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15 앙드레 김 조문의상 논란, 왜 안 되나 by 파비 정부권 (9)
  2. 2009.08.30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김기자를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12)
저는 앙드레 김을 잘 모릅니다.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야 패션 따위가 무슨 관심거리라도 되겠습니까. 평생 패션쇼 한 번 구경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앙드레 김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이런저런 무관심이나 취향과 무관하게 그를 모른다고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생전에도 우리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을 통해 주의해서 지켜보곤 했습니다. 아마 언젠가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적도 있고, 토크쇼에서 그가 직접 말하는 성장과정을 들은 적도 있으며, 청문회에 나와 어느 정신 나간 국회의원이 "본명이 김봉남 아니냐? 솔직히 말해라!" 하고 무슨 큰 비밀이라도 밝혀냈다는 듯이 지껄여댄 바람에 앙드레 김이 원래 김봉남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저로 말하자면, 고상한 앙드레 김이 촌스런 김봉남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실로 더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그 얼빠진 어느 국회의원이 한편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모자란 의원 나리는 앙드레 김을 욕보이고 싶었겠지만, 효과는 거꾸로 나고 말았습니다.
 

▲ 사진. 앙드레 김 홈페이지

그렇게 한 분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앙드레 김이 돌아갔습니다. 앙드레 김의 죽음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야 그저 또 한 사람이 이승을 떠나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갔구나 하는 정도이겠습니다만, 연예인들에게야 커다란 충격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으며 슬픔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가끔 그래왔던 것처럼 조문 의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앙드레 김 이전에도 유명 연예인의 장례식장에선 걸맞지 않은 조문 차림으로 인해 논란의 도마에 오른 연예인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젊은(혹은 어린) 아이돌 연예인들이 그랬는데, 노출이 너무 심한 짧은 치마나 화려한 의상, 장신구가 주로 문제였습니다.

이번에 도마에 오른 유명인은 김희선, 송지효, 조수미 등입니다. 김희선은 해골무늬 스카프로, 송지효는 방송 중 앙드레 김 사망 소식을 전하다 웃음을 터뜨린 실수로, 조수미는 화려한 의상으로 각각 비난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김희선의 해골무늬 의상이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많은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되자 앙드레 김 유족 측에서 먼저 진화에 나선 모양입니다. 앙드레김 측 관계자는 14일 "가장 먼저 달려와서 울어준 사람한테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이 참~" 하고 씁쓸함을 전하며 자제를 부탁했다는 기사가 미디어다음에 보입니다. 김희선 측 역시 "10년 이상 된 사이"라며 "이런 논란에 할 말이 없다. 가슴 아픈 사람한테 참~"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이 기사는 전합니다.

앙드레 김 유족 측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문을 와준 김희선이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몰매를 맞자 보호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고 매우 적절하고 고마운 조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희선 측도 그랬어야 할까요? 가슴이 아픈 거는 아픈 거고 실수는 실수인 겁니다.

만약, 김희선이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이런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면, 그녀는 유명인이 되지 말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야 하는 겁니다. 그녀가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앙드레 김의 빈소에 조문 갈 일도 없었을 터이고 구설수에 오를 일도 당연히 없었을 겁니다.

그럼 김희선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래도 되는 것이었을까요? 역시 안 됩니다. 현재의 유명한 김희선처럼 언론이나 네티즌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을 일은 전혀 없겠지만, 주변의 친한 지인들로부터 또는 유족으로부터 비난과 섭섭함을 그대로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친지나 친구, 지인이 상을 당했을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장례식장을 찾습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거나, 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준비가 되지 않을 경우에도 가급적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유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복장에 유의하는 것은 조문객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 ▲ 왼쪽이 김희선. 오른쪽은 ..전도연? 뉴시스 사진.


