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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9 함양에 가서 말벌로 담근 술 먹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10)
  2. 2009.01.31 전라도 좌파가 된 소감 by 파비 정부권 (7)
어제 밤 8시, 마산을 출발해서 함양에 도착하니 밤 10시더군요. 딱 두 시간 걸렸습니다. 고요했습니다. 달은 바로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달과 우리는 가까웠습니다. 바로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넋을 빼는 바람에 달을 찍지는 못했네요.

김현태 대표의 집 앞에 있는 정자와 커다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 찍은 것이다.


우리를 반겨주는 김현태 대표(함양농민회 지도위원/사민주의연대 공동대표)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이 집과 앞의 개울과 저 정자와 정자나무를 그대로 떠다 마산이나 창원에 옮겨놓으면 장사가 엄청 잘 될 거 같은데요." "아이 뭐할라고 마산에 갖다 놔? 그냥 서울에 가져가지. 거기가 사람이 훨씬 많은데." 하하. 농담이었지만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그러나 귀농은 아직 우리에겐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촌에 들어가 황토집을 짓고 산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가끔 듣지만, 그분들은 모두 유한 사람들입니다. 보통사람들, 노동자들이 그런 삶을 산다는 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실제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실패한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귀농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농촌 현실도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시골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원주민들에게 귀농자는 이방인입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러므로 그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김현태 대표의 살림집이다.


김현태 대표는 이곳에서 <장수버섯오리촌>이라는 식당을 운영합니다. 2층은 살림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리훈제요리와 소 생고기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병속에 말벌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병속의 액체는 물론 술입니다. 말하자면, 말벌주인 셈이죠. 

"윽~ 완전 몬도가네네." 저는 질겁을 했지만, 우선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물론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서지요. 드셔본 분도 계시겠지만, 저처럼 처음 본 사람도 있을 거 같아서요. 저는 사실 비위가 약한 편입니다. 겁도 많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음식 아니면 손을 잘 대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어느 졸병 하나가 내무반 막사 옆에 쪼그려 앉아 기어가는 개미를 잡아 머리만 떼어내고 똥구멍 쪽을 빨아먹는 걸 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이건 진짜 완전 몬도가넵니다. 접시에 보이는 버얼건 고기가 바로 소 생고깁니다. 말벌주와 생고기, 딱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술에 담긴 불행한 말벌들


말벌술을 다 비웠습니다. 저는 딱 한 잔 마셨습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이야기를 풀어서는 안 될 것 같아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마셨더니 맛이 괜찮았습니다. 약간 단 맛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말벌이 입안에 꿀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음, 몬도가네도 할 만 하구만.'

말벌주는 대부분 저와 함께 간 제 고등학교 동기인 영국이가 다 마셨습니다. 병속 아래쪽을 보시면 술에 진이 빠진 말벌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녀석이 다 마시기 전에 저도 한 잔을 마셨지만, 맛을 보고 나서는 '에이 미리 마실걸. 벌써 다 마셨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몸에 좋다는 것이니까요. 아까웠습니다.

말벌주를 다 비운 뒤의 모습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상림에서 열리는 지리산문학제에 잠시 들렀습니다. 전날 밤 함께 술을 마시던 분이 함양예총(?)의 문인이신데, 이 문학제 준비위원이셨던 모양입니다. 잠시 구경하고 가라고 강권하셔서 돌아갈 길이 바쁘긴 하지만, 짬을 내 잠깐 들렀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하루 더 머물면서 구경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길이 바빠 잠시 눈요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아직 준비 중이었으로 우리가 본 것은 '아, 이곳에서 지리산문학제가 열리는구나!' 정도였습니다. 10월 19일인가? 그때쯤 물레방아축제가 또 열린다고 합니다.

그때는 꼭 시간을 비워두었다가 연락하면 오라는 신신부탁(?)에 고마워하며 우리는 함양을 떠났습니다. 10월달에 꼭 다시 가보아야겠습니다. 그때 오면 맛있는 것도 많이 준다고 하니 아니 갈 수가 없겠지요.

