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예술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0.04 보리도자예술가 김은진, 언닌 얼라 스타일! by 파비 정부권 (4)
  2. 2012.09.26 창동골목에 예술촌이 생기고 난 풍경 중 하나 by 파비 정부권 (3)
  3. 2012.09.24 창동예술촌 골목에선 어떤 소리가 들릴까? by 파비 정부권 (1)

경남도민일보와 창원시가 주최한 블로그팸투어, 창동예술촌 방문기 세 번째 이야깁니다. 오늘은 예고한대로 김은진 작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실상 제가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 갑갑하네요. 김은진 작가뿐 아니라 예술 계통에는 제가 빵점이라서요.

우선 무슨 말씀부터 드릴까요? 김은진 작가는 매우 당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감이 넘쳐난다고나 할까요? 자신을 알리는데도 아주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날 김 작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김 작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내면이 아니라 외면적인 부분에 대해서겠지만 말입니다. 김 작가가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것은 어쩌면 그녀가 어떤 예술인보다 SNS에 활발하게 대응했기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얼리 어답터였습니다.

▲ 김은진 작가의 페이스북그룹 <보리도자예술>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예술인들만 놓고 본다면 그녀는 아주 활동적인 오퍼레이터였습니다. 오퍼레이터란 우리가 공장에 다닐 때 CNC 공작기계를 다루는 작업자를 이르던 말인데, 말하자면 주어진 기술적 진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란 거죠.

프로그래머까지는 아니라도 오퍼레이터만 돼도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요? 김은진 작가는 예술가답지 않게(?) 인터넷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페이스북에 <보리도자예술>이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 확인해보니 멤버가 3,053명이나 되네요. 창원에서 가장 유명하고 뜨는 그룹이라는 <창원시그룹(일명 페이비)>보다도 멤버가 더 많군요. 음, 아무튼 꽤 유명한 블로거라고 자부하는 저보다도 훨씬 얼리 어답터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저는 얼라 어답터!

당연히 그녀는 까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블로그까지 운영하고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만약 블로그도 운영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예술계의 얼리 어답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걸로 생각됩니다.

페이스북도 매우 유용한 소통의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김 작가의 보다 내밀한 예술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페이스북보다는 블로그가 훨씬 유용할 테지요. 까페도 없는 것보다 좋기는 하지만 블로그에 비하면 구석기시대의 유물쯤일 뿐이니까요.

음, 갑자기 블로그 광고가 돼버렸는데요. 까페가 폐쇄적인 공간이라면 블로그는 매우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열린 공간이란 점을 말하고 싶었던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배달래 작가 같은 분도 있으니까 함께 (창동)예술인블로그동맹 같은 걸 조직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김은진 작가는 아주 활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친절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도예공방을 방문한 우리에게 무화과를 먹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물질 가는데 마음도 따라간다고…. 하하, 역시 농담입니다.

김 작가의 대표 작품세계가 보리도예인 것처럼 그녀의 아호는 보리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토청을 비롯한 몇 개의 호가 더 있었는데 가장 늦게 만들어진 보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은 퇴근시간도 되고 했으니 이만 줄이고 낼이나 모래쯤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달과 보리와 황금의 예술, 김은진 작가의 보리도자기에 대해서도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잘 알지는 못하니 겉보리 핥듯이 말입니다(이런 표현이 있긴 있었나? 흠~).

하여튼 저는 대중과 보다 더 많이 접촉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은진 작가의 모습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같은 일자 무식쟁이에겐 아주 고마운 일이기도 하지요. 덕분에 문명인(문화인) 흉내를 좀 낼 수 있으니까요.

▲ 보리도자기 공방에서 만난 김은진 작가. 왼쪽은 딸이고 오른쪽은 경남도민일보 <해딴에>의 일원인 박영주 지역문화사학자다.

자, 그럼 낼이나 모래쯤 다시 김은진 작가와 함께 보리밭 사잇길을 거닐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헤어지기로 하지요. 저는 아마도 마산어시장 장어구이골목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일잔 하기로….

흐흐, 이런 얘기까진 할 필요가 없는데….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구불구불 아기자기한 창동골목에

외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젊은 한국인 가족들이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며

행복 찾는 창동예술촌 골목길에

외국인 가족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립니다.


창동골목에 예술촌이 생겨난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창동상인들과 창원시가 예술촌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이 변화에 반영되었을까요?

김용운 도시재생과장은 예술촌이 생겨난 이후로 창동에 사람이 많이 늘고 매출도 눈에 띄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정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제 창동예술촌이 생겨난 지 겨우 100일이 되었다고 하니 사실 변화를 운운하는 자체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지요.

하지만 김용운 과장의 평가대로 앞으로 꾸준하게 창동을 찾는 사람이 늘고 상인들의 수익도 올라가는 추세가 될 거라고 모두들 믿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믿음을 가진 사람 중에 한사람인데요. 경남도민일보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참여해 창동골목을 돌 때 만난 젊은 가족들이 그런 믿음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예술촌 골목을 돌며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는 모습은 창동골목의 미래가 밝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믿음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것은 외국인들의 관심이었습니다.