저는 가끔 친구 혹은 선후배의 결혼식에 반바지 차림의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나타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본인은 자유로운 복장으로도 얼마든지 신랑 신부를 축하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본인들로서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들이 특히 가까운 사이였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물론 이런 복장으로 상갓집에 나타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것은 아마도 좋은 일보다 궂은 일이 더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일은 함께 하지 못해도 궂은 일은 반드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김희선의 처신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적절한 조문 행위를 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논란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김희선이 아무리 가슴이 아프다 한들 유족의 마음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입니다. 그녀는 빈소에 들어가기 전 자기 몸을 한 번 돌아보는 성의를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빈소에 들어가기 전, 휴대폰을 끄거나 진동으로 바꾸고, 옷매무새는 제대로 됐는지 살펴보고, 그러고 나서야 빈소에 들어가 조문을 하지 않습니까? 휴대폰이 세상에 등장한 초기에 그런 에피소드들이 있었지요. 빈소에 절을 하다가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리는데 이런 소리가 나는 겁니다.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오~ 얼싸아 좋다 얼씨구나 좋아~" 

런 일도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주의가 부족했던 점에 대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두고 너 참 잘했다, 이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김희선과 차이가 있다면, 언론이나 네티즌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 받지 않는다는 것뿐지요. 단지 그것뿐입니다.  

유명 연예인들의 조문 태도에 대해 만약 이런 정도의 비판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늘 뉴스거리를 포착하기 위해 연예인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카메라가 득실거리는 장례식장 입구는 마치 레드카펫이 깔린 시상식장을 방불케 되지 않을까…, 아슬아슬하게 짧은 치마에 어깨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은 화려한 연예인들의 조문행렬….

▲ 사진= 앙드레 김 홈페이지. 패션을 모르는 내가 봐도 예술적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아찔하지 않습니까? 김희선처럼 나이도 들대로 들고 중견 연예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마저 경황이 없었다는 핑계를 들어 상식에 없는 의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아직 세상의 상식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연예인들의 경우엔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왜 아직도 어떤 문제에 대해 언론이나 네티즌들이 논란을 만드는 것에 대해 그토록 경직된 반응을 보이냐는 겁니다. 김희선은 공인입니다. 그녀는 얼마 전 부적절한 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강모 의원과 마찬가지로 공인이며, 따라서 그녀의 행동은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행동들은 김희선이나 강모 의원처럼 공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론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만약 제가 김희선과 비슷한 행동을 했더라도 저는 우리 동네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욕을 먹었을 겁니다.

뭐 하긴 대체로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일 터이니 얼굴 들고 못 다닐 정도는 아니겠군요. 아무튼, 욕 먹는 건 분명합니다. 그 점에서 저나 김희선이나 다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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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김훤주 기자의 글 <내가 노무현·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을 까닭> 때문에 좀 시끄러웠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많은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악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이용한 광기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집단적 광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 이 집단적 광기는 거의 폭발 수준입니다. 얼마 전 티벳과 위구르 사태 때 서울에서 보여준 중국 극우파 유학생들의 난동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나라의 유학생을 극우파라고 하는 것이 좀 생뚱맞긴 합니다만, 저는 그들이 극우파로 보였습니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극우세력. 어쨌든 말이 좀 새긴 했습니다만, 저는 모든 지나친 행동은 탈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굳이 '나는 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가 모두들 조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선생(!)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대중이 30년 가까이 싸워왔던 바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한 사람의 발언을 두고 거의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낼 때 김대중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하나씩 부서진다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 또는 악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김대중을 평가하고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훤주란 사실을 말입니다. 집단적 광기 수준으로 분노를 뿜어대는 지지자들보다 김훤주야말로 제대로 김대중을 추모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도대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결단한 혁명적 사회복지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도―그들의 정체성은 역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수우파가 대부분이다―진보정당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추모논평을 보더라도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와 평화를 빼고 복지에 대한 평가를 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훤주는 그걸 했지 않습니까? 조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김대중의 업적을 제대로 바라보고 공정하게 평가를 해주었지 않습니까? 비난성 악플을 다는 여러분 중에 김대중의 업적 중에 사회복지의 혁명적인 단초를 마련한 사실을 짚어주신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좀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 허깨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사실 김훤주는 김대중을 조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김대중의 지지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와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공인도 아닙니다. 어떤 정당의 당직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조문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선생을 조문한 어떤 사람들보다 김대중의 높은 업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제 추억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는 비명에 갔습니다. 그때 우리 반 부실장이었던 기종이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열린 비상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면사무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가서 조문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네, 제 귀엔 지시였습니다.

