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04 대북삐라로 본 진보와 수구의 차이? by 파비 정부권 (2)
  2. 2008.09.09 2mb, 아메바에게 배워라. by 파비 정부권 (5)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 극우파 단체들은 계속해서 대북삐라를 북으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공권력으로 진압하던 MB정부도 여기엔 속수무책인 듯싶습니다. 아니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대해 여러 곳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음 블로거뉴스>에서도 많은 블로거들이 반북단체의 무모함과 정부의 무책임함에 분노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국 며칠 전, 다시금 대북삐라를 살포하는 반북단체와 이를 저지하는 한국진보연대 간에 활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진보단체는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신념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부적인 기본권을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명박 정권을 감히 독재정권과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반대의 권리를 말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며 그렇다면 진보(단체)는 과연 우리가 비판해마지 않는 수구우익들보다 나은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 회의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좋을 글이라 생각됩니다. 진보신당 게시판에 실려 있던 글을 원작자인 산하님의 허락을 받아 여기 게재합니다. 자기 글 외에는 블로그에 싣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보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처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물론 반대의 생각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08. 12. 4.  파비

한국진보연대에게 묻는다

 자유의 다리에서 벌어진 일대 활극을 인상 깊게 보았다.  왕년에 데일리 프로그램하면서 6밀리 카메라 하나 들고 산지사방 뛰어다니던 때라면 기꺼이 자유의 다리로 달려가서 한몫 거들었으리라.  취재하는 입장에서야 이른바 '노나는' 아이템이었겠지만 지켜보는 이로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었음도 분명하다. 

 우선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내갈기는 "이 빨개이 쉐키들이…"란 욕설은 내게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저 말투로는 "불러도 불러도 그 자애로움이 끓어 넘치는 어버이 수령님"을 뇌까림이 어울린다는 것이 내 고정관념이었던가 보다.   군부 정권 이래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금기인 총 (가스총일지언정 실제 총 모양의)을 허공에 대고 발사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분들의 과잉행동장애를 보는 듯 했고, 몽키를 휘둘러 사람 머리를 찢은 분들은 법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일이 더 많았다는 공화국 폐습을 아직도 벗지 못한 듯싶다.  

북한으로 삐라를 날려보내는 반북단체 회원. 사진=경남도민일보

 
 그러나 또렷한 서울 말씨로 들리는 몇 마디의 말들은 나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중의 한 마디는 바로 이 말이었다.  "왜 나왔냐? 거기서 왜 나왔어?"    감정이 격해서였을지는 모르나 그 말은 분명히 짧았고 경멸 내지는 비아냥거리는 어투가 잔뜩 배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나는 즉시 그 사람의 얼굴에 바짝 카메라를 들이대고 물었을 것이다.  "왜 나왔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아마도 솔직한 대답은 듣지 못할 테지만, 나는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 진보 연대라는 이름의 단체에 묻고 싶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대체 저 탈북자들이 왜 자기 살던 땅에서 목숨 걸고 헤엄쳐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몇 나라의 국경을 돌파하여 오늘날 남한에 사단 병력으로 거주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 단체의 입장은 무엇인지 듣고 싶기 때문이다.  
 
  진보는 태생적으로 반역이다.  그 색깔의 옅고 짙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존의 질서가 가지는 억압의 창살을 걷어내는 일이다.  보다 많은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현 상태와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며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뇌리와 등짝에 드리워져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대한 전환의 키를 제시하는 것을 그 생명으로 한다.   그 진보가 탈북자들에게 물었다.  "왜 나왔냐?"고.  몰라서 묻는 것일까.  북한 당국의 말로 수십만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정녕 알지 못하여 그러는 것일까.   그 진보의 생각은 무엇일까.   " 제 조국 버리고 나온 이들의 말을 믿을 필요 없다"는 것일까. 

