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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07 남한산성 김훈은 왜 김상헌을 죽였을까? by 파비 정부권 (3)

남한산성을 보았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젯밤 문득 남한산성이 보고 싶어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남한산성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김상헌의 칼에 길잡이 노인이 죽던 장면을 삽입하고 싶었지만 인터넷에 아무리 뒤져도 그 사진이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 장면이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ㅠ


김훈의 수려한 문장도 봐야겠지만 그보다는 일단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영화부터 보기로 했다. 케이블에서 2800원짜리를 20% 할인해 다운받았다. 하얗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화면이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길잡이 노인이 김상헌의 칼을 받고 죽는 것이 시작이었다.


노인의 죽음은 고요했다. 하늘과 땅과 계곡이 하나처럼 하얗게 정지되었고 한줄기 ‘풀처럼’ 노인은 소리 없이 ‘스러졌다.’ 비정한 칼이었다. 노인은 어린 손녀를 돌봐야 한다며 등을 돌렸지만 칼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김상헌의 죽음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최명길보다는 김상헌에 주목했다. 김상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토록 죽음을 마다않고 명분과 의리를 지키려고 했을까. 임금과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한 명분 그리고 의리, 그것이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임금이 삼전도에서 청의 칸 홍타이지의 발아래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있던 그 시각, 예의 비정한 칼은 김상헌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김상헌은 죽음으로서 명분을 세우고 의리를 지켰지만 이것은 작가의 상상일 뿐 현실의 김상헌은 달랐다.


82세에 졸했으니 그는 장수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한 1636년으로부터 17년이나 더 살다 1652년에 죽었다. 살아있는 동안에 온갖 영광을 다 누렸고 죽어서는 그의 자손들에서 13명의 재상과 수십 명의 판서, 참판을 배출했고 순조비, 헌종비, 철종비 등 왕비 3명과,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었다.


바로 그가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본가 안동 김씨의 직계 선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대 그의 가계는 보잘 것이 없었다. 김상헌의 부친 김극효는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지방관과 중앙의 말직을 전전하던 미천한 가문이었다. 그의 조부 김생해는 신천군수를 지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상헌의 부친 김극효가 당대의 권세가 동래 정씨 부인을 맞이함으로써 안동 김씨가는 권력기반을 잡게 된다. 좌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정유길의 사위가 된 것이었다. 왕의 장인이 또한 정유길의 사위였으니 비록 미관말직이라 해도 그 권세가 보통이었을까.


정유길의 조부는 중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이었다. 이 가문에서 조선후기까지 18명의 재상과 수많은 판서, 참판을 배출했으니 김상헌에겐 최상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출세하려면 좋은 인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관계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김상헌이 명예를 다쳤다하여 목숨을 끊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보면 대체로 원칙을 말하고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막상 위험이 닥치면 제 몸부터 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틈만 나면 안보를 외치는 자들이 알고 보면 군대도 안 갔다 온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에 국방부장관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군미필자였다던 적이 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지만 웃을 수도 없는 코미디다. 이런 사람들이 입만 열면 나라 걱정이고 기회만 생기면 전쟁을 외친다. 역사적 경험은 정작 이들이먀말로 전쟁 나면 제일 먼저 도망부터 갈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영화대사에서처럼 최명길이 “만고에 역적의 이름”을 얻기를 각오하고 주화론을 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김상헌이 “만고에 충절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척화론을 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름대로 두 사람 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상헌은 비록 호란 이후에 청에 잡혀가(최명길도 함께. 둘은 이른바 감방동기다)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장수하며 영광을 누리고 후대 세도정치의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미래의 일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그렇듯 큰소리치는 놈이 장땡인 게다.


영화 남한산성과 김훈은 그래서 마지막을 김상헌의 자결로써 끝맺음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랬어야 한다는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명분과 의리가 백성의 삶보다 중요하다면, 너부터 먼저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일갈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김상헌은 그리하지 않았다.  


ps; 참고로 안동 김씨는 두 개가 있는데 김상헌의 계보는 이른바 (신)안동 김씨 혹은 장동 김씨라고 한다. 진짜 안동 김씨들은 이 때문에 아주 곤혹스럽고 불쾌하게 여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