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5.06.13 김일성장군 아니면 다 굶어죽었시요 by 파비 정부권 (3)
  2. 2009.11.12 미실과 이명박의 공통점, 드라마로 미화된 독재자들 by 파비 정부권 (6)
  3. 2009.07.14 ‘선덕여왕’ 미실이 대인배? 그럼 전두환도 대인배다 by 파비 정부권 (50)
  4. 2009.02.19 전두환은 오바마와 닮았다? by 파비 정부권 (10)
  5. 2009.02.16 심산선생 무덤에 절하던 김추기경, 시대의 선구자 by 파비 정부권 (4)
  6. 2009.01.31 전라도 좌파가 된 소감 by 파비 정부권 (7)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중국 흑룡강성에서 온 동포가 있었다. 나는 그의 가족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종종 식사를 함께 하거나 술을 마셨다. 그들은 한 민족이었지만 우리와는 많은 부분에서 관심사가 달랐다. 예컨대 그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보다는 중국역사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 주로 중국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 그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초한지, 삼국지 이야기에다 중원오악이 어떻고 동정호가 어떻고 절강성의 서호와 서시 이야기며 뭐 이런 것들을 늘어놓으면 와, 우리보다 중국을 더 잘 아네, 이러면서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비록 조선민족이지만 정체성은 중국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피부로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들은 정말 중국인이었으며 그것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니 사실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중국은 모택동 주석이 없었으면 다 굶어죽었시요.”

 

그 가족 중에 어머니는 원래 함경도에서 살다 흑룡강으로 이주한 분이었는데, 그러면 그의 동생(내가 잘 아는 친구의 외삼촌)이 끼어들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야요. 김일성 장군 없었시모 다 굶어죽었을 끼요.”

 

모택동이든 김일성이든 공과 과가 있을 터인데 어쩜 저리도 완고한 충성심을 보일 수 있을까. 나는 확신에 찬 그들의 얼굴표정과 어조에 전율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일뿐더러 오랜 세월 형성된 그들의 관념을 바꾼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한편 그것은 우리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지 않았던가.

 

박정희 대통령 없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밥 먹고 살 수가 있나. 다 굶어죽었지. .”

 

북한의 정규택 화백이 그렸다는 <한 전사의 건강을 념려하시어>라는 그림이다.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감동? 아니면 역겨움?

그런데 어젯밤 나는 오래전의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었다. 도계동에서 1차 술 한잔하고 자리를 옮겨 사림동에서 2차로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채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다.

 

, 정말 나라가 큰일이죠. 메르스 때문에 상남동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슴미더. 이래갖고 되겠습니꺼. 대통령이고 머시고 하는 일이 아아들 장난도 아이고 뭐하는 긴지 참 한심합미더.”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안 그래도 역병 옮을까 걱정되는 터에 말대꾸하기 싫었지만 그가 옳은 말을 하는 바람에 맞습미더, 맞습미더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수긍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뿔싸! 그 택시기사가 결정적 배신의 한방을 날린다.

 

정치는 전두환이가 잘 했습미더. 확 후두러 잡아야 하는데. 아새끼들 상남동서 담배 피고 해샀는 거 보모 속에서 치밀어오르는데 마이 참슴미더. 우리나라는 이 민족성이 안 되는 기라예. 마 박정희하고 전두환이 같은 지도자가 나서서 확 후아 잡아야 합미더. 진짜 인물 없습미더.”

 

, 국경을 초월해 독재의 흔적이란 이토록 무섭고 질긴 것인가. 역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드라마 『선덕여왕』 최고 히어로는 누가 뭐래도 미실입니다. 그 미실이 죽자 온 세상이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소!"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녀에게 바치는 헌사는 넘치고 넘칩니다. 이 정도면 미실을 비판하는 게 오히려 악당으로로 몰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미실이 이토록 대단한 영웅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미실의 진정한 모습은? 공포정치 이면에 두툼한 전별금으로 부하들을 위로했다는 전두환이야말로 미실의 모습 아닐까?

