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28 회갑연을 열어준 후배들에게 부치는 편지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3.22 여성해방운동가 고 이경숙선생 회갑연에 다녀와서 by 파비 정부권 (2)

오늘은 제 글이 아니라 다른 분의 글을 한편 소개할까 합니다. 이분은 평생을 농민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바친 분입니다. 민중의 당, 민중당을 거쳐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진보정당사에 커다란 역할을 하신 이분은 민노당 도당위원장으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은 진보신당 중앙당 고문이십니다.

지난 여름, 진동면 농장에서 찍은 사진


이분이 서울대를 졸업한 1970년대 초는 엄혹한 유신시대였습니다. 제 동서의 증언에 의하면―동서는 이분과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입니다―이분은 동네에서 촉망받는 천재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동네사람들의 지나친 과장이 섞인 동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분이 국내 최고의 대학―당시만 해도 서울대 졸업장은 출세의 보증수표였지요―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들 “저 친구가 왜 저러지?” 하며 의아해했다고 합니다. 제 동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머리 좋은 친구가 출세를 해서 고향을 빛내주길 바랐을 테지요.


실제로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아쉽다고요. 제 동서는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지점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얼마 전에 은퇴했습니다. 그러니 이분이 살아온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을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나이로 보자면 사실 제겐 삼촌뻘인 이분이 얼마 전 회갑연을 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무슨 회갑연이냐고 하시겠지만, 정작 본인은 열리는지도 모르는 회갑연이었습니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당원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인연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여 비밀리에 회갑연을 열어드린 겁니다.


회갑연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즐겁게 잘 놀았고요. 여기저기서 찬조금이 들어와서 흑자운영을 했다는 소식도 회갑연을 기획하고 주최한 이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좋은 일이었죠.


저는 늘, 민중당을 함께 만들었던 이분의 과거 동지였던 김문수씨나 이재오씨처럼 변절하지 않고 민중의 편에 서있는 이분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분의 뜻 깊은 회갑연을 소개하는 포스팅을 한번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써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마침 이분이 『레디앙』에 글을 한편 기고하셨군요. 이분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회갑을 맞이할 때까지 살아오셨는지 나름 알게 해주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어 회갑연 소개에 대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이 회갑연을 열어준 후배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보내는 답사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회갑연을 열어준 후배들에게 부치는 편지>로 달았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허락을 받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이분의 오랜 인연으로 보거나, 특히 저를 특별히 귀엽게 봐주시는―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이분은 그렇게 나무라거나 하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참, 이분의 성함은 ‘임수태’라고 합니다. 지금 살고 계신 곳은 경남 마산시 진동면이고요, 농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몬테소리 어린이집을 창원에서 2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출가해서 손자도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임수태 선생님의  회갑을 축하 드립니다. pabi


 

연합논쟁에 앞서 해야 할 것
[기고] 반한나라당 세력 '전면적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연대를

사람은 다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한나라당 사람들이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지,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참 많이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나라


나는 이왕 태어났으니 내 인생이 즐겁고 보람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런데 살아나가기가 참 힘듭니다. 뭐 대단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라가 근심 걱정 불안 없이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런 나라를 만드는 데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고 노상 경쟁만 말하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나라에서,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살벌한 경쟁 속에 살아가려니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가난은 나라만이 구할 수 있다’고. 나는 개인의 불행을 그 사람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의·식·주, 교육, 의료, 고용, 건강, 노후를 보장하는 나라가 한국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런 나라를 꿈꾸는 것은 좌파적 발상이라고 하더군요.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비빌 언덕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에 대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맹렬하게 공격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완상 전총리가 교육문제의 근원이 되는 학벌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또 사회주의병이 도졌다’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던 사실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파트값 폭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제기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주장에 대해서도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반한나라당 세력 '전면적 정당비례투표제'로 모이자


그렇습니다. 시장은, 자본주의는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유일체제로 강요하는 당이 한나라당이고 한나라당 정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자본주의가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존재이기는커녕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 야만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것이 어렵다면 통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국가, 즉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국가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런 입장을 가진 국가여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한나라당 정권을 반대합니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반이명박 연합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논쟁과 관련하여 좀 다른 차원의 생각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반한나라를 외치는 모든 정치세력과 개인은 전면적인 정당비례투표제가 도입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역구 없이 전국을 단위로 한 정당명부 투표를 하고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정당비례투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에 도입한 나라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네덜란드) 이런 제도를 기초 광역 의원 선거에 도입하면 별 실효가 없고 올바르지도 않은, 서로 다른 정당간의 연합 문제로 다툴 필요도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안 되는 일이고, 한나라당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민주당도 반대할 가능성이 더 많을지 모르고요) 하지만 한나라당이 강행하는 4대강 사업,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반대하며 싸우듯 이런 민주적 제도 도입도 싸워서 풀어야 할 과제 아니겠습니까?


정치성수기에 개점휴업 하라니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민주주의도 허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반한나라 연합은 한나라당 정권을 반대하는 일부 정당이나 그 지지자들에게는 좋지만 모든 반대세력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한나라당의 자본가 편향을 반대의 근거로 삼는 정당이나 개인은 이런 연합에 대해서 이미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정당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거부해야할 당이 있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있는 당들은 가장 센 대표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고 정치성수기에 개점휴업 해야 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약자는 배제하는 비민주입니다.


