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7.06 미스 리플리의 끝은 장미리와 생모 이화의 죽음? by 파비 정부권 (2)
  2. 2011.06.16 미스 리플리와 동안미녀, 누가 더 악당일까? by 파비 정부권 (1)
  3. 2011.06.08 미스 리플리 장미리는 유죄일까요? by 파비 정부권 (25)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몬도그룹 송회장의 부인 이화가 장미리의 생모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연치고는 너무 지나치고 잔인합니다. 하긴 뭐 드라마란 게 그렇습니다. 한정 없이 넓은 세상을 압축시켜 자그마한 상자 안에 다 담아놓습니다. 그게 사실 매력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첫 회에서 우리는 장미리가 죽었으리란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남자의 독백, 그러니까 장명훈과 송유현이 똑같이 “그녀는 떠났다”라고 말하는 독백으로 이 드라마는 시작됐습니다. 그 독백으로부터 우리는 비극적 결말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미리가 결국 모든 거짓이 탄로나 파멸에 이르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물론 죽지 않고 어디론가 조용히 떠나는 결말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없겠죠?) 운명에 이화가 깊이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지독한 욕망의 화신으로 목적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죠.

정말 그랬습니다. 그녀는 욕망의 화신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딸로 밝혀진 장미리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모전여전인가요? 장미리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입니다. 그녀는 특별한 어느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모든 것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릴 듯이 행동합니다.

자신을 구해준 장명훈을 버리고 송유현에게 간 것도 아무리 채워도 갈증만 더한 욕망 때문입니다. 장미리의 생모 이화가 장미리를 버린 것도 채우지 않으면 갈증에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욕망 때문이었겠지요. 그녀는 딸을 둔 상태에서 송회장을 유혹해 결혼을 앞둔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미스 리플리>, 어떻게 될까요? 비극적 결말일 것은 이미 알고 봤지만, 이 정도로 지독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딸인 줄도 모르고 장미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이화, 나중에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녀의 심장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두 사람 다 파멸하게 되겠지요. 둘 다 미치거나 죽거나…. 장미리가 죽는다면 이화도 살아있긴 힘들겠지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딸을 버린 엄마. 아무리 심장이 얼어붙은 모성이라도 모성은 모성이거든요. 다시 만난 딸이 자신으로 인해(꼭 그게 아니더라도) 파멸에 이르고 죽게 된다면, 그때도 부잣집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태양은 가득히>에서 리플리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만, 장미리는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군요. 하긴 이미 히라야마를 죽여야 할 이유도 없어졌지요. 장명훈도 송유현도 모두 장미리와 히라야마의 관계를 알아버렸으니까요.

▲ 왼쪽부터 장미리의 생모 이화, 어린 시절의 장미리, 현재의 장미리

▲ 히라야마

참 아이러니한 것은 히라야마가 장미리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통, 그러니까 화류계라고나 할까 아니면 조폭을 섞어 화조계라고나 할까, 그쪽 남자들의 심리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히라야마는 어쩌면 조재현이 연기한 나쁜 남자와 닮았습니다.

알쏭달쏭한 그의 말속에서 우리는 그가 나쁜 남자처럼 장미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그런 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실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반전들이 <미스 리플리>에는 숨어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궁금한 것은 그겁니다. 장미리와 이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둘 다 죽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장식할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만약 장미리만 죽고 이화는 살아남는다면? 그건 더 큰 비극이겠지요. 아마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연속극을 즐기는 저는, 그래서 블로그도 연속극 리뷰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만, 가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유가 뭘까 하고 한참을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방송사마다 비슷한 소재를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한때는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 출생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mbc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과 sbs 주말연속극 <신기생뎐>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긴 이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겠죠.

그런데 최근 월화드라마에서 mbc와 sbs가 동시에 같은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어 “어, 진짜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방송사 피디들끼리 사전에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이슈를 따라가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일까?” 하고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두 드라마는 모두  학력위조에 의한 위장취업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짠 것이 아니라면 우연이겠지요. 방송사의 피디들이란 세상을 보는 방법이나 시각이 비슷해서 이 우연은 어쩌면 필연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미스 리플리는 침울하고 무겁게 그려지고 있는데 반해 동안미녀는 다소 코믹하고 발랄한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학력위조의 정도로 보자면 뭔가 음험한 범죄자의 냄새가 물씬 나는 미스 리플리 장미리(이다해)보다 밝고 명랑한 동안미녀 이소영(장나라)이 훨씬 죄질이 심각해보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소영은 용서해줄 수 있어도 장미리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둘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장미리나 이소영은 모두 사문서 위조에 공문서 위조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력서에 허위의 기재를 했으니 사문서 위조이고, 이에 첨부해야할 서류들, 요컨대 신분증 사본, 무슨무슨 등본, 초본 등 공적 문서도 틀림없이 위조했을 것이므로 이는 공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장미리의 동경대 졸업장 위조가 공문서 위조에 해당하는지는 저도 정확한 법률지식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이소영의 공문서 위조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회사든 이력서 한 장 달랑 받고 아무런 입사서류도 받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무려 아홉 살이나 어린 동생 이름으로 입사했습니다.

