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2.16 짝패, 붓도 못 잡아본 거지가 천하명필? by 파비 정부권 (2)
  2. 2011.02.15 짝패, 민중사극에서도 양반 아니면 주인공 못하나 by 파비 정부권 (17)
  3. 2011.02.13 짝패, 구관이 명관이란 옛말의 참뜻 by 파비 정부권 (5)

짝패를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이번 3부와 4부는 좀 실망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꽃거지 노영학(어린 천둥이)도 괜찮았지만, 특히 최우식(어린 귀동이)과 진세연(어린 동녀)이 일품이었다. 내겐 꽃거지보다는 꽃도령이 더 나아보였다.

사실 꽃거지라는 이름이 왜 붙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이 조어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지면 거지지 꽃거지는 또 뭐람?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이 등장하자 꽃거지라며 열광하는 팬들로 인해 이 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김남길이 열연한 비담은 거지가 아니었다. 단지 행색이 초라했을 뿐 어디까지나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문노의 제자였던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 떨어진 옷을 걸친 비담이 거지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는 무술 수행자였다.
 

............ ▲ 천둥이의 동패 거지들

아무튼, 그때부터 꽃거지란 말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천둥이가 그 칭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기분이 찜찜하다. 며칠 전 나는 “민중사극에서도 양반 아니면 주인공 못하나”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바로 그것 때문이다. 왜 천둥이는 다른 거지들과 다를까? 

천둥이는 거지이면서도 빌어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심지어 주는 밥조차 거절한다―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도둑질 하는 동패 아우를 나무란다. 소매치기를 한 장꼭지의 아들을 훈계조로 몇 대 때렸다가 그 애비에게 뒤지게 맞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거지가 거지답지 않으면 결과는? 굶어죽는다.

나는 앞서 포스팅에서 “민중사극에서도 양반 아니면 주인공 못하나” 하고 불평을 하면서 이거야말로 이른바 양반우월주의에서 나온 운명론 아니겠냐고 비판했지만, 출신성분이 원래 양반인 거지가 거지답지 않게 행동하면서 꽃거지란 칭호까지 얻으니 내심 불편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런 불만들은 약과였다. 더욱 놀라운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천둥이가 여느 거지들과는 다르게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한 것은 양반의 핏줄을 타고난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인정하고 넘어가자. 양반 댁 자제들도 쉬 익히지 못하는 통감이나 성학집요를 어린 나이에 꿰는 것도 대감 자리까지 오른 애비의 유전자 탓이라고 치자.

... ▲ 거지 아이가 쓴 글씨를 동료에게 보여주며 감탄하는 성초시(좌)와 거지 천둥이

하지만 이건 아니다. 고을 서당의 훈장 성초시 앞에서 휘갈기는 천둥이의 기막힌 서예 솜씨라니. 성초시가 내어준 지필묵으로 하얀 종이 위에 만들어낸 글씨는 그냥 글씨가 아니었다. 한석봉이라도 이렇게 잘 썼을까? 아마 타고난 천재성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한석봉이도 거지움막에서 살며 빌어먹는 처지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경지다.

함께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말한다. “저렇게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원래 양반 핏줄이라서 그런가보지? 그런데 천둥인가 쟤 언제 붓이라도 한 번 잡아본 적이 있나?” 내가 말했다. “있긴 뭘 있어. 붓이며 벼루며 먹 구경은 오늘 첨 했을 걸.” “맞네. 그렇담 진짜로 대단하네. 처음 잡아보는 붓으로 저렇게 명필이면… 글씨도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극이란 게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일종의 운명론 같은 걸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은 늘 양반이거나 양반이었거나 양반을 조상으로 둔 사람들입니다. 짝패도 예외는 아닙니다. 천둥이가 귀동이가 되고 귀동이가 천둥이가 되는 기막힌 운명이 드라마의 주소재이긴 합니다만, 결국 천둥이나 귀동이나 모두 양반의 핏줄을 타고났습니다.

비록 천한 여종 막순이의 아들로 태어나 귀동이의 운명을 가로챈, 원래는 천둥이였던 귀동이도 서울의 어느 명문가 대감의 씨앗인 것입니다. 원래는 귀동이였던 천둥이는 당연히 양반의 핏줄입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 짝패도 결국 양반이 주인공인 셈입니다.

