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4.15 군항제 끝난 진해 벚꽃장의 마지막 장관 by 파비 정부권 (3)
  2. 2009.11.15 절 입구에 세워진 문 이름, 문왕천? 천왕문? by 파비 정부권 (9)
  3. 2009.11.14 아들과 올라간 장복산, 감동적 일몰과 비극적 결말 by 파비 정부권 (8)
  4. 2009.11.01 해군기지에 사는 물고기는 아이큐가 높다? by 파비 정부권 (7)
  5. 2009.04.06 진해 난리 벚꽃장에는 꽃보다 사람 by 파비 정부권 (9)
작년에는 진해 벚꽃장을 다녀왔습니다만, 올해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마침 아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함께 진해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앞 창원천 변의 벚꽃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앞에 이곳 사진을 몇 장 포스팅했었지요. 활짝 피기 전 과 핀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목련은 완전히 떨어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군요.  


진해여고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곳도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바람도 무척 심하게 불어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는데 추풍낙엽이 아니라 춘풍낙화였습니다. 낙엽은 생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지만, 낙화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낙화란 표현보다는 다른 말을 써야 할 듯싶군요.

그럼 뭐가 있을까요? 춤출 무를 써서 무화? 에이, 그것도 아니군요. 그냥 낙화로 가죠.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으니 그에 맞추면 낙화가 더 어울릴 듯싶네요.


진해여고 앞 벚꽃길이 시작하는 곳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읽어보니 진해에 벚꽃을 심은 유래는 일제 해군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생명경시사상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경시사상? 아, 가미가제를 말하는 것이구나, 웬 생명경시사상을 좋아해 벚꽃을 심었나 했네요. 

생명경시사상이란 다름 아닌 자기 목숨을 버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다, 뭐 그런 의미였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군에 자원하면서 지원서에 그렇게 썼다죠? "사쿠라처럼 살다가 사쿠라처럼 죽겠습니다." 그는 정말 사쿠라처럼 살다 사쿠라처럼 죽었을까요?

해방 이후 벚나무가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주민들이 부러뜨리기도 하고 베어 불쏘시개로도 쓰고 해서 일제가 심은 10만 5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다시 도시정비를 하면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하여 심은 것이 오늘날의 진해 벚꽃장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한 것은 왕벚나무의 원래 원산이 제주도임을 한국의 식물학자들이 밝혀내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빨리 자라고 별다른 병충해가 없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35만여 그루가 진해에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벚꽃 아래 잘 정비된 개울에 핀 노란 유채꽃이 장관입니다. 연분홍빛 벚꽃과 잘 어울리네요. 개화시기도 같고, 이런 걸 뭐라고 하지요? 저는 무식해서 금상첨화란 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러나 금상첨화는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에 빗댄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요?


진해여고에서 시작해 죽 뻗은 길이 한참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올라가면 끝인 줄 알았더니 벚꽃과 유채로 닦여진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유채꽃 뒤로 반짝이며 개울 위를 흘러가는 벚꽃잎이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니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네인데도 100m 아래와 그 위 북쪽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진해여고 벚꽃길 끄트머리에 있는 환경생태공원입니다. 우연히 진해의 대표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을 만났는데 이곳을 꼭 가보라고 강권해서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꽃만 보다가 옆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진해 사람들이 왜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을 때―어이구 이거 또 마창진이라고 했다가 민언련의 어떤 분으로부터 창마진이라고 안 했다고 비판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언련이 무엇 하는 곳인가 했더니 정부에서 창마진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부르도록 계몽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하긴 뭐 저는 경남도민일보도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거에 불과하니까―마산은 거지 같다고 통합대상에서 빼자고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아무튼 진해가 마산보다는 살기가 좀 낫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수지(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래의 번호표를 하나씩 돌리는 겁니다. 한 바퀴 돌면 1, 두 바퀴 돌면 2, 이런 식으로요. 꽤 좋은 아이디어네요.


호수변에 누군가가 그림, 아니 사진인가? 어쨌든 전시를 해놓았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비닐을 씌워 놓았습니다. 그래도 감상은 잘 했습니다. 풍경도 좋고, 그림도 좋고, 모든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하겠습니다. 마산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사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말들이 인사인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부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창원에 다 사니까.  

"너 아직도 마산 사나?"