말하자면 34살의 나이에 고졸학력과 신용불량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다른 사람(사실은 자기 친동생)의 젊은 나이와 대졸학력, 깨끗한 신용을 훔쳐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러면 이에 비해 장미리의 죄는 무엇일까요? 그녀는 남의 이름을 도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졸업장을 위조해 대학을 나오지 못했는데도 대학을 나온 것처럼 속인 것입니다. 그것도 명문 동경대학을 나온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장미리의 죄는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인계를 쓰고 있습니다. 호텔A의 유력한 이사이며 차기 사장이 확실시되는(아니 이번 주에 사장이 됐군요) 장명훈을 유혹해 자기 남자로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장명훈은 청와대의 변모 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미리가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그토록 멸시하던 유타카가 몬도그룹의 2세이며 후계자란 것을 알고 난 후에 취한 행동입니다. 장미리가 비록 살기 위해 장명훈을 유혹했지만, 일말의 진심은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저도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대체 그녀에게 진실이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동안 그녀가 흘렸던 눈물들에 뒤섞여 심장을 울리던 절규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문희주의 동경대 졸업장을 훔쳐 친구를 위조 방조범으로 곤욕을 치르게 한 장본인이 본인이었음이 탄로났을 때 “그래, 나 살라고 그랬어!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 하고 외치던 당당한 솔직함은 과연 진심이었을까요?

그래서 앞으로 장미리를 두둔하거나 동정해줄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장미리의 죄는 본질적으로 그녀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것이라고 변호하던 저도 갈수록 뻔뻔해지는 그녀의 행동에 실망하며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우리의 동안미녀 이소영은 다릅니다. 그녀는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그녀가 저지른 위장취업이란 범죄. 학력을 속이고, 나이를 속이고, 신용불량자란 사실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죄는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학력을 가진, 더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회로부터(사실은 소수의 전문가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실력을 가진 강윤서 팀장과 대결해서 이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녀가 그동안 했던 거짓들은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하는 장식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소영 씨는 대학도 못나왔지만, 유학을 다녀온 강 팀장보다도 더 훌륭해!”

저는 사실 장미리가 그렇게 되길 바랐습니다. 비록 동경대 출신은 아니지만 진짜 동경대 출신보다 더 대단한 실력을 호텔A에서 뽐내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학력?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이야. 학력이란 그저 자신의 실력을 닦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그걸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건 바보짓이야” 하고 말하게 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대 밖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껏 졸업장을 위조한 죄밖에 없는 장미리는 자기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르고도 진정한 실력자로 커가고 있는 이소영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정말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니 이젠 제목에서처럼 “미스 리플리와 동안미녀, 누가 더 악당일까?” 하는 물음도 정말이지 부담스럽게 됐습니다. 장미리의 죄가 큰지 아니면 이소영의 죄가 더 큰 것인지 분간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아니 드라마의 양상처럼 저도 이젠 장미리가 더 나쁜 여자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어쩌면 저도 알량한 남자라서 이 남자 저 남자 기웃대며 유혹하는 꽃뱀 같은 장미리가 갑자기 미워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포스팅의 제목을 달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마음이라면, 또는 객관적으로 비교형량 했을 때, 유죄의 정도는 분명 이소영이 큽니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양상은 두 여자 모두 학력을 위조하고 위장취업을 했지만 한 여자는 악행을 일삼는 범죄자로, 다른 한 여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착하고 실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그 양상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이렇습니다.