기초나 광역의원 선거에서 전면적 정당비례투표제를 도입하면 어떤 국민의 정치적 의사도 사장되지 않고 어떤 정당이나 출마희망자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정권이 폭주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역행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당이나 개인의 독선이나 민주역행도 반대해야 합니다.


내가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이유를 기준으로 보면 나는 민주당도 반대하고 국민참여당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뜻과 함께, 심지어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뜻도 100% 반영되는 민주주의를 존중합니다. 아울러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나의 뜻도 반영될 수 있는 그런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진보신당 고문 임수태 @레디앙)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어떤 분의 회갑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답니다. 오늘 회갑연의 주인은 이미 5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기이한 회갑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 잔치의 주인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을 하직하고서도 남은 사람들에게 모여 떡과 고기를 나누게 하는 그 뜻이 실로 갸륵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잔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 경숙 선생입니다.

 

 이경숙 선생은 5년 전 갑작스런 급성심부전증 발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는 그이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청천벽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실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경숙 선생에 대하여 특별히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이를 사모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수많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잊지 않고 모여 함께 떡과 고기를 나누며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른 이들처럼 이경숙 선생과 함께 어떤 사업을 해보거나 활동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이의 평소 신념이나 지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이의 온화한 모습에서 늘 위안을 받고 생기를 얻었던 기억으로부터 어떤 신조나 논리보다도 강렬한 선생의 삶을 느낍니다.

 

그이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오로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선 봉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은 고결한 수녀가 걸어가는 길과는 또 다른 길이었습니다. 가톨릭 신도이기도 했던 그이는 신에게 봉사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결실 중에 하나가 오늘날 마창여성노동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여성회도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떡과 고기를 나누는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결실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이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곡에 있는 그이의 아파트였습니다. 거의 이십 년 전쯤에 저는 수배된 오갈 데 없는 노동자였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무척 어리거나 젊었습니다. 아마 스물 다섯이나 여섯쯤 되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수배되거나 해고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어느 사업장에 누군가가 해고 또는 수배되었다고 하면 , 거기도 드디어 배자가 하나 떴군!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어리거나 젊거나 혹은 여리디 여린 제게는 무서운 일이었지요.

 

당시엔 수배자는 배자, 해고자는 고자라는 은어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산과 창원의 배자와 고자들은 주마다 한 번씩 모여 회합을 가졌는데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하고 우루과이 라운드(그게 WTO가 됐다가 요즘은 한미FT에다 미국산 쇠고기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원흉쯤 되겠는데, 모두들 잊어버린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에 대해 토론회를 벌이기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때 그 장소로 이경숙 선생의 아파트가 가끔 이용되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날 4층인지 5층인지 아파트 거실 전축 턴테이블에 올려진 양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물론 대부분은 저 같은 센치맨과 달라서 빨리 판 갈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말입니다
 

 
그이가 경남여성회 회장으로 계실 때, 저는 마침 남산복지회관(경남여성회) 인근에 살고 있었으며 제 아내가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따뜻한 커피(원두로 만든)를 내주며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이거 굉장히 맛있는 거야. 어서 먹어봐! 하는 식이었지요.  

 

그이는 제 아들녀석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겨주시던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끔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도민사격장 인근의 두부요리집은 요즘도 장사가 잘 되는지 어쩌다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이의 무덤에 새겨진 것처럼 여성해방운동가이기도 하고 노동운동가이기도 했던 삶의 치열함이 언제나 그렇게 온화하고 다정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모습만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그이의 업적에 대하여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삶을, 가족과 행복하게 보내어야 할 일생의 모든 시간들을 여성노동자들과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하는 일에 바친 그 삶이 이미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이와 가졌던 다정하고 즐거웠던 그래서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해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벌써 이경숙 선생의 회갑이었군요.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즐겁게 모여 담소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이도 틀림없이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가을, 가족과 함께 그이의 무덤에 다녀오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시고 나서도 좋은 일만하시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묻혀계신데다가 바로 앞에는 국민관광지 통도사까지 있으니… 선생님을 뵙고 나서 관광 삼아 통도사 구경하면 딱 좋겠구먼….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의 기일에 찾았던 통도사를 가득 메운 붉은 소나무들의 키가 유난히 훌쩍 크고 우람했습니다.        파비

 

이경숙 선생 약력   ▷ 충남 공주군 정안면 북계리에서 6남매 가운데 막내로 출생 (1949년 음력 2월 26일생)
                            ▷ 마산가톨릭여성회관 및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 근무 (1981년~1991년)
                            ▷ 마산창원 여성노동자회 초대, 2대 회장 역임(1992년~1996년)
                            ▷ 경남여성회 회장 역임(2000년~2002년)
                            ▷ 경상남도의회 의원(2002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 경남도의회 교육사회위원/농수산위원/여성특위 위원장 역임
                            ▷ 과로로 인한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 (2004년 9월 3일)
                            ▷ 공주여고/서울여대/경남대 행정대학원 졸업
                            ▷ 경남도민일보 이사/ 경남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마창진 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
                                경남
여성회 회장/ 마창여성노동자회 회장/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 노동사회교육원 外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