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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7 한달에 세번 머리깎은 아들의 통곡에 슬퍼하다 by 파비 정부권 (47)
어젯밤, 지인과 술을 한 잔 걸치고 9시 조금 넘겨 집에 들어왔더니 아들 녀석이 머리에 빵모자를 뒤집어쓰고 거기에 이불을 덮어 쓴 채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살짝 취한 김에 장난스러워진 제가 이불을 걷어내며 왜 그러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녀석 끊어지는 발음으로 그러는 겁니다.

"미용실에 머리 깎으러~ 으어~ 갔는데 으어~ 엉, 아줌마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놨다. 으어, 으엉, 엉엉~ 나 이제 밖에도 못 나간다. 으어~ 엉 나는 망했다. 아무데도 안 나갈 거다. 으어 엉~"

이 머리는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교복을 맞추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 교복을 입은 표정이 불만 투성이다. 다음날 물론 내 기준이지만 이 머리는 단정하게 잘랐다. 그러나 검열 때문에 이틀후 다시 더 단정하게 잘랐고 어젯밤 마침내 최종적으로 진압 당했다. 흐아으으으으으~읔



빵모자를 벗겼더니 짤막하게 깎여나간 녀석의 머리통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녀석은 잽싸게 빵모자를 제 손에서 빼앗아 무슨 못 보여줄 거라도 보여준 것처럼 다시 뒤집어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 엄마에게 물었지요. "도대체 누가 애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이가?" 

"학교에서 다시 깎고 오라고 안 했나. 벌써 한 달 새 머리를 몇 번 깎노? 세 번째다. 처음부터 머리를 짧게 깎았어야지." 그러더니 아이 엄마도 안쓰러웠던지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심했다. 미용실 아줌마가 너무 심하게 깎았네." 그러자 아들 녀석이 덮어쓰고 있던 이불을 박차며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미용실에 들어와서 미용실 아줌마한테 짧게 깎아주라고 말 안했나. 자기가 그래놓고 와 그라는데." 그랬더니 아이 엄마는 또 이렇게 변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미용실 아줌마가 니 머리 짧게 깎고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가. 아줌마가 자기 아는 대로 깎은 거지." 

예의 그 미용실 아줌마는 우리 아들 녀석의 친구의 어머니입니다. 아마 그 아줌마의 아들도 우리 아들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어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도 동창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아줌마는 우리 아이의 머리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 카트라인에 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녀석은 매우 상심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딸아이까지 옆에서 제 오빠를 거들고 있습니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오해입니다. 저도 결코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실은 속으로 매우 상심해 있었답니다. 

"아니 도대체 애를 무슨 조폭으로 만들어 놓았잖아. 이게 뭐야, 이게. 아무리 두발단정이 교육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선도의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지? 박정희가 환생한 신 유신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정말이지 아이는 조폭 비슷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아이의 머리카락이 긴 것이 매우 탐이 났던 터였습니다. '나도 한 때는 저런 탐스러운 머리를 갖고 있었지!' 하면서 저를 배신하고 달아난 제 머리카락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녀석의 풍성한 머리를 보며 위안을 삼곤 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꽤나 작아 보이는 녀석에겐 긴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동네 이발소에 가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박박 밀었을 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때는 정말 박박 밀었었지요, 실로 눈물이 찔끔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우리 아들 녀석처럼 그렇게 마음 놓고 소리 내어 울거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럴 자유 같은 것이 충분히 주어진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함부로 우는 것은 불경한 짓이었을 뿐 아니라 사나이(그냥 사내아이라고 해야 될까요?)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요.

2학년이나 3학년 선배들은 바리깡에 2부날을 끼워 소위 2부머리를 깎았지만, 중1짜리에겐 그런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번쩍거리는 머리로 <국민학생> 시절의 철없던 자유분방함 따위는 사그리 날려버리고 바야흐로 병영학생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겠다는 각오와 신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신입생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동한 저는 이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어 만 원짜리 한 장을 슬쩍 손에 쥐어주며 "울지 마라, 어쩌겠노, 다 운명인 것을. 니는 이제 중학생 아이가!" 했습니다만 녀석의 통곡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울 테면 울어라, 9시 55분부터 시작하는 연속극에 눈을 붙였지만 술기운 탓에, 또 아들의 슬픔 탓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습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게 자고 일어났더니 새벽 5시 30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1리터를 다 비우고 나니 이번엔 배 속에서 창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으윽~ (사실은 방금도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짼가? 항문이 찢어지는 듯하고 내장들이 쏟아질 듯 불안합니다.)

아 아, 우리는 왜 내일의 고통을 잘 알면서도 오늘의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것일까? 잠든 아들 녀석의 머리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다가가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측은한 마음이 뭉개뭉개 피어오릅니다. 왜 아이들에게 두발의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일까? 머리를 짧게 깎아야 꼭 두발단정이란 카테고리에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몰래 녀석의 머리를 카메라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소리 나지 않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들아,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던 푸슈킨 할아버지의 말씀도 안 있나. 그라고 그 할아버지는 또 '참고 견디다 보면 기필코 기쁨의 날이 온다고도 했다. 그래봐야 기껏 6년 아이가. 참고 살아라. 그기 운명인기라."  

그러나 그럼에도 날이 새면 다시 진압당한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학교 가기 싫다고 짜증내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는 않겠지요. 원래 잠이란 것은 진통제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푹 자고 나면 어제 있었던 슬픔 따위는 이미 지나간 하나의 추억일 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또 다음의 추억을 준비하는 것이고요. 그게 인생이지요. 자, 그런 의미에서 추억을 위해 건배! 앗 이런,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을 방금 겪고 나서도 또……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여요~ ㅎ 
ps; 자고 일어난 녀석 젤 먼저 하는 말, "내 모자 누가 벗겼노?"
그러고 보니 아까 사진 찍으려고 제가 벗겼군요. 그리고 다시 빵모자를 뒤집어 쓴 녀석에겐 수면이 진통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네요. 으이그~ ㅎㅎ     
ps2;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매우 좋은 학교입니다. 좋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최대한 자율을 주려고 노력하는 학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애들한테 평판이 좋은 학교랍니다. 부모들은 강제로 공부도 많이 시키고 단속도 많이 하고 그러면 좋아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학교는 아닌가 봅니다. 그러므로 두발단속의 문제는 어느 특정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의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직 우리 사회는 자율보다는 타율, 강제, 규제, 이런 것에 더 익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규제의 문제는 사실은 규제하는 측의 편의적 측면이 강조된 문제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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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