물이 좋아 물가로 휘어진 나무인가 봅니다. 그 나무 앞에 포즈를 취한 친구는 제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어릴 때는 꽤나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함안 군북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적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절벽 아래 차를 세워두고 그 높이에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은 바위 틈새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갓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말문을 뗐습니다. "바위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고 있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녀석이 정말 시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또 우리 집에 걸린 그림 중에 북한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것으로 믿고 있는 금강산 그림 한 점이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운무 위를 날고 있는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저 그림에 새가 몇 마리냐?" 하고 물어보았지요. 나름 셈을 가르친답시고 그런 것이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99마리."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99마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세 마리밖에 없잖아."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왜 구름 속에 숨은 나머지 새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아들의 눈에는 새가 세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바위도 없습니다. 시인 같이 생각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승호딕플 사내라고 조르고, 말은 뒤지게 안 듣습니다. 시는 고사하고 책 한 줄 읽기를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니, 이거 원.


꽃터널, 사진사들은 꽃들이 만드는 장관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사진사는 허리가 아픈지 가끔 허리를 돌려가며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같다 대고 구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꽃잎들은 사방에 휘날릴 것이고 그때가 사진사에겐 셔터를 누를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저렇게 한곳에 진을 치고 셔터를 누를 기회를 기다릴 만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떨 땐 그런 사진사들을 보며 태공망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160년을 살았는데 후 80년을 위해 전 80년은 그저 낚싯줄만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고 합니다.

그게 진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 흉내 내다간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꽃구경은 참 잘했습니다. 진해여고 앞만 한 바퀴 도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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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진해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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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10월 25일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진해 시민회관 쪽에서 장복산 공원을 거쳐 삼밀사로 올랐는데요. 삼밀사는 장복산의 중턱쯤에 있는 절이었습니다. 저는 이 길이 처음입니다. 장복산 공원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아래 사진과 같이 평화통일기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갸륵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진심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 김주완 기자가 올린 블로그 포스트에도 보니 팔공산 동화사에 통일기원대전이 거창하게 지어져 있고 현판에는 노태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저는 통일을 자주 입에 담는 분들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인데, 역시 거시기 하더군요.

대규모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무력도발로 충돌을 야기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판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이렇게 돌탑을 쌓아 놓았군요. 

옛날 친구의 신혼여행에 따라갔다가 마이산에 세워진 돌탑들을 보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나던데요. 누가 처음 쌓기 시작했을까요? 저도 돌을 하나 올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무너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거의 땅바닥에 얼굴이 닿을 정도랍니다. 돌탑을 지나자 이번엔 커다란 석등처럼 생긴 조형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두 개가 양쪽에 서있었는데요. 이 절은 매우 특이하군요. 일주문은 없고 대신 이 석등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이 보이는 형상이었습니다.   


석등을 지나 가파른 경사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드디어 절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매우 힘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현판이 보입니다. <장복산 삼밀사>라고 씌어 있습니다. 보통 무슨 산 무슨 사라고 적어놓는 것은 조계종의 오랜 전통입니다. 조계종은 선종의 맏형으로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9산을 통합하여 창건된 종파라고 하던데요.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이 교종을 기반으로 선교 통일을 기한 데 비해 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죠.

그래서 항상 절 이름 앞에 산 이름이 먼저 붙는다고 하더군요. <조계산 송광사>처럼 말입니다. 아, 말이 나온 김에…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이었죠. 그런데 지눌스님을 존경하는 왕의 명에 의해 송광산은 조계산으로, 조계사는 송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대요. 재미있는 일이죠.   


하여간 이 절도 장복산 삼밀사란 현판을 단 것을 보면 선종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데 현판이 한글로 되어 있군요. 그리고 절 이름은 보통 일주문에 새겨놓잖아요? 그런데 이 건물은 아무리 봐도 일주문과는 달라 보이는데요. 일주문이란 말 그대로 기둥 한 개만으로 세워진 문을 말하잖아요?

게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아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것도 한글로 <장복산 삼밀사>라고 써놓으니 특이하다 못해 이게 절이 맞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그런데 사진의 밑을 보세요. 같은 건물 1층에 보니 <문왕천>이란 현판이 보이시죠? 이게 뭘까요? 저는 여기 한참 서서 이게 뭘까 하고 고민했었답니다. 

문왕천? 문왕천? 문왕천? 

도대체 문왕천이 뭐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제석천은 들어봤지만 문왕천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 거 참, 무얼까요? 
……… 


옆에서 함께 한참을 지켜보던 아들 녀석이 대뜸 말합니다. "아빠, 혹시 이거 천왕문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현판 <장복산 삼밀사>는 현대식으로 좌에서 우로 쓰기를 해놓고, 아래 현판은 다시 우에서 좌로 쓰기를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이건 한글이잖아. <문왕천>이 분명해." 그러자 아들 녀석이 말했습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뭐." 

