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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1 고전을 보지 않고 내일을 말하지 말라 by 파비 정부권 (3)
  2. 2008.10.18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댓글 폭력들 by 파비 정부권 (11)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면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진다
세월을 뛰어넘은 통찰로 인생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운다
…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원칙과 지침을 제시해 주는 고전의 세계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고전을 통해 선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고전을 읽지 않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에 지쳐서 그러하기도 하다. 또는 고전처럼 딱딱하고 두꺼운 책을 쉽사리 들기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자 왈’ 한다거나 ‘맹자 왈’ 한다는 말로 그를 무시한다. 이로써 공자와 맹자는 성현의 지위에서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는 참으로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가?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자신을 갈고 닦아 결국 성현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맹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공자 왈’ ‘맹자 왈’ 한 사람들이 아니다.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논쟁하며 세상을 경영하기에 분투한 사람들이다.


논어와 맹자를 읽는 현대인들이 녹슬지 않는 그 지혜에 탄복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수레바퀴를 마멸시키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는 논어, 맹자, 사서삼경, 순자, 노자, 채근담, 십팔사략 등 방대한 중국고전 중에서도 현대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내용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나는 한글세대이다. 우리가 흔히 한글세대라고 하면 1970년 박정희 정권의 한글전용정책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를 말한다. 한글전용정책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거의 0%로 떨어졌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배우기 쉽고 매우 과학적인 글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배우기 쉽다는 것은 한글전용정책 이전 6~70%에 달하던 문맹률이 거의 0%로 떨어졌다는 사실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과학적 측면에서의 우수성은 어떨까? 그것도 이미 증명되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한자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IT강국이 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한글전용정책은 기업들에게도, 특히 컴퓨터와 휴대폰 업체들에게, 비용과 부담을 덜어주는 혜택을 주었다. 이처럼 얻은 것이 많은 대신 우리는 한자를 잃었는데, 그것만 잃은 것이 아니라 한자가 만들어내는 한문 즉, 고전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다. 성장제일주의를 넘어 다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한문이 새로 관심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는 일본인 모리야 히로시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중국문학자로 중국고전의 대부분을 번역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식과 교양만을 얻기 위해선 중국고전이 적합하지 않다고?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이는(중국고전은) 어디까지나 실학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사회의 중심 세대이긴 하지만 고전의 내용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이르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유명한 고사성어인데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 이해를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컴퓨터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홍수에 빠진 요즘 세대들이 중국고전에까지 신경쓸 여가가 없다는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첨단매체, 첨단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고전은 그에 비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보고란 점을 강조한다.


나는 저자가 일본인인데도 나와 매우 비슷한 눈을 갖고 있다는데 놀랐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일본도 우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말 중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써 수신제가에 힘쓴 연후에 나라를 경영해야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고사성어를 설명하면서 “요즘 정치가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인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냥 무심코 이 말을 지나치다가,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문득 그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생각했다. ‘아, 일본의 정치인들도 우리네 정치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가 보구나.’


오래전 황광우는 이렇게 말했었다. “修身齊家에서 제가란 가정을 잘 돌보라는 말이 아니다. 공자와 맹자가 가정을 잘 돌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제가를 이루었다. 제가란 곧 이다. 자신을 잘 갈고 다듬어 이렇듯 제가 즉,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경영하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정치가(그는 노동운동가였으므로, 사실은 노동운동가)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황광우가 말한 수신제가는 고사하고 전통적 의미의 수신제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이 사회의 중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3~40대의 직장인들이 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자신을 수양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덕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수신제가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정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원칙일 터이지만, 그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가운 것이므로 그런 정도의 소망이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책을 스스로 진보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진실로 이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부단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끔 자기신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 같은 슬픔을 본다. 고전의 명구는 그들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마치 훌륭한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위대한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지만 거기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처럼,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고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들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을 내는 특별한 향신료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논어나 십팔사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완파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친절하게도 수많은 중국고전들 중에서 겨우 109개의 경구만을 가려 뽑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겨우라고 했지만, 현대인들의 처세에 매우 핵심적인 내용들로 이정도만으로도 지혜의 숲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침 이 책에 독서방법에 대한 하나의 교훈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송나라 주자 등 학자들의 글을 뽑아 편집한 『近思錄근사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근사란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仁은 그 안에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에게 한 제자가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모름지기 책을 읽어라!” 하고 전제한 후에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핵심을 파악하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이 보고도 그 핵심을 모르는 자는 서사(책방주인)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며,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 근사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반드시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책이 말하고 있는 핵심을 간파하도록 유의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모리야 히로시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으려면 이러한 독서가 가장 실천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핵심을 잘 간파할 수 있는 유용한 독서법을 얻으려면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사고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고전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고전읽기만큼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독서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 “오늘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다”는 대학의 경구처럼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우선 가볍게 전체를 한번 훑어본 다음 화장실에 두고 매일 한 구절씩 그 뜻을 음미하며 읽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화장실이야말로 가장 편하면서 친숙한, 사색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공간이 아닌가. 고전은 단번에 베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조금씩 두고두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듯 음미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20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을 오늘 다시 여기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낸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라. 고전을 읽지 않고 어떻게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고전 속에는 오늘을 말하고 내일을 보는 지혜가 들어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평양에 다녀온 많은 분들이 쓰신 방문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평양거리도 보았고, 묘향산도 보았으며 백두산도 보았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장관이 감동적입니다. 역시 웅대한 민족의 성산입니다.

