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0.18 합천 홍류동 소리길은 왜 소리길일까? by 파비 정부권 (2)
  2. 2011.10.11 홍류동 소리길! 합천군, 지금껏 뭐한 거야? by 파비 정부권 (3)
  3. 2009.02.14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란 사실을 봄바람에 느끼다 by 파비 정부권 (5)

언제부터인가 무슨 길 무슨 길 하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제주 올레길이 히트를 치고 나서부터 너도나도 덩달아 올레길 만들기가 유행하더니 그게 조금 진화해서 둘레길도 생기고 이제는 지자체별로 특색에 맞게 이름을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마산에도 그런 영향으로 길이 하나 생겼는데 구산면 저도에 가면 비치로드란 길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바닷가길 정도가 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치로드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다가 저 아래 까맣게 보이기는 하지만 바닷가를 밟을 수 있는 길이 사실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비치로드란 생경한 외국말이 귀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테지만 길 이름과 실제 모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길을 걷고 난 보람에 비해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깁니다. 명실상부란 말도 있지만 실제를 잘 드러내는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 비해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는 이름들은 얼마나 편안합니까? 대구 팔공산에 가면 누리길이란 이름도 있다는데 이 또한 잘 지은 이름인 듯합니다. 명실상부한 이름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비치로드란 버터 냄새나는 이름보단 훨씬 정겹지 않습니까? 아무튼 좋은 바람입니다.

△ 우리를 인솔하고 간 경남도민일보 부설 갱상도문화학교 추진단장 김훤주 기자의 사진을 잠시 빌려왔습니다. 홍류동 소리길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런 절경들이 걷는 이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합천에도 이런 바람을 타고 길이 하나 생겼는데 이름 하여 소리길입니다. 소리길. 어감이 참 좋습니다. 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일까요? 소리길은 유명한 홍류동 계곡에 생긴 길입니다. 홍류동 하면 그 유명세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을 별로 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해인사 입구에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인사를 둘러본 다음 곧장 가야산을 정상을 정복하고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였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저도 홍류동을 듣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최치원이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탄복해마지 않았다는 홍류동 계곡에 생긴 소리길이라니.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이라 이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소리길에 들어서자 벌써 가슴이 설레고 귀가 쫑긋거립니다.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소리였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단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물소리. 그래서 소리길이었나 봅니다. 인근 마을에 사는 어떤 이의 대답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곡길을 걷는 내내 물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으니 그래서 소리길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도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을 따라갔던 문경새재 고갯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소리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문경새재 1관문에서부터 2관문까지 걸을 동안 계곡물이 단 한시도 곁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홍류동 계곡이 크고 우렁차다는 뜻일까요? 홍류동 계곡은 실로 크고 우렁찼습니다. 우선 계곡을 덮고 있는 바위들의 색깔에서부터 압도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습니다. 소리길을 적당한 사이를 두고 갈라 우뚝 서있는 거대한 암벽들이 걷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물론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길이 여기만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지리산 뱀사골에 단장된 길에도 물소리가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뱀사골에선 듣는 물소리와 여기서 듣는 물소리는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널찍하게 잘 단장된 뱀사골 탐방로에 비해 오솔길 같은 홍류동 소리길의 모양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소리길은 오솔길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하고 적당히 오르내리는 오솔길. 가는 내내 울창한 숲속에선 상큼한 바람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물소리와 바람 냄새의 절묘한 조합.

원래 소리길은 새로 만든 길이 아니고 오랜 옛날부터 있던 길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무꾼이나 해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불자들이 다녔을 길입니다. 아마도 매우 힘든 길이었을 겁니다. 그 길을 살짝 손 보고 단장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소리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소리길이겠지요.

△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홍류동 계곡. 사진은 역시 김훤주 기자의 것입니다.