건물의 입구에 들어선 저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거기엔 4대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천왕들이 몹시 화가 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두고 문왕천 운운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절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경제적인 사찰이로군. 일주문을 대신해 석등 두 개를 세워두는 센스에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합쳐 하나의 건물에 담는 이 놀라운 발상이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 게야. 하긴 땅이 좁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을 테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저 문왕천인지 천왕문인지는 마음에 걸린다 말이야."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지금도 문왕천으로 보이는데요. 
어쨌든 이 절에서 내려다보는 진해만은 참 아름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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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장복산삼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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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들과 함께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10월 25일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러니까 10월 25일 우리는 장복산을 오른 것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시민회관에서 내려 장복산 공원과 삼밀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봉우리들을 넘어 안민고개에서 도로변 데크 등산로를 걸어 태백동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진해시민회관에서 조금 올라가니 장복산 공원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오뎅을 사먹었는데 맛은 하나도 없는 것이 개당 700원, 세 개에 2000원 하더군요. 기분 잡쳤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 하는데 이건 내가 만든 오뎅보다 더 맛이 없는데다가, 주인아주머니(할머니인지)가 경상도 갯가 사람 아니랄까봐 퉁명스럽기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초장부터 기분 잡쳤군. 오늘 산행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이거 기분이 영 안 좋아." 위에 보이는 녀석이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산에 따라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요즘 제 카메라에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캐논 450D인데 나름대로 쓸 만한 DSLR 카메라죠. 전문가용은 아니라도 전문가용을 흉내 낸 보급형 SLR 카메랍니다.

저는 이 카메라를 산지 무려 8개월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자동모드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놈은 재산 1호인 이 카메라에 손을 못 대게 하는 데도 벌써 수동모드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용어까지 써가면서 말입니다. 확실히 신식문물을 익히는 데는 아이들이 빠른 것 같습니다.

빛의 세계에 대해 더 고수인 것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저는 "그래, 좋다. 오늘은 카메라 니거다." 하고 과감하게 맡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8개월 동안 이 재산 1호를 불면 꺼질 새라 신주처럼 모셔왔습니다. 아직 잔기스 하나 없으니 방금 산거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보시는 모든 사진들은 아들놈의 솜씨랍니다. 

다람쥐가 지나가고 있군요. 녀석이 잽싸게 셔터를 눌렀지만, 18-55미리의 표준 줌렌즈로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녀석이 말합니다. "아빠, 봐라. 지름신이 안 내리나? 아, 나는 자꾸 지름신이 내리는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망원렌즈 사고 싶지 않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더군요.  


망원렌즈?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는 표준 줌렌즈면 꿀떡입니다. 그리고 풍경을 찍기에는 표준렌즈가 딱이죠. 산을 오르다보니 이런 태그가 나무에 붙어있군요. 산을 사랑하는 부부. 오우, 정말 훌륭한 부붑니다. 함께 산을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겠지만, 정도 돈독해지고 일석이조란 생각이 드는군요.  


장복산 정상입니다. 아 참, 우리가 산에 오른 목적은 산행도 산행이지만, 장복산 일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랍니다. 사실은 2주 전에 장복산에 올랐었는데 넘어가는 해가 너무 멋졌거든요. 아마 평생 그렇게 멋진 일몰광경은 처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놈을 꼬여 다시 장복산에 오른 것입니다.

12시 반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쉬엄쉬엄 올랐는데도 시간이 2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려면 5시는 넘어야 할 텐데….


북쪽을 보니 창원시가지와 공단이 보입니다.


서쪽을 보니 마산시가지가 보입니다.


이번엔 다시 남쪽을 보니 진해시가지가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장복산이 진해, 마산, 창원의 중심에 솟은 산이었습니다. 아들놈이 장복산 정상 표지석에 섰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받아 한 컷 찍었습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5백 수십 미터쯤 되었는데, 정확한 높이는 까먹었습니다.