저는 사실은 백두산보다는 금강산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가보지는 못했지만, 늘 인터넷으로 금강산을 구경하곤 합니다. 제 방에는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금강산 보덕굴』그림이 걸려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는 벌써 3년 전부터 금강산에 가기로 약속해놓고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꿈에서도 그리운 금강산

약속을 안 지키는 제게 아들 녀석이 물어봅니다.

“아빠, 금강산은 언제 가는 거야?”

“어, 그게 말이야. 아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을 안했어. 조금 더 기다려야 돼.”

달리 둘러댈 말이 없어서 그냥 김정일 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은 제 말을 믿습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아빠, 아직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 안했나?”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이제 아들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빠와 함께 어딜 가는 것 보다 제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세월은 이처럼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도 알듯 모를 듯 빼앗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설령 다시 물어본다 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탓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북한군 병사가 쏜 총에 우리나라 국민이 죽음을 당한 사건 이후로 금강산은 이제 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반북정책 기조 탓이든 아니면 북한군의 도발적 민간인 총격사건 탓이든 10년 넘게 쌓아온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경색되고 금강산은 다시 꿈에서도 그리운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선전문구 옆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찬양 선전판이 얼핏 보인다.
               어린 시절 우리
가 다니던 학교 건물에도 이런 식으로 "10월 유신"을 찬양하거나 "근면 자조 협동" 같은 
               계몽 선전판이 붙어있었다. 평양의 거리는 서울에 비해 말쑥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다.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그래서 이번에 평양을 다녀오신 몇몇 분들이 올려주신 평양거리와 묘향산, 백두산 사진은 금강산은 아니지만 참으로 살갑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김용택 선생님은 사진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도 토로하셨습니다. 모두 국가보안법 탓이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하지 못하는 이 야만의 시대가 싫습니다.
 
인류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사람이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서서 걷고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은 말을 할 줄 알게 된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발명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말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야흐로 말의 전성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씨족과 부족으로 나뉘어 살던 공동체사회가 국가라는 권력구조 하에 놓이게 되면서 통제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귀족들은 통치자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말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민들은 말다운 말은 할 수가 없었으며, 천민계급은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조차도 불필요한 말을 하다가 모함에 빠져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세월 사슬에 묶여 신음하던 말이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며 슬슬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혁명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作〕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자유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바로 말의 자유, 표현의 자유입니다. 말이 자유를 얻게 되자 세계는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 문학, 예술 등 문화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은 말의 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말의 자유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말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용택 선생님에게 말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교육’이란 블로그에 북한 방문길에 찍어놓았던 사진을 올리면서 아무런 설명을 달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폭력을 당하셨습니다. 북한 방문기를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거리와 함께 꾸준히 소개해주시던 선생님이 주사파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잠깐 언급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느닷없이 노망난 늙은이로 매도당하고 조선일보의 ‘조깝제’와 사상적 동반자로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주사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관련기사
http://chamstory.tistory.com/68>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시고 이제는 남은 여생을 참교육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선생님에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마음이 여리신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주사파에 대한 짧은 언급 하나가 그다지도 노여웠던 것이어서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고 정년퇴직한 교사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는단 말입니까? 

저는 선생님이 사진과 설명을 통해 평양거리를 너무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반대 댓글 같은 걸 달지는 않았습니다. 평생을 참교육 운동에 바친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 만큼 선생님을 신뢰하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사파 비판' 한마디에 선생님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습니다. 이참에 선생님은 국가보안법보다 주사파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게 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말의 자유에 대한 폭력

국가보안법은 법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들 속에 숨어 함께 숨 쉬면서 자유로운 말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노래가 유행입니다.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노래지요.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가에 대해서도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탑,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이 사진은 선생님이 찍어 오신 주체사상탑입니다. 평양의 맑은 하늘을 이고 우뚝 솟은 탑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탑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주체사상탑은 도대체 말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유일무이한 주체사상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저 주체사상탑은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와 협력으로 통일의 길로 가자고 하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을 헤치는 반통일적 조형물은 아닐지 의심이 든다고 하면 또다시 나를 반북분자에 수구꼴통이라고 공격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꿈에도 그리며 하루빨리 남과 북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말이 자유를 찾아 맘껏 세상을 뛰어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2008. 10. 18.   부마항쟁 기념일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