    ※ 참고로 나는 <미실이 대인배면 전두환도 대인배다> 란 포스팅도 한 바가 있다는 점을 밝힌다. 내 입장은 늘 그렇다.

미실에게 넘치는 칭송들, 이유가 뭘까?


나도 애초에 미실이 결국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대업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했습니다. 삼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 국내 제 세력들을 통일 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라벌도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삼한을 통일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러나 극 초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실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녀가 전형적인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히틀러나 박정희 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자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독재자들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될 듯했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독재자였지만 말입니다. 

미실은 30여 년 신라를 지배했습니다. 왕이 있었지만, 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신국의 신료들도, 화랑들도 왕보다는 미실의 말을 따랐습니다. 마치 일본의 막부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왕은 그저 상징적 존재일 뿐, 통치는 막부의 쇼군이 하는 것처럼요. 미실은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에겐 한없이 자애롭지만, 백성들에겐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미실의 지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은 무지하고 변덕스러우므로 공포를 통해 통치에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실은 군사력과 더불어 백성들을 지배할 수단으로 신권까지 장악했던 것이죠. 여기에 덕만공주가 반기를 들었지요. "미실이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었다면, 나는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겠다."

30년 동안 미실이 독재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미실의 측근들은 미실의 권력을 믿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다 저질렀습니다. 탈세와 매점매석은 기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땅을 뺏고 소작으로 전락한 양민들을 고리대를 이용해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라 재정은 파탄 일로에 처했습니다. 귀족들은 세금을 안 내고, 세금을 내야할 농민들은 땅을 잃고 귀족들의 노예로 팔려가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미실이 장기 독재하는 동안 최고 수혜자는 역시 남편과 아들. 이들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30년 미실 독재의 결과가 이랬습니다. 결국 진흥왕이 이룩한 영광은 빛이 바래고 발전은 정체했습니다. 40여 회가 지날 때까지도 미실은 악녀였습니다. 그녀는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으며,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또한 무력으로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다가오면서 미실은 갑자기 판타지로 다시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도 합니다. 미실의 인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드라마의 인기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미실은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수괴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다!'란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만들어낸 픽션이지만,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된 것입니다. 무력으로 백성들을 핍박하던 미실이 진정한 여왕으로 탄생했습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신료를 다중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이처럼 되리라"고 협박하던 미실이 애국자로 변신했습니다. 실로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력입니다. 

반란으로 장기집권하며 독재를 했지만 역시 미실처럼 미화된 표본들



30여 년 공포정치는 사라지고, 
             짧은 미실의 최후만 남았다 


미실이 막판에 속함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돕기 위해 달려온 여길찬을 국경 수비에 충실 하라며 돌려보낸 사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이는 어쩌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피살된 이후 권력공백기를 이용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일파를 향한 독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는 전방을 지켜야할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미실은 비록 똑같은 반란 세력이라도 이들에 비하면 애국자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30여 년간 자행된 미실의 공포정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막판에 그토록 처연하고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을 남겼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든 독재자의 삶이 하루아침에 고귀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나의 머리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런 스토리 전개 때문에 그토록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드라마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이었던가요? 그 해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마 요즘 『선덕여왕』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당시엔 텔레비전 말고는 별다른 오락 도구가 없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도 없었으니 인터넷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 『야망의 세월』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일개 건설사 사장을 영웅으로 미화한 드라마

그러나 사실입니다. 드라마『야망의 세월』은 이름 없던 일개 건설회사 사장을 졸지에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영웅으로 미화했으며, 결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앉혔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오늘날 이명박 정권에서 완장을 찬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었습니다. 유인촌이 현 정권 최고 실세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뽑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최대의 실수였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뽑았다. 어떤 사람을 뽑더라도 이보다 더 나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은 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가 뽑았답니다."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그 다음은 완장 찬 유인촌이다. 이들에게 드라마는 대박의 조건인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만든 한편의 드라마가 어떤 참담한 결과를 몰고 올수 있는지 나는 이명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989년 『야망의 세월』이 방영되기 전에 이명박을 알았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장담하건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현대건설 사장이 누군지 혹 아는 분이 계시나요?

