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2.25 비정규직에게 성탄절은 공휴일일까? by 파비 정부권
  2. 2009.12.28 정리해고 농성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 by 파비 정부권 (7)
  3. 2008.12.25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by 파비 정부권 (2)
  4. 2008.12.22 교회광고판이 된 시청광장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by 파비 정부권 (8)

1.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다. 질문1. 비정규직 노동자는 크리스마스에 쉬면 유급일까요, 무급일까요?

2.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다. 질문2. 비정규직 노동자는 크리스마스에 쉬어도 될까요, 안 될까요?

3.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다. 정규직노동자에겐 유급휴일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노동자에겐 무급휴일이다. 그렇다면 무급휴일이란 의미는 뭘까? 휴일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무급으로 쉴 자유는 있지만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간 큰 비정규직은 별로, 아니 거의 없다. 내 친구에게 조금 전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다.

"야, 너 오늘 뭐했냐?"

"뭐 하긴 임마, 일하고 지금 퇴근하는 길이다."

"오늘 쉬는 날 아이가?"

"얌마, 우리 놀면 무급이다. 그라고 우리한테 노는 날이 어데 있노? 토요일도 안 나가면 무급이고, 돈도 돈이지만 놀고 싶어도 눈치 보여서 못 논다 아이가. 우리는 일년에 삼대절만 유급으로 쉴 수가 있다. 성탄절은 삼대절에 안 드간다네... 하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 왈,

"그래도 오늘은 성탄절이라꼬 잔업은 안한다. 이기 다 예수님의 은총 아이가."

4. 위 3번 글에 이런 댓글 의견교환이 있었습니다.

(이장규) 정규직도 원래는 유급휴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에게 보장되는 유급휴일은 주휴일 즉 일요일과 노동절 뿐입니다. (다른 공휴일은 관공서와 공무원이 쉬는 날일 뿐, 일반 회사의 노동자들에겐 꼭 휴일이라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의해 공휴일에도 쉬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노조가 힘이 있거나 사장이 그나마 약간 신경을 썼을 때 유급휴일이 적용되고 중소기업 같은데선 정규직이라도 그냥 무급휴일이거나 정상근무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권) 그렇죠. 주 40시간제 하면서 토요일을 주차로 할 건지 말 건지 논란하다 그냥 주차 아닌 휴일로 된 걸로 아는데요. 대공장 중심의 노조 입장에선 어차피 도로 가나 모로 가나 주40시간이 현실적으로 관철되면 된다 생각했겠지요. 소위 자본은 명분을 노조는 실리를 취한 건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자본이 훨신 명석했던 게지요(결국 자본이 명분도 실리도 다 챙겼음. 약간의 수학적 상식만 있으면 금세 알 수 있는 일). ㅠㅠ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주 40시간 노동제 국가가 아니란 말씀.

5.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노동의 유연화 같은 말들이 유행한 것은, 그리고 제도로써 자리를 잡은 것은 인정도 기억도 하기 싫으신 분들도 많겠지만, 애석하게도 민주당정권 10년이다(물론 새누리당의 전신 민자당정권 때도 꼴통좌파에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를 앞장세워 노동악법을 통과시키고자 시도도 했고 성공도 한 걸로 안다). 쌍용자동차사태, 한진중공업사태의 출발도 사실은 이때다. 대선 이후에 많은 분석들이 50대의 반란 혹은 50대의 역습을 언급한다. 50대의 투표율이 90%에 달한데다가 50대가 이른바 베이비부머세대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50대의 역습 따위가 아니라 이렇게 부르는 것은 어떨까 싶다.

50대의 복수.

노동의 유연화란 깃발 아래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세대가 바로 이들 아닌가. 무조건 비난하긴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말이다. 자영업푸어, 하우스푸어의 상당수가 이들 50대들이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최근 젊은층들이 부르짖고 있다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 양보하지 말자!" 주장에 공감하는 속 좁은 족속에 속한다. 그리고 진짜로 양보 안할란다. 하긴 이제 뭐 내가 양보 안해도 아무도 말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픈 일이지만서도... ㅎㅎ

암튼 크리스마스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해서 * 빠지게 일 하고 돌아오는 간이 작은 내 친구 비정규직 노동자 김○○군을 애도하며 푸념 좀 해보았다. ㅠㅠ

ps;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린 순서대로 순번을 달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웬 농성장에 크리스마스트리냐고요? 사실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황금연휴를 맞아 사방이 고요한 이곳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불빛이 있습니다. 바로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만들어 정문 앞에 달아놓은 ‘정리해고박살’이란 네온사인(네온사인도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군요) 불빛이 그것입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크리스마스는 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날입니다. 남들은 가족들과 따뜻한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온 세상이 은총을 받은 듯 환하지만, 이곳만큼은 어둡고 쓸쓸합니다.


