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2.08 부러진 화살 보고 정치판 보니, 사쿠라 되고 싶다? by 파비 정부권 (1)
  2. 2009.11.15 절 입구에 세워진 문 이름, 문왕천? 천왕문? by 파비 정부권 (9)
  3. 2009.11.14 아들과 올라간 장복산, 감동적 일몰과 비극적 결말 by 파비 정부권 (8)

오늘 이 시간, 영화 <부러진 화살>의 원작자인 서형 작가와 블로거들의 인터뷰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깜빡 까먹고 있었기도 했지만 기억 했더라도 어제 이를 뽑고 실로 꿰매놓은 상태라 갈지 말지를 놓고 망설였을 겁니다.

장복산님이 쓴 글을 보고서야 아차 했는데, 제목이 특별했습니다. ‘사쿠라처럼 살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런 제목을 달았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마음으로 마우스를 눌렀습니다. 예상대로 비감함이 느껴집니다. 합리적 보수의 사쿠라 선언이라니.

장복산님은 자신을 늘 합리적 보수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합리적 보수입니다. ‘합리적’인만큼 진보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분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장복산님은 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사쿠라처럼 살겠다”고 하였을까요? 약간 의아한 마음으로 가만히 읽어보니 그제야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반어법이었습니다. “사쿠라처럼 살겠다”는 말로 원칙이 무너진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던 겁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는 지독스럽게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편법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교수직에서 해직됐습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는 잘못을 범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그의 원칙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이유는? 네가 뭔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느냐는 거지요. 무슨 소리냐고요? 학교의 부정을 감추고 감싸고도는 게 학교의 위신을 세우는 건데 대학교수란 작자가 솔직히 모든 것을 공개하고 잘못을 빌자고 하니 미친놈이라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분은 자신의 민사재판을 담당한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물론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해 편파재판을 했다는 자백을 받으려 한 혐의는 확실히 유죄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김 교수도 그 점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재판부가 김 교수와 변호인이 주장하는 어떤 신청도 거부했다는 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확인사항이라 할 수 있는 피해자의 옷에 묻어있는 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보자는 혈흔감정신청도 기각했습니다. 기각, 기각, 기각….

저도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저뿐 아니라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말도 안 된다는 거였지요. 김 교수는 법전을 높이 들고 흔들며 “왜 법대로 안 합니까? 왜 원칙대로 안 합니까?” 하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벽창호였습니다.

자, 사쿠라처럼 살겠다는 반어법이 왜 나왔는지 아시겠지요? 더러운 세상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자포자기의 마음이 없지도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해도 더러운 놈들한테는 이길 수 없어. 그러니 우리도 그냥 대충대충 양심 따위 엿 바꿔먹고 살자고.’

장복산님은 말합니다. “어떤 때는 자신에게 석궁이라도 겨누고 싶을 만큼 정의감과 열정이 많을수록 분노와 좌절이 많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사쿠라’가 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 앞부분엔 이렇게 썼습니다.

“장정임 시인도 '한 수학교수는 원칙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 팽배한 적당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교수직에서 내쫓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권력의 자리나 따뜻한 자리를 지키려면 지식과 열정이 아니라 그저 말없이 웃어주고 따라주는 겸손(?)과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원칙과 상식을 따지는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자조적으로 결론 짓는군요. “나는 얼마 전에 ‘나는 합리적 보수입니다’라는 글을 쓰더니 오늘은 사쿠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원칙만 따지는 고집불통 보다는 차라리 사쿠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복산님이 결코 정말로 사쿠라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장복산님의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보수주의자로서 보수파의 핵심이며 트레이드마크인 합리주의를 실천하려는 장복산님의 피로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껴집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재판이 개판이라고 하더니 요즘은 정치판도 개판이고 선거판도 개판인 모양입니다. 누구를 위한 단일화고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때는 정말 피곤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장복산님은 얼마 전 문학평론가이자 경남도민일보 논설위원인 정문순 씨의 손석형 씨의 도의원 중도사퇴 총선출마가 정치수준을 높이는 것이라는 칼럼을 비판하는 제 글에 이런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손석형 씨 옹호논리가 어처구니없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원칙이나 상식을 이야기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변절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야 잘사는 것입니다. 정치도 자기욕망대로 하는 것이 잘 하는 정치이다, 국민은 철저하게 무시해야 합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김명호 교수는 고집스럽게 원칙을 고수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칙만 잘 지키면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습니까? 대학의 경영진과 교수들, 사법부의 판사들은 모두 사쿠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교수가 말했습니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그럼 정치판은 어떨까요? 장복산님 말씀처럼 마찬가집니다. “이게 정치판입니까? 개판이지.” 야권후보단일화는 잘 될까요?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개판이니까요. 사쿠라들이 판치는 판이니까요.