9월 29일 우리가 소리길을 걷던 날은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탓인지 새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령 한두 마리 새가 우지진다 해도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명한 날에 이 길을 걷는다면 여러 마리의 새들이 우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의 합주가 되는 것이지요.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마을 뒷산에도 소리길 비슷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마산시가 만든 길인데요. 무학산 둘레길 초입(혹은 마지막 코스)에 새소리가 들리는 편백나무 울창한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소리는 진짜 새소리가 아니라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기계음이었답니다. 그 기괴망측한 아이디어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지요. 그냥 바람소리에 담겨오는 편백나무의 향긋한 내음만 감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홍류동 소리길. 정말 멋진 길입니다. 이름과 실제도 잘 어울려 명실상부하게 소리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운현 선생이 내지른 감탄사야말로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합천군,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여러분도 이 길을 걷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정말이지 명실상부란 말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짐작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틀림없이 이곳 홍류동에서 여러분이 듣는 것과 똑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탈을 하나둘 벗겨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산정에 앉아 홍류동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틈엔가 여러분은 신선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리 되려면 여러분도 최소한 최치원 선생 정도의 참을성은 있어야겠지요.

속세를 버리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은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서도 배가 고프면 금방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것이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니 합천군은 지금껏 뭘 했단 말이야?

이것은 사실 합천군을 탓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너무나 감격에 겨운 나머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 것인데 바로 홍류동 소리길의 아름다운 절경에 탄복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정운현 선생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물론 나도 여기에 얼른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합천군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금강산이 따로 없었다. 실로 그동안의 게으름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로 홍류동 소리길은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한 번 더 행복에 겨운 감탄사를 내뿜고 가도록 하자.

이렇게 멋질 길을 두고 합천군, 지금껏 뭐한 거야?

..... ▲ 홍류동 소리길은 흙길도 좋지만 이렇게 돌로 다듬어놓은 길도 좋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감탄사가 연발되었던 것은 아니다. 해인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 해인사 경내를 둘러본 다음 홍류동 소리길을 찾아 내려올 때만 해도 우리는 투덜거렸다. 아니 이게 뭐야. 가도가도 아스팔트 길이잖아. 이게 무슨 소리길?

나중에 알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은 소리길이 아니었다. 진짜 소리길을 걷기 위해선 한참을 더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아스팔트 길 옆으로 펼쳐진 계곡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만 아스팔트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그 길이 곧 소리길인 줄 착각을 하고 말았던 것.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가 주유소를 하나 만났다. 산중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주유소 뒤편에 펼쳐진 기괴한 암벽이었다. 오, 이거야말로 장관이다!

계곡물은 요리조리 흔들리며 작은 폭포들을 연방 만들고, 그 모양을 거대한 암벽이 우뚝하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때마침 가는 빗줄기가 안개처럼 흩날리며 암벽을 감싸자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다시금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평들.

아 이거 뭐야. 주유소에 가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주유소가 문제였다. 아무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구도를 잡아도 그놈의 주유소 어느 귀퉁이 하나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도 오늘 홍류동 소리길 구경은 이 정도로나마 만족했으니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주유소를 지나 내려오는 순간, 엇! 홍류동 소리길 시작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 홍류동 소리길은 하늘로 우뚝 솟은 암벽 틈에 갇혀 떨어지는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홍류동 소리길이 시작되는 거였다. 나무로 잘 다듬어진 구름다리를 건너니 사뿐사뿐한 흙길이 사람을 반긴다. 꾸불꾸불 오솔길이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웅장하게 한시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 이래서 소리길인가보다.

울창한 숲과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계곡과 물소리는 그렇게 어울렸다. 소리길의 끝무렵은 농산정이 장식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홍류동은 그야말로 천하제일경이다. 이곳에 전국 방방곡곡에 흔적을 남긴 최치원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고운은 어김없이 농산정에도 그 흔적을 새겼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도 고운선생이 머물던 월영대가 있다하여 월영동이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던 해운대도 마찬가지로 최치원이 지은 이름이다. 그렇게 하고많은 고운의 흔적 중에 이곳 홍류동이 제일이다. 만약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그 장소는 바로 이곳일 터이다.

홍류동 계곡이 아니라면 어디가 있어 최치원이 신선이 될 수 있었을까? 최치원은 홍류동 계곡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번민을 내려놓고 인간의 탈을 벗고 신선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마지막으로 합천군에 한마디만 더 하고 끝내도록 하자.