아니면 삼성전자 사장이 누군지 아시는 분은요? 아무튼 『야망의 세월』덕분에 이명박은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2004년이었던가요? 이번엔『영웅시대』란 드라마가 이명박 영웅 만들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드라마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웅시대』의 실제 주인공은 이명박이 아니라 정주영과 이병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동근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극의 중심은 이명박으로 쏠렸습니다. 유동근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남자 연기자는 누가 뭐래도 유동근이었죠. 이를 두고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아니냐는 음모론도 솔솔 나왔었지요.

아무튼 드라마란 삶의 재미를 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한편 이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이는 어디까지나 국민 일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일부 소수의 의도는 분명 있을 터이지만―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실의 영웅 만들기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미실을 그렇게 애국자로 미화해야만 미실의 최후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었을까? 미실이 반란군의 지도자로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막판에 국경수비대의 지원을 마다하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30년 독재가 사라지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네티즌들이, 미실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다며 열광하지만, 나는 아직도 불편합니다.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고서도 우리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소화불량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선덕여왕』은 재미있습니다. 『대장금』이래 이토록 화제를 만발한 드라마가 있었습니까? 

그렇지만 결론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다음뷰에서 선덕여왕 후기를 읽다 보니 이런 제목이 눈에 띈다. 《선덕여왕,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다》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라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제목만 빼고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미실은 그런 점에서 나름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랫사람을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권력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신뢰와 사랑이 빠진 다스림은 억압과 통제에 불과하다. 그런 다스림은 자그마한 불만들이 조금씩 누적되다가 언젠가 커다란 봇물처럼 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은 어디까지나 덕만의 생각처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만 그 빛을 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이에 앞장서는 심복들에게만 베푸는 신뢰와 사랑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악마의 간교함에 불과하다. 

미실이 대인배란 소리를 듣고 보니 전두환 생각이 났다. 전두환이야말로 한때 대인배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던 사람이 아닌가, 몰론 세속적인 아첨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에 비해 노태우는 매우 좁쌀스럽고 치사한 인간으로 전락되곤 했었다. 전두환은 부하들이 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는 반드시 전별금이란 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소위 노란봉투로 불려지는 그 두툼한 현금 뭉치는 충성을 바치는 자에겐 더없는 기쁨이며 더한 충성을 맹세할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그의 곁에는 과거의 부하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고 했던가. 물론 돈으로 산 충성은 돈이 떨어지면 끝이므로 그 돈이 마르기 전까지만 유효한 이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추운 겨울 어느날, 린다 김 집 앞에서 죽치던 기자들에게 설렁탕 한그릇 씩이 배달되었다. 기자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 따뜻한 설렁탕을 먹게 되니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한 기자가 말했다. "아, 이거 추운 겨울 난장에서 설렁탕 얻어 먹자니 몇 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나는구만…"

그의 회고에 의하면 린다 김 사건이 터지기 몇 년 전, 김영삼 정권 초기 전두환의 집 앞에 죽치던 기자들에게도 그 추운 겨울바람 속에 설렁탕이 한그릇씩 배달되었다고 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보름씩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배달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은 복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기자의 회고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노태우 집 앞에서는 보름이 넘게 죽치고 있어도 껌 하나 안 나오더라 이 말이지. 진짜 지독하더구만…"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MBC라디오 《격동50년》을 통해 들었던 어느 기자들의 대화 내용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에서 인터뷰 식으로 확인까지 했으니 나름 신빙성 있는 에피소드였으리라. 