올 크리스마스는 3일 동안의 황금연휴가 되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녁이면 지원 방문을 오던 지역 노동자(주로 노조간부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들도 황금연휴를 함께 즐겨야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휴일도 없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은 더욱 차갑기만 합니다.


그래도 비록 회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물론,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 경영상 이유란 게 대체 뭔지―쫓겨나 난장에서 떨며 밥을 먹고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회사 정문 아스팔트 위에 술자리를 펼쳐놓고 술잔을 들며 어느 노동자가 말합니다.


“야~! 크리마스트리... 멋지네.”

“일마야, 크리스마스트리가 예 어디 있단 말이고?”

“저 안 있나.”

“오데.”

“저 정문 옆에 담에 안 만들어 놨나.”

“어? 그라고 보니 저거 진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나이 지긋한 노동자 한 분이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저게 아마도 우리 눈에는 ‘정리해고박살’이라도, 남들이 지나가면서 보면 희미한 게 무슨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일기다.”


그 시간 이곳 밖에서는 주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노래가 성당과 예배당의 담장을 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겠지요. 또는 상남동과 창동의 번쩍거리는 거리를 왁자한 웃음들이 누비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삭막한 이곳에서도 은총과 웃음은 역시 만들어지고 있었답니다. 그건 누구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정리해고자들이 회사정문 도로변에서 식사중이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님은 미리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일자리 창출보다 중요한 게 없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고 하는군요. 신년사란 게 보통 연초에 발표하는 게 보통일 테지만 이렇게 미리 크리스마스 전에 발표하는 걸 보면 대개 똥줄이 탔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겠다고요?


그럼 이명박 대통령님, 아니 이명박 장로님, 여기 이곳 회사로부터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리해고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현장으로 한번 와보세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세요. 정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소망교회 목사님을 대신해 이명박 장로님은 진정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드리지요.


교회에 가서 ‘나는 주님의 종’이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장로님은 대림그룹 회장님과 꽤 친하시다지요? 옛날에 같은 업계에서 함께 일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이런, 그런 장로님한테 되지도 않을 부탁을 했으니 저도 참 바보로군요. 가제는 게편이라는데.

그렇다고 제가 감히 장로 대통령님을 가제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통 가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알거든요. 어쨌든 당신이 믿는(다는) 주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향해 칼부림만 하는 당신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룩하게 기도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군요. 아, 정말 속이 불편하네요. 찬물이라도 마셔야할까 봐요.


아무튼 대림자동차 정리해고반대 농성장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지역 노동자들과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의 연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만약, 그리하여 정리해고를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지역 노동사회로 확산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면 쌍용차에서 배운 경험을 이곳 창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아닌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시범케이스가 확실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림자동차 경영진은 250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강제퇴직, 정리해고의 방식으로 길거리로 내몰아놓고도 자기들끼리 부서별 회식을 만들어 흥청망청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군요. 

세상 참 더럽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오늘밤 이곳에선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가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오늘밤 나는 쓸쓸히 집을 보고 있다. 아이들과 아이 엄마는 성당에 갔다. 오늘 여덟 살짜리 우리 딸아이가 성탄전야 미사에서 천사로 등장한단다. 얼마나 예쁠까? 그러나 나는 따라가지 못했다. 10년 전 수술했던 허리가 어떻게 삐끗했던지 다시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실에도 걸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그럼 혼자 집에서 무얼 할까? 막걸리나 한 잔 할까? 아니지. 그래도 오늘 같은 성스러운 날 그렇게 술이나 마시며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차에 ‘경남도민일보’에서 소개하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을 거 같다. 나름대로 감동도 있는 영화인 듯싶다. 게다가 EBS 영화라면 믿을만하다.   


그래! 오늘밤 크리스마스 이브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와 함께 하는 거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지="DAUM 영화"


감동실화,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가? 아니면 신이 내린 가혹한 형벌인가? 

