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데도 굳이 고집을 꺾지 않고 밀어붙이는 걸 보면 그는 불도저가 확실합니다. 그의 대운하에 대한 집착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꾸고 대운하가 아니라 정비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 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불도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도저에겐 사람의 마음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오늘 돌발영상이란 걸 보았습니다. YTN 뉴스가 만든 영상인데요, 주인공은 이명박입니다. 역시 그는 의연했습니다. 농촌에 봉사인지 시찰인지 갔다가 지역 주민들에게 반말 짓거리 하는 돌발영상을 본 네티즌들에게 된통 혼난 지가 엊그제지만 그는 신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역시 반말입니다. 7월 14일,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찾은 그가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 번 더 안 와도 될 정도로 잘해 줘." 줄 서서 악수하는 공무원들이 무슨 애들입니까? 중앙재난대책본부 공무원들이 평소에 대통령과 그렇게 친분이 두터웠던가요? 그래서 아무 허물이 없는 사이처럼 그렇게 반말을 툭툭 던질 수 있는 거라고 말씀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부하직원이어서요?

이명박은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직도 회장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기는 지금 임금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중앙재난대책본부는 회장님인지 임금님인지 모를 이명박 앞에 서서 지시봉을 들고 브리핑을 합니다.

제목은 "장마대비, 대통령님 지시사항에 대한 조치"로군요. 브리핑을 듣던 이명박이 말합니다. "그 복구할 때 영구적 대책을 세워가지고 해야지. 그냥 피해 입은 그걸 놓고 단순한 복구만 하고 해버리면…" 여기까지는 참 좋습니다. 맞습니다. 단순한 복구로서는 장마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이명박이 국민들이나 공무원들에게 반말 짓거리를 함부로 해대는 몹쓸 위인이긴 해도 옳은 말은 옳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시 이명박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의 엽기 수준은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능가합니다. 마리가 말했다지요. 빵이 없어 배고픔에 떠는 국민들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시종에게 이렇게 말입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게 아니에요?" 마리로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이명박이 계속해서 말합니다. "아주 산간벽지에 흩어져 있는 집들 한 채, 두 채 이렇게, 그런 곳 또 (물난리)피해를 입으면 그때야 전부 또…  전부 무슨 마을회관에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 돌려보내고, 집 수리해주고… 그래서 나는 그런 식으로 할 게 아니고… 피해가 나는 외딴 마을은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강원도나 외딴… 이런데 흩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안전한 지역에 이래 마을을 만들어가지고 모여 살도록 만들면 아이들 학교 다니는 것도 좋고… 강원도니까 가까운데 좀 이렇게 터를 닦아서 (아파트를 짓고) 모여 살면 얼마든지 거 정부가 행정적 서비스하는 것도 편리해지고…" 이명박의 이런 구상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두 달 전 모내기 행사 때도 이명박은 농촌 주민들 앞에서 똑같은 구상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농사만 바라보고 살려니까…" 어려운 농촌 현실을 듣고 난 이명박이 예의 그 구상이란 것을 내놓습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게 뭐냐… 저 깊은 시골 가면 집이 뜸뜸 떨어져 있거든 이렇게…"

"그걸 모아가지고, 아파트같이 모아서 살고, 모여서 살면 거기 학교도 세우는데, 농촌에 어떤 학교를 세우느냐, 기숙사 학교를 세우는 거야, 애들 전부 기숙사에 넣겠다 이거야. 그럼 성적이 굉장히 올라가요. 딴 생각을 안 하잖아요. 시골에서 공부해도 어디든지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이렇게 되니까…"

이명박은 한발 더 나아가 이런 근본적 대책을 세우는데 돈도 많이 안 든다며 더욱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런 걸 좀 염두에 두고… 이게 행정자치부 소관이죠?" 그러자 옆에 있던 행정안전부 장관이 얼른 정정해줍니다.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소관이야? 예, 그렇게 해서 좀 기본적인 대책을…."