무엇보다 전두환의 대인배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해주는 것은 역시 장세동이다. 5공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그의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은 전두환이 노태우가 아니라 장세동을 후계로 키웠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이 떠들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전두환이 보여준 부하에 대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그런 전두환이 일반 국민들에겐 어떤 짓을 했는지를.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자신의 상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통령을 감금하다시피 해서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자기 일파에 의해 의해 대통령으로 옹립(?)되었던 최규하는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진지왕이나 진평왕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지왕이나 진평왕보다 훨씬 못한 그러니까 그저 전두환이 시키는대로 도장이나 찍고 사인이나 하는 전두환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는 게 옳을 터이다.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국민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가했다. 광주에서만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거의 20년 만에 돌아온 칠숙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미실…, 그러나 그 미실은 또한 백성들에게는 어떠했던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반대파들에겐 어떠했던가.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병사의 목을 직접 베던 미실이 아니던가. 그 미실의 모습이야말로 전두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아래 사람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대인배의 진정한 도다. 자기 개인의 야욕을 위해 사냥개처럼 순종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면서도 반대파와 일반 백성들에겐 가차없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대인배와는 거리가 멀다. 

미실이 칠숙의 손등에 떨어뜨린 눈물은 악마의 눈물이다. 악마에게도 순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정이 싸늘한 눈에 물길을 잠시 내었다고 해서 악마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모름지기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보인 순정도 결코 미실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의 눈물을 받아 마신 장세동도 칠숙처럼 그랬을 것이다.  

미실은 대인배가 결코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사악한 전두환과 같은 야심 가득한 출세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실을 대인배라고 하는 것은 전두환을 대인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칠숙도 충신이 아니다. 칠숙을 충신이라고 한다면 장세동이도 만고에 충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누가 그랬던가요?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였던가요?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부르면 안된다고 했던 거 말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래서 그냥 전두환이라고 하죠. 전두환이가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들렀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고 하는군요. 

뭐, 그 사람 특기가 뭡니까? 남들이 물어보지도 않는데 제자랑 늘어놓는 거 아닙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10년도 훨씬 더 오래전의 이야기 같습니다. 워낙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날은 제 친구 종길이와 함께 어디론가 가던 중이었습니다. 글쎄요. 어디로 무엇 때문에 아침부터 회사도 쉬고 가던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뒷짐 진 전두환. 조문이 아니라 관람 왔나? 말들이 많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시골도시의 어느 한적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때 TV 화면에서는 전두환이가 합천의 자기집에서 새벽에 검찰관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지요. 당시 합천 전두환 집 주변에는 무장한 경찰병력이 밤새 주둔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런 시시한 말 하려고 케케묵은 오래된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닙니다.

전두환이를 압송하던 차가 소나타였나 그랬습니다. 뒷자리 양쪽에는 검찰수사관들이 전두환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지요. 행렬이 대전을 지나 천안으로 향할 때였던가, 그때 전두환이 양쪽에 앉은 검찰수사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 저거 누가 만든 건 줄 알어? 바로 내가 만든 거야. 그리고 충주댐도 내가 만들었지."  

옆에 앉아있던 검찰수사관들이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기사에도 없었을 겁니다. 아무 말도 안 했겠지요. 아니면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했을라나요? 그냥 전직 대통령을 잡아가는 중이라 매우 신중하게, 때로는 매우 황송해하며 근엄하게 앉아있었겠지요. 하여간 전두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리고 이번에 김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들른 자리에서 또 뜬금없는 제자랑 늘어놓기 특기를 발휘했다고 하는군요. 기자들이 전두환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인연이 깊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네요. 

“여러분이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추기경과 오랜 관계가 있었다. …… 1사단장 시절 김 추기경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찾아와 성당을 지어달라고 하셔서 지어드렸다. …… 보안사령관 때는 저녁을 대접한 적도 있다.” 