 북한의 관리가 볼멘소리로 "촛불은 막으면서 삐라를 못 막느냐"고 했다지만 적어도 진보라는 이름을 자칭하여 스스로의 단체를 치장하는 이들이라면 그 말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조국통일을 방해하고 6.15 선언을 깨뜨리는" 삐라 살포를 공권력으로 막으라는 요구를 한다면 촛불에 물대포를 쏘아댔던 어청수가 우수한 CEO 상을 받는 우스개에 배꼽을 늘어뜨릴 자격을 일정 부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삐라를 막는 정부라면 촛불을  통일이라는 숭고한 목표를 위하여서는 탈북자들과 납북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될까?   몽키를 휘둘러 사람 머리를 찢어 놓은 행동은 처벌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런데 진보연대 회원들이 그들의 삐라를 '압수'했던 것은 어떤 탈북자의 지적대로 "합법적"인가?  그리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을 상대로 시위할 수는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나 역시 탈북자들의 삐라보다는 진보연대의 유인물에 공감을 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하거나 그들의 시위용품을 탈취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민족적 행위이고 반통일적 행동을 비판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제기하자.   정부가 탈북 단체들을 선동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면   그 지점을 타격하자.   상호비방을 금지했던 합의를 우리 스스로 어기지 말자고 외쳐 보자.   그러나 삐라 살포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나서고 삐라를 '탈취'하는 지경에 이르면 '한국 진보 연대'라는 이름에 등장하는 진보의 사고의 유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진보는 끊임없는 의심의 과정이다.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지점이 정체가 아닐까, 나의 생각이 어느새 굳어진 도그마가 아닐까,   나의 세계관이 어느새 케케묵어버린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진보는 생명력을 얻고 활기를 잃지 않게 되는 법이다.  우리의 진보는 휴전선 앞에서 멈추고  그 추상같은 비판의식은 판문점에서 무조건적인 민족애로 승화되어 왔다는 힐난을 괘씸하게 여겨 물리치기 이전에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엉뚱하게도 인권에 관심이 전혀 없던 세력이 선점해 가 버린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 모르니 말을 할 수 없다는 덜떨어진 앵무새가 진보의 상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굶어죽지 못해 탈출한 사람들에게 왜 조국을 버리고 나왔냐는 강짜가 이른바 진보의 입에서 나와서는 아니 되지 않겠는가.   어제 가스총을 쏘고 몽키를 휘두른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있고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자신의 생때같은 가족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또는 그렇게 믿는) 이들에게 "누가 납치를 해?" 따위의 억지스런 반문을 하는 것은 진보의 화법도 아니며 듣는 자세도 아니다.   그들을 가로막다가 머리가 찢기는 용기는 물론,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설득하는 지혜도 역시 진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8. 12. 4. 산하/진보신당 당원

 
Posted by 파비 정부권

9월 3일 저녁 7시, 창원대학교 사림관 강당에서 <진중권 강연회>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진중권은 촛불시위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칼라TV란 인터넷방송 리포터로 맹활약했습니다. 촛불현장에서 사건이 있는 곳마다 뛰어다니며 취재하고 질문하는 그는 정말 역동적인 사람입니다. “왜 때려요? 송” 으로도 유명해진 그의 칼라TV 취재화면은 네티즌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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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강연회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됐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촛불정국 이전에도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인터넷을 잘 이해하고 잘 할 줄 아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TV토론자와 인터넷 논객으로도 맹활약한 그는 이미 웹 도로를 타고 매우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특히 거친 독설로 유명합니다. 안티팬들까지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안티팬들이 열광한다는 건 좀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만, 어떻든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도 사실 열광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도 “진중권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창원대 사림관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실물은 키도 작고 얼굴도 그리 잘 생긴 편이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한국 남자일 뿐이어서 적이 실망했다고 말씀드리면 본인이 기분 나빠 할까요? 청바지를 입고 있고 강연 내내 끊어지지 않는 말솜씨로 주머니에 가끔 손을 찔러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활기차게 강연을 이끌어가는 그의 모습은 신세대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참 개성적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가며 이끌어가는 그의 해박한 지식은 정말 탄복할 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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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을 신은 모습이 대학교수보다는 웹 신세대와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그는 자기를 비정규직 대학교수라고 소개했습니다. 겸임교수란 보직이 사실은 정규직 교수의 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교수를 많이 양산해서 비용 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논리란 그의 설명은 정말 그럴 듯한 말이었습니다. 아니, 보통 강사만 해도 교수라고 불러주기를 바라는 게 인정상정일 터인데 왜 저 양반은 자기를 비정규직 교수라고 스스로 깎아내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솔직함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떻든 교육 현장에까지 자본의 논리가 침투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래서야 ‘교육백년지대계’를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창원대 사림관 강당은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저는 딱 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까지 청중들로 들어차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태어난 이래로 무슨 강연회가 이렇게 강당을 가득 메운 열기로 가득 찬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순복음교회에서 집도하는 기도회가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제 짧은 경험의 소산인데, 놀랍도록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위력이란 것일까요? 그가 강연 내 힘주어 강조한 ‘인터넷의 위력과 웹2.0시대’를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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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찬 청중. 저 속에 잘 찾아보면 저도 보입니다. 진중권 씨보다는 좀 늙어 보입니다.
                                        언제 기회가 있다면 민증 한 번 까봐야겠습니다.

