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선생'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8.26 김탁구, 팔봉선생의 제자들이 부러운 이유 by 파비 정부권 (1)

사람들이란 실로 눈앞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물건을 보고도 서러 다른 답을 내놓기 일쑤다. 제빵왕 김탁구의 구일중이 그렇다. 그는 매우 차분하고 이지적이며 사려 깊은 아버지의 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또 다르게 보인다.

어떤 다른 이가 본 구일중은 매우 냉혹하고 이기적이며 자식에 대한 배려가 한푼도 없는 못된 아버지일 뿐이다. 그런데 어제밤엔 느닷없이 구일중이 전에 없이 따스한 말로 구마준을 걱정한다는 듯이 구니 그게 못마땅한가보다. 이렇게 오락가락 일부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캐릭터는 또 있다.

서인숙. 구일중의 아내요, 구마준의 어머니다. 한승재의 정부이기도 하다. 실로 이 여인은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표상이다. 그녀에게 사랑 따위는 없다. 그녀는 아들 마준에게 외친다. "사랑? 그런 게 있기라도 하단 말이냐? 그런 것은 없어. 결혼은 오로지 정력과 비즈니스일 뿐이야!" 

▲ 서인숙
"결혼은 정략이요 비즈니스"
라 믿는 서인숙도 순정은 있어


그렇다. 그녀에게 결혼은 정략이요 비즈니스다. 서인숙은 그런 비즈니스가 위험에 처하자 즉시 한승재를 정부로 만들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바로 구마준이다. 구마준은 바로 결혼은 곧 정략이요 비즈니스라는 서인숙이 신봉한는 철학의 결정판이다. 

그런 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신유경이란 출신성분이 떨어지는 여자애와 사랑이란 걸 하겠단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구마준도 실은 서인숙의 사랑론, 결혼관과 별로 다르진 않은 철학을 갖고 있다. 마준이 신유경과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김탁구에 대한 경쟁심리다. 탁구가 가진 것은 모두 빼앗아야겠다는 것이 그의 인생 목표처럼 돼 버렸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안다. 바로 자기 출생의 비밀, 생부가 구일중이 아니라 한승재란 사실, 그걸 알고나서부터다. 마준에게 탁구는 영원한 콤플렉스요 트라우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생부에 대한 복수심이다. 그는 자기를 이렇게 만든 두 사람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복수의 도구로 신유경을 택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외에도 달리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 시작은 이 두가지였다. 그리고 서서히 마준의 마음속에 진짜 사랑이 생겼을 수도 있다. 

아무튼, 서인숙은 그런 마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인숙은 사람다운 구석이라곤 한치도 없다. 그녀는 처음에 남아선호사상이랄지, 고부갈등이랄지, 무심한 남편이랄지 이런 것들로 애처로운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갈수록 그녀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이런 위로들은 철회되기 시작했고 남은 것은 비난과 증오뿐이었다. 

캐릭터의 혼란? 천만에 그들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제밤, 그녀는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구일중에 대한 순정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가 원래 저런 여자였던가? 그래서 어떤 이는 그녀의 캐릭터가 왜 갑자기 돌변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하나의 눈이 말하는 의견일 뿐이다. 

▲ 구일중(위), 한승재(아래)

서인숙은 구일중처럼 변한 것이 전혀 없다. 그녀는 처음부터 구일중을 사랑했다. 아마 그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결혼이 정략과 비즈니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비극일 뿐. 만약 서인숙이 구일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애가 터지게 아들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 한승재와 내연의 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서인숙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거요?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소. 그런 당신이 뭘 두려워한단 말이요?" 하고 구일중이 묻자 서인숙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요. 당신이 떠나갈까 그게 두려워요." 이 말은 일관된 그녀의 진심이다.

그러나 혹자는 서인숙의 이 말이 불편하다. 그가 그이 눈으로 본 서인숙은 이런 여자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편함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세상은 저마다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오해도 생기고 그래서 사단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래서 세상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눈으로 당양하게 해석되고 채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승재는 어떨까? 나는 늘 한승재 이 사람이 참으로 불쌍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한승재야말로 철저한 이방인이다. 그는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내도, 아들도 그에겐 만질 수 없는 머나먼 존재들이다. 그는 처음에 서인숙의 꾐에 넘어가 그녀의 명령에 따라 악을 실행하는 입장이 되지만 늘 고뇌했다. 

착한 것이 이긴다고 믿는 팔봉선생의 제자들

그러다 어느날부터 진짜 악의 화신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이제 무슨 짓이든 못할 것이 없는 악당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겐 아픔이 없을까? 자기를 아버지로 인정해주지도 않는 아들, 그저 이용하기 위해 내연의 관계를 만들었을 뿐인 서인숙. 남편 구일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한승재는 안다. 

그런 한승재야말로 가장 불쌍한 캐릭터이다. 그도 언젠가는 후회의 아픔에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도 절대 의외가 아니다. 원래 인간은 이중적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어떤 경우에 인간은 매우 선한 모습이다가도 어떤 경우에 인간은 매우 악한 모습으로 변한다. 

▲ 팔봉선생의 죽음 앞에 숙연한 그의 제자들. 장항선의 퇴장에 아쉬운 시청자들이 많다.

한승재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두 모습이 어떻게 충돌하며 하나의 면모가 다른 면모를 누르고 승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빵왕 김탁구. 실로 다양한 캐릭터들의 경연장이다. 구일중과 서인숙이 보여주는 모습에 느닷없다고 불평하는 모습들이 그래서 이해도 가고 나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야말로 제빵왕 김탁구가 캐릭터전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마준을 놓고 동정과 비난이 동시에 있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물론 나는 구마준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주기 싫은 편이지만, 그를 이해하고 그와 아픔을 함께 하려는 편에 선 분들이 더 가상하다.

그분들이야말로 팔봉선생의 진정한 제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서인숙과 한승재, 구마준이 단죄 받기를 원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정말로 허탈해질 것 같다. 역시 나는 팔봉선생의 제자는 못될까보다. 그래도 좋다. 현재로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그래도 착한 것이 이긴다고 믿는 팔봉선생의 제자들이 부럽다. 기다림의 미학을 이해할 줄 아는 김탁구가 부럽다.

                                                                                                    이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