우리에게도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에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상잔을 벌였던 쓰디쓴 기억이 아직 채 지워지지 않았다. 그 흔적들은 아직도 함양에서 산청에서 또 이름 모를 어느 곳에서 시커멓게 썩어버린 유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상처를 자극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 때도 ‘군기놀이’를 하며 놀았다. 미국, 북한, 소련, 한국, 이런 식으로 군기를 만들어 집어던지면 그걸 주워 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게릴라전을 하듯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가 마주치면 누구든 먼저 “꼼짝 마!” 하고 외친 다음 서로의 군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계급이 높은 쪽이 이기고 낮은 쪽은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인데, 어느 편이든 군기가 그려진 병사를 포로로 잡으면 전쟁은 끝나게 되어있다. 

요즘 아이들은 무얼 하고 노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전쟁놀이를 하며 자랐다. 군기놀이가 아니면 산에 지천으로 널린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 칼을 만들어 편을 갈라 ‘칼싸움’을 벌였다. 전쟁만큼 신나는 놀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벌이는 ‘진짜’ ‘전쟁’ 은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비할 데 없이 참혹한 ‘형벌’이다. 

숨 막히는 전장에 일어난 기적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 프랑스 북부 어느 전장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곳에는 자욱한 포연과 죽어가는 동료의 신음만이 가득한 지옥이었다. 이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오로지 맹목적으로 적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땅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하얗게 눈 덮인 전장. 적막을 깨고 스코틀랜드 병사의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진다. 잠시나마 긴장을 늦추고자 하는 이 소리에 화답하여 독일군 진영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얗게 눈 덮인 전장에서 듣는 백파이프 소리와 캐롤 송은 군인들에게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어서 독일군 진영에서 참호 위에 수십 개의 트리가 내걸렸다. 그리고 전쟁에 징집된 독일 오페라 스타 니콜라스(벤노 퓨어만)가 촛불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캐롤 송을 부르며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온다. 하얀 전장에 비치는 촛불이 노래 소리와 어울려 춤춘다.

크리스마스 이브, 와인으로 축배를 들며 단 하루를 위한 휴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연합군 진영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당황한 양쪽 진영의 지휘관들은 그러나 평화의 힘에 이끌려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실로 기이한 기적 같은 정상회담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단 하루의 휴전을 맺는다. 호츠메이어 대위가 먼저 말한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전쟁도 아니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하루 쉰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 있겠어요?”

독일군 장교의 제안에 프랑스군 장교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막사에서 와인을 가져오게 해 축배를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이어서 전장에 나가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종군한 스코틀랜드 신부의 집전으로 성탄 미사가 열리고, 장중한 미사곡 대신 남편을 찾아 베를린에서 전장에 찾아온 안나가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실로 다이앤 크루거의 노래 소리는 천상의 소리다. 

적과 아군이 서로 뒤엉켜 크리스마스 제단에 선 병사들의 지친 눈망울로 천상의 숨결이 스며든다. 아~ 크리스마스 이브, 어둠이 내린 전장의 적막을 타고 흐르는 아베 마리아의 선율은 신이 내린 소리가 틀림없었다. 검은 하늘과 하얀 대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인의 금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서로의 적들에게 인사를 남긴 이들은 각자의 참호로 돌아간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프랑스군 지휘관 오데베르 중위는 본부에 어떻게 보고할지를 묻는 부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독일군 진영에서는 어떠한 적대행위도 없었음.”

그러나 결국 이 평화도 그렇게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불로 모여드는 나방처럼 모두 제단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들까지도…” 파머 신부가 말하는 불로 모여드는 나방이란 평화를 갈망하는 병사들의 지친 영혼이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지친 영혼의 독백은 평화에 대한 기대가 결국은 허물어지고 말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걸세.”