지리산문학제가 열리는 상림 입구


위 사진에 보이는 친구가 제 고교 동창입니다. 이름이 여영국입니다. 이거 초상권 침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친구지간에 뭐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뒤편에 좌석과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걸 보니 오늘 밤 재미있는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대 뒤편으로 들어가면 상림인데 이곳까지 와서 상림 숲길도 한 번 거닐어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문학제에 출품된 시들을 모두 이렇게 매달아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리산 문학제에 출품된 시들을 이렇게 만장처럼 죽 매달아 놓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책자로도 나온다고 하니까 나중에 전화해서 한 권 부탁해야겠습니다.

행사 준비 중인 분들. 전날 밤 늦도록 함께 술을 마셨었다.


위에 보이는 두 분이 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입니다. 아쉽지만 여기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나저나 말벌주 효과는 언제쯤 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효과가 있긴 있을라나요?


돌아오는 우리 차에는 양파 두 망이 실려 있었습니다. 알이 무척 굵고 맛있게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마누라가 좋아하시겠습니다. 흐흐. 술도 주고 밥도 주고 오리고기에 소생고기까지, 거기다 말벌주까지 대접해주시고 이렇게 양파까지 들려보내신 김현태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러시면 자주 가게 되는데요. 염치 없이 말입니다.

어쨌든 10월달에 꼭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 들러본후 2009/01/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낭비했구만... 전라도 좌파들... 하여튼...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 한테 낚여?
    정말로 세월 좋아졌구마...
    이런넘들 아주 싸그리 잡아서 삼청교육대가서 6.25때 어땠는지부터
    지대로 교육시켜야 정신차리지....
    이러니까 전라도 제외한 국민의 80%가 전두환때가 그립다고 하지들..ㅉㅉ
    정신좀 차려라 너네들끼리 서로 댓글달고 좋아하지들 말고....
    그런 귀족노조들 보호할 시간있으면 소년소녀가장좀 돌보시기를.......

    • 들러본후 2009/01/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좌파들 특징이 이런 본론만 얘기한 글들은
      무조건 삭제시켜버리지....
      삭제시키기전에, 고향이 어딘지부터 밝혀보시지들 그랴
      전라도 20%가 동조하고 옹호한다고
      국민의 80%가 찬성한다는 착각은 노무현때부터
      시작되더구만.... KBS/MBC때부터..... 



  • 위 글은 제 블로그에 달린 댓글입니다. 본문 제목은 <정몽준의 현대가 보여준 무자비한 보복테러>였습니다.

    어이없는 독해 수준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에게 낚여?…”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북한군 총참모장 대변인이 TV에 나와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데 대해 그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은 방금 전 현대중공업에서 보고 왔노라고 쓴 데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사실 북한은 어수선한 내부를 단속할 목적으로 가끔 이렇게 남북관계를 긴장시키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예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를 단속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자꾸 멱살 잡고 싸우고 그래야 옆에서 싸우지 말라고 말리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할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행동이야 정권안보 차원에서 저지를 수 있는 짓이라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과거 수시로 이런 캠페인을 했습니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저지르는 전형적인 수법이 바로 이거지요.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비유를 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북한의 이런 행동들이 남한의 독재자들에겐 아주 유용한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심지어 97년 대선 때는 당시 정권이 북한과 연계하여 판문점에서 총을 쏘아주기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총풍사건이었죠.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통합책이었는지 어쨌는지 이 사건은 유야무야됐습니다.