늦게나마 이리 좋은 길을 만들어주었으니 실로 고마운 일이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부설 갱상도문화학교가 진행한 <합천명소 블로거탐방>에 참여한 후 적은 후기입니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해인사 팔만대장경 천년문화축전과 홍류동 계곡, 합천영상테마파크, 모산재, 합천박물관 등을 돌아본 소감을 적을 예정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 봄이다. 창문을 여니 봄내음이 확 코끝을 스친다. 어제는 비바람이 용천을 부리더니 오늘 이렇게 맑은 날씨를 선물하려고 그랬나보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산동네다. 해안가 산비탈에 도시가 형성된 마산은 모든 마을이 산동네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산을 차지하고 난 이후 그들의 방식대로 바다는 매립되었고 이제 평지도 꽤 넓어졌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도 매립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바다를 메우는 간척을 영토 확장 사업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바다가 어떻게 메워지고 있으며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배웠고 시험도 치렀다. 어느 선생님은 간척사업을 (거의 찬양에 가깝게) 칭찬하면서 박통은 광개토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산만이 시원하다. 멀리 창원도 보이고, 두산중공업도 보인다. 아들놈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마산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
수년 전에 경남도민일보가 기획으로 연재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아마 1976년이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마산시청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니 그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곳이 193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것이다. 바다라도 보통 바다가 아닌 아주 특별한 바다 말이다. 바로 마산시청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다.

월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던 명소였단다. 인천의 송도와 더불어 조선팔도에 쌍벽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해수욕장으로 인해 경성에서 마산까지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고 할 정도니 가히 그 명성을 알만하다. 하긴 산 위에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 한쪽에 자리한 모양이 해수욕장의 입지로서 그만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수욕장을 따라서 길게 송림이 있었다고 하니 그 운치가 오죽했으랴.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월영이란 사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월영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월영이란 달그림자.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 퀴퀴한 냄새나는 마산만에 도대체 달그림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 이름을 지었다는 분이 다름 아닌 고운 최치원 선생. 아, 이분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드높은 학식은 이 좁은 땅을 넘어 당나라에까지 떨쳤다.

그러나 인걸이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방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도 권력에서 밀려나 20여년의 방랑 끝에 택리지를 썼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종이 천주학쟁이(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돼 한강에서 목이 잘리었으며, 또 다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 자신도 18년 유형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가 권력의 품 안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면 우리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읽어보면 눈물 난다. 참말로 옛날엔 저리 살았나.

따스한 봄볕 아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부부가 부럽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월영대의 전설이 어린 마산, 그러나 이제 달그림자 대신 쓰레기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 고매하신 최치원 선생이 어째서 마산의 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를 짓고 시가를 읊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은 매립에서 나왔다. 최치원이 감동해서 3년을 머물렀다는 월영대. 그 월영대가 바라보던 바다는 매립되어 이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아름다운 밤바다는 이제 휘황한 네온사인과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어느 취객이 웩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다.

어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산은 퇴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와 국도, 낡은 건물,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오염된 바다로 이제는 그 초라함을 감출 수가 없다. ……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마산 앞바다가 현재 마산의 실상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마산 시내의 도로에 대한 불평을 달고 마산을 가로질러 달린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단다. ‘로시난테’라고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서. 그렇다면 녀석은 틀림없는 돈키호테일 터. 그러나 녀석의 말은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책이름은 <『달리는 거야 로시난테』글/사진 양성관, 즐거운상상>, 문장이나 구성이 신선하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너댓시간씩 죽치며 공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데 이 책은 너무 좋아 직접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다 읽고 아들에게 물려 주려고….

사실 마산은 도로도 엉망이고 가로수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마산이다. 노인들에게는 편리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선에 가까운 교통망하며 인근에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터이다.

지금 마산은 매립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공장을 유치한단다. 그러면 마산의 인구가 늘고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생필품이 된 시대에 STX가 수정만에 들어오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산에 정착하고 창동 상권이 살아날까? 몇 년 지나보면 자연히 알 일이다.