동안미녀가 그 착한 심성을 맘껏 뽐내며 남자들로부터 동정심을 뽑아내는 동안 미스 리플리는 보다 더 비열하고 보다 더 원색적인 악행을 일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자의 성을 이용한 줄타기가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코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미스 리플리 장미리(이다해)와 동안미녀 이소영(장나라)

그러나 어떻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두 사람이 살아온 문화적 배경, 그러니까 이력이나 스펙 이런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외침에 그리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 정도의 스펙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 돈이 들어간 줄 알기나 해? 당연히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지. 실력은 그 다음 문제야. 서울대를 나왔으면 당연히 서울대 나온 만큼의 평가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외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 공부해서 남 주니?” 혹은 이렇게도 윽박지릅니다. “제발 공부 좀 해라.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공부 못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길거리에 수박장사나 공장 노동자밖에 못 되는 거야.”

그리하여 세상 모든 부모들은 등골이 더욱 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는 반값등록금 투쟁 기사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당사자인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어째서 별로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여기에 대해 어떤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자기들 문제가 아니라서 그래. 지들이 돈 내나? 어차피 돈은 제 부모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고, 놀고먹기에 바쁜 애들이 무슨 사회적 의식이 있을 리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관심이 없는 거지.”

하긴 그렇습니다. 어버이연합인가 뭔가 하는 희한한 단체의 유령 같은 노인네들이 반값등록금 투쟁에 반대해서 데모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하긴 노인네들도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든 두 배로 올리든 무슨 상관이겠어. 데모대에 가면 점심도 주고 용돈도 준다니 그게 더 좋을 테지.”

아무튼 저도 몇 년 후면 봉착할 문제인데,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학을 사그리 없애버리는 거죠. 그러면 사교육비 문제도 해결되고 비싼 대학등록금 문제도 일거에 해결될 거 아닙니까. 거기다 미스 리플리나 동안미녀 같은 위장취업 문제도 해결되죠.

뭐라고요? 어처구니없는 소리 그만 하고 자라고요? 알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새벽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그렇지만 가끔 도무지 답이 없는 문제에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약이 될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아니라면 할 수 없고요.

아, 그러고 보니 위장취업이 한때 사회운동, 민주화운동의 한 수단이기도 한 시대가 있었죠. 대학을 나온 것을 숨기고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시대가 변해 하나의 훈장으로 존중받던 위장취업이 비열한 사기꾼들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스 리플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거짓말도 진심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다,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어쩌면 가장 진실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것은 궤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리플리 장미리는 보통의 거짓말쟁이와는 다릅니다.

그녀는 치열한 아니 처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늘 불행했습니다. 그녀에겐 행복이란 먼 이웃나라의 이야기며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현실성 없는 이야깁니다. 그녀는 불행을 씹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그녀의 거짓말에 눈물어린 진심이 담겨있는 듯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장미리가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사실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회는 고급 대학을 나온, 말하자면 미리 예정된 어떤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훔쳤습니다. 그녀는 동경대학교 출신으로 자신을 위조했습니다.

위조된 동경대 출신 장미리 또는 동경대 출신으로 자신을 위조한장미리, 그녀는 유죄일까요? 저는 앞선 포스팅 ☞내가 미스 리플리에 박수치며 응원하는 이유 에서도 말했지만, 장미리가 자신을 훌륭하게 위조해서 정말 대단한 호텔리어로 성공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즉, 다시 말해 저는 그녀에겐 하등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저의 견해에 찬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거짓말이 잘못이 아니라고? 학력을 위조해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 어째서 범죄가 아니란 말이지?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과거에(물론 지금도) 이른바 운동권이라 불리는 친구나 선배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소위 동지라고 서로 부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때 이들은 혁명을 꿈꾸기도 했던(‘했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제 이들 중 대부분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들을 진보운동가, 진보주의자, 진보파 등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이들 중에는 환경운동으로 전업을 한 사람도 있고, 학력철폐운동을 하는 분도 있으며, 시민단체의 주요인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언론인이 된 사람도 있고 판사가 된 사람도 있으며, 어떤 수련회에서 저와 한팀이었던 이 중에는(나이도 저보다 한두 살 많은 정도입니다) 국회의원을 거쳐 광역시장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열렬한 학력폐지주의자일 걸로 생각하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현실에선 전혀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하루는 이들끼리 술을 먹다가 사소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관우가 들고 다니는 청룡언월도의 무게가 얼마냐는 것이었죠.

사실 이 논쟁은 매우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관우가 들고 다니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를 달아본 바가 없으며, 또 관우가 실제로 청룡언월도를 들고 다녔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연의>에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다녔으며 그 무게가 팔십이근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연의>를 쓴 나관중은 삼국지의 시대보다 무려 천년이나 후세의 사람이니 우리가 고려태조 왕건이나 그의 오른팔이었다는 유금필 장군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유비나 관우, 장비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82근이야.” 다른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80근이야.” 장난으로 시작된 칼 무게에 대한 의견 차이는 급기야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됐습니다. 둘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좌중의 가장 나이 많은 한사람이 나섰습니다.

