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2.01 전라도의 산 by 파비 정부권
  2. 2012.01.16 20년 전 추억 떠올린 전라도의 과분한 친절 by 파비 정부권 (3)
  3. 2009.01.31 전라도 좌파가 된 소감 by 파비 정부권 (7)

전라도는 어디를 가나 산이 예쁘다. 

여자의 속살같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곡선들이 푸른 소나무로 물들인 

치마를 입고 비스듬이 누워 

차창에 박힌 여행자의 시선을 홀린다. 

그러다 가끔 새하얀 살결 위로 

솟아오는 쇄골의 장관. 

이래서 남도인 것인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 전라도

20여 년 전 친구 따라 전라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경상도에서만 줄곧 살아왔던 제가 아마 처음 전라도 땅을 밟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을 전라도로 떠났습니다. 남원에 있는 한국콘도에 베이스캠프 비슷한 것을 차려놓고 여기저기 다니자는 계획이었죠.

왜 남의 신혼여행에 따라갔냐고요? 오래 돼서 기옥도 잘 안 납니다만, 당시 해고/수배자 신분이었던 제게 결혼식을 마친 친구가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야, 너 앞자리에 타라!” 해서 얼떨결에 따라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운전은 고교 한해 후배가 했습니다.

남원 지리산 한국콘도에서 첫날밤을 무사히(?) 보내고(연탄불 때는 셋방만 전전하던 제겐 완전 별천지였습니다) 다음날 변산반도로 출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 호남평야를 지나면서는 감탄사가 연방 나왔습니다. 우와~

▲ 20년 전의 추억이 다시 생각나게 만든 곳은 지난 12월 31일에 만난 이 주유소였습니다.

대충 지도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전주를 거쳐 부안방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변산반도로 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전라도 땅은 경상도와 달리 이정표가 형편없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아니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여기는 시장하고 군수들이 전부다 엿 바꿔 먹었나? 왜 도로표지판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야?”

사실 김제평야에서도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낭비했던 터였습니다. 아무튼 전주 외곽으로 달려 서쪽으로 가면 부안가는 길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달렸지만 웬걸, 우리는 계속 제자리를 뱅뱅 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창문을 열고 물었습니다.

“저, 아저씨. 변산반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됩니꺼?”

느닷없는 경상도 촌놈들을 만난 이 아저씨, 아주 친절하더군요. 하지만 뭐라 뭐라 한참을 설명해주었지만 우리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 갑자기 성질을 팍 내더니 획 하고 차를 몰아 저 앞에다 세우고 내리더군요.

우리는 순간 속으로 찔끔. ‘아, 이거 우리가 뭘 잘못했나?’ 그러나 기우도 잠깐. 우리 차로 다가온 그 아저씨 다시 상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오우, 정말 친절하더군요.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찰나, “조심해서 잘 가셔요!” 손을 흔들며 떠납니다.

그러나 역시 전라도 길눈이 어두운 우리 차는 다시 헤매기 시작했고 이번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가 아무래도 길을 잘 알겠다 싶어서였지요.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해주는 택시기사 아저씨.

▲ 광주 김대중센터 조금 지나니 이 주유소가 나왔는데 동네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잘못 알아들으니까 앞에 아저씨처럼 화를 벌컥 내는 택시기사님, “잔말 말고 내 뒤만 따라오시요잉!” 비상등을 깜빡이며 앞장을 선 택시는 우리를 전주 교외의 어느 길목으로 안내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똑바로만 가면 변산반도라는 설명과 함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떠나는 택시기사 아저씨.

세상에나! 우리 동네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 지나치게 과분한 친절은 뭘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연타로 전라도 사람들의 아무 조건 없는 깊은 친절에 감동한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신문에 독자투고라도 해야겠다.”

그래서였을까요? 변산반도의 어느 횟집에 찌개다시로 나온 멍게 맛이 왜 그렇게 사각사각 싱싱하고 맛있던지 한 접시를 더 시켰는데 두말없이 방글방글 웃으며 횟집아주머니의 둥글둥글한 얼굴마저 더없이 친절하고 복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콘도에서 자면서 그날은 변산반도 다음날은 마이산을 둘러보았는데 몇 차례의 후한 친절을 더 경험하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지리산을 넘어 경상도 땅으로 돌아왔습지요.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았지만, 결국 신문에 독자투고 같은 건 못하고 말았네요.