아이구, 정말 대단하십니다. 참 훌륭한 일 하셨군요. 그러면서 그는 “김추기경이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합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하긴 워낙 많은 침을 튀겨서 이제 제 입술에 바를 침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마른 입술로도 저리 말을 잘하니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역시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 그는 노태우와 달리 두꺼운 전별금 봉투로 유명한 사람이죠. 이는 장세동 같은 충성파들이 그의 주변에 많은 이유로도 설명되곤 합니다. 역시 그는 그냥 이 정도 식사대접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주는 디저트도 어김없이 내놓았던 것이지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왔는데 그 사람이 젊은 시절 축구선수였다. 나도 육사시절 축구 선수였다.”

기자들이 이 어리둥절한 디저트에 황당해했음은 물론입니다. 기자들이야 황당하건 말건 전두환은 충분히 자기만족을 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막상 전두환에게 질문한 추기경과의 악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군요. 어쨌든 전두환, 역시 장군 출신이라 그런지 통이 참 큽니다. 악연도 이렇게 각별한 인연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저는 전두환 만큼이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통을 가진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죠.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둘 다 변화와 개혁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오바마를 좌파라고 몰아세울 땐 언제고 갑자기 오바마의 철학이 이명박의 철학과 같다니? 참 황당해도 이보다 더 황당할 순 없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과 전두환이도 많이 닮았습니다. 두 사람의 황당개그 수준이 거의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도 닮았구요. 이쯤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어설픈 삼단논법이 생각납니다.

“A=B고, B=C다. 고로 A=C다”

여기서 이런 결론이 유추되는군요.

“전두환=이명박이고, 이명박=오바마다. 고로 전두환=오바마다.”

2008년 대선후보 시절의 오바마. 사진출처=연합뉴스


그러고 보니 저도 참 황당하군요. 돌아가신 분은 추기경이신데 갑자기 제가 정신이 좀 혼미해지는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문 자리에서 김추기경을 “이 양반이…”라고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확실히’를 ‘학실이’로 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갱상도’ 특유의 무례한 말버릇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갱상도거든요.

그렇지만, 전두환이는 참 어쩔 수가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양반’은 무례한 정도가 아니라 무식도 이미 초월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듯보입니다. 하여간 오늘은 참으로 황당한 날입니다.

2009. 2. 19.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회 담장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는 1969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다. 또 그는 최연소의 나이에 추기경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령 추기경으로서 오늘 영면의 길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기록들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교회의 담장을 헐었던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다음까페」『성직자가사는이야기』아래 사진들도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에 저항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던 학생, 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따뜻한 품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소신을 몸소 실천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무덤을 찾은 김추기경
몇 년 전이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은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김창숙 선생은 행동하는 유림으로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그는 이승만에 맞서 반독재의 선봉에 섰던 진정한 선비로서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김 추기경이 움직이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미 곳곳에다 사진기를 설치해놓고 후레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과연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심산 김창숙은 단지 위대한 선각자일 뿐만 아니라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나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절을 할까?

김 추기경은 묵묵히 산을 올라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정중히 절을 했다. 그것도 두 번 했다. 나중에 하신 말씀이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두 번 절하는 것이라고 해서 두 번 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존경하는 분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매우 흡족했다. 

 그 전에 나는 혹시나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물론 내가 할 필요가 없는 부질없는 걱정이다. 천주교는 전래 초기에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든지, 반상의 법도를 깨트린다든지 하여 왕조로부터 무수한 탄압을 받았다. 순교자가 수만에 이르렀고, 이를 피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이들 중 절반이 호랑이 밥이 되었다 한다.

1972년. 정부의 8·3 긴급조치에 대한 시국메시지를 발표하는 김추기경. "7·4공동성명을 평화를 위장한 전쟁준비와 정치기만술로 이용하지 말 것" …… "온갖 특혜에도 경제를 파탄낸 정부와 기업가들에게 항의와 맹성을 촉구" ……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강경한 어조가 생소하지 않다. 한 세대가 흘렀건만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일까?