“내가 들어볼 때 80근이 맞는 것 같네. 아무래도 자네는 이 친구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지 않나.”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대충 분위기는 80근으로 정리됐습니다. 참고로 좌장이란 그이는 서울대 출신이며, 80근을 주장한 이도 스카이 출신이었습니다. 그럼 참담한 패배를 맛본 그 사람은? 그는 이도저도 아닌 공돌이였습니다.

저는 이때 의외로 이른바 혁명을 꿈꾼다는 이들에게도, 진보주의자, 진보… 진보… 하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뼈에 사무친 학력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에게도 남모르는 우월주의가 숨어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서울대 출신의 좌장과는 학력에 관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더 있습니다. 그는 부산고 출신이었는데 아마 그의 매제가 경남고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이 매제와 술상을 앞에 두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명절날이었겠죠.

“형님, 부산고는 솔직히 거렁배이 학교 아닙니까?” 과거 부산지역에서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면 그래도 역시 부산고와 경남고를 쳐줍니다. 이날 이 두 처남매부는 경상도말로 대차게 다퉜습니다. 그래봐야 가족들 간의 문제이니 별 탈 없었을 테지요.

이 이야기를 하며 그 좌장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반에서 20등 안에 들면 전부 서울대 간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었을 겁니다. 한편에선 서울대가 별 것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서울대는커녕 대학 문턱도 못 가본 입장에서 보면 이건 명백한 우월주의의 선언이었습니다.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이른바 운동권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수없이 보아온 터라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아도 그리 놀라지도 않습니다. 자,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장미리는 지쳤습니다. 학번(!)이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한강다리로 가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강다리 대신 거짓말을 택했습니다. 저도 거짓말은 무척 싫어합니다. 제 주변에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87년에 어느 도시의 전경대에서 졸병으로 군 복무 중이었는가 하면 또 전경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투사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와 마주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지만, 그러나 장미리의 거짓말은 신성하기까지 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밑바닥 인생 장미리는 살기위해 강고한 학력사회를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그래, 나 동경대 나왔다, 어쩔래. 이래도 나 안 뽑아 줄 거야? 동경대 나왔으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 안 해도 알 거고. 나하고 일하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거야.”

물론 학력도 없고 배경도 없는 모든 사람들이 리플리처럼 탁월한 능력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도 리플리를 일반적인 경우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미스 리플리에 박수치며 응원하는 이유 에서 제가 신정아 씨를 두둔하는 듯한 말을 하자 어떤 분이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신정아씨는 그리 유능한 큐레이터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줄 잘서고 비위잘맞춰서 그정도 자리에 올라간겁니다. 학력위주의 사회 분명히 문제있습니다만 신정아씨를 옹호할 건덕지는 전혀없습니다. 신정아씨 실력이 궁금하시다면 직접 찾아보세요 미술에대한 이해 안목이 있는여자가 감히 미술계 이런 오명을 남길짓을 했겠습니까?”

저는 이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이해는 하겠지만 박수를 쳐줄 생각은 없습니다. 왜 “신정아 씨가 감히 미술계에 이런 오명을 남길 짓을 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특히 ‘감히’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신정아 씨가 ‘감히’ 자격(학력)도 없이 미술관 큐레이터가 될 생각을 했다”고 그는 비난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신정아 씨를 옹호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범죄를 저질렀고 합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신정아 씨가 학력도 능력도 없으면서 유능한 큐레이터인 것처럼 포장하고 또 그 경력으로 대학교수까지 했다면, 월등한 학력을 소지한 다른 큐레이터나 대학교수들의 실력이란 것도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말입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미스 리플리 장미리는 유죄일까요? 어떻습니까? 참 난감한 질문이지요? 아마도 장미리의 학력위조행각이 밝혀지면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끌려가겠지요. 그리고 판사는 유죄판결을 내릴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결코 그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는 온전히 그녀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늘날 심각한 노인문제로 불효자가 양산되고 현실이 모두 불효자들의 탓이 아닌 것처럼…, 이 또한 사회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그녀에게 던지는 판결문은 이렇습니다.

“너는 왜 진즉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은 거지? 넌 낙오자였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뿐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넌 끝내 살아남아 사회로 하여금 엄청난 비용을 물게 하는 것인가 말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