    무식한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참 웃기는 일이죠. 적과의 동침도 아니고 무슨 이런 로맨스가 다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게다가 버스 안 뉴스를 통해 북한 군부가 협박하는 무자비하고 한계가 없는 타격력이란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10분 전 현대중공업 경비대들로부터 보았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무자비하고 한계를 상실한 테러였습니다. 과거 현대는 식칼테러사건이란 걸 벌인 전력도 있습니다.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사였던 이덕우(현 진보신당 공동대표)씨는 “삼성은 교활하고 현대는 무식하다”고 했지만, 그날 보았던 현대는 무식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 학살전쟁을 무식하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논조의 주장에 대해 “뭐? 틈만 나면 북한이 남한을 도와주려했다고?”라고 반응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줄 수 있겠습니다.(혹 익명의 이분 머릿속에는 ‘대한민국=한나라당’으로 꽉 차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무식한 것이 죄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입니다.

    글쎄 저를 전라도 좌파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제가 좌파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 스스로는 좌파라고 생각하지만, 제 입으로는 그런 이야길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좌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말이지요. 그래서 좌파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좌파란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로 휴머니즘,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좌파가 아닌가 합니다.  

    느닷없이 전라도 사람에 좌파가 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 사회과학 서적의 90%는 좌파지식인들이 썼으며, 그 이유는 모든 세상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목수정-레디앙)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더러 좌파라고 딱지를 붙여주신다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든 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저는 경남 창원군 웅천면(현재는 진해시)이 고향입니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며 지금도 친척들 대부분이 살고 있습니다. 또 경상북도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원에서 근 이십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갱상디언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전라도 사람이 되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조상들에겐 제 고향을 저버린 후레자식놈이 되고 마는 일입니다. 전통적 유교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는 천벌을 받을 일입니다. 모욕도 이처럼 지독한 모욕이 없는 것입니다.

    전라도 좌파면 삼청교육대 보내야 되나

    익명의 이 댓글은 한 발 더 나아가 “저 같은 사람은 싸그리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보내 6·25가 어땠는지 제대로 교육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습니다. 삼청교육대가 뭐 하던 곳입니까?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병신 만들어 보내던 곳 아닙니까? 길 가다 기분 나쁘게 생긴 놈 있으면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진주에 가면 육거리파라고 있는데요. 그 육거리파 두목이 삼청교육대에 갔다 와서는 정신이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비가 오는 날도 남강다리결에 나와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밤에 애인과 잠을 자다가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전해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당시 저는 직접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을 만큼 나이가 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 무시무시한 곳에 저를 전라디언 좌파로 낙인찍으며 보내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6·25가 어땠는지 거기 가서 안 배워도 이미 충분하게 그 참상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6·25는 지금도 이 나라 안에서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익명의 이 분은 군대나 제대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군대 30개월 꼬빡 채웠을 뿐 아니라 육군본부 참모총장실에 가서 육참총장으로부터 수고했다고 금일봉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노란 봉투에 백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쓴 건 아니고 네 명이서 갈랐지만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도 조금 하지요.

    익명의 이분, 군대나 갔다 오셨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야말로 6·25를 제대로 겪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특수부대원으로 직접 참전하셨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은성무공훈장 등을 세개나 받아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불태워버렸던 것을 아쉬웠던지 최근에 다시 받아다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습니다. 저는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은 통에 마치 제가 6·25 참전용사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함양에 가시면 얼마든지 그 참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그 민간인학살 발굴작업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분의 블로그에 가보시면 공부가 많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2kim.idomin.com) 그런데 굳이 삼청교육대를 다시 만들어 저 같은 사람을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이 익명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분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면 죄다 꼬리를 감추고 도망이나 갈, 용기라고는 개미오줌 만큼도 없는,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잉여물에 불과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악성 댓글을 익명을 이용해 서슴없이 다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모욕법 따위에 주로 동조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분들은 밝은 불을 켜놓으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겁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간에 전라디언, 그것도 전라도 좌파씩이나 돼보는 영광을 본의 아니게 누리게 되었으니 그리 썩 나쁜 일만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전라디언 좌파라!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에겐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어주는 건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이렇게 웃어주어야지요. 피식~

    2009. 1. 3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