글쎄 제가 지금껏 무수한 사극을 보아왔지만 순수한 상놈이 주인공 행세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짝패와 마찬가지로 민중사극을 표방했던 추노조차도 주인공은 양반이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상놈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천둥이는 상놈 중에 상놈, 거지굴 움막에 살지만 보통 천것들과는 근본이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며, 행동하는 것도 다릅니다. 거지이면서도 절대 체면을 구겨가며 빌어먹지 않습니다. 거지답지 않은 거지요, 천민답지 않은 천민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는 저로서는 실로 불편합니다. "아니, 거지놈 주제에 거지답게 놀아야지."

하하,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내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군요. "아니, 거지라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거지면 꼭 거지처럼 굴어야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물론 그건 아닙니다. 그러나 거지도 일종의 직업인데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거지답게 굴어야하는 것은 기본 아닐까요? 이거 말이 좀 엇나가고 있군요.

아무튼, 천둥이가 어릴 적부터 남달리 대단한 인물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어 그러는 건 알겠지만, 제 보기엔 좀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거지로서 할 바를 충실히 하면서도 숨겨진 재능을 갈고 닦을 수는 없을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천둥이가 진짜 상것이면서 그런 출중한 재능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지요.

글쎄요. 왜 드라마 작가들은 사극을 만들 때 주인공이 양반이거나 양반 출신이 아니면, 하다못해 반쪽이라도 양반의 피를 받은 자만이 주인공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그 속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여기에도 일종의 운명론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양반(귀족)은 유전적으로 특별하다는….  

아니면, 온전한 상놈 출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놓으면 시청자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신분을 타고나거나 획득하지는 못하지만 동경 심리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런 심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까요?

성초시의 딸 동녀가 천둥이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바꾼다고? 누구나 양반이 되는 세상을 만든다고? 그럼 그건 양반이 없어진다는 얘기잖아. 그런 세상은 있을 수 없어. 네가 아무리 글재주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어. 근본은 변하는 게 아니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동녀가 천둥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동녀는 근본이 다른 천둥이를 좋아합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양반집 규수가 천민을 좋아한다는 것은 곧 체제에 대한 반역인 것입니다.

동녀가 말한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운명론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 운명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그 시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인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한지가 오래인데도 아직까지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천둥이가 막순이가 거지굴 움막에서 낳은 진짜 천둥이이길 바랐지만, 결과는 김진사댁 귀동이 도령이 천둥이가 되고 마는 비극이 연출되고 말았습니다. 그 또한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고, 스토리의 중요한 골간이었겠지요. 그러나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왜 우리나라 사극에서 상놈은 주인공이 되지 못할까?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소설 속의 인물 말고 이 시대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주인공으로서의 천민 말입니다. 추노에서도 보았지만 조선 후기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고 합니다. 사농공상을 뺀 노비가 말이죠.

흥선군 이하응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 시대 배경이 대략 1850년대쯤 되는 거 같은데, 주인공은 성학집요니 통감이니 하는 걸 읽고 있는 걸 보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제가 이율곡 선생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성학집요가 율곡의 정치철학이 망라된 역작이란 것도 압니다.

그러나 시대는 유럽에선 이미  자본주의의 경전이라 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씌어진지가 오래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던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세계사적 조류와 동떨어져 "근본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는 운명론적 철학만 고집하고 있던 것이 조선이었습니다.

결국 천둥이가 품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도 '올바른 임금을 세워 모두가 양반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율곡이 선조(왕)를 계몽할 목적으로 저술했다는 성학집요를 그토록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운명론의 귀결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훌륭한 임금을 모심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런 생각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주체사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절대적인 수령이 없이 세상을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어떻든 그 모든 것이 천둥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민중사극을 보면서도 양반을 주인공으로 모셔야 한다는 건 역시 좀…. 어쨌거나 천둥이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앞으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권문세족들과 짝패, 즉 천둥이와 귀동이 패거리의 한판 싸움이 볼만해질 듯합니다. 그 사이에 천둥이와 귀동이의 출생을 비밀을 둘러싼 갈등도 치열하겠지요. 

두 사람의 운명이 어찌 될는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짝패. 전에도 말했지만 실로 아이러니한 운명을 말해주는 제목이다. 나는 처음에 짝패라고 하기에 무슨 골목 깡패들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다. 짝패의 사전적 의미를 빌어 말하자면 이렇다. 짝을 이룬 패, 명콤비, 파트너, 짝쿵.

