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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30 역적 정도전의 후손들은 잘 살았다 by 파비 정부권

※ 아래 글은 홍기표 씨의 페이스북 글을 퍼온 것입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새길 만한 내용도 많아 두고두고 보려고 여기다 옮겨 놓습니다.  


▲ 위 그림은 <오마이뉴스>의 <정도전> 후기.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글의 관점과는 극단적인 데가 있을까?


1>

나는 아직 우리가 조선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한글을 쓰고 있다. 
둘째, 서울을 계속 쓰고 있다.
세째, 태극기를 쓰고 있다. 
(태극은 성리학의 핵심 세계관이다. 성학십도의 첫번째 그림이 태극도설이다.)

이 조선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다.


2>
주말 드라마 <정도전>이 끝났다.

지금까지 TV드라마는 대부분 <왕>이나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즉 사극에서는 주인공의 직업이 매우 단조로웠다. 심지어는 임금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고정적이었다. "고려는 최수종이 세우고, 조선은 유동근이 세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였다.

<정도전>은 .. '정치가'를 다룬 드라마다. 일각에서는 정도전이 매우 대단한 혁명가인것 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정치인>이 맞는 개념이다. 이 시대 정치인들의 행태와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TV에서는 정도전이 입만 열면 "백성이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파 들에 대해 "이새끼 저새끼.."하는 말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도 "국민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는 ... 공식적인 문헌상으로나 하는 얘기지.. 일반적인 술자리에선 하지 않는다.


3>

TV드라마의 한계를 이해하지만. 단지 이방원이 욕심많고 포악하고, 나쁜놈으로 묘사된 것은 좀 아쉽다. 나는 실제 조선의 첫번째 왕은 이성계라기 보다는 이방원이라고 본다.

인간의 권력의지를 나쁘게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물론 당시에 선거와 의회가 없었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정권찬탈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시대적 한계라고 봐야 한다.

사실 '내가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한 예수나..
'내가 왕이 되면 정말 세상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나.. 
어차피 '자아'에 대한 확신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본다.

강력한 자아가 있고, 그 강한 자아들이 모두 자신의 추구하는 바를 
추구 할 수 있을 때, 사회도 강해진다.


4>

TV에서 안나온 후기를 지적하자면.. 역적 정도전의 후손들이 잘 살았다는 점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역적이라고 규정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 후손들에 대해서 관대했다.

정도전의 세 아들중에 한명은 그날 밤 이방원파랑 전투중에 죽었고, 한명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 
마지막으로 장남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그냥 살아남았다. (칼들고 덤비거나 자살하지 않았다면 두 아들도 다 살려줬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정도전의 후손들은 높은 벼슬도 얻고 .. 잘 지냈다. 
일반적인 역적의 후손들과는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은 셈이다.

논리적으로는 '역적'의 후손들은 다 죽였어야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후손들이 사회적으로 능력껏 출세할 수 있도록 다 용인 되었다. 
그 역적이라는 것이 .. 단순히 승리한쪽의 반대파 라는 뜻일뿐,. 실제 조선의 설계자는 
정도전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무려 500년동안 지속되었던 셈이다.

정치는 흔히 냉혹한 전쟁터로 비유되지만..
나는 이것이 조선시대가 품고 있던 <정치의 따뜻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5>

지금 시대에 유교라고 하면 매우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고려말 <성리학>은 외국에서 수입된 최신 혁명이론이었다.
80년대 한국에서는 <맑스주의>가 외국에서 수입된 혁명이론 역할을 했다.

그래서 양자는 사실 비슷한 현상이다.

원래 혁명이론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외부에서 들어와야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청년시절, 외부에서 수입한 혁명이론을 읽으며 
미쳐 날뛰던 젊은 영혼 중에 한명이었다.
그에게는 아마도 맹자가 레닌이었을 것이다.


6>

정도전도 똑같이 현실의 정치적 고통을 당하며 살았던 그 시대의 정치인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인생의 반을 귀양으로 살았고, 나이 40에 아무 가진 것없이 광야에 서 있었다. 나이 들고 보수화 되면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반대파에 갚아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자기 머릿속에 그린 국가 모델을 자기 눈앞에 구현해 낼 수 있었던 원천적인 동력은 .. 어떤 경우에도 <꿈>과 <힘>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철학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국민윤리책에 나온 칸트식 표현을 빌리면
꿈이 없는 힘은 맹목이고 
힘이 없는 꿈은 공허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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