이튿날 아침, 적대적 양 진영의 지휘관들이 만나 죽은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이들은 서로의 진영에서 상대편 시신을 수습해 넘겨주고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한다. 총 대신 삽을 들고 서로 뒤엉켜서 땅을 파고 죽은 전우의 시신을 묻는다. 삽으로 동료의 시신을 묻으며 한 병사가 말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장례를 치를 수 있다니 정말 좋군요.”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

이 평화로운 장면. 그랬다. 수많은 병사들이 어울려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그리고 이어서 이들은 축구시합을 벌이며 즐거운 한때를 갖는다. 이제 더 이상 이들에게 적은 없다. 오로지 친구요 이웃이 있을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가 자유로워졌을 때 저희를 바뱅가로 초대해 와인을 함께 마셔 달라”고 부탁하는 호츠메이어와 “꼭 파리에서 다시 만나 와인을 마시자”고 다짐하는 오데베르가 다시 총을 들고 서로를 겨눌 수 있을까?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던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웃이요 친구인 적에게 총을 쏠수가 없게 되었다. 적에게 총을 쏘는 대신 이들은 자기편이 폭격을 할 때는 적군을 자기네 진지로 불러들여 그들을 보호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눈  앞에 보이는 친근한 적들의 보호를 받았다. 꼭 총을 쏘아야 할 때는 하늘을 향해 공포를 날렸다. 

반역도로 몰리는 병사들

그러나 이 평온함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상부에서 이 부적절한 전장의 실태를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양쪽에서 새로운 병사들을 데리고 새로운 지휘관들이 내려왔다. 적극적인 전투력을 상실한 이 부대원들은 보다 험한 곳으로 보내져 전장에서 적에게 평화를 선물한 데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전장까지 따라온 파머 신부도 영국에서 급파된 주교로부터 스코틀랜드 교구청으로 이송명령을 하달 받는다. 평화는 깨졌다. 전쟁이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은 것이다. 주교는 새롭게 편성된 병사들을 모아놓고 전투에 나가 적을 섬멸하라고 독려한다.  

“주님의 검이 여러분 손에 쥐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선하든 악하든 독일인을 모두 없애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십시오. 아멘.”   

그러나 평화는 전쟁을 이기고 떠난다

호츠메이어와 독일 병사들은 혹독한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로 떠나는 화물열차 안에서 자신들을 사지로 내모는 상관을 조롱하듯 흥겹게 합창을 한다. 그리고 노래 소리를 기적처럼 울리며 기차가 하얗게 솟아있는 수림을 뚫고 달리는 엔딩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흥미로운 기적은 실화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신문
<더 데일리 스케치 Daily Sketch>, <더 데일리 미러The Daily Mirror>등의 기사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병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세 나라의 군대기록보관실에 남아있다”고 한다. 

“2005년 11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프랑스 전역 500여개 개봉관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란 감동적 실화가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자신과 병사들을 적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상관을 향해 외치는 오데베르의 외침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칠면조 뜯으며 명령만 내리는 상관들 보다 독일 군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데베르의 외침은 바로 우리들 이야기

프랑스 장교의 이 외침, 남 이야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 이야기가 아닌가?

2008. 12. 24일 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밤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연인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평생을 간직할 추억들이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아이들에게도 최고 행복한 시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에는 단지 성탄이라는 사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성탄은 특별한 메시지이며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연말연시에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된지 이미 오래이지요.

창원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빨간 십자가가 빛난다.


크리스마스의 기원

크리스마스란 크리스트Christ와 마스mas의 합성어입니다. 크리스트를 우리나라에선 그리스도라 발음하고 예수를 이름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마스는 라틴어의 미사missa가 고대영어에서 mass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사는 가톨릭에서 매주 주일에 치르는 전례를 의미하지만, 원래는 축일, 축제일이란 뜻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란 ‘메시아의 제전’이란 뜻이라 하는군요.

역사에 의하면, 로마황제로부터 기독교가 공인된 초기에 로마가톨릭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하였고, 이때부터 세계(물론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는)는 성탄절을 성대하게 기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교황이 만든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고집하는 러시아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세계는 12월 25일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이 분열된 이후 개신교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불과 백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는 이교도의 축일이라 하여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최고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아기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의 축제로 배척하던 시절도...