                                     
강연회의 제목은 <진보신당, 진중권에게 듣는다. 2mb시대, 초대형보수에 맞서 제대로 살아남기> 였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강연 내용을 여기 자세히 소개하지 않아도 모두들 대충 짐작하실 것입니다. 물론 저는 모범생출신답게 메모를 착실히 했습니다만, 굳이 다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2mb가 집권 반 년 동안에 너무나 많은 코미디를 국민들에게 선사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긴지 벌써 감 잡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갓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귀순한 동포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소개해 올리고 싶군요. 진중권 씨는 “왜? 정부는 아메바보다도 못한가. 아메바도 학습을 통해 배우며, 생쥐도 시행착오를 거쳐 길을 찾는다. 왜 이명박과 정부는 배우질 못하는가.”라며 혀를 찼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체득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고 문제 푸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현실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미래도 암울하게” 한다며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창조적 능력이 거세된 상품화된 맞춤형 인재만 배출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은 참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없는 게 현실입니다.

운동권 진영을 향해서도 똑같이 비판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진보세력이나 보수세력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보화시대에 산업화 사회의 산물인 PD나 농경시대의 유물이랄 NL 따위에 빠져있는 한심한 모습으로부터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 운동권의 장기적이고 헌신적인 덕목과 촛불로 드러난 새로운 웹2.0 세대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이 잘 결합할 수 있도록 웹2.0시대를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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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진중권 교수. 질문자 중에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
        데요. 정말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역시 자발성과 창조성을 겸비한 신세대들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
        임이 분명했습니다. 그 친구 질문하는 장면은 너무 시커멓게 나와서 못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물론 저 혼자서만 재미있게 들은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빗댄 이야기입니다. “1번 버튼을 눌렀습니다. 불이 안 들어옵니다. 2번 버튼을 눌렀습니다. 또 불이 안 들어옵니다. 그럼 다음엔 몇 번 버튼을 눌러야 할까요? 물론 3번을 눌러야 상식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시 1번을 눌러봅니다. 그랬다가 다시 2번, 그리고 또 1번으로...”

재미없었나요? 네. 저는 남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저 혼자만 들은 양 떠벌려서 썰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입니다. 여기는 경상도 땅입니다. 거의 한나라당 텃밭이라고들 말합니다. 텃밭이라고 하면 우리 경상도 사람들이 무슨 상추나 무, 고추 따위 ‘작물’이란 이야기일 텐데요. 그러고 보니 ‘텃밭’이란 말, 아주 고약한 말이로군요. 이 동네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역정서에 기대 주민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말하자면 정치동냥할 때 쓰는 언어지요. 그런데 진중권 씨가 강연회 맨 마지막에 “우리가 남이가!” 하면 “그래 우리는 남이다!” 라고 말해주라고 그러더군요. “별 일도 안하면서 골프나 치러 다니고 탱자탱자 하는 너희들이랑 남인 게 당연한 거 아니냔”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남이다!!!

2007. 9. 4  파비


PS;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나도 끼여 볼까 고민하다가 쪽팔리는 짓 않기로 하고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쪽팔리다’ 생각하는 저도 영락없는 웹1.0세대가 분명합니다. 동네 선배와 집 근처 통닭집 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술 한잔하면서 그 선배가 말했습니다. “야, 거 진중권이 나이가 몇이라더라? 00년생(개인신상정보 유출 허락을 받지 못한 관계로 00년 처리함)이라고 그러는 거 같던데...”
네. 경상도는 나이를 많이 따지는 편입니다. 서열을 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어? 그래요? 그럼 저보다 많은데요.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더니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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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