물론 저는 조문을 갔습니다. 헌화하고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훌쩍훌쩍 울었습니다만, 역시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려웠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이 일제시대에 교편을 잡았던 문경국민학교 교정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신문에도 났습니다. 모두들 영웅이 비명에 가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지난 7월 말, 낙동강 5차 도보기행 때 구미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국장이 참 맛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 건물에서 고향 냄새가 났습니다. 게다가 식당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사진과 달력이 또 하나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달력에 "평화통일의 대도"란 쓴 글이 이채롭다. 박정희가 평화통일의 대도를 걸었을까? 또 김일성은 어땠을까?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사진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비록 독재를 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지만 경제를 잘 해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켰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오늘날 결국 대기업 위주의 재벌공화국을 탄생시킨 원흉이다 이런 평가도 있지만, 아직 국민들이 그런 진실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정책과 더불어 의료보험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생활보호법도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본 딴 농협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제도들은 북유럽을 모방한 제도들입니다. 군사독재의 힘으로 사회주의적 제도들을 이 땅에 수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사회보장제도들은 시혜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나누어주는….

그러니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보장의 효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철혈재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와 생활보호대상자 제도를 도입한 박정희와 유사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독재자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무늬만 입혀놓은 사회보장제도를 김대중이 혁명적으로 바꿨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정당한 권리자란 의미의 수급권자로 바꿨습니다. 법 이름도 생활보호법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즉 국가가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김대중이 결단하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반대했다고 하니까요. 그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과 달리 한나라당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노무현에 비해 김대중이 역시 거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김대중은 자기 칼을 잘 다루고 쓸 줄 알았지만,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을 잘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수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노무현이 만약 탄핵정국 이후 주어진 사상 최고의 권력을 제대로만 썼더라면,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을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그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이름을 길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쉬움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그래서 늘 공부하며 새롭게 진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노무현의 죽음이 더 슬픈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김대중은 충분히 꿈을 꾸었고 또 대부분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천수를 다했습니다. 

식당과 붙어있는 안채. 할머니가 토마토도 내주시고 무척 고운 분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나게 하는 집 풍경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박정희 일가의 사진을 걸어놓았던 구미의 어느 시골 식당의 풍경으로부터 저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였습니다.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의 늙은 촌장에게 묻습니다.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오는 그 영명한 지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네까?" 노인이 먼 산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합니다. 

"그저 뭘 많이 먹이야지 뭐." 네, 맞습니다. 그저 많이 먹여야 합니다.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올 수 있는 영명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김대중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정작 보지 못하는 영명한 지도력을 김훤주 기자가 보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고로 정치지도자란 이런 일을 해야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거 아니겠습니까? 이명박이 지금 민주주의를 압살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하나의 작은 소일 뿐입니다.

물결은 휘어지기도 하고 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대한 강줄기가 되어 바다로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줄기가 얼마나 주변의 대지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며 바다로 가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김훤주 기자의 목소리에서 그걸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지지자가 아닌 그가 김대중을 가장 잘 추모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고요.

횡설수설 한 것 같지만, 강호제현의 보살핌을 바라마지않습니다. 하하. 저는 김훤주보다 간이 많이 작습니다. 고재열 기자가 말한 맷집도 약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두 분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다고 두 분의 유지를 받들 수 있을까요? 

두 분의 생각이 뭔지도 모르면서 유훈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거는 것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이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말한 것처럼 제대로 두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그 공부는 오히려 조문도 하지 않은 김훤주가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슬픈 일이지만….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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