이런, 자기가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바꿔놓고선 아직 이름도 헛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갑시다. 문제는 이명박이 불도저란 사실입니다. 그는 한 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설족 출신입니다. 우리는 그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반드시 4대강을 갈아엎어 수로로 만들고야 말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걱정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똑같은 구상을 이렇게 농촌과 산골을 오가며 반복적으로 하는 걸 보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 산골과 농촌에서 한가롭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아파트를 짓고 거기에서 살라고 강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래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명박에 비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단지 백성들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만 했을 뿐이지 다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건설족 출신인 이명박은 다릅니다. 그는 불도저란 닉네임이 말하듯이 생각하면 대책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이제 그만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당신 머릿속이 얼마나 텅텅 비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무얼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이 정도로 나라를 망쳐놓았으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제 그만 청와대에 가만히 앉아 편안하게 쉬세요. 그러다 때가 되면 조용히 물러가시는 게 국민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봉사랍니다.       파비

이명박의 황당 돌발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주소를 누르시면 됩니다. ↓ 
http://tvnews.media.daum.net/cp/YTN/popup/view.html?cateid=1020&newsid=20090715151505760&p=ytni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걷는다" 도보기행을 떠나 강원도 태백과 경북 봉화의 산골오지를 걷다 보니 인터넷이나 신문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제1구간 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떠나기 전 제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이 경남도민일보에 실렸군요. 그런데 그만 중대한 실수 하나를 하고 말았습니다. 유로연장 기준으로 남한에서는 낙동강이 가장 긴 강인데 한강이 가장 길고 낙동강이 두 번째라고 해놓았던 것입니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역사적 발원지이고, 실제 최장발원지는 10여 킬로 위에 있는 너덜샘)에서 안내도반이신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낙동강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아차 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따지면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지만, 남한에서만 따지면 가장 긴 강이었거든요. 우리나라의 4대강은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이며 길이도 써놓은 순서대로입니다. 본의 아니게 한국 제1의 강 낙동강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 해도 신중하게 조사하고 검토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울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게 된 점에 대하여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 글은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걷는다" 제1구간에 참여하고 난 이후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파비

존경하는 신정일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들, 영광이었습니다. 다정다감이 넘쳐나는 <우리땅걷기> 회원님들과 함께 걸었던 낙동강 제1구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눈보라가 뺨을 적시던 아름다운 석포리 물길, 꿈결 같은 승부역,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걸었던 가막굴,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환상적인 철길여행, 즐거웠습니다.

 

아직 그 감동이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 영원한 추억으로 남겠지요. 사진을 무려 7백 장이나 찍었답니다. 그러나 쓸만한 사진은 거의 하나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낙동강을 위해 똑딱이캐논450으로 업그레이드 했건만, 역시 제게는 똑딱이가 어울리나 봅니다. , 그리고 DSLR은 배보다 배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구미에서 치과를 운영하시는 초석님. 정말 고맙습니다. 초석님이 아니었던들 멀고 험한 태백산을 어찌 올랐겠습니까. 초석님이 아니었던들 오늘 이 영광과 행복과 즐거움은 그저 몽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터이지요. 초석님은 훌륭한 치과의사 선생님임에 틀림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환자들 이 뽑을 때도 절대 안 아프게 해주시겠지요? 하하.

집으로 돌아오니 제가 올라가기 전 써놓았던 글이 우리 동네 지역신문에 실렸군요. 그저 답사를 떠나기 전 감상문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는데, 저와 친분이 있는 신문사 기자님이 보시고 실어주셨네요. 제겐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혹시나 우리땅걷기와 신정일 선생님께 폐가 되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황지에서 신정일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던 중 낙동강이 가장 길다는 말씀을 듣고 아차! 했답니다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에 참여하며」 에는 한강에 이어 낙동강이 두 번째로 길다고 써놓았거든요. 이런 실수를 하다니….

 

환상적인 낙동강 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찜찜한 마음을 털어낼 수 없었습니다. 첩첩 산골에 PC방이 있을 턱도 없으니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더니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기자로부터 글 좀 쓸게요! 하는 간단한 문자가 온 것입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 시간이면 벌써 인쇄가 들어갔을 테니까요.