차이나 최가 뽑는 옛날 손짜장은 정말 맛있다. 한 번 가 보시길. 만날재에 올라 마산만도 감상하시고.

그래도 만날재 공원이 있어 마산만은 아직 푸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겨울이 바로 엊그제, 너무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그저 만날고개 꼭대기까지만 올라가 봄바람을 마음껏 쐬기로 했다. 만날고개 입구에 ‘만날재 옛날 손짜장’ 집이 있다. 최점구 씨가 하는 가게다. 그의 별명은 ‘차이나 최’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보신 분은 수긍하겠지만, 그는 꼭 무술영화에 나오는 검객(또는 권객)처럼 생겼다. 주먹도 엄청 큰 게 진짜 강호에 태어났더라면 한 가닥 했을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일단 요기부터 했다. 아들은 짜장면, 나는 짬뽕. 계산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마산 앞바다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준다. 아들녀석이 돝섬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 요즘은 돝섬에 사람이 아무도 안 가나봐.”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녀석을 데리고 돝섬에 갔었다. “어떻게 아는데?” “봐라. 배가 안 다니잖아. 배가 안 가면 사람이 어떻게 가는데?” ‘음, 역시 젊은 놈이라 관찰력이 나보다 뛰어나군.’

그러나 어떻든 정말 시원하다. 마산에도 이렇게 시원한 공원이 있다. 나는 예의 그 돈키호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탁 트인 호수 같은 바다를 조망하며 등산까지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이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아느냐? 보아라. 예서 보니 마산 바다가 얼마나 푸르고, 봄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단 말이냐.”

만날재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이 불쌍해보였다. 저놈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저것들이 훌쩍 커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나는 백발을 날리며 여기 기어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할 테지. 그리 생각하니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대체 마산의 조상님들은 지금껏 무얼 하셨단 말인가.’

하긴 못난 놈이 조상 탓이다. 가수 이용 생각이 난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배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하여간 나무를 많이 심자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은 앙상한 뼈대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 애처로운 나무들도 머잖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되겠지.

만날공원 내에 주막집도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허름하던 옛집을 신축한 모양이다.

새로 지은 주막 옆에 오래된 옛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공원 안에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서려니 불룩한 배가 장히 부담스럽다. “아, 이거 나도 배가 꽤 나왔는데. 운동을 너무 안 했나?” 그러자 옆에서 아들 녀석이 응수한다. “아빠.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배에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배에는 왕자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다
너무나 바싹 말라 불쌍해 보이는 녀석이 언젠가 자기 배를 내어 보이며 왕자를 살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배에 새겨진 것이 왕자 같기도 했고, 또는 너무 말라 뼈대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살찌지 않는 체질은 실로 복 받은 일이라는 데 둘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아들아. 이 아빠도 어릴 때 별명이 자그마치 ‘며르치’였단다. 그러나 이제 80Kg에서 1~3Kg이 들락거리는 ‘살찐 며르치’가 되었단다. 오늘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내일을 염려하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어야한단다. 그리해도 겨우 자기를 보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게 인생이란 것이지.

그런데 녀석이 안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 나 먼저 내려갈게.” 하며 내려갔었지. 나는 아래쪽 공연무대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그러라고 했었다.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아빠, 나 지금 중앙캐스빌에 와 있는데. 먼저 내려간다고 했잖아. 친구랑 좀 놀다 갈게.”

중앙캐스빌은 월포초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의 집이다. 아, 이럴 수가, 아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터덜거리며 혼자 내려오는 길이 외롭다. 화도 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다. 결국 아들들이란 모두 배신자다. 나도 배신자가 아니던가?

그래, 배신자여. 너는 네 갈 길로 떠나라. 나도 내 갈 길로 가련다. 아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딸내미를 데리고 풍물 연습하러간다고(또는 구경) 갔다. 모두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재미있나보다. 에이~ 배신자들….

이 녀석이 바로 배신자다.


2009. 2. 14. 토요일
오후 6시 정각.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