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4 노동부에 갔더니 노무사 홍보실이네 by 파비 정부권 (14)
  2. 2009.06.02 노무현 서거에 신영철 함께 묻히나 by 파비 정부권 (8)

노동청에 갔다. 체불임금 때문에 구제책을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잘 아는 동네형님이 다니던 회사로부터 거의 1년이 넘게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다니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함께 다니던 여러 명의 아줌마들과 함께. 아줌마들은 모두 50대 초반이다. 그 형님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 이거 도대체 우짜면 좋겄노? 10년을 다녔는데 퇴직금도 못 받았다. 당장 급해서 뛰쳐나와 갖고 다른 직장 구해 다니고 있기는 한데, 얼마라도 받아내야 안 되겄나? 니가 좀 도와다오. 우리는 시간도 없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듣고 보니 기가 찼다. “그런데 형님, 근로기준법에 임금은 최우선적으로 전액 변제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그리고 듣자하니 체당금 제도란 게 있던데요. 정부에서 미리 최종 3개월분 임금과 3년분 퇴직금을 주고 대위권을 행사하는 제도라더군요. 해당되는지 알아볼게요.”


그러나 알아본 결과 임금채권전액우선변제조항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망하는 회사가 질권, 저당권 기타 금융권 등에 채권이 잡혀있지 않을 리가 없는 현실에서 근로자들은 고스란히 임금을 떼이게 되어 있었다. 이 조항만 사라진 게 아니고 중간착취금지조항도 변형이 이루어져 중간착취가 사실상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근로기준법이 휴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 회사는 한 달 전에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았다. 체당금을 받으려면 우선 회사가 파산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기업회생절차개시결정은 파산에 준하는 결정이다. 법적으로 파산을 선고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노동부에 사실상 파산을 인정해달라고 신청을 하여야 한다.

노동부에 들어서니 "열린마음"이란 글귀가 눈에 선명하다. 안심이 된다.


우선 근로기준법과 임금채권보장법 등 관련법규를 검토하고 인터넷에서 필요한 서류를 프린트했다. 그런 다음 노동부에 방문하여 최종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창원에 있는 노동청으로 갔다. 건물에 들어서니 1층에 민원실이 있었다. 민원실 입구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민원실에 들어서자 젊은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아, 예. 체당금 신청 때문에 상담을 좀 하러 왔는데요.” “아, 네. 그러시면 저쪽에 과장님에게 가서 상담하셔야겠네요.” 민원실 과장이라는 분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갔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네. 체당금 신청 때문에요. 필요한 서류가 무엇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그 과장이란 분은 이렇게 말했다. “체당금은 개인이 신청할 수가 없는 건데요. 노무사한테 안 가시고요?” “월급 백만 원도 안 되는 거 같고 노무사니 변호사니 우리가 찾아갈 수가 있습니까. 마, 노동부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니 할 수 없다는 듯 민원업무지침서 같은 것을 들고 여기저기 뒤적거렸다.


그러나 한참을 뒤적거려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던지, “아, 이거 참… 아까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혼잣말을 하다가 “음…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하겠네요. 여기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근로감독관실이 있는데 거기 윤○○ 감독관을 찾아가보세요. 내가 전화해놓을 테니, 그리로 가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다시 안심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민원실을 나와 근로감독관실로 갔다. 감독관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저, 체당금 신청 때문에 그러는데요. 제출해야할 서류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그 감독관은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듯이 “그런 건 노무사한테 가셔야 되는데요. 거기 가면 다 알아서 해주고, 또 개인은 할 수가 없어요.”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서식작성이 너무 어려워 개인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형님도 사실은 노동청에 상담하러 왔다가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서 내게 부탁했던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표시 낼 수도 없었다. 민원실에서 했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역시 그 감독관은 할 수 없다는 듯 지침서 같은 것을 찾아 뒤지더니 서류 한 장을 복사해서 내게 내밀었다.


“이거 써내면 됩니다.” 미리 확인한 서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짐짓 모르는 척 다시 물었다. “이거 말고 다른 서류는 없습니까? 이거만 써내면 되는 게 확실합니까?” 그러자 그 여자 감독관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노무사한테 가시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줄 거예요.” 속으로 욕이 나왔다. ‘젠장, 그럼 이건 뭣 하러 복사해주는 거야!’ 


그러나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서류를 접수시키면 결국 이분들이 다시 심사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왔다. 그래도 그냥 나오기는 뭔가 허전했다. “감독관님, 이런 정도는요. 노동부에 요령서 같은 걸 비치해놓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보니까 별로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데… 한 4~5분만 시간 내주시면 될 거 같은데….”