지금쯤 <부러진 화살>의 원작자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어쩌면 산호동의 어느 주점에서 뒤풀이 중일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얘기들이 오갈까요? 서형 작가에게 창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판에 대해 물어보았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그도 그랬을까요?

“내가 석궁사건 심층취재 해봐서 아는데, 역시 사쿠라가 되는 게 좋겠어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10월 25일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진해 시민회관 쪽에서 장복산 공원을 거쳐 삼밀사로 올랐는데요. 삼밀사는 장복산의 중턱쯤에 있는 절이었습니다. 저는 이 길이 처음입니다. 장복산 공원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아래 사진과 같이 평화통일기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갸륵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진심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 김주완 기자가 올린 블로그 포스트에도 보니 팔공산 동화사에 통일기원대전이 거창하게 지어져 있고 현판에는 노태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저는 통일을 자주 입에 담는 분들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인데, 역시 거시기 하더군요.

대규모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무력도발로 충돌을 야기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판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이렇게 돌탑을 쌓아 놓았군요. 

옛날 친구의 신혼여행에 따라갔다가 마이산에 세워진 돌탑들을 보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나던데요. 누가 처음 쌓기 시작했을까요? 저도 돌을 하나 올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무너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거의 땅바닥에 얼굴이 닿을 정도랍니다. 돌탑을 지나자 이번엔 커다란 석등처럼 생긴 조형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두 개가 양쪽에 서있었는데요. 이 절은 매우 특이하군요. 일주문은 없고 대신 이 석등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이 보이는 형상이었습니다.   


석등을 지나 가파른 경사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드디어 절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매우 힘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현판이 보입니다. <장복산 삼밀사>라고 씌어 있습니다. 보통 무슨 산 무슨 사라고 적어놓는 것은 조계종의 오랜 전통입니다. 조계종은 선종의 맏형으로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9산을 통합하여 창건된 종파라고 하던데요.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이 교종을 기반으로 선교 통일을 기한 데 비해 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죠.

그래서 항상 절 이름 앞에 산 이름이 먼저 붙는다고 하더군요. <조계산 송광사>처럼 말입니다. 아, 말이 나온 김에…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이었죠. 그런데 지눌스님을 존경하는 왕의 명에 의해 송광산은 조계산으로, 조계사는 송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대요. 재미있는 일이죠.   


하여간 이 절도 장복산 삼밀사란 현판을 단 것을 보면 선종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데 현판이 한글로 되어 있군요. 그리고 절 이름은 보통 일주문에 새겨놓잖아요? 그런데 이 건물은 아무리 봐도 일주문과는 달라 보이는데요. 일주문이란 말 그대로 기둥 한 개만으로 세워진 문을 말하잖아요?

게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아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것도 한글로 <장복산 삼밀사>라고 써놓으니 특이하다 못해 이게 절이 맞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그런데 사진의 밑을 보세요. 같은 건물 1층에 보니 <문왕천>이란 현판이 보이시죠? 이게 뭘까요? 저는 여기 한참 서서 이게 뭘까 하고 고민했었답니다. 

문왕천? 문왕천? 문왕천? 

도대체 문왕천이 뭐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제석천은 들어봤지만 문왕천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 거 참, 무얼까요? 
……… 


옆에서 함께 한참을 지켜보던 아들 녀석이 대뜸 말합니다. "아빠, 혹시 이거 천왕문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현판 <장복산 삼밀사>는 현대식으로 좌에서 우로 쓰기를 해놓고, 아래 현판은 다시 우에서 좌로 쓰기를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이건 한글이잖아. <문왕천>이 분명해." 그러자 아들 녀석이 말했습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뭐." 