예수를 닮는 것은 가난한 자들 편에서 평등사상을 실천하는 것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는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없이 한 선열들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조상을 공경하는 풍속까지 배격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매우 옳은 처사다. 그러므로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하등 주저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결과가 궁금했다.   

김 추기경은 역시 대범하고 거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불교로 말하자면 마치 도를 터득한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물론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을 노력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며, 예수를 닮는 사제가 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그는 최고의 성직자였다.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으며 스스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1977년. 철거민촌의 김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을 은퇴하고 명동성당을 떠난 그가 몇 차례 가진 인터뷰 등에서 밝힌 변화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놓고 과거 민주화시대의 잣대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우리가 너무나 세속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있을 때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는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강경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곁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 명동성당은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명동성당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이란 것을 했다. 철거민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그들이 교회의 담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경찰을 불러 철의 장막을 쌓은 것이다.   교회의 벽을 헐어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고자 했던,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그리하여 고립된 담장 안이 아니라 사회 속에 교회를 심고자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고귀한 정신이 마치 녹슨 철로변의 빈 역사(驛舍)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 그가 완전히 떠나기도 전에….

1995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

 

교회의 높은 담장을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오늘 김수환 추기경의 영면 소식을 접하며 더욱 슬픈 것은 갈 수록 변해가는 교회의 보수화 바람 때문이다. 교회는 보수적일 필요도 진보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가난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것,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간 진리다.  그러나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천주교, 너 마저도!”

이럴 때일 수록 가톨릭 뿐아니라 이 사회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절실하다. 이제 누가 있어 성당의 담을 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핍박받는 사람들 속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

2009. 2. 1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 들러본후 2009/01/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낭비했구만... 전라도 좌파들... 하여튼...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 한테 낚여?
    정말로 세월 좋아졌구마...
    이런넘들 아주 싸그리 잡아서 삼청교육대가서 6.25때 어땠는지부터
    지대로 교육시켜야 정신차리지....
    이러니까 전라도 제외한 국민의 80%가 전두환때가 그립다고 하지들..ㅉㅉ
    정신좀 차려라 너네들끼리 서로 댓글달고 좋아하지들 말고....
    그런 귀족노조들 보호할 시간있으면 소년소녀가장좀 돌보시기를.......

    • 들러본후 2009/01/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좌파들 특징이 이런 본론만 얘기한 글들은
      무조건 삭제시켜버리지....
      삭제시키기전에, 고향이 어딘지부터 밝혀보시지들 그랴
      전라도 20%가 동조하고 옹호한다고
      국민의 80%가 찬성한다는 착각은 노무현때부터
      시작되더구만.... KBS/MBC때부터..... 



  • 위 글은 제 블로그에 달린 댓글입니다. 본문 제목은 <정몽준의 현대가 보여준 무자비한 보복테러>였습니다.

    어이없는 독해 수준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에게 낚여?…”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북한군 총참모장 대변인이 TV에 나와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데 대해 그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은 방금 전 현대중공업에서 보고 왔노라고 쓴 데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사실 북한은 어수선한 내부를 단속할 목적으로 가끔 이렇게 남북관계를 긴장시키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예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를 단속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자꾸 멱살 잡고 싸우고 그래야 옆에서 싸우지 말라고 말리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할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행동이야 정권안보 차원에서 저지를 수 있는 짓이라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과거 수시로 이런 캠페인을 했습니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저지르는 전형적인 수법이 바로 이거지요.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비유를 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북한의 이런 행동들이 남한의 독재자들에겐 아주 유용한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심지어 97년 대선 때는 당시 정권이 북한과 연계하여 판문점에서 총을 쏘아주기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총풍사건이었죠.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통합책이었는지 어쨌는지 이 사건은 유야무야됐습니다.