그때 결혼을 했던 친구가 지금은 경남도의원이 된 여영국입니다. 그러고 20여 년이 지나 이번엔 우리 동네의 한참 선배 뻘이 되는 두 형님들과 함께 전라도 목포로 가게 됐습니다. 한분이 함양에 살고 계시는지라 함양을 거쳐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를 지나 목포로 향했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88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보면 중간에 신호등이 하나 나온답니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신호등, 그리고 좌회전 하는 차들. 제가 한 6, 7년 전에 이 고속도로에서 만난 빨간불에 혼비백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긴 다음에 해드릴게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전라도는 아직도 이정표가 부실하더군요.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헤매다 기름도 떨어지고 해서 광주의 어느 주유소에 들어가 길을 묻게 됐습니다. “아저씨, 여기서 목포로 가려면 어떻게 나가면 됩니까?”

▲ 커피를 직접 타주시는 주유소 사장님? 혹은 직원?

전라도 사람들 친절은 여전하더군요. 그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저는 전라도 사람들 말하는 것을 듣노라면 마치 한 곡조 노래를 듣는 기분입니다. 특유의 고저가 분명한 억양) 설명을 해주는데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 커피자판기 없습니까?”

“네, 여긴 자판기는 없고요. 사무실로 들어오시죠. 거기서 커피 타서 드시면 됩니다.”

사무실에 따라 들어가니 주유소 사장님(사장인지 직원인지는 모르겠음)이 직접 커피를 타서 우리 일행들에게 일일이 한잔씩 돌리더군요. 오, 이렇게 고마울 데가. 함께 간 형님들도 감탄사가 연발. “야, 이 동네 사람들 너무 친절하네. 우리 동네에선 상상 안가는 일이제.”

▲ 얼굴도 참 친절하게 잘 생기셨지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마을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죠?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광주는 실로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주유소에서 만난 친절에 2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달리는데 이내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친절의 고장 전라도. 옆자리에 앉은 형님의 말씀에 따르면 전라도는 원래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한 고장이라 친절하기도 하고 인심도 후한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그럼 경상도는 그 반대인가?). 그리고 불과 한 시간 후,

우리는 목포 북항의 돌수산횟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져나갈 듯이 넘쳐나는 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 들러본후 2009/01/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낭비했구만... 전라도 좌파들... 하여튼...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 한테 낚여?
    정말로 세월 좋아졌구마...
    이런넘들 아주 싸그리 잡아서 삼청교육대가서 6.25때 어땠는지부터
    지대로 교육시켜야 정신차리지....
    이러니까 전라도 제외한 국민의 80%가 전두환때가 그립다고 하지들..ㅉㅉ
    정신좀 차려라 너네들끼리 서로 댓글달고 좋아하지들 말고....
    그런 귀족노조들 보호할 시간있으면 소년소녀가장좀 돌보시기를.......

    • 들러본후 2009/01/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좌파들 특징이 이런 본론만 얘기한 글들은
      무조건 삭제시켜버리지....
      삭제시키기전에, 고향이 어딘지부터 밝혀보시지들 그랴
      전라도 20%가 동조하고 옹호한다고
      국민의 80%가 찬성한다는 착각은 노무현때부터
      시작되더구만.... KBS/MBC때부터..... 



  • 위 글은 제 블로그에 달린 댓글입니다. 본문 제목은 <정몽준의 현대가 보여준 무자비한 보복테러>였습니다.

    어이없는 독해 수준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에게 낚여?…”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북한군 총참모장 대변인이 TV에 나와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데 대해 그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은 방금 전 현대중공업에서 보고 왔노라고 쓴 데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사실 북한은 어수선한 내부를 단속할 목적으로 가끔 이렇게 남북관계를 긴장시키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예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를 단속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자꾸 멱살 잡고 싸우고 그래야 옆에서 싸우지 말라고 말리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할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행동이야 정권안보 차원에서 저지를 수 있는 짓이라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과거 수시로 이런 캠페인을 했습니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저지르는 전형적인 수법이 바로 이거지요.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비유를 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북한의 이런 행동들이 남한의 독재자들에겐 아주 유용한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심지어 97년 대선 때는 당시 정권이 북한과 연계하여 판문점에서 총을 쏘아주기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총풍사건이었죠.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통합책이었는지 어쨌는지 이 사건은 유야무야됐습니다.