건물의 입구에 들어선 저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거기엔 4대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천왕들이 몹시 화가 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두고 문왕천 운운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절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경제적인 사찰이로군. 일주문을 대신해 석등 두 개를 세워두는 센스에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합쳐 하나의 건물에 담는 이 놀라운 발상이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 게야. 하긴 땅이 좁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을 테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저 문왕천인지 천왕문인지는 마음에 걸린다 말이야."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지금도 문왕천으로 보이는데요. 
어쨌든 이 절에서 내려다보는 진해만은 참 아름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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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장복산삼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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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들과 함께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10월 25일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러니까 10월 25일 우리는 장복산을 오른 것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시민회관에서 내려 장복산 공원과 삼밀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봉우리들을 넘어 안민고개에서 도로변 데크 등산로를 걸어 태백동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진해시민회관에서 조금 올라가니 장복산 공원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오뎅을 사먹었는데 맛은 하나도 없는 것이 개당 700원, 세 개에 2000원 하더군요. 기분 잡쳤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 하는데 이건 내가 만든 오뎅보다 더 맛이 없는데다가, 주인아주머니(할머니인지)가 경상도 갯가 사람 아니랄까봐 퉁명스럽기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초장부터 기분 잡쳤군. 오늘 산행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이거 기분이 영 안 좋아." 위에 보이는 녀석이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산에 따라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요즘 제 카메라에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캐논 450D인데 나름대로 쓸 만한 DSLR 카메라죠. 전문가용은 아니라도 전문가용을 흉내 낸 보급형 SLR 카메랍니다.

저는 이 카메라를 산지 무려 8개월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자동모드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놈은 재산 1호인 이 카메라에 손을 못 대게 하는 데도 벌써 수동모드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용어까지 써가면서 말입니다. 확실히 신식문물을 익히는 데는 아이들이 빠른 것 같습니다.

빛의 세계에 대해 더 고수인 것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저는 "그래, 좋다. 오늘은 카메라 니거다." 하고 과감하게 맡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8개월 동안 이 재산 1호를 불면 꺼질 새라 신주처럼 모셔왔습니다. 아직 잔기스 하나 없으니 방금 산거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보시는 모든 사진들은 아들놈의 솜씨랍니다. 

다람쥐가 지나가고 있군요. 녀석이 잽싸게 셔터를 눌렀지만, 18-55미리의 표준 줌렌즈로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녀석이 말합니다. "아빠, 봐라. 지름신이 안 내리나? 아, 나는 자꾸 지름신이 내리는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망원렌즈 사고 싶지 않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더군요.  


망원렌즈?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는 표준 줌렌즈면 꿀떡입니다. 그리고 풍경을 찍기에는 표준렌즈가 딱이죠. 산을 오르다보니 이런 태그가 나무에 붙어있군요. 산을 사랑하는 부부. 오우, 정말 훌륭한 부붑니다. 함께 산을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겠지만, 정도 돈독해지고 일석이조란 생각이 드는군요.  


장복산 정상입니다. 아 참, 우리가 산에 오른 목적은 산행도 산행이지만, 장복산 일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랍니다. 사실은 2주 전에 장복산에 올랐었는데 넘어가는 해가 너무 멋졌거든요. 아마 평생 그렇게 멋진 일몰광경은 처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놈을 꼬여 다시 장복산에 오른 것입니다.

12시 반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쉬엄쉬엄 올랐는데도 시간이 2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려면 5시는 넘어야 할 텐데….


북쪽을 보니 창원시가지와 공단이 보입니다.


서쪽을 보니 마산시가지가 보입니다.


이번엔 다시 남쪽을 보니 진해시가지가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장복산이 진해, 마산, 창원의 중심에 솟은 산이었습니다. 아들놈이 장복산 정상 표지석에 섰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받아 한 컷 찍었습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5백 수십 미터쯤 되었는데, 정확한 높이는 까먹었습니다.