저 멀리 마창대교도 보이는군요. 다리 건너 오른쪽에 희미하지만 가포 매립현장이 보입니다. 날씨가 구름이 많고 황사가 있었던지 시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며칠 전처럼 선명하고 대단한 크기의 일몰은 기대하기 어렵겠습니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웬 봄꽃이 피었습니다. 이게 창꽃이던가요, 진달래던가요? 아무튼 찬바람을 맞고 있는 꽃이 애처로웠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에 핀 봄꽃의 피부 곳곳은 멍이 든 것처럼 시커멓게 시들어 있었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 왠지 불길한 생각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장복산 정상 바위에서 내려오는데 이렇게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옆에 목재로 잘 만들어놓은 계단이 있는 줄을 모르고 이리로 내려왔습니다. 마치 유격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멋들어지게 서있군요. 아마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능선에 아름다운 꽃들도 만발하고요. 이 꽃은 구절초라고 하나요? 아니면 국화일까요? 저는 꽃 이름은 장미, 코스모스 밖에 몰라서…


장복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옆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배낭에 넣어온 도시락을 먹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시간은 2시.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미리 책을 한 권 넣어왔습니다. 주변의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곳에 앉아 세 시간을 버티려면 독서가 최고지요. 아들 녀석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테고요.


측량기준점인 모양입니다. 삼각점의 중심에 추를 늘어뜨리면 거기가 기준이지요.


드디어 서서히 일몰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하늘에 비행기도 지나가고요.


이제 다섯 십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역시 다가오는 저녁의 색은 아름답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사진만 감상하시겠습니다. 물론 다 우리 아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아 우리 애는 월포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죠.


자, 잘 감상하셨습니까? 여기까지가 마지막 사진입니다. 아들 녀석은 진해시가지 야경도 찍겠다고 했지만 찍지 못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부터 안민고개까지는 예닐곱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죠. 그런데 흥분에 도취된 아들놈이 내리막길을 카메라를 손에 든 채 뛰어가다가 엎어진 것입니다.

다음 봉우리에 뛰어올라가서 거기서 또 다른 일몰장면을 잡고 싶었던 것이죠. 제 딴에는 엎어지면서도 최대한 카메라를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보시다시피 이후부터 사진은 없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암흑은 산중에만 찾아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씩씩거리면서 능선을 달렸고, 녀석은 모르겠습니다. 대화가 단절되었으니까…. 

일몰이 지나가자 세상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변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칼 같은 바위 능선의 양쪽은 천 길 낭떠러지,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화가 났던 터라 아무 생각이 없더군요. 그냥 묵묵히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니 안민고개가 나왔습니다. 속으로 살았다 싶었지만 일단 냉전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안민고개에서 진해시가지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가려니 진해에 사는 아내의 대학 선배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가는 어느 실내포장에 들어가서 닭발 요리와 소주를 한 병 시키고 녀석에겐 우동과 만두를 한 접시 시켜주었습니다. 그 선배가 아들놈의 눈치를 살피더니 "야, 너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표정이 와 그렇노." 

"일마 이거 오늘 사고 한개 칬다 아임니까." "와 무슨 사고 칬는데?" 경위를 들은 그 선배는 "야, 너그 애비 재산 1호를 그래 뿌사삤으니 성질 안 날끼가. 조심 좀 하지. 지나간 일인께 신경 쓰지 말고 만두나 먹어라." 그리고 제게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한테 너무 그라지 마라. 카메라가 중요하나, 아가 중요하지." 

하긴 맞습니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 그게 됩니까? 기분 나쁜 건 나쁜 것이고 또 아들은 아들이고 카메라는 카메라인 것이지요. 어쨌든 카메라는 2주 후에 부산에 가서 깨끗하게 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놈은 매일 저녁마다 아르바이트로 설거지를 해서 받은 1000원을 모아 2만원을 변상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애 엄마는 "야 임마, 시키지도 않는 설거지를 니가 와 하는데?" 하면서 불만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불만입니다. "설거지를 할라면 자기가 하지 와 아를 시키노?" 제가 시켰거든요. 설거지해서 돈 벌어 갚으라고요. 어쨌든 오늘부로 2만원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꽤 설거지를 많이 한 셈이죠. 

오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동민아, 오늘까지 2만원 받은 걸로 끝내자. 5만원은 받아야 되는데 나머지는 탕감이다. 됐나?"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무척 기분 좋아라 하는군요. 가만 생각하니 저도 좀 웃기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벌어진 일이니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2만원은 돌려주어야 할 듯합니다. 아무튼 카메라는 무상수리로 간단하게 고쳤거든요. 물론 부산까지 두 차례 왕복 차비는 들었지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진해 해군기지에 다녀왔습니다. 해군본부 공보팀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견학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는 첫날은 가지 못했고 둘째 날에만 합류했습니다. 처음부터 합류하고 싶었지만, 블로거스경남 블로그 강좌에 강의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경남 진해에 있는 충무공리더십센터로 갔습니다. 전날 뒤풀이에서 과음을 했던 관계로 조금 늦었습니다.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1교시 강의가 시작되었더군요.