 

본의 아니게 낙동강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살펴보니 낙동강과 한강의 길이(유로연장), 넓이(유역면적), 유량 등에 대하여 발표하는 주체들마다 차이가 있군요. 어느 걸 기준으로 삼아 야할지 매우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참 멍청한(!) 회원이지요?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곳 경남지역은 요즘 4대강 살리기와 연계한 지리산 댐 공사 문제로 시끄럽답니다. 정부와 4대강 살리기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낙동강은 이미 죽었으므로 강 살리기 공사를 해야 하고 더불어 부산, 대구지역 주민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낙동강 취수원을 지리산 댐을 만들어 옮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무슨 말인지 제 머리로는 아직 이해가 잘 안될뿐더러 불쑥 이런 궁금증마저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죽은 낙동강 물을 우리에게 먹였단 말인가? 그리고 낙동강은 도대체 누가 죽였을까? 언제 어떻게 죽었을까? 그리고 돈을 위해 개발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낙동강을 맡겨두면 낙동강을 친환경적으로 살린다는 게 정말일까?

 

한쪽에선 낙동강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아니다. 낙동강은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었다는 쪽은 정부와 개발업자이고 살아있다는 쪽은 강을 보호하고 살려야 한다던 환경단체들입니다. 제 눈엔 이 어처구니없는 공방이 미련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세상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러한 때에 낙동강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야말로 답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길을 허락하신 우리땅걷기와 신정일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구간까지 단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에서 수여하는 인증서를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노력의 첫 번째가 댓글을 빨리 다는 것이더군요. ㅎㅎ
(주; 신청경쟁이 치열해 참가댓글을 빨리 달아야 함)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이 정부가 낙동강을 살리겠다며 파헤치겠다 합니다. 멀쩡한 강을 파헤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그 의도가 심히 수상쩍습니다. 최근 10, 2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돼온 환경운동단체들과 뜻있는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죽어가던 한국의 강과 산과 바다는 생기를 많이 되찾았습니다.  

 

당장 우리동네만 해도 그렇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봉암갯벌에서 다시 조개가 잡힌다고 합니다. 마산만이 아직은 그 오염도가 심각한 지경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0년 전에 비해 괄목상대할 만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마산에서 승용차를 타고 창원공단으로 출근할라치면 수출정문 해안도로를 지날 때는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창문을 열고 해안도로를 달려도 예전처럼 머리가 빠개질 듯한 냄새가 달려드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강과 산과 바다가 서서히 그 생기를 되찾고 있음에도 갑자기 강이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은 4대강 살리기지만 그건 허울이고 강을 파헤쳐 완전히 죽인 다음 자기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강 즉, 운하를 만들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경우엔 ‘수술’이 아니라 ‘장례’라고 해야 올바른 어법이라고 보아집니다.  

 

아직도 우리의 강과 산과 바다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작금의 이 기괴한 현상들은 우리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환경운동가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강은 너무나 깨끗하다!고 강변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최고의 비경 상주 경천대. 이미지=상주경천대 홈페이지


낙동강은 한강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강입니다. 남북을 합치면 압록강이 가장 길지만, 남한만 따진다면 한강이 497.25km 낙동강이 513.5km로 남한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경상도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낙동강은 다른 지방의 강들과 다르게 주변의 모든 강들이 한줄기로 모여듭니다. 

 

특히 전라도의 강들이 서해와 남해로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지는 것과 달리 경상도의 강들은 모두 낙동강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줄기를 만들어 남해로 흘러갑니다. 이것을 빗대어 호사가들은 전라도의 풍토가 자유분방하며 창조적인 반면 경상도는 일사분란하고 충성심이 강하다는 말로 비교하기도 합니다.

 

낙동강은 신라 이래로 ‘황산진’ 또는 ‘견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초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낙동강’ 또는 ‘낙수’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낙동강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낙동강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최근에는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에서 따왔다는 설을 많이 믿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야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산 약용도 낙동강의 지명에 대해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예로부터 낙동강이라 불렀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이나 연려실기술, 택리지에서는 모두 다른 유래를 이야기합니다.