그러자 그때까지 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말하던 감독관은 그제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마 그녀에겐 특이한 민원인이었던 모양이다.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렇지만 우리도 너무 바쁘고 시간도 없고 하다 보니까, 이해를 좀 해주셔야지요.” 그런데 내가 한참을 지켜보았지만―여기저기 사진도 찍으면서―, 전혀 바쁜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그곳에 있던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흐를 동안 나 이외에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필 그날만 한가한 날이었을까? 그리고 며칠 후 체당금 신청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다시 노동청을 찾았다. 서류를 제출하고 접수증을 받으며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더니 접수원 옆에 앉아있던 감독관이 말했다.


“노무사 선임 안하셨어요? 그런 건 노무사한테 가면 다 가르쳐줄텐데….” 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7월 1일이 민원 처리기한이다. 내일쯤 업무처리는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들러보아야겠다. 너무 바쁘신 분들이라 내가 제출한 서류는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민원실에 계시던 분들도 모두 감독관님이라고 부르던데….
근로감독관들이 어째서 체당금 신청절차도 몰랐을까? 요즘은 태평성대라서 임금 떼이는 노동자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일까? …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지던 날, 저는 중리 삼거리의 한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함안에서 몇 분의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7시를 전후하여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시간이 6시를 갓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중국집으로 들어갔지요.


중국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 두 분만 계셨는데, 두 사람 모두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연화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노란 종이비행기가 영구차 위로 날고 오열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한숨만 내쉬면서 들어오는 손님―저 혼자였습니다만―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노무현의 입속으로 들어가던 것은 결국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고 함.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 절로(저기로) 가야되는 기라. 그기 운명인기라.”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보이소.” 그때서야 저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주인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이던지 아니면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놀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었지요.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하고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짬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아줌마, 짬뽕 하나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얼굴에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짬뽕 한 그릇을 말아왔습니다. 텔레비전은 울음바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침울하게 응시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잠깐 통화해도 됩니까?” “아, 네.” “그기 말입니다. 내, 검토해보니까,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한 날짜가 아니고 그 앞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날짜가 기준이 되겠네요. 그러면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하는 데는 좀  더 유리한 기지요?” 체불임금 문제로 상담을 했던 노동교육원 상담실장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그러자 한번도 제게 얼굴을 돌린 적이 없던 주인아저씨가 쌍심지를 켠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봐요. 전화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시오. 지금 이 장면에서 당신 떠드니까 하나도 안 들리잖아.”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굽실거렸지만, 주인아저씨의 노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만 짬뽕을 내버려둔 채 밖에 나가 전화하기도 그렇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떼인 거의 1년 치에 달하는 임금과 10년 치가 넘는 퇴직금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부랴부랴 짬뽕을 비운 저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하이소.”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내 돈 내고 음식 사먹고 이런 대접 받아보긴 생전 처음일세, 그려.’ 아마 전화가 걸려왔던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나 봅니다.


체불임금 때문에 만나자고 했던 분들 중 한분은 제가 잘 아는 선배입니다. 상담을 끝내고 헤어진 후, 그 선배와 중리에서 방앗간을 하는 한사람 그리고 창원의 자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선배가 또 한사람 뭉쳐서 어느 대포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노무현 이야기에 빠져있었습니다. 간간이 이명박 욕을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죽일 놈이라고…


노무현 서거의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하는 경남 마산에서조차 이런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요?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재임 중 펼쳤던 신자유주의 정책, 구체적으로 한미FTA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지만,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밝힌 바가 있었지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 모언론사 기사에서 인용.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그때, 온 나라가 국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그 시간에, 대법원에서는 역사적인 하나의 판결이 무관심속에 해치우듯 처리되었습니다. 바로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표결결과는 6:5였습니다.

6:5! 이 정말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닙니까? 불과 열흘전만 해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의 목소리가 전국을 흔들었고, 인터넷에는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물결쳤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악마의 웃음을 흘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삼성재판에 태연히 법복을 입고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그자가 이건희의 무죄에 표를 던졌을 거라는 건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그자가 그토록 뻔뻔한 얼굴을 하며 쪽팔림을 무릅쓰고 버텼던 이유가 삼성 때문이었을까요? 김두식 교수(그는 검사였다)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어보면 대법관이란 자리가 법조 최고의 명예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퇴임 후 엄청남 돈이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망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돈을 보장해주는 최고의 기업은 역시 삼성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그 시각에 해치우듯 처리된 이건희에 대한 무죄판결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법적 타당성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영철, 그자는 우리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할까요? 그래서 이 전례가 없는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러분,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자의 음흉한 얼굴에 악마와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참고 본다는 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pabi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