저 멀리 마창대교도 보이는군요. 다리 건너 오른쪽에 희미하지만 가포 매립현장이 보입니다. 날씨가 구름이 많고 황사가 있었던지 시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며칠 전처럼 선명하고 대단한 크기의 일몰은 기대하기 어렵겠습니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웬 봄꽃이 피었습니다. 이게 창꽃이던가요, 진달래던가요? 아무튼 찬바람을 맞고 있는 꽃이 애처로웠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에 핀 봄꽃의 피부 곳곳은 멍이 든 것처럼 시커멓게 시들어 있었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 왠지 불길한 생각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장복산 정상 바위에서 내려오는데 이렇게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옆에 목재로 잘 만들어놓은 계단이 있는 줄을 모르고 이리로 내려왔습니다. 마치 유격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멋들어지게 서있군요. 아마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능선에 아름다운 꽃들도 만발하고요. 이 꽃은 구절초라고 하나요? 아니면 국화일까요? 저는 꽃 이름은 장미, 코스모스 밖에 몰라서…


장복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옆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배낭에 넣어온 도시락을 먹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시간은 2시.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미리 책을 한 권 넣어왔습니다. 주변의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곳에 앉아 세 시간을 버티려면 독서가 최고지요. 아들 녀석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테고요.


측량기준점인 모양입니다. 삼각점의 중심에 추를 늘어뜨리면 거기가 기준이지요.


드디어 서서히 일몰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하늘에 비행기도 지나가고요.


이제 다섯 십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역시 다가오는 저녁의 색은 아름답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사진만 감상하시겠습니다. 물론 다 우리 아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아 우리 애는 월포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죠.


자, 잘 감상하셨습니까? 여기까지가 마지막 사진입니다. 아들 녀석은 진해시가지 야경도 찍겠다고 했지만 찍지 못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부터 안민고개까지는 예닐곱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죠. 그런데 흥분에 도취된 아들놈이 내리막길을 카메라를 손에 든 채 뛰어가다가 엎어진 것입니다.

다음 봉우리에 뛰어올라가서 거기서 또 다른 일몰장면을 잡고 싶었던 것이죠. 제 딴에는 엎어지면서도 최대한 카메라를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보시다시피 이후부터 사진은 없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암흑은 산중에만 찾아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씩씩거리면서 능선을 달렸고, 녀석은 모르겠습니다. 대화가 단절되었으니까…. 

일몰이 지나가자 세상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변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칼 같은 바위 능선의 양쪽은 천 길 낭떠러지,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화가 났던 터라 아무 생각이 없더군요. 그냥 묵묵히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니 안민고개가 나왔습니다. 속으로 살았다 싶었지만 일단 냉전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안민고개에서 진해시가지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가려니 진해에 사는 아내의 대학 선배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가는 어느 실내포장에 들어가서 닭발 요리와 소주를 한 병 시키고 녀석에겐 우동과 만두를 한 접시 시켜주었습니다. 그 선배가 아들놈의 눈치를 살피더니 "야, 너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표정이 와 그렇노." 

"일마 이거 오늘 사고 한개 칬다 아임니까." "와 무슨 사고 칬는데?" 경위를 들은 그 선배는 "야, 너그 애비 재산 1호를 그래 뿌사삤으니 성질 안 날끼가. 조심 좀 하지. 지나간 일인께 신경 쓰지 말고 만두나 먹어라." 그리고 제게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한테 너무 그라지 마라. 카메라가 중요하나, 아가 중요하지." 

하긴 맞습니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 그게 됩니까? 기분 나쁜 건 나쁜 것이고 또 아들은 아들이고 카메라는 카메라인 것이지요. 어쨌든 카메라는 2주 후에 부산에 가서 깨끗하게 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놈은 매일 저녁마다 아르바이트로 설거지를 해서 받은 1000원을 모아 2만원을 변상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애 엄마는 "야 임마, 시키지도 않는 설거지를 니가 와 하는데?" 하면서 불만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불만입니다. "설거지를 할라면 자기가 하지 와 아를 시키노?" 제가 시켰거든요. 설거지해서 돈 벌어 갚으라고요. 어쨌든 오늘부로 2만원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꽤 설거지를 많이 한 셈이죠. 

오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동민아, 오늘까지 2만원 받은 걸로 끝내자. 5만원은 받아야 되는데 나머지는 탕감이다. 됐나?"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무척 기분 좋아라 하는군요. 가만 생각하니 저도 좀 웃기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벌어진 일이니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2만원은 돌려주어야 할 듯합니다. 아무튼 카메라는 무상수리로 간단하게 고쳤거든요. 물론 부산까지 두 차례 왕복 차비는 들었지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