 

예로부터 상주를 낙양이라고 불렀으며 낙양의 동쪽을 낙동, 서쪽을 낙서, 북쪽을 낙원 또는 낙상, 남쪽은 낙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상주에 가면 이런 지명들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또 낙동강은 상주 즉, 낙양으로부터 동쪽 30여 리 밖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낙동강백 리 뱃길’이라고 할 때 그 기산점은 바로 상주의 낙동나루입니다. 이처럼 낙동강의 유래에 대하여 여러 기록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볼 때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보다는 상주 즉, 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란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낙동강은 천삼백 리를 굽이쳐 흐르는 곳곳에 조상들의 숨결을 묻어놓았습니다. 봉화와 안동을 지나는 곳에 무릉도인 주세붕과 청량산인 이황으로 하여금 사림의 토대를 닦도록 했으며 상주에 닿아 드넓은 곡창지대를 펼쳐놓았고 선산에 이르러서는 조선 최대의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택리지에서도 조선 인재의 반은 선산(오늘날 구미)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구를 지나 창원에 이르러 지리산을 휘돌아온 남강과 힘을 합치고 밀양을 거쳐 김해에 다다라 다시금 드넓은 들을 일구어낸 다음 유유히 바다에 몸을 섞습니다. 낙동강은 창녕을 거치면서부터 주변에 여러 개의 습지를 흩어놓아 생명의 보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소벌(우포늪)과 주남저수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과 철새들이 생명을 노래합니다. 낙동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이고 생명의 보고인 것입니다.
 
이 정부가 어떻게든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멈추지 않는 속내를 공군전투기의 비행까지 방해해가면서 제2롯데월드를 허가한 정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세 명의 대통령이 15년 간이나 이어진 롯데측의 끈질긴 로비에도 불구하고 “NO!” 한 사안이 하루아침에 “YES!”로 바뀌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국가안보를 외치며 애국자연하던 수구보수인사들은 한마디 말도 없습니다. 

이 돌연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불붙은 가스통을 짊어진 HID도 없고 자유총연맹도 없으며 구국의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공산주의도 팔아먹는다는 자본의 위력이 실로 경천동지할 만합니다. 그 자본가의 대표적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으니 누가 감히 대적을 하겠습니까? 이제 바야흐로 이윤추구에 어떤 장애도 이적행위가 되는 시대가 온 듯합니다. 

이러한 때에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낙동강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태백에서 부산까지 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예 답사가 아니라 순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방법을 여러모로 알아보던 중에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대표 신정일)>라는 곳에서 태백 너덜샘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걷기탐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당장 회원가입을 하고 탐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1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떠납니다. 

<우리땅 걷기> 카페의 낙동강 도보기행 안내문에는 다음과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강 정비다, 운하다 말이 많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느낄 수 있는 낙동강 걷기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파비

※ 제1구간은 낙동강 발원지 태백 너덜샘(황지보다 10여 킬로 위에 있다 함)에서 봉화 청량산 언저리까지가 될 거 같습니다. 중간에 승부터널(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이곳 사람들은 가막굴이라고 함)이 있는데 이곳을 직접 통과할런지도 모르겠군요. 신정일 선생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에 보면 ‘까마득히 보이는 희미한 작은 점 하나를 쫓아 터널을 통과하는 살 떨리는 기분’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승부터널(가막굴)을 넘어 낙동강을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혹덩이들을 안고 그리로 가려고 하진 않겠지요. 이제 글도 올렸으니 봇짐 메고 떠납니다요.

ps; 낙동강 총연장이 513.5km, 한강이 497.25km로 낙동강이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입니다.(브리태니커 사전) 우리나라 전체(한반도)를 따지면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며 한강은 네 번째로 긴 강입니다. 그래서 위 경천대 사진 아래 첫 번째 문장 <한강에 이어  가장 긴 낙동강>을 <남한에서 가장 긴 강>으로 정정했습니다. 중대한 착오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확인해보지 않고 기술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도 조사,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경험으로 삼겠습니다.  

ps2; 정확한 유로연장(길이)에 대해 발표주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확인이 필요할 듯하고요. 어떻든 남한에서는 낙동강이 가장 긴 강입니다. 유량은 한강이 가장 많다고 하는군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이유인 듯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