그러나 또 다른 의미를 덧붙이면 이렇게도 되겠다. 쌍벽. 항상 그렇듯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재미없다. 영웅에겐 그에 걸맞은 상대가 있어야 진정한 영웅이 되는 법이다. 주유나 사마중달 없는 제갈공명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짝패의 주인공은 천둥이와 귀동이다. 천둥이는 천둥치는 날 낳았다고 해서 천둥이라고 지었는데, 그럼 귀동이는 귀한 양반집 자식이라고 해서 귀동인가? 아무튼, 천둥이가 귀동이가 되고 귀동이가 천둥이가 되는 가엾은 혹은 기구한 운명에 대해선 전번에 말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짝패 2회를 보다가 언뜻 들은 이야기를 생뚱맞지만 해볼까한다. 바로 ‘구관이 명관’이란 우리 귀에도 충분히 익은 오래된 명언에 대한 이야기다. 글쎄 구관이 명관이란 말의 뜻에 대해 이 드라마를 보고 내가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구관이 명관. 나는 지금까지 새로 온 사또가 아무리 잘해도 전임 사또보다 칭송을 듣긴 어렵다, 뭐 그런 이야기쯤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전임 사또가 아무리 못해도 새로 부임해온 사또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더 좋아 보인다는 뭐 그런.

그런데 짝패를 보다가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 용마골에는 탐관오리의 전형 김진사가 살고 있다. 진사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고관대작들 이름을 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대단한 실력자다. 그런 김진사의 처남이 용마골에 현감으로 부임했다.

고을 원님으로 부임하자마자 자형을 찾아 인사를 올리는 현감, 자형에게 묻는다. “이번에 제가 현감이 되는 데는 많은 분들이 도움이 있었을 터인데, 다 인사를 드려야 옳을지 아니면 누구 한분만 골라 인사를 드리면 될지 어떨지… 형님이 좀 알려주시지요.”


기에 헛기침을 하며 대답하는 김진사의 폼이 확실히 탐관오리의 전형답다. “음, 이번 자네의 일에는 서울 모대감(이름은 까먹었지만, 김대감이 틀림없을 듯. 당시는 안동 김씨 시대니까. 김진사도 안동 김씨 아닐까?)의 입김이 가장 컸지. 거기만 인사를 하시게. 여기저기 할 필요가 있나. 줄은 하나만 확실히 잡으면 되는 게야. 그럼 나머지는 그분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

“그럼 얼마를…” “한 2만 냥이면 적당할 게야.” “그렇게나 많이….” 그러자 옆에 있던 현감의 누이이자 김진사의 마누라님이 거든다. “얘, 앞전 현감은 1년도 안 돼서 그거 다 뽑아먹었다고 하더라. 여기가 돈이 꽤나 되는 동네잖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래도 그렇지. 그럼 15,000냥이면 어떨까요?”

거래가 성사됐다. “그럼 그러지.” “형님이 말씀을 잘 올려주십시오.” “아무렴, 내 그리 함세.” 이건 뭐 인사차 온 처남과 누이-자형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무슨 뒷거래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김진사, 종들 앞에서 호령을 할 때는 그 기개가 범상치 않더니만 이렇게 기껏 하는 짓이 탐관오리들 뒷배 봐주는 게 직업이었다. 요즘 말로 브로커.

새로 원님이 왔다는 소리에 고을 백성들도 관심을 보인다. “아, 새로 사또가 오셨다면서요?” “그렇다는구먼.” “이번에 오신 분은 저번 분보다 훨씬 낫겠지요? 전임 사또는 우리 등골 보통 빼먹었어요?” “야 이놈아. 모르는 소리 하질 마.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어. 봐. 이번 사또는 전번 사또보다 더 많이 해쳐먹을 겨. 두고 보라고.”


드라마 본지가 벌써 사나흘 지나다 보니 대사를 정확하게 옮기진 못하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구관이 명관이란 말은 현관 사또가 전관 사또보다 더 많이 해쳐먹느라 백성들 등골 더 빠지게 되니 전관이 더 나았다 뭐 그런 이야기겠다. 하긴 뇌물에도 인플레이란 게 있을 터인즉 경제논리로 따지고 봐도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구관이나 현관이나 명관이나 탐관오리는 모두 동의어라는 것. 어쨌거나 현관은 곧 전관, 즉 구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러면 명관도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도 이런 명관들이 즐비한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 전임 도지사님도 이런 명관 중의 한분이었는데 구관 시절의 탐관오리 의혹 때문에 총리님 될 뻔도 하다가 미끄러졌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구관이나 명관이나 탐관오리 이런 거 별로 안 따지나보다. 이분이 글쎄 우리 동네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공천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하니 말이다.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그러든가 어쩌든가? 아무튼, 요지경은 딴나라가 아니고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인 듯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