    무식한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참 웃기는 일이죠. 적과의 동침도 아니고 무슨 이런 로맨스가 다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게다가 버스 안 뉴스를 통해 북한 군부가 협박하는 무자비하고 한계가 없는 타격력이란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10분 전 현대중공업 경비대들로부터 보았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무자비하고 한계를 상실한 테러였습니다. 과거 현대는 식칼테러사건이란 걸 벌인 전력도 있습니다.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사였던 이덕우(현 진보신당 공동대표)씨는 “삼성은 교활하고 현대는 무식하다”고 했지만, 그날 보았던 현대는 무식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 학살전쟁을 무식하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논조의 주장에 대해 “뭐? 틈만 나면 북한이 남한을 도와주려했다고?”라고 반응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줄 수 있겠습니다.(혹 익명의 이분 머릿속에는 ‘대한민국=한나라당’으로 꽉 차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무식한 것이 죄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입니다.

    글쎄 저를 전라도 좌파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제가 좌파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 스스로는 좌파라고 생각하지만, 제 입으로는 그런 이야길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좌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말이지요. 그래서 좌파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좌파란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로 휴머니즘,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좌파가 아닌가 합니다.  

    느닷없이 전라도 사람에 좌파가 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 사회과학 서적의 90%는 좌파지식인들이 썼으며, 그 이유는 모든 세상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목수정-레디앙)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더러 좌파라고 딱지를 붙여주신다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든 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저는 경남 창원군 웅천면(현재는 진해시)이 고향입니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며 지금도 친척들 대부분이 살고 있습니다. 또 경상북도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원에서 근 이십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갱상디언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전라도 사람이 되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조상들에겐 제 고향을 저버린 후레자식놈이 되고 마는 일입니다. 전통적 유교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는 천벌을 받을 일입니다. 모욕도 이처럼 지독한 모욕이 없는 것입니다.

    전라도 좌파면 삼청교육대 보내야 되나

    익명의 이 댓글은 한 발 더 나아가 “저 같은 사람은 싸그리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보내 6·25가 어땠는지 제대로 교육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습니다. 삼청교육대가 뭐 하던 곳입니까?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병신 만들어 보내던 곳 아닙니까? 길 가다 기분 나쁘게 생긴 놈 있으면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진주에 가면 육거리파라고 있는데요. 그 육거리파 두목이 삼청교육대에 갔다 와서는 정신이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비가 오는 날도 남강다리결에 나와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밤에 애인과 잠을 자다가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전해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당시 저는 직접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을 만큼 나이가 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 무시무시한 곳에 저를 전라디언 좌파로 낙인찍으며 보내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6·25가 어땠는지 거기 가서 안 배워도 이미 충분하게 그 참상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6·25는 지금도 이 나라 안에서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익명의 이 분은 군대나 제대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군대 30개월 꼬빡 채웠을 뿐 아니라 육군본부 참모총장실에 가서 육참총장으로부터 수고했다고 금일봉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노란 봉투에 백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쓴 건 아니고 네 명이서 갈랐지만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도 조금 하지요.

    익명의 이분, 군대나 갔다 오셨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야말로 6·25를 제대로 겪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특수부대원으로 직접 참전하셨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은성무공훈장 등을 세개나 받아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불태워버렸던 것을 아쉬웠던지 최근에 다시 받아다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습니다. 저는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은 통에 마치 제가 6·25 참전용사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함양에 가시면 얼마든지 그 참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그 민간인학살 발굴작업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분의 블로그에 가보시면 공부가 많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2kim.idomin.com) 그런데 굳이 삼청교육대를 다시 만들어 저 같은 사람을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이 익명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분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면 죄다 꼬리를 감추고 도망이나 갈, 용기라고는 개미오줌 만큼도 없는,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잉여물에 불과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악성 댓글을 익명을 이용해 서슴없이 다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모욕법 따위에 주로 동조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분들은 밝은 불을 켜놓으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겁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간에 전라디언, 그것도 전라도 좌파씩이나 돼보는 영광을 본의 아니게 누리게 되었으니 그리 썩 나쁜 일만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전라디언 좌파라!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에겐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어주는 건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이렇게 웃어주어야지요. 피식~

    2009. 1. 3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