가족들로 보이는, 혹은 연인이나 친구사이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간혹 보이곤 했는데 그들의 관심은 한국인과는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리창 가까이 눈을 바싹 들이대고는 무슨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집으로 가서 다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에겐 한국인 예술가들이 좁은 공방에 앉아 작업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겐 처음 보는 풍경이었을 수 있을 테지요.

아무튼 창동예술촌에선 희망이 묻어났습니다. 보리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진 작가는 보리가 피는 내년 4월게 이 골목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식이 될지는 몰라도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행사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창동골목에 금빛 보리가 한껏 피어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시지요. 다음번엔 김은진 작가의 이야기를 써야겠군요. 그녀의 작품은 달과 보리와 황금으로 만드는 도자기입니다. 여러 예술가들 중에 가장 먼저 김은진 작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사실은 그녀의 공방에 들렀을 때 얻어먹은 무화과 때문입니다. 물질 가는 곳에 마음도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농담이고요. 아무튼 창동예술촌은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많지 않아 아직 아쉬운 점은 있지만 드문드문 미니까페도 있고 찻집도 있고 주점도 있습니다. 그 집들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주점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아직 개업을 하지 않았답니다. 10월 8일인가가 개업날이라고 하더군요.

예술촌이 생기니 이리 멋진 술집도 생기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바빠서 이 정도로 해야겠군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창동예술촌 정말 좋은 곳이고요, 앞으로 좋은 주점, 찻집, 빵집들도 생길 모양이니 틀림없이 마산사람들뿐만 아니라 창원사람들도 이젠 마산 창동에서 만날 약속을 정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장담합니다.

대로에 지친 사람들이여, 작고 아기자기하고 구불구불한 창동골목으로 오시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일전에 나는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썼다는 대선관련 기자회견문을 비판한 일이 있다. 대중적인 기자회견문에 왜 그람시가 나오나 하는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석영철 경남도의원(통합진보당 창원시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다 노동을 통한 교화, 총화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는데 좀 비약에 궤변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홍대표가 유럽사대주의라면 석의원은 북한사대주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교화니 총화니 하는 말은 우리네가 잘 쓰는 말이 아니고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할 때 즐겨 쓰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갔다가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적 일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에꼴드 창동골목. 예상대로 어김없이 이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나왔다. 김용운 창원시 도시재생과장과의 간담회에서 김종길(김천령의 바람흔적)씨는 이렇게 물었다. 

▲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추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가족.


“에꼴드, 이런 말을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반시민들이 잘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과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네, 듣고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예술촌 사업은 일단 공모에 당선된 촌장님이 기획한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이를 두고 사대주의라 하면 비약도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저마다 자신이 보고 배우고 잘 아는 부분에 대해 강한 애착과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욕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창동예술촌은 에꼴드 창동골목이란 고급스런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매우 매력적인 골목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은 구부구불 옛이야기를 담은 채 잘 정돈됐다. 우중충한 과거의 그림자 위에는 예술가들의 활기찬 작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예가의 정교한 손놀림이 빠르게 회전하는 흙더미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재생시키며 섬세한 흔적을 남긴다. 탕~ 탕~, 하나의 나무판때기에 불과했던 무생물에 목각공예가의 망치와 끌이 닿자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 

토요일 오후 창동예술촌 골목을 탐방하며 장인에게 설명을 들을 땐 그저 신기함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깨닫지 못했는데 다음날 오전 조용한 골목을 걸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탕~ 탕~,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한 크기로 전해져오는 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였다. 말하자면 내게도 일종의 노스탈쟈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향수인지 뚜렷하진 않지만 아무튼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순정’이 내속에도 감추어져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마치 오래전 어릴 적 향수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소리에 얼굴을 돌렸을 때 그곳엔 어제 보았던 늙은 장인이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쓰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었다. 저 아름다운 소리, 고요한 정적을 깨고 골목을 울리는 생명을 다듬는 소리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려왔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 장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팸투어 참여 블로거들.


물론 여기에 소년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청춘들의 그윽한 눈길과 노인들의 추억을 되짚는 발길이 뒤섞여도 더없이 좋겠다. 그 왁자함을 뚫고 들려오는 망치소리는 언젠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어느 조용한 찻집에 앉았을 때 잔잔한 회상을 타고 들려올 것이다. 탕~ 탕~. 

그러면 창동골목을 누비며 보았던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예술촌 어느 귀퉁이 찻집에서 마셨던 진한 커피 향기와 갖가지 미술품과 오색창호지로 치장된 주점에서 마셨던 막걸리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만삭이 된 소녀는 이 골목을 찾아 팥빙수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다시 이 골목에서 뛰놀며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고 팥빙수도 먹고 칼국수도 먹으며 자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꼴드란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때쯤이면 에꼴드 창동골목은 얼마든지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될 만한 걸맞은 이름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경남도민일보 <해딴에>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귀에는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쓴 늙은 장인의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