이러한 관점이 있었던 것은 개혁의 기치를 걸고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던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들, 루터나 칼뱅, 쯔빙글리 등이 크리스마스가 제정된 4세기경이 가톨릭이 이교도화하는 계기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세상에 오기 이전부터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의 축제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개신교파 중 일부 교단에서는 12월 25일은 성탄절이 아니라며 배척하고 기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이 동짓날이었고, 이 동짓날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부활하는 날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제전’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한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점을 고려하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동지에 태어났든 하지에 태어났든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탄절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꿈과 기쁨과 희망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마가톨릭이나 칼뱅이나 예수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과 평화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일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꿈과 기쁨과 희망은커녕 위안이나 주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한 보름 전 창원시청 로타리에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로타리를 삥 둘러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빛나는 시설물에는 각 교회와 담임목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청광장 트리에 달린 교회광고판도 물신숭배란 이교도처럼 보여

얼마 전, 한 블로거가 창원시청광장에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비판한 기사를 봤습니다. 성탄절에만 잠깐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을 그것도 시청광장이라는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것이라면 십자가보다는 별을 달아놓는 게 어떠냐는 지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야 트집이라고 했겠지만, 그러나 저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 본 저는 일부러 시청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블로거가 트집 잡은 십자가는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다른 것이 더 커다랗게 보였습니다. 시청광장을 전세 낸 듯한 크리마스 트리용 전등시설물은 창원시내의 모든 교회들과 담임목사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꼭 저렇게 자기들 교회이름과 목사들 이름을 광고하듯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요? 그냥 크리스마스 트리만 만들어놓아도 다 교회에서 만들어놓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경쟁적으로 상업적으로 보이는 광고판을 달아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청광장을 빙 둘러친 광고판을 보면서 몇 달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시청광장에 설치된 대형트리의 아래쪽은 이렇게 교회와 목사의 이름들이 적힌 광고판으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사탕 하나에 하느님을 파는 신도들 

서너 달 전에 딸애를 데리러 학교에 간적이 있습니다.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먼저 아이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이었는데요. 딸아이에게 사탕과 과자봉지를 건네주면서 그러더군요.

“얘야. 조금 있다가 요 위에 교회 있지? 거기로 오면 사탕하고 과자 더 많이 준다. 그리고 선물도 줄 거야. 그러니까 교회로 꼭 와야 된다. 알았지?”

두 사람은 우리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주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가서 아주머니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교회가 참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다 모일 텐데, 학교 앞에서 애들한테 왜들 이러십니까? 어린 아이들 눈에 예수님이 무엇으로 보이겠습니까? 하느님이 고작 사탕 하나에 자기를 판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랬더니 그분들은 저에게도 말하기를, ‘교회의 사명이 어떻고, 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에 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구원하는 일이니 복 받을 일’이라며 제게도 교회에 나오라고 열심히 권했습니다. 얼굴이 벌개져서 더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저는 따지듯이 말했는데 그분들은 화도 안내면서 계속 말을 거니 제가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더욱 오만해진 기독교


어쨌든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만 자꾸 연상되어 마음이 몹시 편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연이어 벌어졌던 희극 같은 기독교인들의 난센스도 자꾸 떠오릅니다.

부산지역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기도집회에서 세상의 모든 절간을 불태워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라든지 어청수 경찰청장의 전국 경찰 복음화 발언은  그것만으로도 오만한 현대 기독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굳이 절간에 똥물을 투척한다거나 단군상의 목을 베는 무시무시한 행태까지 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서울시를 들어 하나님께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들어 하나님께 봉헌할 차례가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들이 시중에 많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 같은 분들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행태들이야 이런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아서 모신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직접 뽑은 창원시장이 대통령의 심중을 미리 헤아려 공공장소를 교회와 목사들의 광고판으로 내어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무슨 의중으로 그리 하셨을까요? 혹시 교회단체로부터 거액의 광고비라도 접수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운 겨울에 놀고 있는 광장을 이용해 세수를 확보하는 게 그리 나쁜 일도 아니겠지요.

예수. 6세기경 모자이크/ 다음백과


그 내막이야 제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성탄절을 맞이하여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또 그 말씀을 몸소 모범을 보이신 예수의 참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돌적인 선교운동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선교는 어느 종교인이든 그 의무요 사명입니다. 선교란 또한 신앙인의 기쁨이며 목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업주의에 빠진 교회의 모습 버리고 사랑의 교회로 다시 태어나기를...

그러나 진정 선교하는 신앙인의 자세에 선다면 자기 교회 이름과 목사의 이름을 광고하기보다는 자기를 희생해 이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몸을 내맡긴 예수의 사랑을 알리는 데 더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교회와 목사의 이름 대신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은 물신숭배에 빠진 듯한 한국교회에 가지는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요?

그래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런 정도의 소박한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겠지요.

2008. 12. 2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