충무공리더십센터의 한 건물. 뒤로 천자봉(시루봉인가?)이 보이고 정상 부근에 해병대라고 쓴 하얀 글씨도 보인다.

 
바깥에서 노닥거리며 기다리자니 매우 심심했습니다. 충무공리더십센터는 원래 제2선수촌 자리였습니다. 선수촌이 없어지면서 해군에서 인수한 모양입니다. 기다랗게 펼쳐진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호텔 장사를 하면 꽤나 잘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해에 이토록 좋은 곳이 있었다니. 바로 옆 동네에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해가 출생지이며 원적이 창원군 웅천면인데도 이곳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9시가 되자 강의가 끝나고 현장견학을 떠날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관광버스에 탑승했습니다. 관광버스는 대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해군본부가 대전 계룡대로 옮겨간 지가 꽤 됐습니다. 저는 아직도 해군본부가 진해에 있다고 착각했었습니다. 버스 기사님의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충청도 말이라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현장견학은 STX조선소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 이승만 대통령 별장 → 청해진함 견학 → 잠수함 박물관 → 잠수함 견학 순으로 했습니다. 

STX조선소 견학이 끝나고 해군사관학교 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바로 옆 바닷가에 거북선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거북선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다가 문득 거북선 아래 바다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바다 속 깊은 곳이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물고기들이 새까맣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 새까맣다는 표현 외에 달리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고기가 엄청 많았다. 위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깊은 곳에는 손바닥 몇 배가 되는 돔 같은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무슨 물고기들이 저렇게 많죠? 여기서 낚싯대만 드리우면, 아니 그냥 잠자리채로 한 마리씩 건져 올려도 되겠는데요." 그러자 옆에 있던 해군본부 공보팀 권 중령께서 그러시는군요. "여기선 낚시를 못합니다. 금지되어 있죠. 전에는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군기지 내에선 모두 금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모 중령이 거듭니다. "네, 지금은 모두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물고기들이 그걸 아는 거죠."

여기뿐만 아니라 해군기지 어느 곳을 가든지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겁니다. 그 중령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물고기더러 머리 나쁘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잖아요?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보고 놀릴 때 물고기 뭐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거 다 헛말이에요. 바다에서는 물고기 머리가 최곱니다. 이놈들은 벌써 다 알고 여기 모인 거예요. 여기 오면 안전하다는 걸 알고 다 이리로 모이는 거죠."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육지에선 사람 머리가 최고고 바다에선 물고기 머리가 최고겠지요. 물론 초원에 가면 사자나 하이에나가 우리보다 머리가 더 좋을 겁니다. 이런 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와바리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는 물고기들의 나와바리죠. 아무튼 정말 대단했습니다. 갑자기 침이 꼴딱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낚시광인 만날재손짜장 최 사장 생각이 나더군요. 이거 보면 환장을 할 텐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물고기 대가리' 같은 소리도 조심해서 써야할 것 같습니다. 물고기도 아이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아니 물속에서는 사람보다 물고기 아이큐가 더 높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으니까요. 해군기지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저토록 새까맣게 몰려든 물고기들을 보고 그런 생각이 안 든다면 그야말로 물고기 대가리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런 실수를… ㅋㅋ 

물고기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까지는 해 주어야겠다, 이러면 또 비약이 달나라로 가는 것인가요? 하하. 

해군블로그 블루페이퍼 이메일클럽 회원들이 단체촬영에 모이는 중. 인솔나온 장교들도 모두 사복이었다.