    무식한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참 웃기는 일이죠. 적과의 동침도 아니고 무슨 이런 로맨스가 다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게다가 버스 안 뉴스를 통해 북한 군부가 협박하는 무자비하고 한계가 없는 타격력이란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10분 전 현대중공업 경비대들로부터 보았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무자비하고 한계를 상실한 테러였습니다. 과거 현대는 식칼테러사건이란 걸 벌인 전력도 있습니다.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사였던 이덕우(현 진보신당 공동대표)씨는 “삼성은 교활하고 현대는 무식하다”고 했지만, 그날 보았던 현대는 무식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 학살전쟁을 무식하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논조의 주장에 대해 “뭐? 틈만 나면 북한이 남한을 도와주려했다고?”라고 반응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줄 수 있겠습니다.(혹 익명의 이분 머릿속에는 ‘대한민국=한나라당’으로 꽉 차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무식한 것이 죄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입니다.

    글쎄 저를 전라도 좌파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제가 좌파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 스스로는 좌파라고 생각하지만, 제 입으로는 그런 이야길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좌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말이지요. 그래서 좌파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좌파란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로 휴머니즘,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좌파가 아닌가 합니다.  

    느닷없이 전라도 사람에 좌파가 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 사회과학 서적의 90%는 좌파지식인들이 썼으며, 그 이유는 모든 세상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목수정-레디앙)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더러 좌파라고 딱지를 붙여주신다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든 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저는 경남 창원군 웅천면(현재는 진해시)이 고향입니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며 지금도 친척들 대부분이 살고 있습니다. 또 경상북도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원에서 근 이십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갱상디언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전라도 사람이 되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조상들에겐 제 고향을 저버린 후레자식놈이 되고 마는 일입니다. 전통적 유교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는 천벌을 받을 일입니다. 모욕도 이처럼 지독한 모욕이 없는 것입니다.

    전라도 좌파면 삼청교육대 보내야 되나

    익명의 이 댓글은 한 발 더 나아가 “저 같은 사람은 싸그리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보내 6·25가 어땠는지 제대로 교육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습니다. 삼청교육대가 뭐 하던 곳입니까?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병신 만들어 보내던 곳 아닙니까? 길 가다 기분 나쁘게 생긴 놈 있으면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진주에 가면 육거리파라고 있는데요. 그 육거리파 두목이 삼청교육대에 갔다 와서는 정신이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비가 오는 날도 남강다리결에 나와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밤에 애인과 잠을 자다가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전해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당시 저는 직접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을 만큼 나이가 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 무시무시한 곳에 저를 전라디언 좌파로 낙인찍으며 보내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6·25가 어땠는지 거기 가서 안 배워도 이미 충분하게 그 참상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6·25는 지금도 이 나라 안에서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익명의 이 분은 군대나 제대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군대 30개월 꼬빡 채웠을 뿐 아니라 육군본부 참모총장실에 가서 육참총장으로부터 수고했다고 금일봉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노란 봉투에 백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쓴 건 아니고 네 명이서 갈랐지만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도 조금 하지요.

    익명의 이분, 군대나 갔다 오셨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야말로 6·25를 제대로 겪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특수부대원으로 직접 참전하셨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은성무공훈장 등을 세개나 받아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불태워버렸던 것을 아쉬웠던지 최근에 다시 받아다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습니다. 저는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은 통에 마치 제가 6·25 참전용사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함양에 가시면 얼마든지 그 참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그 민간인학살 발굴작업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분의 블로그에 가보시면 공부가 많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2kim.idomin.com) 그런데 굳이 삼청교육대를 다시 만들어 저 같은 사람을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이 익명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분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면 죄다 꼬리를 감추고 도망이나 갈, 용기라고는 개미오줌 만큼도 없는,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잉여물에 불과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악성 댓글을 익명을 이용해 서슴없이 다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모욕법 따위에 주로 동조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분들은 밝은 불을 켜놓으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겁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간에 전라디언, 그것도 전라도 좌파씩이나 돼보는 영광을 본의 아니게 누리게 되었으니 그리 썩 나쁜 일만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전라디언 좌파라!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에겐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어주는 건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이렇게 웃어주어야지요. 피식~

    2009. 1. 3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