해군기지 구경 잘 시켜주신 해군본부 공보팀 권 중령님을 비롯한 홍 중위님께 감사드립니다. 해군블로그 블루페이퍼에도 들러보았는데 매우 모범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해군블로그가 출범한지 이제 겨우 6개월 남짓 된 것 같은데도 벌써 방문자 백만에 이르렀더군요. 게다가 콘텐츠들이 모두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매우 대중적이기도 했고요. 군대블로그란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모두 머리가 굳어서 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블로그 같은 걸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해군블로그는 달랐습니다. 공무원들보다 더 보수적일 것 같은 해군 병사들이 만드는 블로그가 훨씬 부드럽고 대중 친화적이라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번에 중요한 거 하나를 알았습니다. 물고기도 아이큐가 있다는 사실. 때와 장소에 따라선 육지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머리가 좋을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 참, 그리고 해군기지 견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세미예님께도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실비단님, 제 사진 찍은 거 빨랑 보내주시어요. 저 성질이 매우 급하답니다앙~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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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태평동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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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난리 벚꽃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본래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이란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 있고 이를 난리법석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이에 빗대어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난리 벚꽃장’이라 함은 지나치게 어수선하고 떠들썩한 게 질서가 없이 혼란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제가 어제 그 난리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진해가 출생지이고 주민등록표 상에도 원적지가 창원군 웅천면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조상 대대로 이곳이 고향(전통적 의미에서의 고향은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곳이라 함)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진해의 지리는 커녕 '동' 이름도 잘 모릅니다. 진해를 가려면 터널을 통과해야 된다는 지리적 단절감 때문인지 마산창원 지역에 터를 잡고 산지도 어언 27년이나 지났건만 아직 진해 벚꽃장에 한 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마음을 야무지게 먹고 진해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야무지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그야 물론 진해 벚꽃장이 다름 아닌 ‘난리 벚꽃장’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들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고 오는 데 쏟아부어야 할 노력이라든지, 벚꽃장을 구경하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써야 할 신경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우리 딸입니다. 팔불출이래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어제는 오늘 안 가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는 절박감(큰 애가 이미 국민학교 6학년이거든요)으로 큰 맘 먹고 그 난리법석이 났을 진해로 건너 간 것입니다. 봉암다리를 건서 창원 땅에 들어서니 벌써 화사한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마진터널의 어둠을 뚫고 빛의 세계로 빠져나온 순간, 사방이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여 마치 그림 속에 빠져든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꽃안개로 뒤덮인 도시는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갑자기 막막해졌습니다. 식구들 네 명 중에 진해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사전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짐짓 태연한 척 마누라에게 물었습니다.

“가만, 벚꽃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진해역 앞으로 가보자. 거기 가면 장터 같은 게 많이 열려 있을 끼다. 거기가 벚꽃장 아이겠나.”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벚꽃나무 아래 장터를 열어놓은 게 벚꽃장이라니?

“아이, 무식아. 벚꽃나무 아래 장터 열어놓은 걸 벚꽃장이라고 하는 기 아이다. 그 장 하고 그 장이 어찌 같단 말이고.”
“에이, 바보야. 벚꽃 마이 핐을 때 장터 만들어 놓고 사람 마이 모인 그기 벚꽃장이지. 그것도 모르나.”
“……”

꽃마차도 등장했네요.


그러나 저는 결국 예의 집요함과 대를 이어온 고집으로 “벚꽃장은 벚꽃아래 펼쳐진 장터가 아니다!” 라는 점에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물론 그 동의는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잠정적 양보 조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소풍장소에서 이런 사소한 의견차이가 분쟁으로 비화되는 사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말은 늘 승자나 패자에게 예외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줄을 서서 따라가다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군함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돗자리 깔고 밥도 먹었습니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 병 비웠습니다, 저 혼자서. 금강산도 식후경. 이제부터 꽃구경을 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물결치는 사람들 뿐. 터널을 지나 진해로 들어오며 보았던 꽃안개는 사라지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아! 이런 걸 두고 ‘난리 벚꽃장’이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정말 난리 벚꽃장이었습니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도 있지만, 여기는 ‘꽃 반, 사람 반’이었습니다. 중원로타리로 나오니 천막으로 빙 둘러친 군항제 행사장이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4열종대로 기다랗게 줄을 만든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가 말한 벚꽃장이 진짜 벚꽃장이 맞는가 봅니다. 벚꽃장에 사람이 없으면 벚꽃장이 아니리라는 깨달음은 현장을 체험하고 나서야 얻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물결처럼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꽃처럼. 안치환이 노래했던가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아직 도(道)와 통하지 못한 저로서는 사람보다 꽃이 아름답습니다만, 꽃안개 속을 물결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가 그리 싫진 않습니다. 정말 ‘꽃 반, 사람 반’입니다…. 휘영청 은하수에 보름달을 매달고 벚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술잔에 받아 마시는 운치는 이태백이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낭만일 겝니다. 이번주 금요일이 보름이네요. 

그때까지 꽃잎들이 견뎌줄라나 모르겠군요.       파비

벚꽃 사이에 핀 동백꽃이 일품. 붉은 동백꽃 뒤로 화사한 벚꽃 실루엣이 너므 흐린 건 제 사진 실력 탓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